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
경기도 여주군 여주읍 능현리 2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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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역사,
문화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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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국모가 탄생한 곳
혼란스러운 조선 말기 시아버지인 흥선대원군과의 치열한 권력다툼으로, 때로는 무너지는 왕실의 권위를 바로잡으려는 외교술로, 그리고 궁궐을 습격한 일본인들에 의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최후의 모습으로 무너지는 국가의 아픔을 상징하는 명성황후 민비의 탄생지이다. 역사 속 주인공의 탄생지로는 너무 단출한 모습이다. 외척의 왕권개입을 무엇보다 경계하였던 흥선대원군은 보잘것없는 가세를 지닌 민씨를 고종의 왕비로 선택하였다. 안채만이 남아 있던 이곳은 행랑채와 사랑채 등이 복원되었고 생가 앞으로 자리하는 기념관은 명성황후의 친필과 시해장면을 담은 영상물 등이 전시되어 있다.
생가 옆 고종의 친필로 ‘명성황후탄강구리’라고 새겨진 비석이 서 있다. 비운의 죽음을 맞이한 아내를 기리는 마음은 국왕도 여느 지아비와 같아 일본과 친일파 대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황후로 추존하여 자신의 능인 홍릉에 합장하였다. 명성황후에 관한 평가는 다양하다. 조선국의 멸망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부정적인 모습과 서구의 근대문물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열강 세력의 균형을 위한 외교적 수완을 발휘하는 모습까지 관점에 따라 차이를 보이지만 불행한 역사의 주인공으로 살아간 한 여인의 모습은 누구에게나 추모의 마음을 가지게 한다.
명성황후 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