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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 예수가 우주 절대자, 성부 아버지 하나님으로 바뀌게 된 이유?
2세기 중엽, 당시 페르시아의 태양신 미트라 신앙이 쇠퇴하고 기독교가 로마의 상류층까지 전파되면서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313년에는 국교로 인정된다. 그러나 당시까지만 해도 삼위일체론은 확고하게 정립된 교리가 아니었다.
그러다가 삼위일체의 인정 여부를 놓고, 예수는 하나님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아리우스(258-336)파와 예수가 곧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아타나시우스(297-373)파가 대립하게 된다.
이에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예수가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면 교회의 권위가 파괴되어 결국 로마제국까지 흔들릴 것이라 판단하여 아타나시우스의 주장을 지지하게 된다. 그리하여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예수성자가 하나님 아버지다’라고 공인되면서 이후로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곧 하나님 아버지라고 믿게 되었다. 말하자면 인간의 지배 논리에 의해 예수님이 순식간에 하나님 아버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예수 성자는 단 한 번도 자신이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말하지 않았으며, 야훼(여호와)가 하나님이란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을 내려보낸 백보좌 아버지 하나님의 인간 강세를 말하였다.
마태복음 7:21-23)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구약』의 첫머리 「창세기」에는 뚜렷하게 다신관으로 나온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 하여 하나님이 유일신이 아닌 ‘우리’라는 다신(多神)으로 나온다. 초기 성서는 다신多神 문화다.
또 기독교 성서(聖書)에는 하나님이 엘로힘과 여호와(야훼)와 백보좌 하나님 세 분이 등장한다. 「구약 성서」는 유대인들의 역사서로써 유대인들의 조상신, 야훼(여호와) 하나님만 나온다. 유대인들이 믿는 하나님은 여호와 (야훼) 하나님이었다. 그런데 「신약 성서」에는 백보좌의 아버지 하나님만 등장한다.
유대민족이 이집트 노예 시절을 겪으면서 고난에 처한 유대민족을 강력하게 통합시킬 힘이 무엇보다 절실했다. 이에 모세는 유대민족의 정신을 하나로 묶기 위해, 그들 민족의 하나님인 야훼와의 계약을 통해 ‘나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유일신 신앙을 선포하게 된다. 이말은 역설적이게도 '다른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나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유일신관으로 인해 야훼 이외의 신들, 각기 다른 민족마다 자신들의 민족신(지방신)과 조상신을 섬기는 것을 ‘우상숭배’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기독교에서 다신관이 사라지게 된 역사적 배경이다.
여호와는 어떤 신인가?
구약을 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구절이 있다.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출애굽기 3:6) 이 내용은 상식으로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또 에스겔에는“이스라엘 족속이 내 백성인줄 알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라.”(에스겔 34:30)는 구절이 나온다.
이 두 구절만 봐도 여호와는 이스라엘 족속을 약속의 백성으로 삼아 통치를 하는 유대족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여호와는 본래 아라비아 반도에 뿌리를 둔 유대족의 부족신이자 조상신이다. 그리고 여호와는 원래 전쟁 전문가인 군신軍神이다.
중동 지방의 족속들이 전쟁에 나가기 전에 이기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는 전쟁 신이다. 시편을 보면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시편 24:8) 라고 찬양하는 구절이 나온다.
또 출애굽기 32장을 보면,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자기의 친구를, 각 사람이 자기의 이웃을 죽이라”하셨느니라. ’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행하매 이 날에 백성 중에 삼천 명 가량이 죽임을 당하니라.’라는 구절이 있고,
사무엘상에는 ‘여호와께서 백성을 쳐서 크게 살육하셨으므로 백성이 애곡하였더라.’ (사무엘상 6:19)는 내용이 나온다. 이 내용을 보면 여호와는 때에 따라 생명을 무수히 죽이는 전쟁신이다. 하나 더 예를 들면, 자기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는데 길을 막는 자는 뱃속에 있는 애까지 다 도륙하라, 멸망을 시키라는 명령을 내린다.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로 내가 그들을 벌하노니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사무엘상 15:3)고.
얼마 전 가톨릭의 차동엽 신부는 <맥으로 읽는 성경>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구약을 읽어보면‘아니, 이게 무슨 하나님이냐. 제 백성을 위해서 남의 백성을 씨도 안 남기고 뱃속의 애까지 다 쳐 죽이라 하는분이 무슨 하나님이냐.’라고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또 신화의 아버지 조셉 캠벨은 저널리스트 빌 모이어스와의 대담 프로에서 “십계명은 ‘살인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다음 장章에 가면 ‘가나안 으로 가서 거기에 있는 것은 모두 죽여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이것이 바로 범주가 구속된 사회의 도그마입니다.
참여와 사랑의 신화는 오로지 무리의 안을 맴돕니다. 밖을 향하면 태도는 표변합니다. <이방인>이라는 말이 드러내는 의미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방인과 한솥밥을 먹을 수 없는 것이지요.” 라고 했다.
그 내용을 정리한 책이 『신화의 힘 The power of myth』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우리나라에도 출간되었다. 오직 내 백성만 위하고 타민족은 적대시하는 살육적인 신관으로 인해 지금 이 순간에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싸우는 것이다. 중동 전역에서 서로를 죽이는 참상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외쳤는데 그분이 여호와인가? 여호와는 전쟁신이다. “씨도 남기지 말고 전멸시켜라”라고 하는. 전 인류 조상신 버리게 하고. 그 죄악을 한번 생각해 본다.
선교사들은 각 나라에 들어갈 때마다, 그 지역의 신관으로 옷을 갈아입고 들어갔다. 야훼가 영어권으로 들어갔을 때는 God로, 중국에서는 천주, 상제, 神으로, 일본에서는 가미로, 조선에 와서는 하나님이라는 단어로 옷을 갈아입었다.
선교사들은 각 나라에 들어갈 때마다, 그 지역의 신神으로 옷을 갈아입고 들어갔다. 야훼가 영어권으로 들어갔을 때는 God로, 중국에서는 천주, 상제, 神으로, 일본에서는 가미로, 조선에 와서는 하나님이라는 단어로 옷을 갈아입었다. 그런데 일본이나 중국은 하느님에 관한 신관이 인식되지 않아 야훼를 전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조선에 오니까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관이 아주 발달되어 선교사들은 조선에서 기독교가 쉽게 전파될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선교사들은 조선에서 야훼를 야훼라 소개하지 않고, 야훼를 <하나님>으로 번역하는 포교전략을 택한 것이다. 이 전략은 적중하여 손쉽게 한국에서 뿌리내릴 수 있었다. 서양종교가 도입된지 400년이 넘는 일본, 중국, 인도에서는 기독교가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했지만, 한국에서는 100년만에 전인구의 40%에 이를 정도로 폭발적인 성장을 하게 된 것이다.
모세는 유대민족을 하나로 묶기 위해, 유대 민족의 하나님인 야훼와의 계약을 통해 ‘나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유일신 신앙을 선포하게 된다. 이런 유일신관으로 인해 야훼 이외의 신들, 다른 나라의 민족신, 조상신(지방신)을 섬기는 것을 ‘우상숭배’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 민족신 여호와가 세계 절대신으로 바뀌게 된 계기
유대족이 바빌로니아로부터 풀려날 때까지의 약 50년간(BCE 586~538)을 역사에서는 유대족의 바빌론 유수기라고 한다. 바빌로니아를 멸망시킨 페르시아는 유대인들을 해방시켜 고향인 예루살렘으로 귀환시킨다.
페르시아 왕의 도움으로 고향으로 돌아온 유대인들은 “이 모든 것은 거룩하신 주님의 은총이시다. 유대민족을 선택하신 여호와만이 전지전능하신 유일신이시다!”하고 하느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유대교를 정리하게 된다. 그리하여
첫째, 신은 여호와 한 분뿐이다.
둘째, 유대민족은 신의 선택을 받았다.
셋째, 인류의 종말이 오고 신이 메시아를 보내어 인간을 구원하신다 하는 유대교의 메시아사상, 유일신 신관이 정립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중동지역 유대족의 여호와가 인격신에서 초월신으로, 대우주의 창조주 하나님으로 신격이 변색되어 버린다. 신관神觀 자체가 중동의 지역신에서 우주의 절대자 신격으로 완전히 바뀌어버린 것이다.
여호와신은 본래 중동의 지방신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이러한 신앙관을 그대로 계승하여 기독교인들은 여호와신을 우주의 조물주로 신앙하고 있다. 그들에 의하면 여호와신이 원 조물주이고, 창조주이고, 우주의 주관자로서 인간으로 올 수가 없는 초월신이다. 그 여호와 신이 인간을 사랑하여 독생자인 예수를 내보냈으며, 예수는 육화한 하나님으로서 심판의 때가 되면 믿는 사람을 건져 올리기 위해 다시 이 세상에 재림한다는 것이다.
Not everyone who says to me, 'Lord, Lord,' will enter the kingdom of heaven, but only he who does the will of my Father who is in heaven.Many will say to me on that day, 'Lord, Lord, did we not prophesy in your name, and in your name drive out demons and perform many miracles?'Then I will tell them plainly, 'I never knew you. Away from me, you evildoers!'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복음7:21~23)
『서경書經』은 유가에서 말하는 가장 이상적인 통치자, 즉 4천여 년 전 이후의 요, 순, 우, 탕, 문, 무, 주공 등의 성인 제왕들이 어떻게 통치했는지, 그 통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그 책의 서두에는 “제왕으로 등극을 하면 먼저 태산泰山에 올라 천상에 계신 상제님께 제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그래서 ‘제왕은 천상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다.’ 라고 해서 ‘천자天子’라 불러 왔다.
동양에서 말한 ‘천자(天子, 하나님에 아들)’와 서양 기독교 문화에서 말하는 ‘신의 아들’이 통하는 것이다. 예수 성자가 한평생 “내가 하나님의 아들(天子)이다.”라고 주장하지 않았는가.
흔히 『신약성서』 한 권에서 서양의 2천 년 문명이 나왔다고 한다.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가고,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무서울 정도로 강한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 아버지 하나님을 증거한 예수의 말씀을 잊어버리고, 아버지 하나님을 얼굴없는 성령으로 인식하고, 성부 아버지 하나님이 오시는 것이 아니라 성자 ‘예수가 재림한다.’고 믿으면서 오늘날까지 진리의 근본을 잃어버리고 있다. 예수 성자를 내려보내신 아버지 하나님의 다음 말씀에서 예수의 재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인 사도 요한이 증언한 아버지 하나님은 형상이 없는 비인격 신이 아니라 형상을 가지고 있는 흰보좌, 백보좌에 앉아 우주를 통치하며 천명을 내리시는 인격신이다.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 가 있는데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렀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요한계시록」4:4)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요한계시록」21:5) 이처럼 기독교 성경에는 ‘천국의 궁전에서 곤룡포를 입으시고 흰색 보좌에 앉으시어 우주를 호령하시는 통치자’의 모습이다. 『신약성서』에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성부 하나님 아버지께서 인간 세상에 직접 강세하신다는 것을 전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구원관이다.
道典 2:26) 이 때는 원시반본시대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때는 원시반본(原始返本)하는 시대라. 혈통줄이 바로잡히는 때니 환부역조(換父易祖)하는 자와 환골(換骨)하는 자는 다 죽으리라.” 하시고, 이어 말씀하시기를 “나도 단군의 자손이니라.” 하시니라.
원시반본(原始返本): 문자적으로는 ‘시원의 근본(뿌리) 자리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가을의 통일(수렴)운동의 정신을 의미한다. 결실·추수하는 우주 가을의 때를 맞이하여 가을의 변화 정신에 따라 ‘천지만물은 생명의 근원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근본 가르침이다. 이 때 반본(返本)의 방향인 시원(始原), 뿌리(本)는 곧 조상, 각 민족의 민족신, 조상신이다.
환부역조(換父易祖): 자신의 조상과 국조(國祖)를 바꾸고 부인하는 모든 행위. 즉 성(姓)을 바꾸거나 조상 제사를 거부하며 타민족의 민족신을 하느님으로 믿는 행위 등을 말한다. 이는 제 뿌리인 조상을 부정하는 큰 죄악이라 말씀하셨다.
부모를 하늘땅같이 섬기라
하루는 말씀하시기를 “부모를 경애하지 않으면 천지를 섬기기 어려우니라. 천지는 억조창생의 부모요, 부모는 자녀의 천지니라. 자손이 선령(先靈)을 박대하면 선령도 자손을 박대하느니라. 예수는 선령신들이 반대하므로 천지공정에 참여치 못하리라.
이제 인종 씨를 추리는 후천 가을운수를 맞아 선령신을 박대하는 자들은 모두 살아남기 어려우리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조상은 아니 위하고 나를 위한다 함은 부당하나니 조상의 제사를 극진히 받들라. 사람이 조상에게서 몸을 받은 은혜로 조상 제사를 지내는 것은 천지의 덕에 합하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5:17) 금산의 한 예배당에 가심
가을에 하루는 상제님께서 “호연아! 나하고 무주 금산에 삼(蔘)도 줍고, 상수리도 주우러 가자!” 하시며 형렬과 호연을 데리고 금산(錦山)으로 가시니라. 이 때 날이 어두워져 호연이 자꾸만 넘어지거늘 상제님께서 호연에게 넘어지는 이치를 설명하며 꾸중하시니, 호연이 “어린것이 자빠지면 안쓰럽지도 않은가, 계속 나무라고 지청구만 하네!” 하며 투정하니라.
늦은 밤에야 금산에 도착하시어 한 예배당으로 가시니 많은 사람들이 한 사람의 설교를 듣고 있거늘, 그가 이르기를 “하느님이 이 세상을 이토록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님을 주셨으니 누구든지 맘 변치 말고 믿으면 영생을 얻으리라 하셨습니다. 자, 우리 서로 서로 손잡고 함께 믿읍시다.” 하며 열변을 토하더라.
금산(錦山): 현재 충남 금산군. 당시 김제 금산(金山)과 구별하기 위하여 전라권에서는 금산(錦山)을 ‘무주 금산’이라 불렀다.
道典 5:18) 어찌 중생을 속이느냐!
이 때 상제님께서 앞으로 나가시며 큰 음성으로 꾸짖어 말씀하시기를 “그렇게 가르쳐서는 안 되느니라! 천지만사의 이치란 천지에 모여 사는 사람들 속에 있는 것이거늘 네 어찌 중생을 속이느냐! 가르치려거든 한길을 내듯 똑바로 가르쳐라. 길이 한 번 나면 그 길이 힘줄과 같이 천지 밖으로 벌어지나니 올바른 길이 아니면 가르치지 말라.” 하시니라.
환부역조의 큰 죄를 꾸짖으심
또 말씀하시기를 “중생들을 그릇 인도하면 천지의 원 주인도 자리를 잡지 못하느니라!” 하시며 환부역조(換父易祖)의 큰 죄를 호되게 꾸짖으시니 사람들이 술렁이며 수군거리거늘, 상제님께서 “벼락신장은 어디 있느냐. 속히 벼락을 치라!” 하고 건물이 흔들리도록 큰 음성으로 칙령을 내리시니라. 순간 창창하던 밤하늘이 칠흑같이 어두워지더니 잠시 후 해처럼 밝은 불덩이가 나타나 번쩍번쩍 세상을 환히 비추고
뇌성벽력과 함께 비가 억수로 쏟아지며 난데없이 하늘로부터 미꾸라지, 메기, 쏘가리, 뿌럭지 들이 수없이 떨어지니라. 이에 모두 두려움과 공포에 질려 바닥에 고개를 박은 채 벌벌 떨기만 하는데, 몇몇 사람이 고기를 줍는다고 뛰쳐나가니 빛나던 불덩이가 순식간에 사라지며 사방이 다시 칠흑같이 어두워져 한 치 앞을 분별할 수 없거늘, 고기를 잡기는 고사하고 쏘가리에 쏘여 아프다고 소리치며 흩어지매 실로 아수라장을 이루니라. 이 때 호연이 보니 고기들이 꼬리를 치며 다시 하늘로 올라가 순식간에 없어지더라.
속히 벼락을 치라: 이 때 불벼락을 내리신 것은, 단순히 한 목사의 설교를 꾸짖으신 것이 아니다. 동서양의 숱한 인간들이 ‘창조와 피조’라는 이원론적 구조의 낡은 창조 신화를 받들며 유대족의 신 여호와를 받들며 제 민족의 뿌리와 조상신을 부정하는 환부역조의 대죄악을 천지의 불칼로 응징하신 것이다.
실로 아수라장을 이루니라: 그동안 입으로만 전해져 온 상제님의 예배당 행차와 벼락 사건을 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사람은 오직 한 사람, 김호연 성도 뿐이다. 이 날 호연 성도는 진산에서 길을 잃었으므로, 여느 때보다 더욱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거기서도 내둥 날이 창창하니 있다가도 고닥에 어물어지면서 무섭게 혀. 빈 해가 뜨면서 번쩍번쩍 번쩍번쩍하면서 (중략) 예배당에 사람 하나도 없이…. 모두들 번개가 치고 막 불칼이 내려오고 헌게, 다들 집으로만 가느라고 야단들이지.”
당시 상황을 아버지께 들은 육평기(87세의 연세에도 금산에서 자동차로 우유배달)씨가 지금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카자흐스탄 환단고기 북 콘서트에도 참석했던 분이다.
道典 5:8) 선령신을 박대하는 예수교의 기운을 거두심
하운동 입구 오동정(梧桐亭)에 세 아름씩 되는 큰 둥구나무 세 그루가 서 있거늘 상제님께서 제비창골을 오가실 때 그 나무 아래 바위에서 자주 쉬시니라. 하루는 바위에서 주무시다가 갑자기 일어나시어 그 앞에서 주막을 경영하는 예수교인 김경안을 부르시더니, 말씀하시기를 “네가 믿는 예수교서를 가져오라.” 하시매 경안이 영문을 모른 채 신약전서를 가져다 올리거늘 상제님께서 불살라 버리시니라. 이에 경안이 깜짝 놀라 “왜 책을 사르십니까?” 하며 소리치니
상제님께서 꾸짖어 말씀하시기를 “이놈아! 이것 믿어 가지고 뭐할 것이냐! 이 책은 죽은 뒤에야 천당으로 간다는 조건이 붙은 책이니 살아서 잘되고 행복하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앞으로 이 교가 수많은 중생을 죽게 할 것이요, 선령신을 박대하는 길이니 태우는 것이다.” 하시매, 경안이 분을 이기지 못하여 상제님의 멱살을 잡고 흔들며 “당신이 뭘 안다고 그러느냐!” 하고 고함치거늘 온 동네가 소란하니라.
그 후에 형렬이 상제님을 모시고 오동정 차윤필(車允必)의 집에 가니 경안이 와서 예수교서 불태운 것을 말하며 또 행패를 부리거늘, 상제님께서 “곧 돌려주리라.” 하시는데 이 때 마침 한 붓장수가 지나가는지라, 상제님께서 그를 불러들여 술을 권하시고 붓상자를 가리키며 말씀하시기를 “그 상자 속에 든 예수교서 좀 보자.” 하시니라.
이에 붓장수가 내심 놀라며 “이 속에 예수교서 있는 것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하고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 ... 그대는 예수를 믿지 아니하니 그 책을 나에게 전함이 어떠하냐?” 하시매, 붓장수가 대답하기를 “술도 많이 주시어 고마운데 그냥 드리겠습니다.” 하거늘 상제님께서 그 책을 받아 경안에게 주시니라. 그 후로 경안의 집은 패가하여 아들이 간질병으로 죽고, 딸도 소박 맞고 돌아와 떠돌다 죽으니라.
김경안: 천주교를 믿었으며 오동정에 살았다. 축지법을 좀 한다 하여 동네 사람들이 쉽게 대하지 못했다.
신약전서: 구약은 유대족의 역사서이기 때문에 신약만 불사르신 것이다. 또 구약의 여호와 와 신약의 아버지 하느님은 전혀 다르기 때문에, 구약과 신약의 고리를 끊어 주신 것이다.
차윤필(車允必, 1874∼?): 본관 연안.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에서 부 화성과 모 박씨와의 사이에 4남으로 출생.
道典 2:119) 60년 공덕을 들이는 천상 선령신
하늘이 사람을 낼 때에 무한한 공부를 들이나니, 그러므로 모든 선령신(先靈神)들이 쓸 자손 하나씩 타내려고 60년 동안 공을 들여도 못 타내는 자도 많으니라. 이렇듯 어렵게 받아 난 몸으로 꿈결같이 쉬운 일생을 어찌 헛되이 보낼 수 있으랴. 너희는 선령신의 음덕을 중히 여기라. 선령신이 정성 들여 쓸 자손 하나 잘 타내면 좋아서 춤을 추느니라.
道典 4:122) 자손 싸움이 선령신 싸움으로
사람들끼리 싸우면 천상에서 선령신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나니, 천상 싸움이 끝난 뒤에 인간 싸움이 귀정(歸正)되느니라. 전쟁사(戰爭史)를 읽지 말라. 전쟁에서 승리한 자의 신명은 춤을 추되 패한 자의 신명은 이를 가나니, 도가(道家)에서 글 읽는 소리에 신명이 응하는 까닭이니라.
道典 9:213) 사람은 죽어서도 공부를 계속한다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죽는 것도 때가 있나니 그 도수를 넘겨도 못쓰는 것이요, 너무 일러도 못쓰는 것이니라. 나의 명으로 명부에서 데려오라고 해야 명부사자가 데려오는 것이니, 각기 닦은 공덕에 따라 방망이로 뒷덜미를 쳐서 끌고 오는 사람도 있고, 가마에 태워서 모셔 오는 사람도 있느니라. 또 하늘에 가면 그 사람의 조상 가운데에서도 웃어른이 있어서 철부지 아이들에게 천자문을 가르치듯 새로 가르치나니, 사람은 죽어 신명(神明)이 되어서도 공부를 계속하느니라. 죽었다고 당장 무엇이 되는 것은 아니니라.” 하시니라.
소원하는 바를 이루려면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무엇이든지 소원하는 바를 이루려면 천지에만 빌어도 안 되나니, 먼저 조상에게 빌고 그 조상이 나에게 와서 빌어야 뜻을 이루느니라.” 하시니라.
본래의 애국가 가사는 “상제는 우리 황상(皇上)을 도우소서”라는 구절로 되어 있다. 대한제국이 1904년도에 공식 제정 선포하여 각급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가르치도록 했던 애국가이다. 이 애국가는 1910년 한일합방과 더불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1945년 8·15 해방 이후에는 ‘상제님’이 ‘하느님’으로 바뀌어 오늘날의 애국가가 된 것이다.
『서경書經』은 유가에서 말하는 가장 이상적인 통치자, 즉 4천여 년 전 이후의 요, 순, 우, 탕, 문, 무, 주공 등의 성인 제왕들이 어떻게 통치했는지, 그 통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그 책의 서두에는 “제왕으로 등극을 하면 먼저 태산泰山에 올라 천상에 계신 상제님께 제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그래서 ‘제왕은 천상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다.’ 라고 해서 ‘천자天子’라 불러 왔다.
동양에서 말한 ‘천자(天子, 하나님에 아들)’와 서양 기독교 문화에서 말하는 ‘신의 아들’이 통하는 것이다. 예수 성자가 한평생 “내가 하나님의 아들(天子)이다.”라고 주장하지 않았는가.
최수운 선생이 살았던 19세기 중엽, 국내외 정세는 극도의 혼란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는 광제창생의 큰 뜻을 품고 구도에 정진하던 중 1860(경신)년 그의 나이 37세에 마침내 우주의 한소식을 듣게 된다. 1860년 4월 초닷샛날, 갑자기 크게 두려움이 느껴지면서 온몸에 오한이 나고 몸이 떨리고 정신이 아득해지는 순간 천주님이 그에게 임하여 말씀하시기를
“두려워 하지 말고 겁내지 말아라. 세상사람들이 나를 상제라 이르거늘 너는 상제를 알지 못하느냐?” 라고 말씀하셨다.(동경대전 포덕문)
'너에게 무궁무궁한 도법를 주노니 닦고 다듬어 수련하여 글을 지어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법을 정하여 덕을 펴면 너로 하여금 장생케하여 천하에 빛나게 하리라 (동경대전 논학문)
이로서 최수운 선생이 인류의 새 세계를 알리라는 하나님의 천명(天命)과 신교(神敎)를 받고 도통을 하였으니 이것을 후대에 천주님과의 천상문답(天上問答)사건이라고 한다.
무극대도無極大道를 펴시는 하나님(天主)이 친히 이 땅에 강세하신다는 시천주(侍天主) 신앙의 시대, 즉 성부하나님 아버지시대를 선포하였다.
당시 서구의 천주교가 들어와서 천주와 하나님의 아들을 믿으라고 열을 올리고 있던 150여년 전, 최수운 선생께서는 ‘너희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으라 하지만 나는 하나님이 친히 이 땅에 강세하시게 되므로 사람으로 오시는 그 하나님을 믿으라 한다’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새 시대를 여는 하나님의 도(道), 무극대도(無極大道)가 출현한다는 소식을 전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 복음을 5년간 전하신 최수운 선생께서는 갑자년(1864) 3월 10일 세상을 뜨시면서 전前 40년은 내려니와 후後 40년은 뉘련가 천하의 무극대도가 더디도다 더디도다. 8년이 더디도다. 하시어 자신이 떠난 지 8년 후(1871년)에 하나님께서 이땅에 오실 것을 예고하였다.
인류 문화 속에서 『도전(道典)』은 불경이나 성경, 사서삼경처럼 경(經)이라는 언어를 붙일 수가 없다. 하나님의 본래 호칭이 상제님이다. 구한말 애국가에도 ‘상제는 우리 황상을 보호하사, 라고 기록되어 있다.
상제님은 이 도道의 주재자, 그 도道의 이상을 건설하시는 유일하신 우주의 절대자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상제님의 진리 말씀을 성편한 책은 경(經)이라고 부를 수가 없고, 도경(道經)이라고 할 수도 없다. 도道의 원전原典, 『도전(道典)』이다.
『도전(道典)』은 하나님의 자서전이고, 하나님의 생활 기록부다. 이『도전(道典)』하나 나오려고 100년을 소모하고 다 희생해버렸다. 기존의 경전이라는 것은 하나님 문화를, 뿌리를 뽑아버린 책들이다.
유교 사서오경이라는 게, 시경이 당대 그 시대 서민들이 부르는 노래, 그걸 모아놓은 책인데. 거기 보면 상제님에 대한 기록이 여러 개 있다. 그런데 논어, 맹자에는 그게 없다. 천天을 따지고? 천명(天命)을 얘기하고? 50에 지천명知天命 했다는 공자가 그런데 상제님은 어디로 가 버렸나?
불경 팔만 4천 법문을 얘기하지만, 팔만대장경. 화엄경이란 책이 미륵보살 마하살이다. 모든 부처의 종불(宗佛)이신 미륵불은 어디로 가 버렸나?
기독교에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외쳤는데 그분이 여호와인가? 여호와는 전쟁신이다. “씨도 남기지 말고 전멸시켜라”라고 하는. 전 인류 조상신 버리게 하고. 그 죄악을 한번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