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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기자상 수삼 소감> 매일신문 편집부 한상갑 기자 “주말에 고속도로가 버스 행렬로 장사진을 치는데 등산코너 하나 기획해보시죠.” 그땐 몰랐다. 이 말이 족쇄가 되어 3년 동안 나를 구금할 줄은. ‘그럼 네가 해보라’는 데스크의 강권에 코가 꿰었고 매일신문에 ‘산사랑&산사람’코너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우리나라 국토의 70%는 산. 어쩌면 우리에게 산은 숙명이다. 한국등산지원센터가 발표한 우리나라 등산인구는 1천만 명. 월 1회 이상 산에 오르는 사람만도 1천5백만 명에 달한다. 웬만한 아파트나 동창회엔 등산모임이 기본적으로 깔리고 전국에 산악회만 1만8천여개에 달한다고 한다. 산은 이제 더 이상 자일과 행어(hanger)로 절벽을 오르는 럭셔리스포츠가 아니다. 아이들을 등교 시킨 주부가 뒷산으로 향하고 주말 늦잠에서 깬 가장이 장비를 챙겨 근교산으로 오르듯 등산은 이제 우리의 일상이 돼버렸다. ‘산사랑&산사람’ 시리즈는 한국 100대명산 등정에 대한 기록이다. 2009년 3월 사천 와룡산부터 2012년 5월 포천 명성산에 이르기까지 기자는 3년3개월 동안 전국의 산을 돌았다. 200여 곳 자치단체 경계를 지났고 취재를 위한 거리만도 총연장 10,000km를 넘는다. 에피소드도 많았다. 충북의 어느 산에선 심마니들과 산을 타다가 채심 장면을 현장에서 볼 수 있었고 지리산 종주 길에서 밤중에 저체온증이 찾아와 배낭을 팽개치고 산 속을 정신없이 뛰기도 했다.(빨리 체온을 올려야 하기 때문에) 경험 없이 따라나선 설악산 종주 길에선 빗속에 50리길을 걷느라 양발이 벌겋게 피로 물든 적도 있다. 발톱이 두 개나 빠지고 발가락 마다 부풀어 오른 심한 물집 때문에 보름을 꼬박 고생했다. 이젠 더 이상 화제로 들고 싶지 않지만 기자는 한때 상태가 꽤 중한 시한부 암환자였다. 간 65%를 절제하고 수술, 색전술, 알코올주사요법 등 현대 의술이 간 하나에 총동원 되었다. 요양처에서 만난 산은 기자를 회복으로 이끌어 주었다. 기자는 경기도와 여수에서 2년 동안 요양병원 신세를 졌다. 그곳에서 치료를 위한 시간 외에는 산속에서 살았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치료는 또렷했다. 기자에게 산은 주치의요 링거였던 셈이다. 이때 조금씩 오르던 산이 30대, 50대 명산이 되었고 마침내 그 산들은 오늘수상 소감을 쓰는 원고지가 되었다. 흔히 산의 유익으로 맑은 공기, 유산소 운동, 근력․심폐 증진 등을 든다. 다 맞는 말이고 그 효과에 대해선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나열한 것들이 ‘자연적 산소’라면 산속엔 또 하나의 산소가 있다. ‘정신적 산소’다. 산에서는 누구나 관대하고 배려적이다. 쓰레기를 버리지 않으며 길을 다투지도 않는다. 웃음, 긍정, 낙관 같은 유익한 정서들이 같이 동반하기 때문이다. 이 중 하나만 취해도 본전 이상은 하는 셈이지만 ‘두 가지 산소’를 취할 때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완전한 치유, 회복, 충전이 이루어진다. 특종도, 시사기획물도 아닌 비루먹은 환자의 산행기에 후한 점수를 매긴 심사위원들에게 감사의 말 잊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