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섭은 현지의 사정으로 당초 약속한 것보다 한 달 정도 늦어진 10월 말경에 귀국했다.
희수에게서는 귀국하기 달포 전에 사정이 생겨 한 달 정도 귀국이 늦어질 것이라는 편지뿐만 아니라 그 중간에 보낸 편지에 대하여 연락이 없더니 귀국한다는 편지에 대해서도 답장이 없었다.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귀국한다는 편지에 도착하는 날자와 도착시간을 적어 보냈으니 비행장에서는 희수를 볼 줄 알았는데 비행장에도 희수는 마중을 나오지 않았다.
시내로 들어오는 차 안에서 희수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가 되지 않는다.
자기가 한국에 없는 동안 희수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가 일었지만 그렇지 않겠지 하고 스스로 다독였다.
보영에게 전화를 했다.
영섭의 전화를 받은 보영도 잘 다녀왔냐는 인사말 외에는 별말이 없다.
희수에 관하여 물어보고 싶었지만, 외국에 있는 동안 간간이 안부 엽서만 주고받다가 7개월 만에 귀국하며 곧바로 희수의 안부를 묻는 것이 쑥스럽고 실례인 것 같아 그만두었다.
궁금한 것을 참고서, 적성 집으로 내려가 부모님께 귀국 인사를 하고 다음 날 서울로 올라왔다.
회사에 나가 근무하는 시간에도 틈나는 대로 희수에게 전화했지만, 신호는 가는데 받지를 않는다.
다음 날 틈 내여 학교로 찾아갔다.
학교에서 만난 희수의 친구는 희수가 휴학계를 냈다는 것이다.
희수에게 휴학계를 낼 무슨 사정이 있었느냐고 물었으나 그 친구는 자기로서는 희수가 왜 휴학계를 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휴학계 낼 때 자기가 이유를 물어보았지만, 희수는 웃기만 했다는 것이다.
서무과로 찾아가 사정하여 억지로 본 희수의 휴학계에 기재된 휴학 사유는 가정 형편상이라고 되어있다.
학교를 나오며 희수네 집에 전화를 걸었다.
영섭이 희수와 가까워지고 나서는 희수와 같이 몇 번 희수네 집을 찾아가 희수네 집에서도 영섭을 잘 알고 어쩌면 사윗감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어머니가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세요? 영섭입니다. 안녕하셨어요?”
그 말을 들으시자 어머니는 왈칵 눈물부터 흘리신다.
“어머니 왜 그러세요? 집에 무슨 일이 있으셔요?”
“안일세. 언제 왔는가?” 울음 섞인 어머니의 말씀이다.
“귀국한 지 이틀 지났습니다.”
“그래, 잘 다녀왔는가?”
어머니의 말소리는 여전히 울음 섞인 말소리다.
“네! 잘 다녀왔습니다. 희수 좀 바꾸어 주세요.”
“희수 집에 없네.”
그 말을 하시며 어머니의 울음소리는 더욱 높아진다.
“네? 무슨 말씀이세요? 어머니 왜 그러세요? 정말 집에 무슨 일이 있으셔요? 휴학계를 낸 희수가 집에 없으면 서울에 있나요?”
“나도 모르네. 어쨌든 희수는 집에 없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씀해 주세요.”
“나중에 말하세. 이만 전화 끊네.”
전화를 끊은 영섭은 아무래도 이상한 생각이 들어 주말에는 희수네 집에 가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날 오후 영섭은 보영을 찾아갔다.
외국에서 7개월 만에 귀국했으니 귀국 인사도 해야겠지만 세월도 많이 흘렸고, 외국에서 안부 엽서라도 주고받아 그래도 둘의 사이는 조금씩 복원되어 가고 있었다.
보영이 있는 지청에는 마침 혜선이 와 있었다.
서먹하게 영섭을 맞는 보영의 표정은 억지로 밝은 표정을 하지만 어두운 그림자가 어려 있고 많이 여위었다.
영섭은 아직도 보영이 자기 때문에 속앓이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가슴 가득했다.
오랜만의 해후에 대한 인사가 대강 끝나고 나자 먼저 혜선이 말문을 열었다.
“내가 마침 잘 왔다. 마침 영섭이도 왔으니 오늘 제대로 보영의 위로를 해 주어야겠다.”
“위로요? 보영이에게 무슨 일이 있어요?”
“있어도 아주 큰 일이 있지.”
혜선이 다음 말을 하려고 할 때
“언니!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아요.”
하고 보영이 쇠띈 소리를 한다.
그 바람에 무슨 말인가 하려던 혜선이 입을 다물어 버리고 분위기가 어색해진다.
“보영아 무슨 일이야 내가 알면 안 되니?”
“아무것도 아니야. 네가 오랜만에 귀국했으니 내가 기념으로 밥을 살테니 밥이나 먹으러 가자”
하고 보영이 앞서 나가고 혜선이 영섭에게 눈을 찡긋해 보이고 나가자는 신호를 했다.
영섭이 들과 같이 밥을 먹고 술을 마시면서며 떠들면서도 보영은 무슨 수심이 있는 사람같이 얼굴에 어두운 그늘이 언뜻언뜻 지나간다.
영섭이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어도 아무 일도 없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하고 혜선은 더 이상 묻지 말라는 사인을 보낸다.
그날 보영은 생각보다 술을 많이 먹었다.
그래서 헤어질 때는 거의 몸을 가누지 못하고 영섭에게도 자기의 초라한 모습을 보기 위해 왔냐, 희수와는 깨가 쏟아지느냐는 둥 섭섭한 소리를 한다.
예전에는 전연 보이지 않던 행동이다. 특히 오랜만에 만난 영섭이 앞에서 그런 행동을 할 보영이 아니다.
몸을 가누지 못하는 보영을 혜선이 택시에 싣고 먼저 가고 혼자 남은 영섭은 아직도 보영이 자기 때문에 몸이 수척해지도록 수심에 잠기고 그래서 저런 행동까지 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어떻게 하여야 보영의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을까?
미안한 생각과 함께 어떻게 보영을 위로해 주어야 하나 하고 걱정하는 영섭에게 다음 날 아침 혜선으로부터 만나자는 전화가 왔다.
약속 장소에는 혜선이 먼저 나와 있었다.
들어오는 영섭을 보고 손을 흔든다.
다가가 자리에 앉으며
“혜선 누나가 웬일로 나를 보자고 했어요?”
하고 영섭이 물었다.
“왜 나는 너 좀 만나면 안 되냐?”
“아니 그런 뜻은 아니고, 한 번도 누나가 나를 찾은 적이 없으니까.”
“그랬나?”
“그래요, 자주는 만났지만 늘 다른 사람들과 같이 이였지, 누나가 나를 찾은 적은 없었지요.”
“그러면 네가 나를 찾은 적은 있고?”
“그도 그러네, 피장파장이네요”
“어쨌든 어제저녁에 밤새도록 고민했는데 아무래도 너도 아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널 불렸어.”
“무엇을요?”
“응! 보영이 고민하는 것 말이야.”
“참! 보영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몸이 야위고 수심에 차 있습니까?”
“그걸 몰라서 묻냐?”
혜선의 말에 머쓱해진 영섭은 마음에 괴로움이 일고 혜선을 보기가 민망하다.
잠시 침묵하던 혜선이
“그것뿐이 아니라 직장에서 문제가 생겼어.”하고 덧붙인다.
“무슨 문제가요?”
“말하자면 좀 복잡해.”
하며 혜선이 들려준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지금부터 육 개월 전 영섭이 외국으로 나가고 얼마 않되 보영이 한 사건을 맡게 됐다.
보영이 사건을 맡기 일 년 전부터 국내에서 심해지기 시작한 마약 범죄조직을 소탕하려고 검찰이 많은 노력을 하고 몇 명의 검사가 매달렸으나 잘 해결되지 않아 고민하고 있던 것을 보영이 자청하여 해결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처음에는 여자 검사가 맡기에는 어려운 일이라고 고위층에서 반대했으나 보영이 맡겠다고 고집을 부려서 허락받은 것이다.
사건을 맡은 보영은 여죄수 중에 미모가 뛰어나고 강단과 무술 실력이 뛰어난 여죄수를 골라 사건 해결이 잘되고 나면 상부에 보고하여 형을 면제시켜 준다는 조건으로 마약 범죄조직이 자주 드나드는 살롱에 신분을 속이고 여급으로 취직시켜서 나중에는 두목의 정부가 되게 하여 정보를 알아내어 마약 밀매조직 소탕에 몇 번의 개가를 올리고 마약 밀매조직이 와해 되는 것 같아 수일 내 정보원 빼내고 사건을 종결하려는 시점에 여 정보원으로부터 자기의 신분이 노출되어 잡혔다는 연락이 왔다.
보영은 정보원을 구출하려고 경찰을 이끌고 정보원이 알려 준 마약 범죄조직의 아지트를 급습했지만, 범죄단은 벌써 장소를 옮긴 후였다.
며칠 후 다시 정보원한테서 연락이 왔다.
마약 범죄조직의 두목이 00장소에서 만나잔다는 연락이 온 것이다.
보영이 경찰을 데리고 약속 장소에 나가보니 범죄조직에서 나온 두목은 중국 사람이었다.
통역사를 데리고 나온 두목의 말은 자기는 중국에서 왔고 자기의 사업을 방해하면 자기들이 잡고 있는 정보원을 죽이고 중국으로 들어갈 터이니 자기의 사업을 방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즉 자기들은 한국에 마약 시장을 확보하려고 중국의 삼협회에서 온 조직이라는 것이다.
정보원의 죽음을 불사하고 범죄자들을 잡으려고 하면 가능한 일이겠지만 자기를 위해서 희생한 정보원을 아니 자기를 돕지 않은 사람이라도 선량한 국민을 그것도 나라를 위해 일한 국민을 죽이고 범죄자들을 소탕할 수는 없는 일이다.
범인 열 사람을 놓쳐도 선량한 사람 한 사람을 보호하라는 말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다른 사람이 하는 수사는 모르지만 자기는 이 일에서 손을 떼겠으니 정보원을 보내 달라고 했다.
잠시 생각하던 두목은 조건을 걸었다.
첫째 보영이 가지고 있는 그동안 수집한 자기들에 대한 정보기록을 모두 넘겨줄 것
둘째 자기들과 무술 겨루기를 하여, 이기지 못할 경우, 앞으로 자기들의 활동을 방해하지 말 것, 그리고 인질은 계속 자기들이 데리고 있을 것이고 대신 자기들이 지면 인질을 내주고 자기들은 중국으로 돌아가겠다는 것
만약 이 조건을 수락하지 않으면 인질을 죽이고 자기들은 한국에서 활동 중단하고 중국으로 간다는 것이다.
보영은 생각해 보았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마야조직에 대한 정보는 이미 전산에 올라 있어 경찰청 모두가 공유하고 있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정보기록을 넘겨준다고 해도 별문제가 없고 무술겨루기는 우리나라에 삼협회 고단자 하나 이길 사람이 없겠는가.
하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자기 혼자 결정할 사항이 아니라 윗사람에게 보고하여 재가를 받아야 하니 기다리라고 말하고 귀청하였다.
회합에서 돌아온 보영의 보고를 받은 상부에서 범죄자와의 타협이란 있을 수 없다고 반대하였으나 그동안에 범죄소탕에 공이 있는 보영이 삼협회와 회합 때 생각했던 것을 말하며 범죄소탕에 크게 일조한 인질, 국가를 위해 일한 사람을 살려야 한다는 보영의 간곡한 요청으로 허락을 했다.
그러나 정작의 고민은 그때부터였다.
수집한 자료와 한국 경찰 내에서 제 일이라고 하는 무술인과 같이 약속 장소 가서 그동안 보영이 수집한 자료를 주고 남부지청에서는 손을 뗀다는 약속을 하고 무술 시합에 들어갔다. 그러나 보영의 기대를 걸었던 무술인은 10분도 못 견디고 패퇴했다.
그때부터 보영의 고민은 깊어져 갔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첫 번째 조건은 형식적인 것으로 두 번째 조건을 걸기 위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첫 번째 조건이 생각보다 쉬웠던 것은 두 번째 조건에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삼 개월간 다섯 번을 싸웠지만 모두 30분을 못 넘기고 패퇴했다.
그때부터 정보원의 생사를 손에 주고 있는 놈들은 적당히 숨기고 적당히 노출 시키며 그동안 줄어들었던 자기들의 사업을 넓혀가고 있다.
이것을 걱정하는 상부에서는 새로운 많은 사람이 마약에 빠지는 일을 막기 위해 정보원을 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하루속히 범죄 집단을 소탕하라고 성화가 빗발친다.
안 그러면 다른 검사에게 수사권을 넘기겠다고.
거기에는 정보원이 범죄자라 마약범죄 소탕 작전 시 죽어도 별문제 없다는 생각도 포함된 것 같다는 것이 보영의 생각이다.
정보원의 안위 때문에 이제까지 버텨오던 보영이도 더는 버티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같은 청내의 다른 검사와 협조하여 상당한 경찰력을 동원하여 사 일 후면 마약범죄단을 소탕하기로 결정됐다.
어제 하루가 지났으니 이제 그 소탕 작전을 삼 일 후면 벌려야 한다.
보영은 자기를 위해 아니 나라를 위해 일한 국민을 죽음으로 몰아야 하는 상황에 후회와 죄의식으로 고민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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