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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ノ놀라운세상 스크랩 반달내 타클럽 소개(과천마라톤클럽,아르헨티나 )
황인호_주자삼락 추천 0 조회 22 08.07.10 08:4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황해도 금천군 토산면 양사리...
외가 고향입니다...
고향이별은 야밤에  피신 나올만큼 급박한 상황이였다고 합니다..
외조부님은
지주계급으로 몰려 마을뒷산으로 끌려가시고선...
영영 이별이...
그런 가족사는 외삼촌이 전해준 것입니다..
너희대는 반드시 고향에 돌아가야 한다며..
전답문서 등을 애지중지 하고 계시지요..

그 외삼촌 아들은 무명 가수 입니다
지금도 한적한 커페에서 노래 부르고 있겠지요...
오늘은 동생 노래 입니다...


인재섭 
'미련'
작사,작곡 모두 재섭동생이 한 것입니다...
우수어린 가사에 경쾌한 리듬이 조화? 되어 있지요..



추억속에 묻어 버린 그대
생각조차 하기 싫은..
기억조차 하기 싫은
잘못된 만남이였어...
술에 취해 휘청거린 나날들
깨져버린 만남보다 견딜 수없던 건
끝도 없이 괴롭히던 미련.....
흔들리던 내 자신이 정말 미웠어....

 

본 노래는 주변사람한테 보내셔도 무방합니다..

 

 

 

 과천마라톤클럽 회원과의 동행이 있었기에

폭염과의 싸움,

기진맥진 하는 중 완주 할 수 있었습니다..

"같이 가요"

이 한미디면 됩니다..

주변 마라톤 친구들 화제 올려도 되고

낭군님 자랑도 해도 되고

상사분 안주삼아 씹어되 되고....

세상사가  술술 나오면  더위도 금방 잊혀져 감니다

여러분...

달리다 힘들면

주위분과 도란도란 애기꽃 피우며 가세요...

혼자 달리면 지칩니다...

 

 

 

 

 

 스트레칭에 여념이 없는 과천마라톤클럽분...

이번 혹서기 대회에서

이분들은  멍멍이 잡는 답니다..

여기 가입하라고 하는데 괜시리 군침이 돌더군요...

물론 멍멍이 탕 때문이 아닙니다

미녀한테 처음 받는 가입권유에 솔직히 맘이 흔들립니다...

낭군님도 3시간 10분대 보유자라며

은근히 낭군님 자랑이 대단합니다

부부 함께 마라톤 하시는 분들이라...

이것도 부럽더군요...

 

 

 

 아르헨티나 분...

성함은 페르난도???.

정확한 이름인지 솔직히 자신없습니다.

이분과 만국 공통어로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영어도 아니요

스페인어도 아니요

한국말입니다

 

이분 한국말도 잘하더군요...

씨티은행 근무하며

MIS 전문가 라고 합니다

아르헨티나 하면 떠 오르는 단어를 몇개 열거 해 보았지요

'에바페론'

'마라도나'

....

잠시 이분이 아르헨티나와 연관된 사람을 애기 하도군요...

존경하는 인물임엔 틀림없을 것 같습니다...

'체게바라' 였습니다...

체게바라는 아르헨티나 태생 이더군요..

 

 

 이 분과 나누던 장소 입니다

맥주잔도 부딪치고

커피도 나누어 마셨습니다

요즘엔 다이어트에 관심이 있는 듯 했습니다...

김안자님도 자신을 소개하고...

이어 정왕채님 까지

소개 했으니 다음에 만나면 친구 입니다...

 친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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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분이 존경하는 체게바라...

의사이며

쿠바 혁명을 완성시킨 장본인...

안락한 쿠바 생활을 버리고 볼리비아

반군조직에 참여 했으나

정부군에 붙잡혀 사형을 당하고 말았지요...

여기엔 카스트로의 배반도 한 몫 했다고 하더군요...

 

 

체 게바라 - 억압하는 모든 것에 저항하라

 


1. 영원한 혁명가 체 게바라

(사진/유해로나마 귀환하는 게바라를 환영하는 쿠바국민들. 영웅없는90년대에 게바라 열풍은 그가 맞서 싸웠던 제국주의 미국과 유럽에까지 번지고 있다.)

영웅이 다시 돌아왔다.”

60년대혁명영웅에르네스토게바라의 사망 30돌을 맞아 전세계적으로게바라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게바라 바람은 그가 볼리비아 정부군에 의해 처형된 108(1967)이 가까워오면서, 혁명의 고향 쿠바를 정점으로 남미를 돌아 이미 유럽·북미 등까지 영향권으로 삼은 상태다.

아르헨티나 의사 출신으로제국주의미국에 대항하는수많은 베트남을 만들기 위해 전세계 전장을 뛰어다닌 게바라는 60년대 저항운동의 상징이었다. 검은 베레 모자에 아무렇게나 기른 긴 머리칼, 덥수룩한 턱수염, 그리고 열정적인 눈빛, 굳게 다문 입술은 당시 유럽과 남미 대학의 기숙사 벽을 어김없이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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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추피추(Machu Picchu, 늙은 봉우리)

1911년
7월 24일, 미국의 대학 교수인 하이럼 빙엄(Hirum Bingham)은 깊은
산봉우리 위에 건설되어 있던 마추피추(Machu Picchu, 늙은 봉우리)를
발견하였다. 마추피추는 쿠스코에서 112km 떨어진 곳에 해발 2400m 높이의
산봉우리에 만들어져 있다. 아마존 강의 원류인 우루밤바 강 위의 절벽에
세워져 있으며 아래에서는 도저히 보이지 않아 그 존재를 알 수 없고
접근조차 어렵다. 총 면적은 40만km 2 이고 약 1만여명이 거주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산정과 가파른 좁은 경사면에 들어서 있어 스페인 정복자들의 파괴의
손길이 닿지 않은 유일한 잉카 유적이다.
미국의 젊은
역사학자 하이럼 빙엄이 마추피추를 처음 찾은 것은 1909년이었다. 그는
진지한 믿음으로 잉카 유적을 탐사했던 최초의 이방인이었다. 열대 우림의
들끓는 모기떼와 우루밤바 강의 거친 물결을 헤쳐 가던 빙엄은 원주민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강 맞은 편으로 건너갔다. 그리고는 험난한 벼랑을
기어 올라가 초목 사이에 폐허의 요새도시를 발견하였다. 그 후 그는
본격적인 탐사를 위해 뒤늦게 후원금을 마련하여 1911년 7월, 6명의
전문가와 함께 본격적인 탐사를 펼쳤다. 그러나 그는 유적지 전체를
발굴하지는 못했다. 빠듯한 일정과 자금문제로 인해 오랜 세월 파묻혔던
유적을 발견하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그 후 1964년 미국의 고고학자
진 사보이는 이 지역의 전모를 파헤쳤다. 빙엄의 발굴보다 넓은 양 끝이
약 1km에 이르는 건물들을 찾아냈으며 여러 결정적인 증거도 발굴해냈다.
마추피추의
정확한 건설 연대는 알 수 없다. 마추피추의 건립 시기에 대하여 포츠담
대학 천문학자인 롤프 물러는 "마추피추의 특징은 천체의 위치에
맞추어 만들어진 것으로 별자리 위치에 대하여 수학적으로 계산한 결과
유적은 기원전 4천년부터 기원전 2천년 사이에 완성되었다"는 가설을
세웠다. 선뜻 받아들일 수 없는 황당한 논리같지만 1988년 탄소동위원소
연대측정을 통하여 잉카제국이 형성되기 6백년 전인 서기 800년에 정착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히함 비프만은 "마추피추는
잉카문명의 전단계로 잉카의 기원이며, 1300년경 버려진 것을 스페인
침공을 계기로 망코 잉카가 재점유하여 1543년경 다시 건설하였다"는
주장을 고수한다. 이러한 이론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마추피추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커다란 층계와 높은 방호 벽, 그리고 수로에
의하여 북부와 남부의 두 부분으로 크게 나뉘어져 있다. 남쪽으로는
고지대 농업지구와 저지대 농업지구가 있고, 북쪽은 도시구역이다. 도시구역은
중앙광장을 중심으로 서부 도시구역인 하난(Hanan)과 동부 도시구역인
후린(Hurin)으로 나뉜다. 서부도시구역이 주로 사원, 왕궁, 탑, 그리고
귀족계급을 위한 권위적이고 종교적인 건물이 세워진 반면 동부도시구역은
일반대중들을 위한 주거와 작업장 그리고 거주민의 통제를 위한 건물군으로
계획되었다. 이 도시로 들어오는
길에는 통나무다리가 있는데 적군이 침입해 오면 이 통나무를 치워 길을
끊었다고 한다. 태양의 신전, 지붕없는 집, 산비탈의 계단식 밭, 농사를
짓는데 이용된 태양 시계, 콘돌 모양의 바위, 피라미드 등의 유적이
남아 있다.
이 마추피추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수준 높은 건축 기술이다. 커다란 돌을 다듬는
솜씨가 상당히 정교하다. 각 변의 길이가 몇m나 되고 모양도 제각각인
돌들을 정확하게 잘라 붙여서 성벽과 건물을 세웠다. 종이하나 들어갈
틈도 없이 단단히 붙어 있다. 젖은 모래에 비벼서 돌의 표면을 매끄럽게
갈았다고 한다. 가파른 산비탈에 계단식 밭을 만들고 여기에 배수시설까지
갖추고 있다. 마추피추의 건축물에서 가장 특이하고 기이한 형태로 모든
건물에 벽감이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벽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한결같이
사다리꼴 형태로 위보다 아래가 넓은 안정된 모양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큰 것은 미라나 사제들의 물품을 보관하는데 사용되었고 작은
것들은 가정의 우상이나 일반 물건을 놓았을 것으로 보고 있으나 확실하게
그 용도가 규명되지 않았다.
마추피추에서는 몇가지 수수께끼를 발견할 수 있다. 도시의
관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앳된 여성들의 미라가 땅에 묻혀 있지
않고 발견되었다. 그리고 발굴된 미라로 추측하여 마추피추의 도시 인구는
약 1천명이었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남성의 미라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남자들은 스페인과의 전쟁에 나가 모두 죽어 버린 것일까? 아니면 마추피추는
선택된 여성만을 위한 "태양의 처녀" 아크야(Aqllawasi)의
집단 거주지였는가? 남자들은
전쟁터에 나가고 여자들만 남아 살다가 전염병(천연두)으로 인해 모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확실한 내막은 알 길이 없다. 왕궁 옆의
탑인 태양 신전에 있는 지하계단은 어느 곳으로도 연결되지 않은 채
끊겨 있다. 이 곳의 지하계단이 다른 곳으로 연결되는 지하 비밀 통로였을
가능성도 있다. 마추피추는 아직도 발굴되고 있으므로 언젠가는 진실을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마추피추가
발견되면서 이곳이 빌카밤바라는 학설이 제기되었다. 빌카밤바는 망코
잉카와 그의 아들 그리고 마지막 잉카 투팍 아마루(Tupac Amaru)까지
거의 40여년 동안 독립 왕국을 세우고 스페인 통치에 저항하였던 곳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잉카 유적지를 비교해봤을 때 완벽한 요새도시는 마추피추뿐이다.
그러나 빌카밤바는 스페인 군대의 공격을 받아 함락되었는데 여기에는
어떠한 공격의 흔적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한편 마추피추가 예전에
금은보화를 숨겼던 "비트코스 요새"라고도 하나 확실한 증거는
없다.
마추피추에
살던 잉카인이 왜 사라졌는지, 이 곳이 예전에 잉카의 수도였는지 알
수는 없다. 오직 마추피추에 살던 그들만이 알고 있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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