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대로 된다
히 11:1-2
예)오래전 서울에 5층짜리 빌딩이 있었는데 4층에 개척교회가 들어섰더란다.
주일 낮 예배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데 주일 저녁예배, 밤 예배, 철야를 하려고 하면 심각하다.
교회에서 분위기 있게 노래를 부르면 위층에 술집이 하나 있었는데 술집에서도 분위기 있게 한다.
이를 테면
“나 같은 죄인 살리신 ” 이런 찬송을 하면 위에서도
“이름도 몰라요 성도 몰라”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웅장하게 부르자 위에서도 웅장하게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말했나?”
이러니 예배가 안 되는 것이다.
할 수 없어 목사님이 한 달을 작정하고 기도했다. 술집 좀 없어지게 해 달라고. 작정하고
기도한지 25일 지났는데 술집에 불이 났다.
그런데 5층 술집만 새카맣게 타고 4층에는 예배당과 식당이 있었는데 커튼 하나도 안탔다.
술집 주인이 아래층에 있는 목사님이 술집 없어지게 작정 기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불은 아무래도 이 상하다. 목사님이 기도해서 불이 낫다 생각하고
목사님을 경찰서에 고소했다.
목사님이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게 되었다.
“목사님 죄송하지만 술집 사장의 애기인즉슨 목사님이 기도해서 불이 낫다고 합니다.
그게 사실입니까?” 목사님이
“ 내가 술집 없어지게 기도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내가 기도했다고 불이 났겠습니까?”
그랬더니 조사계장이
“목사님 이상하네요.
술집 사장은 기도의 능력을 믿는데, 목사님은 기도의 능력을 믿지 않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조사결론
“ 이렇게 믿음 없는 목사의 기도로 불이 난 것 같지는 않음”
믿음대로 된다.
없어질 줄 믿고 기도하면 없어진다.
믿음이란 ?
신약 성경에서 만도 믿음이란 단어가 600번 이상 사용되고 잇다.
성경에서 믿음이란 말을 뽑아내고 나면 텅 빈 책이 되고 말 것이다.
신앙인이란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인데 신앙인에게 핵심정신 믿음을 빼고 나면
신앙인이 아니라 정신 나간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
첫째로;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것이다.
인생 구원의 다른 길은 없다. 하나님 외에는 없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믿는 것이다.
그 분은 크고 위대하시기 때문에 그 분 안에 능치 못할 일이 없다.
이것을 믿는 것이다.
마 8:13 = 네 믿은대로 될찌어다 하시니 그 시로 하인이 나으니라
마 15:28 =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마 21:21 =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잇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산더러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막 9:23 =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요14:12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 보다 큰 일도 하리니
빌 4:13 =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모두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가는 믿음의 능력을 말씀해 주고 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예) Your God is too small"(너의 하나님은 너무 작다) 라는 책에 ”
네 인생의 크기는 네가 믿는 하나님의 크기에 따라 결정된다“라고 했다.
여러분은 얼마나 크신 하나님을 믿는가?
알렉산더 대왕 곁에 늘 지혜를 말해주던 늙은 장수가 하나 있었다.
요즈음 말로 소위 전역을 하고 고향 마을로 돌아가게 되엇다.
아렉산더가 퇴역하는 장수에게 한 가지 소원을 말 하라고 했다.
그 때 장수는
“폐하 제게 폐하께서 점령하신 나라 가운데 한 나라를 주십시오”라고 대답했다.
주위에서 듣고 잇던 다른 장수들이 폐하의 나라를 요구하는 것은 불경죄라고 화를 내었다.
그 때 알렉산더는 크게 웃으며 오히려 기뻐한다.
“한 나라를 가져라. 그대는 내가 나라 하나라도 줄 수 있을 만큼 큰 자로 인정했도다.
그대는 내게 큰 영예를 안겼도다. 가져라”
여러분은 하나님을 얼마나 크신 분으로 인정하는가?
우리의 인생! 어떤 환경에서 태어 났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당신과 함께 하는 하나님. 그 분이 얼마나 크신 분인가에 따라 결정이 된다.
당신이 경험하는 그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인가에 따라 결정이 된다.
양치기 가정에서 말째로 태어나 목동생활을 하다
이스라엘 통일 왕국의 임금이 된 다윗은 하나님에 대하여 이렇게 고백했다.
“여호와의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엿으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대상 29:11-12)
이 위대한 고백이 다윗을 위대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믿음은 큰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것이다.
둘째로;믿음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이루어 진것 처럼 믿는 것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11:1)
예) 어떤 신학자는 이 말을 풀이하기를 “믿음은 종달새 알을 들고 종달새의 노래를 듣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난 그렇지 않다. 이런 것은 믿음이 아니다.
그것은 자연 현상에서 나타나는 믿음이다.
이런 것은 구태여 신앙세계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믿고 살아가는 것이다.
이를 테면
우리가 대구공항에 가기 위해 낙동대교를 지나간다.
그 다리는 뭘 믿고 건너는가? 서울 성수대교처럼 무너질 수도 있는데.
낯 모르는 사람이 운전하는 버스에 내 몸을 맡기고,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조종하는 비행기에 내 몸숙을 맡기며. 몸이 아프면 병원을 가서
의사 면허증도 검증하지 않은 의사에게 진찰을 받고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 간다.
약사는 우리가 알 수 없는 화학 성분의 약을 지어준다.
봉투에 쓰여진대로 약을 먹는다.
면허증이 있으면 인간을 믿을 수 있나?
피곤하면 사우나에 들어 갔다가
이방소에 들려서 정신상태를 검증하지 않은 이발사의 면도 칼에 목을 맡기고 누워있다.
이런 것은 신앙인이 아니라도 삶 속에 믿음이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믿음은 그런것이 아니다.
생계란을 들고 병아리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삶은 달걀 속에서 닭 울음소리를 드는 것이다.
믿음은 내 상식 넘어에 제 4차원의 세계를 믿는 것이다.
혈루증 여인처럼 예수님의 옷 가에 손만대어도 내 병이 나으리라.
백부장 처럼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습니다라고 한 것 처럼 이것이 바로 믿음이다.
믿음이란 말은 예수님이 믿음의 주인공이란 말이다.
예수는 믿음의 원천이요 주인이요 우리에게 믿음을 나눠주시는 분이다.
그래서 그 분을 바라보면 믿음이 온다. 태양을 등지고 있으면 태양은 보이지 않고
내 앞에 그림자만 나타난다.
예수를 등지고 서 있으면 불안과 공포, 슬픔과 걱정의 그림자가 나타난다.
그러나 태양을 바라보면 그림자는 뒤로 물러가고 태양만 나타난다 그것이 믿음이다.
예)인도네시아는 인구 2억중 30%인 6천만명이 예수를 믿고 있다.
이스람국가안에서 수많은 사람이 순교를 당하고 고난을 당하면서도 굴하지 않고
복음을 전한 결과 아시아 최대의 기독교 국가가 되었다.
수루바야라는 곳에 예배당 좌석이 2만5천석이 넘는 교회가 있는데
그 교회가 그렇게 큰 교회가 된데에는 아브라함 알렉스 목사님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목사님 가정에 뇌성마비 아들이 태어났다.
연약한 그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지만 목사 가정에 뇌성마비 아들이 태어 났다고
이슬람교도들이 비웃는 손가락질은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목사님은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오직 십자가의 능력만 바라복앗다. 전으하신 하나님만 바라 보았다.
아들이 온전하게 건강해진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매일 기도하기를 한 달, 두 달, 석 달......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리라 마음먹고 넉달이 지났을 때
아침에 기도하러 방에 들어갔더니 아들이 말쩡한 모습으로 이러나
“아버지”하고 부르는게 아니겠는가?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서 목사님은 제한이 없는 하나님의 능력,
한계가 없는 믿음의 능력을 믿게 되었다.
그 때부터 알렉스 목사님은 그 아들과 함께 제한이 없는 축복,
한계가 없는 기적을 맛보며 살게 되었다.
믿음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이루어진 것 처럼 믿는 것이다.
셋째로; 믿음은 미래이다.
믿음은 앞으로의 일이다.
하나님을 믿으면 우리 미래의 일이 능력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우리의 미래가 능력으로 기적을 맛 보려면
우리의 믿음을 큰 믿음으로 바꾸자. 미래를 축복과 기적으로 바꾸려는가?
첫째, 의심을 버리자.
막 11:23: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면
그 말하는 것이 이룰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둘째, 믿음을 흔들리게하는 사단의 공격을 성령으로 물리쳐야 한다.
에수 이름의 권세를 가지고 명령하는 일이다.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갈찌어다”
셋째, 태산을 옮기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는 일이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
넷째, 말씀의 능력을 의지하고 사는 것이다.
말씀은 방망이다. 문을 부수어 버린다.
말씀은 칼이다. 대적을 물리친다.
말씀은 불이다. 싸늘한 가슴 얼음벽을 녹인다.
말씀은 인생지도이다. 내가 가야할 목표를 알려준다.
말씀은 물이다. 내 인생의 찌꺼기들을 씻어 내린다.
말씀은 힘이요 능력이다.
말씀은 다이나 마이트이다. 모든 장애를 부수어 버린다.
그래서 말씀을 들으면 믿음이 크게 성장한다.
믿음은 미래다. 미래를 바라보면서 기적을 기다리자.
결론으로 ;우리는 믿음의 사람이다.
믿는만큼 이루어진다.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는 것이요
믿음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을 이루어진 것처럼 믿는 것이요
믿음은 미래이다.
이제 우리 세천교회는 정말 믿음이 아니면 이루어질 수 없다.
우리 교회성도가 모두 축복의 가정이 되고 축복의 사업이 이루어질 것이다.
미래의 일이다.
믿자 하나님은 내가 큰 하나님으로 bale으면 큰 축복으로 채워주신다.
이제는 믿음으로 아멘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