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11월 29일 승객과 승무원 115명을 태운 대한항공(KAL) 858기 여객기가 미얀마 안다만 해역 상공에서 폭파됐다. KAL858기에 폭발물을 설치한 사람은 북한 공작원 김승일과 김현희라며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와 언론이 앞장섰다.
김승일은 바레인 공항에서 체포 직전 독약이 든 앰풀을 깨물고 자살 했으며, 김현희는 체포되어 그 해 12월15일 대통령 선거 전날 국내로 압송됐다. 실제로 대통령 선거를 하루 앞두고 압송된 김현희가 비행기 트랩을 내려오는 장면은 생생하게 국민들의 뇌리에 박혀있다.

당시 국가안전기획부는 북한 테러범 김승일과 김현희가 기내에 폭발물을 두고 내려 공중 폭파됐다고 발표했고, 범인 김현희는 울먹이며 범행을 자인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오직 김현희 진술에만 의존한 수사결과에 대한 의혹제기와 진상규명 요구는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다.
비행기의 잔해나 실종자의 유품과 유해가 전혀 발견되지 않은 이 사건에 대한 의혹은 사건 발생 초기부터 제기됐고, 2006년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는 이 사건을 1987년 제13대 대통령선거에 이용한 대한 항공기 폭파사건 북괴음모 폭로 공작(무지개 공작)이 있었다고 발표했다.
수사당국은 북한 지령에 의한 공중폭발사건이라고 단정 짓고, 김현희의 자백에 의한 수사를 진행 했으며, 북한의 88올림픽 방해책동으로 사건을 분석했다. 김현희는 사건 발생 3년 만인 1990년 3월27일 대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보름 만에 노태우 정권에서 특별 사면됐다.

김현희가 북한 사람이 아니라는 증거가 너무나 많다. 북한에서 살다 2013년 남한으로 들어온 홍강철씨는 KAL858기 폭파범 김현희가 북한 사람이 아니라고 단언했다. 김현희가 북한에서 군사교육도 받지 않았고, 어렸을 때 학생교육도 받아본 사람도 아니며 당원도 아니라고 반박 했다.
북한에서 살아온 자신이 김현희의 수기나 책을 읽어보고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일로 의문투성이라는 것이다. 홍강철씨는 북한에서 군사학교와 유사한 고등물리전문학교를 2년간 다녔고, 군생활 3년 후 강건종합군관학교를 거쳐 중국 단둥과 마주한 곳에서 국경경비대 소대장으로 5년간 근무했다.

김현희는 바레인에서 체포됐는데 눈을 떠보니까 검은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기관단총을 45도 각도로 세우고 자기를 지키고 있었다고 썼다며, 김현희가 북한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기관단총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해방 이후에 제일 먼저 만들어낸 총이 71연발 따발총 기관단총이고 다른 종류의 기관단총은 자동총이라고 구별해 부를 정도로 북한 사람들은 상징적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기관단총조차 구분 못하는 김현희에 대해 그는 북한에서 군사교육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고 단언했다.
또한 김현희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곧장 김일성종합대학에 가서 예과에 다녔다는데 나는 안 믿어진다며, 예과라는 건 중학생이 가는 것이 아니라 제대군인, 노동자, 이런 사람들이 가서 기초교육을 다시 공부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예과에 입학하자마자 6개월간 교도대훈련을 갔다는 김현희의 주장에 대학생 교도훈련은 대학 2학년 때 보낸다며, 그건 북한 어느 대학이나 똑같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더구나 조선노동당에 입당한다는 것 자체가 최대의 영예다. 그리고 그 당증 번호는 내가 정치적 생명을 받아 안은 두 번째 이름이나 같은 거라며 당원이라면 생일은 까먹어도 당증 번호는 까먹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고 자신의 당증 번호를 단숨에 외워 제시했다.
김현희는 조선노동당에 입당했다면서 당증 번호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김 현희가 손으로 그린 당원증도 실제 당원증 모양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 김현희는 자필로 조선로동당에 입당했다고 밝혔지만 당증 번호는 제시하지 못 했다
북한 주민 입장에서의 상식적인 지적은 끝없이 이어졌다. 청년근위대의 박격포와 고사포 명칭, 김현희가 걸었다는 배움의 천리길에 백두산이 포함된 점, 인분을 말려 바쳤다는 대목 등등이다.
더구나 공작원 교육과정에서 행군이나 격술훈련 과정 묘사 등은 총참모부 훈련강령에 전혀 맞지 않는다고 했다. 금성정치군사대학에서 1년 동안의 교육프로그램은 1년에 소화하기 불가능한 내용이라는 대목까지 짚었다.
나아가 그는 김현희가 정치술어를 잘 모른다며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과 당의 유일적 지도체제가 무엇인지 모른다. 체계와 체제가 뭔지 몰라 혼용해서 쓴다는 점과 혁명사적지와 혁명전적지를 모른다는 점을 지적하고 북한에서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밟지 못한 것으로 판단했다.

북한에서 혁명사적지는 해방후 김일성이 다녀간 곳이고, 혁명전적지는 김일성이 항일무장투쟁 때 싸운 곳이다. 그런데 왕재산 혁명전적지를 왕재산 혁명사적지를 다녀왔다고 말한다며 정치적인 개념이 완전히 제로다라고 짚었다.
그는 KAL858기를 북한 공작원이 폭파시켰다는 이 사건의 가장 근본적인 전제에 대해서도 북한에서는 남조선 인민들도 손잡고 조국통일을 같이 해나가야 할 혁명의 동반자라고 교육한다며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죽인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만약 죽임으로 해서 북한이 얻을 이득이라는 게 하나도 없다고 의문을 제기하고 북한에서는 테러로는 나라를 구할 수 없다며 역사에서 그렇게 배워준다고 말했다.

첫댓글 전두환 기획했고 당시 안기부 끄나풀 김현희
전두환과 김현희를 참수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