코이누르에 이어 세계 4대 다이아몬드를 소개한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 다이아몬드들 모두 프랑스 혁명 시기까지 마리앙투와네트의 품에 있었고 이어 이야기할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건도 프랑스 혁명과 관련이 있으니 이것은 시대가 이들의 여러 다이아몬드를 풍운의 다이아몬드로 만들었던 것이다.
가장 유명한 앞의 코이누르에 못지않게 소문난 호프 다이아몬드는 저주를 받은 다이아몬드로서 전설의 대명사이다.
특이하게 푸른색을 띈 팬시 다이아몬드이며 약 45.52캐럿의 크기이고 인도에서 농부에 의해 우연히 발견이 되었다고 한다.
프랑스의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 등 여러 소유자를 거치다가, 1830년 아일랜드의 헨리 호프(Henry Phillip Hope)가 소유하게 되면서 호프 다이아몬드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호프 다이아몬드는 소유자들이 살해되거나, 고문을 당해 죽거나, 이리에 잡아 먹히거나, 천연두에 걸려 사망하거나, 자살하거나, 익사하거나, 정신이상을 일으키는 등 수많은 희생자를 낳은 다이아몬드이며 결국은 마지막 소유주인 해리 윈스턴이 1958년에 미국 스미소니언에 기증했다.
남다른 푸른 색 광채를 지녀서 그런지 박물관에서 전시가 될 때도 오래 보면 저주를 받는다는 지금은 우스개 가까운 소리도 있다.
복숭아 씨앗 모양의 상시(Sancy) 다이아몬드는 55.23캐럿의 은백색 다이아몬드이다. 원석이 복숭아 씨앗 모양이 아니고 연마 가공시에 그렇게 만들었다.
역시 인도에서 산출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1605년 당시의 소유주인 상시(Sancy)가 영국의 제임스 1세에게 이 다이아몬드를 판매하면서 현재의 이름을 얻게 된 것으로 추측이 된다.
블루호프 다이아몬드 비슷하게 이 상시도 소유한 자가 비극적이라 되어 있는데 이 다이아몬드를 소유했던 영국왕실이 1688년 명예혁명에 의해 몰락하고, 그 후 소장자인 프랑스 왕실의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가 프랑스 대혁명기간 중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는 등 소유자들이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절대 왕정의 정치적인 몰락은 어쩔 수가 없는 시대의 흐름으로 작위적인 냄새가 짙다.
이 상시 다이아몬드는 1906년 월리엄 월도프 아스토(William Waldorf Astor)란 인물이 구매한 후 72년 동안 그 집안의 소유로 있다가 1978 년부터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하니 이것의 운명도 블루호프 다이아몬드와 닮은 점이 많다.
리전트 다이아몬드도 호사가들에게 의해 지칭된 세계 4대 다이아몬드에 속하는데 140.64캐럿의 리전트(Regent) 다이아몬드도 코이누르와 같은 장소인 인도 골콘다 지방의 콜러광산에서 1689년 발견됐다.
1701년 스웨덴 마드리드의 총독인 토마스 피트(Thomas Pitt)가 상인으로부터 이 다이아몬드를 구입하면서 피트(Pitt) 다이아몬드라고도 불린다. 여러 소유주를 거쳐 1717년 마리앙투와네트가 구입하여 프랑스 왕실 소유가 되었다. 이후 혁명기에 나폴레옹 1세에게 넘어갔는데 나폴레옹은 늘상 이 다이아몬드를 칼자루 끝에 달고 다녔다고 한다.
이 다이아도 1887년부터 현재까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마지막의 세계 4대 다이아몬드 중에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피렌체 다이아몬드Florentine Diamond이다.
연도를 믿을 수 없지만 약 2,000년 전에 마찬가지로 인도에서 최초로 발견이 되었다고 하며, 137.27캐럿의 역시 연노랑색 다이아몬드라고 하니 질소가 불순물로 섞인 모양이다.
오스트리아의 황후 마리아 테레지아의 소유가 되면서 피렌체 다이아몬드라고 불리웠다.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 마리 앙투아네트가 프랑스 루이 16세와 결혼하면서 혼수품으로 프랑스에 가져왔다. 그 후 나폴레옹의 부인인 마리 루이즈, 오스트리아 황후 엘리자베트 폰 비텔스바흐를 거쳐 역시 마지막 오스트리아 황후였던 치타 황후가 마지막 소유주가 되지만, 1922년 오스트리아 제국의 멸망 이후 행방이 묘연해졌다.
( 오스트리아 제국의 마지막 황제의 순진한 행보에 의해 사기꾼에게 당했다 )
witpo
Ⓐ 유명한 블루호프 다이아몬드.
Ⓑ 상시 다이아몬드.
Ⓒ 리전트 다이아몬드.
Ⓓ 피렌체 다이아몬드와 마지막 소유주, 치타 황후(Zita von Bourbon-Parm). 치타 황후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최후의 황제인 카를 1세의 아내로서 피렌체 다이아몬드의 광채와 같이 남편과 권위를 모두 잃어버렸지만 용케 자식들과 함께 1989년까지 살아남았다.
Ⓔ 이외에 역사적으로 별 에피소드는 없지만 가장 비싼 다이아몬드 둘.
위에는 오펜하이머블루이고 밑은 핑크 스타인데 가장 비싼 가격으로 거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