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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7월 9일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아버지의 영이시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6-23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16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그러므로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
17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18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19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20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21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22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23 어떤 고을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다른 고을로 피하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스라엘의 고을들을 다 돌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팔뚝으로 박수를 치며
내가 처음으로 안양의 나자로 마을을 찾은 것은 고인이 되신 이경재 신부님이 나자로 마을을 설립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노인들을 위로해 줄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우리 학교의 국악 동아리 학생들과 방문하여 그들을 위해 거문고 반주를 하고 멋지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60명에 가까운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박수를 치시는데 소리가 잘 안 들리는 것입니다. 그 분들은 손바닥이 없이 팔뚝으로 박수를 치거나 으등거려진 손을 맞대어 두드리고 어깨를 흔들 뿐이었습니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 박수를 받으며 아이들은 노래는 부르지만 가슴이 무언가 맺히는지 박자도 틀리고 음정도 불안해서 자기들끼리 마주보고 눈짓을 하기도 했습니다
처음에 라자로 마을 사람들의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눈치만 보던 아이들이 이제는 할머니들을 안아주기도 하고 가까이 가서 얘기도 할 정도로 점차 발전하였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안나 할머니를 이경재 신부님께서 소개해 주었는데 내게 자신의 얘기를 울면서 들려주시는데 정말 모습이 너무 예쁘셨고 말씀도 참 잘하셨는데 미인박복이라더니 정말 기가 막힌 인생은 이러했습니다.
시골에서 꽃다운 나이에 잘생긴 청년과 혼인해서 시댁 어른들과 아주 행복한 신혼을 보내던 중 한국전쟁이 발발하였는데 남편은 군인으로 참전하게 되었고, 오매불망 그리워하던 남편의 전사통지를 받은 때는 만삭으로 해산달이 가까웠을 때였답니다. 지친 몸으로 유복자를 낳아 자신의 모든 서러움을 묻고서 아기 때문에 살아야 했습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즈음해서 어느 날 세수하다가 눈 섶이 모두 빠지면서 나병이 발생한 것이지요. 집안에서는 우선 출입을 못하게 하고 골방에 가두어두고 약을 써 봐도 낫지 않으니까 먼 산에 움막을 마련해서 음식을 날라다 주곤 하였다고 합니다.
점차적으로 병은 점점 심해지고 손가락이 떨어지고, 온 몸에 고름이 창궐해도 사랑하는 아들 때문에 그 마을을 매일 찾아가는 것입니다. 먼발치에서 아들이 놀고, 학교에 오가며 건강하게 다니는 것을 보면 가슴을 쥐어뜯고 매일 울면서 매일 아이를 따라서 학교로 집 근처로 옮겨 다니면서 멀리서나마 아이를 보는 것이 유일한 기쁨이고 희망이었습니다. 때로는 사람들의 돌팔매로 피투성이가 되고, 나무 등걸에 살점이 뜯겨도 아들만 볼 수 있다면 그런 것은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어쩌다 아들이 아파서 밖으로 나와 놀지 않으면 안절부절 못하는 숱한 밤들이 괴롭기만 하고 병이 심해지자 아이에게 “문둥병 자식이라”는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전국의 나환자 수용소를 전전하다가 나자로 마을에 온지 한 10년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들이 대학시험에 합격했다고 어느 날 나자로 마을에 찾아왔는데 면회신청을 받은 안나 할머니를 찾아왔지만 코는 떨어져나가고, 팔뚝만 있고 눈 하나는 멀고, 흉측한 몰골이 되어있는 자신을 아들에게 보여줄 수 없었답니다. 먼발치에서 아들을 훔쳐보며 “네 엄마는 이제 죽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다시는 오지도 말고, 너 건강하게 사는 것만 하느님께 기도한다.”라고 돌려보내 놓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군인 가기 전도 오고 군인을 다녀온 후에도 아들이 엄마를 찾아왔을 때도 차마 보여줄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너도 이제는 장가를 들어야 할 나이인데 누가 문둥이 자식한테 시집을 오겠다는 착한 아가씨가 있으면 어미는 죽었다고 생각하고 죽었다고 말하고 장가들어라.”고 신신 당부를 했답니다. 아들은 올 때마다 모습은 뵐 수 없고 엄마의 목소리만 듣고 무겁게 발걸음을 돌려서 집으로 돌아갔고 그런 아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매일 울었답니다.
그러면서도 라자로 마을에서 아들 자랑하는 할머니가 되었고 아들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으로 얘기하고 결혼을 했고, 첫아들을 낳았는데 회사 일이 바빠서 출생신고를 며느리가 하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호적에 시어머니가 엄연히 살아 있는 것을 며느리가 본 것입니다. 그래서 며느리는 남편에게 자초지종을 묻게 되었고, 아들은 그간의 얘기를 아내에게 해 주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그 얘기를 모두 들은 며느리는 한 동안 가만히 있더니 남편에게 말하더랍니다. “문둥병을 앓고 있어도 우리의 어머니입니다. 당신이 그렇게 매몰찬 사람인줄 몰랐습니다. 이제 손자까지 보셨으니 이번 주일에 가서 뵙시다.” 그래서 그 주일에 나자로 마을에 떡을 많이 해가지고 손자를 안고 와서 안나 할머니에게 면회 신청을 하였답니다. 안나 할머니는 아들이 어떤 여자랑 자신을 찾는다는 것을 방송에서 들었답니다. “네 엄마는 죽었다니까 왜 찾아왔느냐?”고 소리를 질렀더니 며느리가 뛰어 나와서 “어머니 손자가 왔어요.” 그러더랍니다. 안나 할머니는 “그 소리를 들으니께 내가 눈이 뒤집혔슈, 그래서 펄펄 뛰어갔쥬, 이 팔뚝으로 막 손자랑 며느리랑 아들을 안아주면서 내가 하느님께 얼마나 감사를 드렸고, 몇 번이나 애기를 불렀는지 모르실뀨.”
그날부터 할머니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답니다. 약을 먹어서 성한 몸이 되었지만 살아 있는 나균이 신경을 갉아 먹을라치면 얼마나 아픈지... 의사들은 야구방망이로 정강이를 사정없이 40대를 내리치는 아픔이라고 표현합니다. 진통제 없이는 견딜 수 없는 아픔이건만 안나 할머니는 성당으로 달려가 성당 바닥에 엎드려 묵주를 크게 펴놓고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빠진 눈에라도 넣고 싶은 손자를 위해서 기도했답니다. 팔뚝으로 묵주 한 알 한 알을 더듬으면서 “주님께서 은혜를 베푸시어 제 자식들의 아픔은 모두 제게 주시고, 은인들의 아픔도 제게 주십시오. 제게 주십시오.” 차디찬 바닥에 엎드려 기도하면 온몸이 굳어서 빳빳해질 때까지 기도하는 삶이 되었답니다. 아들을 위해서 기도하면서 “선생님을 위해서도 기도할께유.”하신 안나 할머니의 따뜻한 기도의 힘이 오늘도 생생한 주님의 은총으로 느껴집니다.
<내가 너의 얼굴을 보았으니, 기꺼이 죽을 수 있겠구나.>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46,1-7.28-30
그 무렵 1 이스라엘은 자기에게 딸린 모든 것을 거느리고 길을 떠났다.
그는 브에르 세바에 이르러 자기 아버지 이사악의 하느님께 제사를 드렸다.
2 하느님께서 밤의 환시 중에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셨다. 하느님께서 “야곱아, 야곱아!” 하고 부르시자,
“예, 여기 있습니다.” 하고 그가 대답하였다.
3 그러자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하느님, 네 아버지의 하느님이다. 이집트로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그곳에서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4 나도 너와 함께 이집트로 내려가겠다. 그리고 내가 그곳에서 너를 다시 데리고 올라오겠다.
요셉의 손이 네 눈을 감겨 줄 것이다.”
5 그리하여 야곱은 브에르 세바를 떠났다. 이스라엘의 아들들은 아버지를 태워 오라고
파라오가 보낸 수레들에 아버지 야곱과 아이들과 아내들을 태웠다.
6 그들은 가나안 땅에서 얻은 가축과 재산을 가지고 이집트로 들어갔다. 야곱과 그의 모든 자손이 함께 들어갔다.
7 야곱은 아들과 손자, 딸과 손녀, 곧 그의 모든 자손을 거느리고 이집트로 들어갔다.
28 이스라엘은 자기보다 앞서 유다를 요셉에게 보내어, 고센으로 오게 하였다. 그런 다음 그들은 고센 지방에 이르렀다.
29 요셉은 자기 병거를 준비시켜, 아버지 이스라엘을 만나러 고센으로 올라갔다. 요셉은 그를 보자 목을 껴안았다.
목을 껴안은 채 한참 울었다.
30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말하였다. “내가 이렇게 너의 얼굴을 보고 네가 살아 있는 것을 알았으니,
이제는 기꺼이 죽을 수 있겠구나.”
축일7월 9일 성녀 바울리나(고통 받는 예수 성심의) (Pauline of the Agonizing Heart of Jesus)
신분 :설립자, 수녀원장
활동 연도 :1865–1942년
같은 이름 :비신타이네르, 빠울리나, 뽀리나, 아고니잔테, 아마빌레, 코라카오, 파울리나, 포리나
고통 받는 예수 성심의 성녀 바울리나(Paulina do Coracao Agonizante de Jesus)는 1865년 12월 16일 이탈리아 북부 트렌토(Trento) 지방의 비골로 바타로(Vigolo Vattaro)에서 아버지 안토니오 나폴레오네 비신타이네르(Antonio Napoleone Visintainer)와 어머니 안나 피아네체르(Anna Pianezzer)의 딸로 태어나 아마빌레 루치아 비신타이네르(Amabile Lucia Visintainer)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 지역의 다른 모든 사람처럼 그녀의 부모 역시 가톨릭 신자로서 열심히 살았지만 가난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1875년 9월에 그녀의 가족은 다른 많은 사람과 함께 트렌토에서 브라질의 산타 카타리나(Santa Catarina) 주(洲)로 이주하여 오늘날의 노바 트렌토(Nova Trento) 지역에 속한 곳에 비골로(Vigolo) 마을을 건설하였다. 12살 무렵에 첫영성체를 한 아마빌레는 어린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병자를 방문하며 비골로 성당을 청소하는 등 다양한 본당 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1890년 7월 12일 아마빌레와 그녀의 친구인 비르지니아 로사 니콜로디(Virginia Rosa Nicolodi)는 암으로 고통 받는 한 여성을 돌보기 시작했는데, 이로써 쿠리티바(Curitiba)의 주교인 호세 데 카마르고 바로스(Jose de Camargo Barros) 주교의 승인을 받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가 시작되었다. 그해 12월 아마빌레는 첫 동료인 비르지니아 로사 니콜로디와 테레사 안나 마울레(Teresa Anna Maule)와 함께 서원을 발하며 고통 받는 예수 성심의 바울리나(Pauline of the Agonizing Heart of Jesus)라는 수도명을 선택했다. 초대 원장이 된 성녀 바울리나와 동료 자매들의 거룩한 생활과 사도적 열정은 가난하고 불편한 생활 여건에도 불구하고 많은 성소자를 이끌어 들였다. 1903년 종신 총원장으로 선출된 그녀는 상파울로(Sao Paulo)의 이피랑가(Ipiranga)에 사는 고아들과 노예 출신 아이들 그리고 늙고 소외된 노예들을 돌보기 위해 노바 트렌토를 떠났다.
1909년 성녀 바울리나는 상파울로의 대주교 두아르테 레오폴도 에 실바(Duarte Leopoldo e Silva)의 지시로 총원장 직분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평수녀로 돌아가 더는 수녀회의 어떠한 주요 직책을 맡지 않고 산타 카사(Santa Casa)의 병자들과 브라간사 파울리스타(Braganca Paulista)에 있는 성 빈첸시오 드 폴 병원에서 노인들을 돌보도록 파견되었다. 이는 다년간의 기도와 노동과 고통을 수반하는 것이었으나 그녀는 이 모든 것을 수녀회를 위해 순명으로 받아들이고 인내했다. 1918년 두아르테 대주교의 승인을 받고 빈첸시아 테오도라(Vincencia Teodora) 총원장 수녀는 그녀를 이피랑가의 본원으로 모셔왔고, 그녀는 그곳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머물며 기도와 병약한 수녀들을 사랑으로 돌보면서 조용한 삶을 살았다.
1940년 7월 12일 수녀회 설립 50주년 기념식 중에 성녀 바울리나는 겸손하게 살며 어떠한 역경 중에도 용기를 잃지 말고 하느님께 충실할 것을 당부하는 영적 담화를 남겼다. 1938년 이후 당뇨로 인해 두 번의 수술을 받으면서 시력을 잃고 오른쪽 팔도 절단해야 했다. 심각한 건강 문제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인내하며 지낸 성녀 바울리나는 1942년 7월 9일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소서.”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도 선종하였다. 브라질 가톨릭교회의 첫 번째 성인인 그녀는 1991년 10월 18일 브라질의 산타 카타리나 주의 플로리아노폴리스(Florianopolis)에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2년 5월 19일 같은 교황에 의해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성인품에 올랐다. 그녀는 파울리나 도 코라카오 아고니잔테 데 헤수스(Paulina do Coracao Agonizante de Jesus)로도 불린다.
오늘 축일을 맞은 바울리나 자매들에게 주님의 축복과 은총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
첫댓글 저희 어머니도 안나 본명을 가지셨는데.....
안나 할머니의 마음이 절절히 느껴집니다.
주님은 모든 이를 통하여 찬미와 영광과 감사를 받으소서. 아멘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의 사랑에 축복하시는 주님께서는 찬미와 영광과 감사를 받으소서. 아멘
감사합니다. 수산나 자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