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찬호의 「봄의 제전(祭典)」 감상 / 이설야
봄의 제전(祭典)
송찬호(1959~)
마침내 겨울은 힘을 잃었다 여자는 겨울의 머리에서 왕관이 굴러떨어지는 것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지켜보았다 이제 길고 지리한 겨울과의 싸움은 지나갔다 북벽으로 이어진 낭하를 지나 어두운 커튼이 드리워진 차가운 방에 얼음 침대에 겨울은 유폐되었다 여자는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왕관은 숲속에 버려졌다 겨울은 벌써 잊혔다 오직 신생만을 얻기 바랐던 재투성이 여자는 봄이 오는 숲과 들판을 지나 다시 아궁이 앞으로 돌아왔다 이제 이 부엌과 정원에서 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오직 그것만이 분명한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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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난했던 겨울은 마침내 “힘을 잃었”다. 어리석고 난폭한 왕의 머리에서 “왕관이 굴러떨어지는 것을” 곧 보게 될 것이다. 봄이 오고 있기 때문이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던 왕은 “얼음 침대”에 갇힐 것이다. 왕 옆에 있던 “여자는” 이미 그를 버렸을 것이다. 그 어둡기만 했던 겨울의 얼음벽들을 지나, 다시 돌아온 “재투성이 여자”가 있다. “길고 지리한 겨울과의 싸움”을 이기고 “아궁이 앞으로 돌아”온 여자는 더러운 그릇들을 설거지한다. 밥을 짓고 정원을 가꾼다. 왕 옆에 있던 “여자”가 권력에 기대어 살았다면, “재투성이 여자”는 얼음의 세계를 뚫고 미래의 아이를 낳아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고 있다. 이들은 우리 안의 두 개의 가면, 두 개의 그림자이기도 하다. 비로소 봄의 새싹들이 눈을 하나씩 뜨고 하늘과 눈을 맞춘다. 이 경이로운 봄. 겨울을 이겨야만 오는 봄. 꽁꽁 언 시간을 뚫고 꽃을 피우고야 마는, 우리에게도 그런 봄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가 맞이할 봄의 제전이다.
이설야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