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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은 수녀, 우신연 온라인 세미나 강의
불확실성 시대, 혐오와 차별을 넘어 어떻게 새로운 인간으로 나아갈 것인가.
박정은 수녀(미국 홀리네임즈대 영성학 교수)가 강의하고 참가자들이 자유 토론한 세미나가 14일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세미나를 준비한 우리신학연구소는 올해 온라인으로 배움터를 열어 매달 줌 세미나, 온라인 강좌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날 세미나에는 70여 명이 참여했다.
코로나로 극대화된 불안 증상들, 거룩함을 극복할 구멍이자 단서
우리는 보통 교육, 직업, 전문 지식 등을 갖추면 편하게 살며 인생을 통제할 수 있다고 여긴다. 익숙한 일상에서는 고통도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인생이란 정말 확실할까? 질문을 던진 박정은 수녀는 “우리의 모든 삶과 시간은 불확실성이란 선상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인간의 실존은 시간과 공간 사이, 이것이 끝나고 아직 저것이 시작되지 않은 순간들로 이어진다. 삶이란 가능성의 시간이자 극도의 공포가 나타날 수 있는 시간이며, 이러한 실존적 두려움을 채워 준 것이 인류문화이자 종교다. 종교는 이것이 삶이라고 가르치는 한편 절대성과 보편성을 강조한다. 인간은 절대성과 보편성 아래에서 안정감을 얻기 때문이다.
박 수녀는 "우리는 이 안정감을 위해 삶의 구멍을 자꾸 메우려 하지만 우리 몸에 눈, 코, 입, 귀와 같은 구멍이 있어 살아 있음을 확인하듯, 구멍은 메워져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종교를 포함한 모든 문명은 이 구멍들을 메운다.
그러다 보니 보편적 담론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불편하고 낯선 존재가 된다. 100킬로그램이 넘는 몸무게 때문에 쉽게 외출할 수 없거나, 무릎이 아파 지하철역을 이용하기 힘든 사람, 가부장 제도의 탈락자, 가난한 이. 이처럼 보편성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의 삶과 존재는 잊혀진다.
이런 가운데 코로나19가 닥쳤다. 한국은 코로나 이전부터 이미 불안 요소가 많은 사회였지만 코로나19로 불안이 극대화됐다"고 말하면서, 코로나19로 터부시했던 죽음이 가까워졌고, 거리두기로 인한 사회적 고립과 소외, 실직과 빈부격차가 심화됐으며 여기에 기후 위기까지 겹쳤다고 했다.
박 수녀는 “최근 사람들을 만나며 많은 이가 우울증에 걸려 약을 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는 소외되고 분리돼 관계들이 깨졌다는 것을 보여 준다”면서, “코로나 시기 주식이나 비트코인 등으로 돈을 번 이들이 있는 반면 가게를 접거나 실직한 이들도 무척 많다.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 현상으로, 분배를 논의하지 않는다면 곧 한계에 이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모습들이 모두 바이러스 때문일까? 박 수녀는 “단연코 아니”라고 말했다. 이는 단지 하나의 증상일 뿐이다. 그는 “증상은 고마운 것이다. 이를 통해 인간성을 극복하고 회복할 수 있다”면서 “이 증상들은 거룩함을 갖춘 모든 인간이 그 거룩함을 회복할 수 있는 구멍, 단서”라고 말했다.
이는 살아가며 극복해 가야 할 것들, 인간의 조건을 받아들이고 함께 가는 사회로 초대되고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우리 사회 많은 이가 이 초대에 '혐오'로 응답하고 있다.
박정은 수녀(미국 홀리네임즈대 영성학 교수). (사진 제공 = 박정은)
인간은 불안이 주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 더 우울해지거나, 정신질환을 앓거나 이상행동을 보이는데 이는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인 반면, 혐오는 타인을 향한 폭력이 된다. 박 수녀는 이들은 모두 “삶의 본질을 보려 하지 않으려 할 때 나오는 불안을 다른 곳에 던져버림으로써 자신은 편안해지는 기본적 심리 기제”라고 설명했다.
최근 젊은 층에서 더욱 대립되고 있는 여성혐오나 남성혐오도 이러한 심리 기제로 설명된다.
박 수녀는 “우리는 먼저 그런 현상이 일어나게 되는 사회적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나는 페미니즘이 싫다, 여자는 싫다라고 하거나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라고 하는 것도 혐오의 메시지”라면서 “이는 사회적 구조와 공간 안에서 나오는 문제로, 어떤 불안감에 대한 자기 보호 기제”라고 설명했다.
역설적이지만 이러한 혐오 현상은 앞으로 페미니즘이 나아가야 할 길을 보여 준다.
박정은 수녀는 그간의 페미니즘이 여권 신장에 기여했지만 지식인, 중산층, 백인 여성 중심, 양성 패러다임과 일부 극단적 남성 배제라는 한계를 지녔던 만큼 앞으로는 가부장제가 소외시킨 남성들과 성소수자 그룹을 고려하며 전 지구적 연대로 나아가는 것이 과제라고 제안했다.
여성들은 여성주의를 통해 문제를 제기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해왔지만 자본주의 가부장제에서 소외된 남성들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해 내지 못했다. 여성주의는 있지만 남성주의는 없는 현실. 대안 담론을 만들지 못하고 억눌려 왔던 남성들의 소외는 여성 억압으로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이 박 수녀의 설명이다.
박 수녀는 “사실 페미니즘 시대의 대부분 남성은 억울하다. 가진 것이 없는데도 가진자가 돼버렸고, 문화적 기대치에 따라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며 자란 데다, 능력까지 갖춰야 한다”면서 “억눌린 감정을 지닌 채 이들은 마초가 되거나 여성을 노예화하는 등의 사이버 폭력으로 들어간다. 건강한 남성에 대한 모델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최근 미국에서 남성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건강한 남성성을 키우는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런 모임들에서는 남성으로서의 자기 경험이 중요하게 다뤄지고, 판단이나 선입견 없이 남성들의 경험에 귀 기울이고 감정을 표현하는 연습을 한다.
감정 표현 연습하기. (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복음을 놓고, 새로운 인간을 꿈꾸자
만일 우리가 남녀로만 성을 구분하는 젠더의식을 넘어서 한 인간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소외를 이겨내기 위해 구체적 네트워크를 시작한다면, 청년들이 가진 삶에 대한 두려움, 아픔을 말 없이 들어 주는 공간을 만든다면?
박 수녀는 “우리가 코로나 시대에 소외를 당한다고 해도 나는 꿈꾸고 있는가, 나는 그리스도인으로 예수를 꿈꾸고 있는가. 내게 꿈을 꾸기 위한 상상력, 창의력이 있는가를 묻자”면서 “인생은 불확실하고 사회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우리는 복음을 놓고 꿈을 꿔야 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기성 종교가 해야 할 몫이 있다. 종교적 도그마와 기존 신학을 잊고, 한 인간을 먼저 품어 안는 것이다. 박 수녀는 인간에 대한 비전을 다시 생각하고, 신학을 재구성하고, 새로운 종교적 가르침을 만들어 나갈 것을 제안했다.
이어 그는 “자본주의의 폭압으로 소외가 깊어지고 가난한 이들이 보이지 않지만, 하느님은 작고 보잘것없는 것에 계심을 고백하자”면서 “신이 인간의 비참하고 처참한 환경 속으로 걸어 들어 왔다는 것을 고백하는 신앙인이라면 작은 것에 귀 기울이고 네트워크를 만들어 가자”고 말했다.
교계의 가르침과 권위 넘어서서
교회 안에서 다양한 목소리들 나오길....
이어진 토론에서 참가자들은 대안을 위한 다양한 제안과 물음을 나눴다.
먼저 박현주 씨(엘리사벳)는 “문화적으로 소외되는 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문화를 더 많은 이와 공유하는 것이 과제”라면서 “문화 공유를 통해 젠더나 우월주의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대 유승주 씨는 “20대 남성들은 본질적으로 남성성을 수호하는 집단은 아니”라면서 “20대 초반 군대나 노동시장에서 겪는 상실감이 크기 때문에 비판보다는 포용돼야 할 세대이고, 개인의 차이를 중요하게 여기는 세대인 만큼 우리 사회가 이들의 다양함을 포용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남성 페미니스트 집단은 매우 소외된 것 같다. 젠더 대립이 심해질수록 여성 페미니스트 집단과 남성 집단 모두에게 공격받는다”면서 “여성주의를 확장하고,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남성 페미니스트의 존재가 논의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박정은 수녀는 “다른 이의 말을 편하게 들어 주고 다양하게 표현하는 문화가 우리 교회와 사회에 있으면 좋겠다”면서, “서로 너무 설득하려고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여유, 그것이 최소한의 시작점이 되면 좋겠다”고 답했다.
한국 가톨릭교회가 차별금지법안의 다양한 성별 인정에 대해 역차별 발생을 우려해 반대 입장을 공식 표명한 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다.
임미정 수녀는 “차별은 무조건 안 되는 것인데도, 사후의 일을 교회가 판단한 것은 개인적으로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만, 교회의 일원으로서 이를 어떻게 표명할지 난감한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박정은 수녀는 “교회가 언제나 답을 줄 수는 없다. 그간 교회는 나중에서야 많은 것을 미안하다고 했다. 교회도 바뀔 것”이라면서 “교회는 그렇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탄력적으로 말할 수 있다. 교회 어른들의 가르침을 벗어나 교회와 반대 의견을 가질 수도 있다. 다양한 목소리들이 교회 안에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진균 씨(안드레아)는 “혐오가 자기 삶의 주장으로 드러나는 상황이다. 실질적인 자기 느낌이 아니라 어디서 들은 것을 비판적 사고 없이 내면화하는 모습이 빈곤하게 느껴진다”면서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것을 가장 잘하는 곳이 가톨릭인 것 같다. 가톨릭 신자로서 우리가 사고하고 되물을 수 있으려면 우리는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라고 물었다.
유형선 씨는 “교회 지도자들이 아프고 소외된 사람들 옆에 함께하지 않고, 말만 하는 교회가 아니라 말이 순환하는 교회를 보여 주지 않고, 여성에게 발언권과 결정권을 넘기지 않고, 진리를 독점하고 있다는 자세를 버리지 않는다면 다음 세대로 가톨릭이 넘어가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폭력 피해 여성을 상담한 이미혜 씨는 “우리 안에는 선한고 좋은 것이 많다. 사회가 틀을 만들다 보니 혐오와 차별의 언어를 습득하고 대응하는 것 같다”면서 “우리는 그 이상의 존재다. 우리 안의 말들을 살피고 좀 더 밝고 포용적인 내면의 세계를 드러내기 바란다”고 말했다.
박정은 수녀는 미국 홀리네임즈대 영성학 교수로, 신비주의, 중세 문화, 여성의 눈으로 성서 읽기 등을 가르친다. 세계화 시대 가난, 난민, 이주, 여성에 특히 관심을 두고 연구하며, 글을 쓴다. 그간 “경계를 넘는 영성” 등 영어 저서를 포함해 여러 책을 냈고, 최근에는 “내가 사랑한 계절들”, “슬픔을 위한 시간”, “사려 깊은 수다” 등을 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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