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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미녀 검객 사인방
(1)
깊은 밤에 여자의 방에 뛰어드는 방탕아처럼, 비는 갑자기 쏟아지더니 어
느새 그쳐버렸다. 그러나 비가 오고나서, 모든 것이 촉촉하게 물기를 머금은
채 변화하였다.
봄숲의 나뭇잎은 벽옥같이 고왔고 시체 위의 붉은 피도 깨끗이 씻겨 상처
를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십여 명의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도
살아 있는 사람이 없었다.
시체들을 발견했을 때, 사공적성은 보이지가 않았다.
상관단봉이 한탄하며 말했다.
"그는 죽은 사람들을 우리에게 남겨주고 우리들더러 시체를 거두라는 것
인가요?" 육소봉이 말했다.
"이 사람들은 절대로 그가 죽인 것이 아닙니다. 그는 사람을 죽이는 일이
매우 드뭅니다." "그가 아니면 누구입니까?"
육소봉이 물었다.
"이 사람들을 보내서 불을 지르도록 한 사람입니다." 상관단봉이 말했다.
"당신 생각은, 그 사람이 우리가 자기를 알아낼까 두려워 이 사람들을 모
두 죽여 입을 다물게 했다는 것인가요?" 육소봉은 고개를 끄덕이며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가장 싫어하는 것 세 가지 중에서, 첫 번째가 바로 사
람을 죽이는 일이었다.
상관단봉이 말했다.
"그는 이 사람들을 도망가게 할 수도 있는데, 왜 그들을 죽여 입을 다물
게 한 것일까요?" 육소봉이 말했다.
"여러 사람의 오른손을 끊어버린 사람을 찾아내기가 쉬울 것 같아서 겠지
요." 상관단봉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우리가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 알고 있는데, 그는 이 사람들을 쓸데없이
죽였군요." 육소봉이 물었다.
"당신은 알아요?"
상관단봉이 말했다.
"당신은 그들이 청의루 사람들이라는 것을 보지 못했어요?" 육소봉은 한
참 동안 말이 없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한 가지를 알아냈어요."
상관단봉이 말했다.
"어떤 일인데요?"
육소봉이 말했다.
"나는 당신이 서둘러서 주광보기각에 가서, 사람들에게 관을 가지고와 시
체를 거두어 가라고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상관단봉이 그를 바라
보고는, 고개를 떨군 채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그리고 또 무엇을 알아냈나요?"
육소봉이 말했다.
"그런 다음 당신은 그곳 사람들에게 물을 준비하게 해서, 먼저 목욕을 한
다음 가장 편안한 방을 골라서는 한숨 자야 해요." 그는 웃으며 말을 이었
다.
"그곳은 지금 완전히 당신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요."
육소봉은 눈을 감고 따뜻한 물 속에 누워 있다. 온몸이 흠뻑 젖은 뒤라
따뜻한 물에 목욕할 곳을 찾았다는 것은 정말로 즐거운 일이었다.
그는 자기의 운이 아직은 나쁘지 않다고 느끼고 있었다. 옆에 있는 화로
위 큰 구리항아리 속에서는 물이 끓고 있어 방안은 수증기로 가득 차, 편안
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화만루는 벌써 목욕을 하고 지금은 잠을 자려 하고 있었다. 상관단봉도
주광보기각에 도착하였다.
그녀는 속으로는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천천히 걸어갔다. 육소봉의 말을
잘 듣는 것 같았다. 육소봉은 그러한 것이 무척 만족스러웠다. 그는 여자가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였다. 그러나 그가 이 일을 만족스럽게 느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약간 잘못된 것같이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염철산이 죽기 전
에 지난날의 잘못을 모두 인정하였고, 고가도 그 오랜 빚을 갚기로 하였다.
대금붕왕이 그에게 부탁한 일의 삼분의 일은 이루어졌고, 나머지도 순조
롭게 진행되고 있다. 그는 왜 아직 만족하지 못하는 것일까? 비가 벌써 그
쳐 처마 끝에서 이따금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오고, 바람은 시원하고
깨끗했다.
육소봉은 한숨을 쉬며 걱정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니었고, 문은 이미 열려 있었다.
그는 자기가 잘못 본 것이 아닌가 생각하였다. 밖에서 네 명의 여인이 걸
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네 명의 젊고 아름다운 여인은 생긴 것뿐만 아니라, 풍채 또한 아름다웠
다. 그녀들은 날씬한 몸매를 두드러지게 하는 몸에 딱붙는 옷을 입고 있어
더욱 유연하고 아름다웠다. 육소봉은 허리가 가늘고 다리가 긴 여자를 좋아
하는데, 그녀들의 허리는 아주 가늘고 다리 또한 길었다.
그녀들은 미소를 지으며 당당하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마치 벌거벗고 목
욕을 하고 있는 남자를 보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들의 네 쌍의 반짝이고 아름다운 눈동자는, 오히려 육소봉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육소봉은 수줍어하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을
느꼈다. 거울을 보지 않고도 얼굴이 붉어진 것을 알 수가 있었다.
한 사람이 웃으며 말했다.
"듣기에 육소봉은 네 조각의 눈썹을 가지고 있다고 하던데, 나는 어찌해
서 두 조각만 보이는 걸까?" 다른 한 사람이 웃으며 말했다.
"너는 두 조각이나 보았니? 나는 한 조각도 잘 볼 수가 없는데." 먼저 말
을 한 사람은 키가 아주 크고, 가늘고 긴 한 쌍의 봉황의 눈을 하고 있어
웃을 때는 사람을 압도하는 살기(殺氣)를 지니고 있었다.
누가 어떻게 보든지 상관없이 그녀는 남자를 위해 목욕물을 붓거나 할 그
런 여자는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화로 쪽으로 걸어가서는 항아리를 들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물이 식은 것 같은데, 내가 다시 데워드리지요."
육소봉은 항아리에서 수증기가 나는 것을 보고는 약간 놀랐다. 그러나 그
는 벗은 몸으로 네 명의 여자들 앞에서 일어설 그런 용기는 없었다.
이 항아리를 가열하여 펄펄 끓는 물을 몸에 붓는다면, 기분은 그리 좋지
못할 것이었다. 육소봉은 일어서는 것이 좋을지,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는
것이 좋을지 망설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 자기가 움직이려 해도 움직일 방
법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계속 말이 없던, 가장 우아한 여자가 소매에서 한 척 길이의 칼을 꺼내더
니, 반짝이는 단검을 그의 목에 가져다 대는 것이었다.
음산한 검기(劍氣)가 그의 귀 뒤에서 어깨까지 소름을 돋게 만들었다. 키
가 크고 봉황의 눈을 한 여자는 천천히 항아리의 물을 그가 목욕하고 있는
목욕통에 부으며 말했다.
"내가 보기에 당신은 가만히 있는 것이 좋겠어요. 우리 네 명의 자매들은
상냥하고 우아하기는 하지만, 사람을 죽이는 것은 아주 손쉽게 해요. 이 항
아리의 물은 금방 끓어서 몸에 부으면 죽거나 살갗이 벗겨질 것입니다." 그
녀는 말을 하면서, 목욕통에다 물을 부었다.
목욕통의 물은 아주 뜨거웠고 지금은 화상을 입을 만큼 참을 수 없었다.
육소봉의 머리에서는 땀이 나기 시작했고, 구리 항아리의 물은 겨우 사분의
일만 부어진 것이었다.
이 항아리의 물이 모두 부어진다면, 목욕통에 앉아 있는 사람은 최소한
살갗이 벗겨질 것이다.
육소봉은 갑자기 웃었다. 뜻밖에 나오는 웃음이었다.
물을 붓던 소녀는 한 쌍의 눈썹과 위엄 있는 봉황의 눈으로 그를 바라보
며 차갑게 말을 했다.
"당신은 아주 기분이 좋아 보이는군요."
육소봉은 정말 기분이 좋은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는 우스울 뿐입니다."
"우습다구요? 뭐가 우습지요?"
소녀는 물을 더 빨리 부었다.
육소봉은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중에 내가 다른 사람에게, 내가 목욕을 하고 있을 때 아미사수(峨嵋四
秀)가 옆에서 나를 대신해 물을 부어 주었다고 말한다면 아무도 믿으려 하
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그녀들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큰 키의 봉황 눈을 한 소녀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당신이 안목이 있는 줄은 몰랐어요. 맞아요, 내가 바로 마수진(馬秀眞)이
에요." 육소봉이 말했다.
"사람을 죽일 때 눈도 깜짝 하지 않는다는 분이 바로 석수설(石秀雪)이지
요?" 석수설은 더욱 부드럽게 웃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내가 당신을 죽일 때는 반드시 눈을 깜짝이겠군요." 마수진이 말
했다.
"그래서 우리들은 당신을 죽이지 않고, 다만 몇 가지를 물어보려는 것입
니다. 당신이 빨리 대답한다면 나는 이 항아리의 물을 목욕통에 붓지 않을
것입니다. 이 항아리의 물을 다 부으면....." 석수설이 이어서 말했다.
"그러면 저 사람이 익어버릴까 봐 그러는 것이지요?" "돼지를 삶으면 돼
지고기를 팔 수도 있지만, 사람을 삶으면 개에게 먹일 수밖에 없지 않겠
어?" 육소봉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지금 벌써 익으려고 하는데, 당신들은 왜 빨리 물어보지 않는 것이오?"
마수진이 말했다.
"좋아요, 내가 묻겠어요. 우리 사형(師兄) 소소영(蘇小英)이 서문취설의 손
에 죽은 것이 맞나요?" 육소봉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당신이 이미 알고 있는데, 나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나요?" 마수진이 말했
다.
"서문취설은 어디에 있나요?"
육소봉이 말했다.
"나도 그를 찾고 있습니다. 당신들이 그를 보면 나에게 일러주세요." 마수
진이 말했다.
"당신은 정말로 모르나요?"
육소봉이 말했다.
"나는 술에 취해 있을 때에나 여자를 속입니다. 지금 나는 정신이 말짱합
니다." 마수진이 이를 악물고는 항아리의 끓는 물을 많이 부으며 쌀쌀하게
말했다.
"내 앞에서 그런 말을 하다니 당신은 아주 멍청하군요." 육소봉이 씁쓸하
게 웃으며 말했다.
"지금 내가 어떻게 멍청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마수진이 말했다.
"당신과 같이 온 여자가 바로 금붕왕조의 공주입니까?" "맞습니다."
"대금붕왕이 아직도 살아 있습니까?"
"아직 살아 있습니다."
다시 마수진이 물었다.
"그가 당신에게 염철산을 찾으라고 했습니까?"
"네."
"그가 당신에게 또 어떤 사람을 찾으라고 했나요?"
"상관목과 엄독학을 찾으라고 했습니다."
마수진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 두 사람은 누구지요? 그들의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요?" 육소봉
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당신이 들어보지 못한 이름은 적어도 수천만은 될 것입니다." 마수진이
그를 바라보았다.
육소봉이 말했다.
"나는 옷을 입고 있지 않는데, 당신이 그렇게 바라보면 얼굴이 붉어 집니
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붉어지지 않았고, 마수진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
는 갑자기 몸을 돌려서 손에 들고 있던 구리 항아리를 화로에 올려 놓고는,
옷을 단정히 하고 육소봉을 향해 예를 갖추어 절을 하였다.
석수설도 칼을 내려놓았다.
네 명의 옷을 잘 차려 입은 젊은 미인들이, 목욕통에 벌거벗고 앉아 있는
남자를 향해 갑자기 몸을 굽혀 절을 하는 것을 당신이 보게 된다면, 그것이
무슨 영문인지 꿈에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육소봉은 어리둥절해졌다. 그도 이 네 명의 제멋대로인 여자들이 처음엔
거만하게 굴다가 어떻게 갑자기 공손해졌는지 알 수가 없었다.
마수진이 몸을 굽히며 말했다.
"아미제자 마수진(馬秀眞), 엽수주(葉秀珠), 손수청(孫秀靑), 석수설(石秀
雪)이 스승님의 명을 받들어 육공자를 내일 정오의 조촐한 만찬에 초대하러
왔습니다. 육공자께서는 왕림해 주실런지요?" 육소봉이 한참을 멍하니 있다
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가기로 해서 날개가 난다고 해도, 내일 점심 때까지 아미산의 현진
관(玄眞觀)에는 갈 수 없을 것입니다." 마수진이 웃으며 말했다.
"스승님은 아미에 계시지 않습니다. 지금 그분께서는 주광보기각에서 공
자의 대답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육소봉은 잠시 있다가 물었다.
"그가 왔다구요? 언제 왔지요?"
마수진이 말했다.
"방금 전에 왔습니다."
석수설이 말했다.
"우리들이 주광보기각에 없었다면, 어떻게 어제 저녁의 일을 알 수 가 있
었겠습니까?" 육소봉은 여전히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마수진이 말했다.
"육공자께서 와주신다면, 저희들은 더 이상 폐를 끼치지 않고 물러 가겠
습니다." "나에게 더 물어 볼 것은 없습니까?"
마수진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태도가 온화하고 예의 바른
것이 조금 전의 사람을 익히려던 일은 완전히 잊어버린 것 같았다. 엽수주
는 어리석은 사람이어서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
"우리들은 육공자의 명성을 익히 들어서, 당신이 목욕하는 기회를 틈타
당신을 찾아온 것입니다." 육소봉이 말했다.
"사실은 당신들이 언제 오든지, 나에게 무엇을 물어보든지 나는 거절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석수설이 눈을 깜박이며 물었다.
"육공자께서는 정말로 화가 나시지 않았습니까?"
육소봉이 말했다.
"내가 어떻게 화를 낼 수가 있습니까? 나는 아주 즐겁습니다." 석수설도
어리둥절해서는 물었다.
"우리들이 당신에게 이렇게 했는데, 당신은 즐겁다구요?" 육소봉이 웃음을
터뜨렸다.
"즐거울 뿐만 아니라, 당신들이 나에게 좋은 기회를 주어서 감격하고 있
습니다." 석수설이 급하게 물었다.
"어떤 기회요?"
육소봉이 여유있게 답했다.
"내가 목욕을 하고 있을 때 당신들이 갑자기 뛰어들어 왔으니, 당신들이
목욕을 하고 있을 때 내가 뛰어들어 간다고 해도 당신들은 화를 내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기회를 모든 사람들이 가지는 것은 아닌데, 내가 어떻게 기
쁘지 않겠습니까?" 아미사수의 얼굴은 모두들 붉어졌고, 몸을 돌려서 황급
히 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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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합니다
즐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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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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