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에게 닥친 고난과 하나님의 은혜(예레미아33:3)]-오은주 집사(11월 10일)
□ 저희 부부가 자랑할 것은 고난밖에 없습니다.
- 귀한 자리에 서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원래 이 자리는 남편이 서기로 한 자리인데요, 남편은 작년 9월에 하나님 곁으로 갔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살아있는 이유, 하나님께서 제게 명령하신 것, 남편의 유업을 이어받아 제가 감당해야 할 그리스도의 남은 십자가 고난과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정말 두렵고 떨리지만 순종하는 마음으로 용기를 내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오늘 이 시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말씀만 전하고 싶습니다. 저희 부부에게 일어났던 일들과 지금도 일하고 계신 기적 같은 삶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 저희 부부가 자랑할 것은 고난밖에 없습니다. 고난은 신앙인에게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의 징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자랑하고자 합니다. 작년에 남편을 보낸 이후 힘들었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직까지는 저에게 버겁고, 마음이 아프지만, 하나님께서 제 상처가 다른 사람을 살리는 귀한 약재가 되신다고 하셨고, 그 때는 알 수 없었지만 제가 겪은 고난의 이유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빚어주시기 위함이었다고 믿기 때문에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12:10)’ 말씀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기쁜 마음으로 저의 삶을 나누겠습니다.
□ 양가 부모님의 노력으로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 청년 이관희는 술 담배 근처에도 가지 않는 교회오빠였습니다. 공부 잘하고 엄마 말 잘 듣는 소위 ‘엄친아’였고, 집과 교회밖에 모르는 진짜 ‘교회오빠’라는 표현이 적절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평범한 크리스천이었습니다. 이관희 집사가 진짜로 엄마 친구의 아들이었고, 제가 고등학교 때 친정엄마가 이관희 오빠를 친정오빠의 고3 과외선생님으로 불러서 인연이 맺어졌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는데, 멋진 명문대생 오빠를 짝사랑 했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수학문제도 물어보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관심을 표현했는데, 소용이 없었습니다.
- 제가 대학에 올라가서 친정엄마와 이관희씨 엄마의 미팅 주선 노력으로 오빠를 사귀게 되었는데, 제가 어린 마음에 누군가에게 너무 일찍 매인다는 것이 부담스러워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엄마는 계속 만나라고 했지만 다른 경험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10년이 지나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 저희 아버지는 사업을 하셔서 부잣집 막내딸로 화목하게 지냈는데, 대학교 졸업시절에 아버지 사업이 쫄딱 망해서 힘들게 살다보니, 돈 많은 사람을 신랑감 1위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세속적인 조건만 보고 물건을 쇼핑하듯이 배우자를 생각했습니다. 어렵게 결혼하고 싶은 사람을 만났는데, 불신자였습니다. 친정엄마의 절대 반대로 그분과 결혼하지 못했습니다. 친정엄마는 이관희 오빠를 사위삼고 싶어 했습니다. 저도 알고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친정아빠도 적극 권유를 했습니다. 이제 제 마음만 변화시키면, 주위 양가 부모님과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상태였습니다. 나중에는 좀 미안하고, 이관희씨가 기다리고 있다는 소리도 들리고 해서,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빠가 물질의 부자는 아니지만 마음의 부자라고 결론을 내리니 오빠가 다시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9세에 오빠와 결혼을 했습니다.
- 이관희 집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암을 만나서 투병하는 이 과정이 어떤 면에서는 고맙다. 암과 싸우는 시간 동안, 자신이 살아온 시간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생활에서 고쳐야할 나쁜 습관도 고치고, 신앙적인 면에서도 영적으로도 더 건강해지기 위해 노력했으므로 나는 암이 고맙다.’ 저희 부부가 모든 걸 내려놓고 하나님만 바라보기 시작한 때부터는 정말 많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 저희 부부는 일반적인 백년해로 부부에 비해 비록 짧은 6년의 시간을 살았지만 서로를 소중하게 여기고, 농축된 삶을 살고, 가치 있게 살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결혼에 대해 후회가 없습니다.
□ 첫 번째 시련이 왔습니다.
- 1년도 안 되는 시간인 7개월 동안 엄청난 고난이 몰아쳤는데요, 첫 번째 고난은 남편의 대장암 4기 진단이었습니다. 2015년 9월 지금부터 4년 전입니다. 그 때 남편의 나이는 만 36살이었습니다. 군대를 ROTC 장교로 졸업할 정도로 건강한 사람이었습니다. 대장암 1기, 2기라면 이해가 될 수도 있는데, 갑자기 4기라고 해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 저는 그 소식을 듣고 기절을 했구요, 어머니는 절규를 하며 쓰러지셨습니다. 저는 만으로 32살이었고, 결혼 3년차 되었을 시기입니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심정이었습니다.
- 결혼하고 너무 안 맞아서 많이 싸웠는데, 딸아이를 임신하고 사이가 좋아졌습니다. 아기를 낳고 나니 제 생각이 어른스러워졌고, 남편이 산후조리원에 매일 찾아와 잠도 같이 자고, 저의 결혼 생활 동안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 산후조리원을 퇴원했을 때, 대장암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한치 앞도 모르는 것이 인생이라고 했는데, 저희 부부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습니다. 대장암 진단 이후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매일 밤 울었습니다. 산모의 몸으로 암환자인 남편을 간병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눈물이 나왔습니다. 신혼시절 싸웠던 것, 잘못했던 것들이 후회되었습니다. 또 힘든 일은 시어머니가 아들을 살리기 위해 집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저는 좀 힘들었습니다. 얼마 후에는 미국에 사는 시누이가 오빠를 도와야 한다며 조카 2명을 데리고 저희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산후통을 가진 저는 너무 힘들었습니다. 신랑은 LG전자를 다니다가 퀄컴코리아로 직장을 옮겨 독일주재원으로 옮겨갈 준비를 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음악교사로 근무 중이었는데, 독일의 삶을 꿈꾸며 행복해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장암 선고 후 처자식을 두고 가야한다는 남편의 마음도 매우 두려웠으리라 생각합니다. 대수술을 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항암치료를 계속해야 하고, 어린아이는 보채고 있어, 마음이 무너져 내렸으리라 생각합니다.
- 참담한 상황에서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없었을까요? 그런데 이관희 집사는 달랐습니다. 대장암 4기면 죽을 확률이 높은데, 남편은 너무 열심히 치료를 받았고, 교회오빠의 표본처럼 투병생활도 너무 모범적으로 했습니다. 간절하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이 병을 반드시 고쳐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4기 암환자답지 않게 너무 밝고 긍정적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대가 조금씩 무너지고 죽음을 생각해야 할 때조차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고쳐주지 않을지라도 나는 여전히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욥과 같은 믿음을 가진 이관희 집사는 오직 예수, 오직 믿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힘들었습니다. 시댁식구들의 이해할 수 없는 원망, 사람들의 저에 대한 조롱 섞인 시선들과 말들이 있었습니다. 비수 같은 말들을 들으며 그 시간들을 방안에서 외롭게 지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 지옥 같은 시간이 지나가고, 하나님이 원래의 자리로 돌려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 암 관련 책을 몇 박스나 구입해서 이것저것 좋다는 것들을 오빠에게 여러 가지 권유했지만, 오빠는 말씀을 더 읽어야 할 때라고 했습니다. 저는 인간적인 노력도 필요하다며 다투기도 했습니다. 전쟁 같은 투병생활을 보냈습니다. 시댁식구들과는 고마움도 있었지만 사탄이 교묘하게 원망과 미워하는 마음을 심어주어 힘든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하나님, 왜 저에게 이러세요?’ 하는 마음이 생겼고, 저는 원래 믿음이 약했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수없이 많은 원망을 쏟아냈습니다. 집을 나가려는 마음도 있었지만 딸을 보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지나고 보면 모든 상황과 여건들이 저를 보호하기 위하여 만든 장치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계 상황이 되자, 매일 남편과 큐티를 시작했습니다. 말씀이 저에게 스며들면서 말씀을 통해 위로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 두 번째 시련이 왔습니다.
- 남편도 투병생활이 적응되고, 저도 말씀으로 위로를 받아 안정되면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자고 해서, 시어머니와 시누이도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12월31일, 어머니에게 연락이 안 된다고 어머니 댁에 한 번 가보라고 남편으로부터 연락이 와서, 4개월 된 딸을 친정집에 맡기고, 시어머니 댁으로 갔는데, 평생 잊을 수 없고, 지금도 트라우마 때문에 힘든 사건을 맞이했습니다. 시어머님이 옷방 안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모습을 제 눈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너무 무서워서 비명을 지르며 1층까지 내려갔습니다. 주위에 도와달라고 외치고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에서 112와 119에 전화를 하고, 오빠에게도 전화를 했습니다. 하나님께 원망을 쏟아냈습니다. “하나님, 살아계신 것 맞습니까? 살아계시면 어떻게 이러실 수 있습니까?” 남편이 도착해서 오히려 침착한 목소리로 “은주야 미안하다. 내가 왔어야 했는데.” 하면서 저를 달래주고 방안에 들어가서 어머니의 눈을 감겨드리고 어머니의 손을 잡고, 이렇게 기도를 했습니다. “주님, 주님이 허락하신 암도 저는 축복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제 육과 영을 깨끗이 고치기 위함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항암치료로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머리카락이 다 빠지고, 이 땅에서 머리를 들 수 없어도 제가 욥보다 더 강한 믿음으로 주님만을 사랑한다는 제 마음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주님, 첫 번째 기도제목은 제 병 고침이 아니라, 우리 엄마에게 마음의 평안을 허락해 달라는 것인데, 저의 기도를 어찌 이렇게 응답하십니까? 주님, 저의 믿음을 시험하지 마세요.” 암 진단 이후 제 앞에서 한 번도 울지 않았던 남편인데요, 완전히 무너지면서 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기도합니다. “어떤 환란이 닥쳐와도 제가 주님을 변함없이 사랑하겠습니다. 절대 주님을 배신하지 않겠습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엄마, 미안해! 엄마 사랑해!”
- 저는 그 기도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자살이라는 충격적인 현실 앞에서 무너지는 마음을 붙들고 하나님께 올려드렸던 이관희 집사의 그 기도를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남편이 모교에서 간증을 했는데, 그 때 기도했던 심정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제게 하나님을 향한 당신의 믿음이 무엇이기에 사랑하는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고백할 수 있느냐고, 어떻게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을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분명히 하나님을 원망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 가운데 성령님께서 일하심을 느꼈습니다. 제가 자식으로서 사랑하는 어머니 앞에 절망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깊이로 함께 애통해 하시며 가슴 찢고 계신 주님의 마음이 제 마음에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저희 어머니를 품에 안고 눈물 짓는 주님의 마음이 느껴지니 감히 하나님을 원망할 수가 없었습니다. 성령님께서 저의 나머지 기도를 인도하시는 것을 제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우리의 구원자이시고, 제가 느끼는 슬픔과 절망을 정확히 알고 계시고, 내 슬픔보다 더 아파하시며 참된 위로를 해주시는 분은 우리 주님밖에 없음을 고백하고 나니, 그 이후에 쏟아낸 기도는 하나님을 위한 감사와 찬양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드린 이 역설적인 기도는 저의 이성적 의지의 표현이나, 믿음의 고백이 아니라, 일생의 절대 절망 속에서 좌절의 나락으로 빠질 수밖에 없었던 제 삶을 구원하시기 위해 제 안의 성령님께서 극적인 반전으로 이끄셨음을 저는 확신합니다.’
- 남편은 믿음이 좋아서 어머님의 죽음을 이해하고 이겨냈지만, 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서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을 다른 사람에게 비밀로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앞으로 겪어야 할 고통과 두려움 속에 나약해진 어머님의 고통을 지금은 이해합니다. 내 자신의 처지만 생각하고 어머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원망만 한 저 역시 죄인 중의 죄인이고,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였음을 이 시간 깊이 회개합니다.
□ 세 번째 시련이 왔습니다.
-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어머님 장례를 치루고 시간이 흘러 마음이 안정되기 시작할 즈음, 제 몸에 이상한 변화가 왔습니다. 산후통이 심해 진통제를 10알씩 먹어도 진통이 잡히지 않는 것입니다. 신랑이 환자가 아니면 병원에 바로 입원했을 텐데, 사정이 안 되어 제가 참고 있었더니 병세가 더 악화되었습니다. 남편이 12차 항암치료를 하던 중에 제가 입원을 했습니다. 의사가 산후통이 아닌 것 같다고 정밀진단을 하자고 했습니다. 혼자서 CT, 골수검사, 폐CT검사를 받았는데, 다음날 의사선생님이 급하게 보호자를 찾는 것입니다. 지금 없다고 하니, 온 몸에 암이 퍼져 있고, 덩어리도 크고, 골수에도 전이가 되었으니 당장 치료해야 한다고 합니다. 병명이 혈액암 4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아팠구나, 어떻게 나까지 암일 수 있지?’ 하며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순간적으로 ‘내가 악몽을 꾸고 있나?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고, 나를 저주하시나? 하나님, 소현이는 고아로 만드실 것인가요?’ 지금까지 믿음으로 간신히 견뎌 왔는데 앞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제게 이렇게 묻는 것 같았습니다. “은주야, 너 나를 신뢰하니? 나를 사랑하니?”저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갑자기 저의 지나간 죄들이 떠올랐습니다. 3일 동안 입원실에서 통곡하며 울었습니다. 환우들이 시끄럽다고 소리치며 뭐라 했지만 계속 울었습니다. 하나님이 저의 잘못을 신랄하게 보여 주었습니다. 제가 뼛속까지 죄인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죄의 모습을 신랄하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 동안 남편에게 잘못했던 것들, 시댁식구들에게 죄송했던 일들이 생각나고, 내 안에 선한 것이 없고, 내 마음속에 얼마나 사랑이 없었는지,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고, 나는 저 사람보다는 낫지 하는 교만함과 내 기준으로 사람을 정죄하고 판단했던 것들을 보게 하시고, 제가 왕 바리새인임이 깨달아지며, 나에게 일어난 심판의 사건들이 마땅한 것이라고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 그리고 진심어린 고백을 하게 되었습니다. 주님,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제부터 주님만 의지하겠습니다. 7개월 사이 세 가지 고난을 한꺼번에 겪으면서, 앞길이 안보일 때에 하나님만 의지하고, 큐티를 하면서, 기도에 전념하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반전이 있었습니다. 둘 다 똑같이 4기 암환자인데, 서로 쳐다만 봐도 상대가 불쌍하게 느껴졌습니다. 내 고집을 꺾게 되고, 양보를 하게 되어서 싸울 일이 없었습니다. 서로 자신 때문에 암에 걸린 것이 아닌지 생각해서 서로 붙들고 운 적도 있습니다. 함께 큐티하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서로에게 쌓였던 오해도 풀리고, 서로 너무 소중한 존재임을 느꼈습니다. 받고 싶은 게 많았는데, 이제는 서로 해주려고 했습니다. 전에는 무늬만 서로 사랑하는 척하는 크리스천 부부였지만, 진심으로 사랑하며 아끼는 부부가 되었습니다. 둘 다 4기 암환자가 되고 나서 느끼게 된 신기한 체험이고, 하나님의 크신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남편은 매일 성경을 읽고 기도하면서 저에게 중요한 것들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욥기를 같이 묵상하면서, 저는 우리 부부에게도 욥과 같은 고난을 주셨으니, 이 시험이 끝나고 나면 엄청난 갑절의 축복을 주실 것이라고 말했더니, 남편은 저게 욥기의 진수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있다고 합니다. 결과는 온전히 하나님의 것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이 고난 앞에서, 어떻게 변화하고 단련되는지를 보는 것이다. 저는 좀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었습니다.
- 통증이 심해서 잠을 잘 수 없어도 밤새 설교말씀 듣고, 기도하고, 처절하게 영적인 싸움을 했습니다. 남편이 암투병 하는 동안 중요한 말들을 많이 했습니다. 저는 그 고백들을 다 기억하지 못합니다. 저보다는 KBS 이우경 피디가 기록한 말들이 있습니다. 남편의 암이 재발하면서 하이팩이라는 수술을 했는데, 15시간 동안 몸에 있는 장기를 거의 잘라내는 대수술을 했는데, 촬영을 오셨습니다. 그 때 이관희 집사가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할 것을 찾으려고 해야 한다. 암이라는 고난 때문에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진다면, 그런 삶도 충분히 의미가 있고 행복한 삶이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공감하기 어려운 말이었습니다.
- 저도 아프게 되고, 신앙이 성장하면서 아프신 분들에 대해 애통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암으로 고통 받는 환우들이 제 눈에 보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모르고 암투병 하는 환우들을 보게 하셨습니다. 지금은 병원에서 암환자들을 상담해 드리며, 미약하지만 복음 전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남편의 믿음은 더욱 커지고 성화되어 갔지만 모든 분들의 바람과는 달리 두 번의 암 재발 끝에 작년 9월 16일 자신의 생일날에, 만 39세로 그렇게 사랑하던 주님 곁으로 갔습니다.
□ 욥과 같은 삶을 살게 한 원동력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 3년 동안 말기 암과 싸우는 동안에 대수술을 두 번하고 수십 차례 항암치료를 해도, 그 믿음이 약해지거나 뒤로 물러서지 않고, 믿음이 약한 저에게 성경공부 시켜주고, 온화한 미소로 안심시켜주고, 보통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끝까지 이 사람을 믿음으로 단련시키고 성화시켰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이 더 보고 싶지만, 천국에서 예수님과 못 다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 이관희 집사의 욥과 같은 삶이 영화로 제작되었습니다.
- 이관희 집사는 제가 사랑하는 신랑이고, 믿음의 선배이고, 스승이었습니다. 그의 정말 욥과 같은 신앙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희 부부의 삶의 모습을 대본도 각본도 없이 사실 그대로 찍어서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가 올해 초에 ‘교회오빠’라는 이름으로 개봉되었습니다. 인기 없는 시간에 몇 군데 상영관에서만 상영되었음에도 10만 명이라는 관객이 봐 주셨습니다. 많은 분들이 보시고 위로와 격려를 해 주셨고, 함께 울며 기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교회오빠 이관희’라는 책이 나왔는데요, 많은 분들이 읽고 따뜻한 응원을 해주셨습니다. 제가 재력이나 능력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주변에서 앞장서 주셔서 영화도 만들어지고 책도 만들어지는 신기한 일들이 일어났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일어났던 일들을 돌아보면, 우연에 우연이 겹치고, 필연적인 만남을 통해 그런 일들이 계속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가 아니면 이 일들을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 영화 시사회가 있는 날인데, 많은 신문기자와 최은영 아나운서가 참석을 했는데요, 이우경 감독님이 영화소감을 최은영 아나운서에게 물어보니, 눈물을 흘리면서 ‘저분은 예수님도 아니고, 의인도 아니고, 일반인인데, 어떻게 저렇게 큰 고통을 짊어져야 했나요? 저는 정말 살아있는 욥을 본 것 같아요.’라고 했습니다.
- 욥기 1장 22절에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 하니라’, 욥기 23장 10절 말씀,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이관희 집사는 이 말씀들을 참 좋아했습니다. 고난의 시간을 통과하면서 욥기를 읽고 또 읽고 묵상했습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고, 마지막 순간에도 하나님만 바라보고 말씀만 의지하며, 모든 것을 감사로 받아들이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전에 남편이 살아있었을 때는 신앙이 좋은 착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욥과 같은 하나님의 사람이었다고 생각됩니다.
□ 하나님은 눈부신 삶을 사는 사람도 증거로 삼지만, 고통 속에서 주님을 놓지 않는 사람도 증거로 삼는다.
- 말기암의 고통과 싸우면서 남편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눈부신 삶을 사는 사람도 증거로 삼지만, 고통 속에서 주님을 놓지 않는 사람도 증거로 삼는다.’ 이 말 때문에 이 자리에 서야 했던 것 같습니다.
- 비기독교인 이우경PD를 만나 다큐멘터리를 찍고, 2016년과 2017년 두 차례 TV로 방영하게 되었고, 올해 5월, ‘교회오빠’라는 영화로 제작해 개봉하게 되었고, 내년에 재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또 국민일보를 통해 ‘교회오빠 이관희’라는 책으로 출간하게 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사건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하나님의 완벽하신 계획이었다고 감히 믿고 고백합니다. 남편이 투병하면서 깨닫고 고백했던 말들, 큐티하면서 나누었던 대화들, 목숨을 건 투병 가운데 내뱉었던 생명의 언어들을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아들을 통해 전하셨고,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시기에, 필연적인 만남을 통해 사람을 만나게 하시어, 그 기록을 영상으로 남기게 하셨습니다.
- 많은 분들이 감상평과 좋은 글들을 남겨 주셨습니다. 너무 감사하고 눈물이 납니다. 저희 가정을 통한 위로와 격려, 쌓여진 중보기도, 무엇보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미약하지만 남편의 믿음과 헌신이 재료로 쓰여, 가치 있고 영광된 일이었습니다. 이관희 집사도 하늘에서 정말 기뻐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 지금은 하늘의 남편을 돕는 아내로서, 주님의 순결한 신부로서, 제게 주어진 이 땅의 소명을 감당하고, 딸 소현이를 믿음 안에서 잘 키우며, 훗날 천국에서 남편과 주님을 만나면, ‘은주야 수고했다!’라는 말을 꼭 듣고 싶습니다. 모든 영광을 주님께 올려드립니다.
□ 결어 및 기도
- 사실 이관희 집사가 원래 이 자리에 서기로 했는데, 대신 오은주 집사님이 서게 되었습니다. 짧은 간증이었지만,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너무 많습니다. 많은 감동과 많은 찔림, 그리고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함축적으로 도전해 주는 간증이었습니다.
- 사실 고난을 당하면 우리의 당면한 문제는 커 보이고, 하나님은 작아져 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원망할 때가 참 많습니다. 이관희 집사님, 오은주 집사님, 30대에 가장 건강하고 젊을 때, 두 분의 말기암 4기, 어머니의 자살, 여러분 이쯤 되면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원망하죠. 그렇지만 우리 이관희 집사님은 초지일관 죽음의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다가온 인생의 고난, 이해할 수 없는 고난, 암에 걸려 방사선 치료를 받는 분들은 그 고통을 아십니다. 이관희 집사님은 이 땅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선한 싸움을 싸웠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믿음을 지키고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우리도 이 시간 다짐합시다. 내게 알 수 없는 고난이 닥쳐와도, 사람들이 그것을 바라보며 비난하고 조롱할 때에도, 나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게 도와주시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게 도와주옵소서.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자가 되게 하시고, 이 땅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내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믿음으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 간증을 들으면서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 짧다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 부부지간에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 짧습니다. 우리가 서로 만나면 다투고 있지만 우리가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짧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가족끼리 오신 분들은 서로 손을 잡으십시오. 하나님, 우리가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 짧습니다. 이 땅에 사랑을 뛰어넘어서 예수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가정이 사랑이 넘치는 가정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 두 가지 기도제목을 가지고 기도하겠습니다.
-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밤에 오은주 집사님의 진솔한 간증을 통하여 많은 찔림과 도전을 받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신앙의 연수를 자랑하지 말게 도와주시고, 우리 인생 가운데 고난이 겹쳐 와도,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닥쳐와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도록 도와주시고, 끝까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게 도와주옵소서. 주님,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 짧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부모와 자녀 간에, 부부간에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짧습니다. 이 땅의 사랑을 뛰어넘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게 도와주옵소서. 미움의 장벽이 깨어지게 하시고, 부부의 사랑이 회복되는 밤이 되길 원합니다.
- 교회를 위한 기도를 하겠습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내가 교회를 사랑하는 것은 곧 교회의 머리가 되신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내가 몸담고 있는 교회를 사랑하게 도와주옵소서. 내가 몸담고 있는 교회가 이 시대의 부흥을 경험하게 도와주옵소서.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이 넘치게 하옵소서. 이번 다니엘 기도회를 통해서 우리가 섬기는 교회의 영적기류가 바뀌기를 위해 기도합시다. 서로 미워하고 대적했던 갈등의 요소가 있었다면, 금번 기도회를 통해 참여한 모든 교회의 성도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한 마음이 되게 하옵시고, 동일한 비전을 품게 하옵소서. 우리가 섬기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한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예배를 드릴 때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도와주옵소서. 목사님에게 영권을 더하여 주시고, 강단에서 선포한 말씀대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많은 교회 기도제목에 교회 재정의 어려움을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마다 재정이 해결되게 하옵소서. 이 시간 교회를 위한 기도가 여러분을 살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교회를 위하여, 목회자를 위하여 기도하겠습니다.
-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주님, 이 교회는 주님이 세우신 교회입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사랑하는 성도들로 하여금 주님의 몸된 교회를 사랑하게 도와주옵소서. 그것이 곧 주님을 사랑하는 것임을 깨닫게 도우소서. 우리가 사랑하는 교회를 주님께 올려드립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한 교회가 되어져서 교회에 들어오는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하시고, 성령님의 임재 가운데 예배를 드리게 하옵소서. 강단을 축복해 주셔서 강단이 메마르지 않게 하옵소서. 주님의 종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준비하여 강단에서 선포할 때에 그 말씀이 영이요, 생명이 되게 하옵소서. 한 말씀도 땅에 떨이지지 않게 하시고, 말씀대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떠났던 성도들이 있다면 돌아오게 하옵소서. 다니엘 기도회를 통해 목회자와 장로님과 성도들 간에 미움과 불신의 장벽이 있다면 제거되게 하옵소서. 성령 안에서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한 마음을 갖기 원합니다. 서로 사랑하게 하시고, 기도를 통해 참여하게 하시고, 동일한 비전을 품게 하옵소서.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의 수가 더하게 하옵소서. 뿐만 아니라 재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교회가 참 많습니다. 재정의 돌파가 이루어지게 하셔서 하나님이 주신 물질로 마음껏 주의 나라와 복음을 위하여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목사님과 사모님들이 강건케 하시고, 자녀들을 책임져 주시길 원합니다. 금번 다니엘 기도회로 영적인 기류가 바뀌게 하시고, 은혜의 기념비, 영적인 기념비가 반드시 세워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