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천황은 물론이고, 6년 전에는 지금 천황의 둘째 아들인 아키시노미야 부부가 직접 찾아와 메밀국수를 먹고 간 유명한 식당입니다.
이 가게는 에도 시대에는 아예 천황가에 들어가 메밀국수 요리사로 일하면서 한편으로는 영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천황가 사람들은 교토에 내려올 때면 오와리야를 찾아오고 있습니다. 오와리야는 교토에서 가장 교토다운 메밀국수를 팔고 있는 무려 600년의 긴 역사를 가진 교토에서 가장 오래된 메밀국수가게입니다. 그렇다면 메밀국수 맛을 600년이나 지켜낸 힘은 무엇일까요? 또 어떻게 그런 일이 600년간 가능할까요?
현재 오와리야의 주인은 15대째인 이나오카 덴자에몬(稻崗傳左衛門)인데 그 분을 처음 만났을 때 첫인상은 식당주인답지 않게 예리하고 날카롭게 보였습니다. 그는 1945년 태어났으니깐 우리 나이로 72세입니다. 명문 동지사 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한 엘리트입니다.
그런 엘리트가 가게의 가업을 있고 본인이 직접 홍두깨로 반죽을 밀면서 국수를 만들어 팔고 있습니다. 이 집의 특징은 100% 순 메밀만 쓴다는 것입니다.
일본도 과거 20년 동안 메밀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메밀 값이 폭등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가게들은 메밀보다는 밀가루를 더 많이 넣은 메밀국수를 만들어 팔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와리야는 600년이나 지금이나 100% 순수한 메밀로만 국수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하면 채산이 도무지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는 100% 메밀로만 국수를 만들어서 채산을 맞춰야한다는 문제.
그리고 교토에 공장들이 많이 들어서면서 공해가 심해져 과거와 같은 순수한 메밀맛이 나는 국수를 생산해 내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이렇게 세마리 토끼를 잡기위해 가게의 운명을 겁니다.
또 하나는 “국물 맛”을 지키는 일이었습니다.
도쿄와 교토에서 똑같은 재료로 국물을 내면 교토가 훨씬 좋은 맛을 내는데 그것은 ‘물’ 때문입니다. 도쿄 물은 경수(硬水)인데 반해 교토 물은 연수라 국물 맛이 훨씬 부드럽게 나온다는 것입니다. 오와리야의 경우는, 경도 50도 정도의 연수(軟水)만 사용하고 있는데, 소바를 반죽하고, 삶고, 씻는 전 과정에 이 지하수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연수가 아닌 경수나, 수돗물을 사용해서 국수를 만들 때면 국수의 맛이 질겨지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오와리야의 메밀국수가 다른 식당보다 부드러워 술술 잘 넘어가는 것은 국수가 그만큼 부드럽기 때문이죠.
두 번째는 “메밀 맛”을 지키는 일입니다.
과거 오아리야는 교통 인근에 있었던 밭에서 메밀을 가져다 국수를 만들었는데, 역시 공해 때문에 메밀국수의 맛이 달라지자 이 사장님은 그때부터 무공해 지역의 메밀밭을 찾아서 일본 방방곡곡을 헤매게 됩니다. 결국 그분은 북해도의 리시리(利尿)에서 생산되는 메밀을 쓰고 있는데 그곳은 사장이 직접 찾아낸 밭입니다.
리시리는 북해도의 초입의 바다와 해발 1702미터의 리시리산의 험준한 산세가 만나는 천연 무공해지역입니다.
인구는 고작 5600명. 일본 내에서는 산소와 오존량이 가장 풍부한 지역이라고 합니다. 놀라운 것은 이곳을 이나오카 사장이 직접 찾아냈다는 것입니다. 사장은 북해도를 포함한 일본 전역을 답사한 끝에 이곳을 최종 낙점했다고 합니다. 요즘도 해마다 이나오카 사장은 봄, 가을에는 현지 밭에 직접 가서 농사를 진두지휘한다고 합니다.
맛과 관련해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만약에 기계를 도입해서 음식 맛이 더 좋아진다면 당연히 도입하겠다”는 말이었습니다. 다만 아직까지는 손으로 만드는 것이 더 좋은 맛을 내기 때문에 옛 방식 그대로 만들고 있다고 합니다. 열려있는 자세로 연구하는 것을 잃지 않고 계속 메밀국수에 좀 더 신선한 맛을 제공하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일본 최고의 맛이라 평가받는 유명세에 최상품 재료만 쓰는 가게. 일본 물가를 감안하면 국수라 해도 가격이 비싸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가격표를 보자 의아해집니다. 메뉴는 약 50종정도로 대표적인 음식은 가케소바(630엔), 기츠네소바(683엔), 니신소바(청어메밀국수, 1050엔)는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밥 종류도 팔고 있었습니다. 일본 최고의 가게에서 저렴하게 판매를 하고 있다 보니깐 손님들이 늘 많습니다.
오와리야의 이나오카 사장은 인기강사이기도 합니다.
워낙 가게 이름값도 그렇지만 600년 경영노하우를 문의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죠.
그의 답은 간단합니다. “고객으로부터 신용과 신뢰를 얻으면 가게는 6백년간 아닌 천 년간이라도 번영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신용과 신뢰하는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첫째 해마다 수십 번씩 찾아오는 고객들이 많은데 만약 한번이라도 음식을 먹고 배탈이 나거나 상한 음식을 먹을 경우, 그걸로 거래는 끝이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종업원으로부터 불친절을 당하거나 주문을 잘못 받아 엉뚱한 음식을 갖다 주면 6백년 공든 탑이 일순간에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손님이 너무 많아 테이블을 닦지 못한 경우에 손님들은 발길을 끊고
넷째, 신발이 가지런히 정리가 되어 있지 않으면 손님은 마음이 상하게 되며,
다섯째, 종업원의 발소리가 요란하면 손님의 신경이 거슬리고,
여섯째 주인이 가게를 자주 가게를 비우게 되면 손님들은 섭섭한 감정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와리야는 매일아침 조회에 사장과 종업원이 모두 모여 손님에 대한 자세를 3번씩 복창합니다.
15대 사장의 나이가 올해로 72세... 16대 사장이 될 사람, 다시 말해 아들을 소개시켜 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사장의 표정이 어두워졌습니다. 유학 후 뉴질랜드에 있는데 가업에 흥미가 없는 듯 하다고요. 그러면서 언젠가 아들이 돌아올 날을 간절히 기다리는 눈치였습니다. 다른 시대라고 이런 후계문제가 없었을까요. 600년 역사는 이런 노심초사로 이어진 것이었겠죠.
이나오카 사장은 현재 600년 역사의 가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만 대체로 아들들이 처음에는 가업을 잇기 싫어하다가도 어느정도 나이가 먹게 되면 대부분 돌아옵니다
또 아들의 학력이 일본의 명문대학을 나와도 가업을 잇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일본에서 검사 판사까지 한 사람들 중에서 가업을 잇기 위해서 어느 순간에 돌아온 경우도 많습니다.
6백년 역사의 오야리야 메밀국수 집, 15대 사장이 어느 날부터 교토이 있는 밭을 버리고 북해도로
그 밭을 살 수 있었던 용기와 도전의식. 이런 것들이 모여서 일본 최고의 국수집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오와리야는 현재 박리다매 이윤이 아주 조금 남는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한 그릇을 팔아봐야 이익이 3%도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익이 조금 남더라도 그것만이라도 있으면 우린 밥을 먹고 살 수 있다. 대신 손님들은 싼 값에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으니깐 우리집을 잊지 않고 찾아 줄 것이다. 이런 박리다매의 정신은 앞으로도 6백년 더 이어 나간다면 우리 가게는 1200년간 번영을 계속 할 것이다.“
박리다매. 싸지만 정직하고 아주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목숨을 걸고 새롭고 순수한 메밀국수를 만들기 위한 사장의 노력.
이러한 노력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 6백년 동안 오아리야는 더 번영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저는 그 집에서 메밀국수 한 그릇을 먹고 나왔습니다.
장사라는 것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한국에는 장사 할 때 돈을 벌고 나면 건물을 부스고 빌딩을 지은 후에 빌딩을 세를 주고 사장은 골프장으로, 부인은 사우나로 향합니다.
일본 사람들은 적어도 그런 짓을 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생선을 팔든 메밀을 팔든 남들이 볼 때 하찮아 보이는 직업이라도 그 직업에 대해서 백년이고 오백년이고 목숨을 걸고 끝없이 도전하는 정신이 있기 때문에 일본이 오늘 날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첫댓글 안그래도 점심을 무교동에서 온모밀을 먹었습니다
40년전통이라는데 ...
맛은 없었습니다 ㅠ
10여년 전에 먹은 기억이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