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있던 희수는 병원에 입원한 지 삼사 개월부터 조금씩 나아가더니 칠팔 개월이 되면서 사람을 알아보고 정상적인 이야기를 할 정도까지는 나아졌으나 아직 기억력은 회복 못 하여 왜 자기가 여기 와 있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가 일 년이 다 되어 가는 어느 날 병원에서 병자들의 심리 상태 변화와 치료 효과를 위해 병자들 중 상태가 아주 양호한 사람들을 모아 연출하는 단막극을 보게 되었다.
극의 내용이 어떤 처녀가 강간당하고 난 후 커다란 신체적 정신적 충격으로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다가 목사의 도움을 받아 그 절망적인 상황을 이기고 일어나 새사람이 되는 내용이다.
단막극을 보던 희수는 갑자기 자기가 납치되어 윤간당하는 장면이 떠올라 공포와 괴로움에 몸부림을 치고 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펴서.
당황한 의사들이 희수를 붙잡고 진정제를 놓아 안정시켰다.
그 단막극이 희수를 자극하여 기억을 회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고 그 후로 모든 기억을 회복하고 따라서 급속도로 희수의 병이 호전되어 병원과 계약이 만료되기 한 달 전쯤에는 거의 완쾌 단계가 되어 병원에서는 앞으로 한 달쯤 후 계약이 만료되면 퇴원해도 좋다는 판결을 받았다.
건강이 회복된 희수는 정신이상 상태이었던 자기가 어떻게 나주에 있는 이 병원에 입원하게 됐는지 궁금하다며 입원서류를 보고 싶다고 병원 측에 부탁했고 그 서류를 본 희수가 한참을 말없이 있었는데 계약만료 며칠 전에 병원에서 사라졌다는 것이다.
영섭과 희수의 부모도 입원서류의 내용이 궁금하여 병원에 부탁하여 보고는 희수가 그 서류를 보고 마음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갔다.
입원서류의 보호자 이름이 이영섭으로 되어있었다.
그러나 영섭은 자기의 글씨체를 모방하여 쓴 글씨를 보고 아무리 현영이 자기를 숨기기 위해 영섭의 글씨체를 모방하였어도 작성한 서류를 보는 순간 현영의 짓인 것을 알았다.
그러니 회수도 알았으리라.
희수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왔던 희수 부모와 영섭은 낙담이 심했다
다만 희수가 이 세상 어디인가에 살아 있다는 것과 희수의 병이 거의 나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 수확이라면 수확이겠다.
현영의 체포, 그것도 희수의 윤간을 사주한 죄목으로 현영 체포되자 제일 크고 제일 많이 충격을 받은 사람은 현영의 처가 된 숙영이다.
숙영은 이때 임신 9개월째이었다. 큰 병을 앓고 체질이 약하여 건강이 무척 안 좋은 가운데 의사의 지시를 받아 건강을 유지해 가며 산달을 기다리고 있었다.
만성 재생불량성 빈혈로 죽어가던 목숨이 현영을 알고 살아야겠다는 일념으로 미국에 가서 그 어려운 이식 수술을 받아 나아서 자기가 그토록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여 아기까지 가졌으니 숙영은 정말 천국에서와 같은 삶을 살고 있었다.
결혼 전에는 보영과 희수로 인해 마음고생을 많이 시켰지만 결혼하고 난 후 근면하고 성실하고 자기를 사랑해 주는 현영의 태도에 숙영은 감격하며 나날을 하나님께 감사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살았다.
그런데 현영이 희수를 강간하도록 사주했고 그로 인해 희수는 정신이상이 되어 세상을 떠돌고 있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처음에 남편인 현영이 체포되어 갈 때도 숙영은 현영이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굳게 믿으며 경찰이 무엇인가 잘못 알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현영이 곧 풀려날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러나 남편이 잡혀가고 얼마 안 되어 T.V 뉴스에서 현영이 확실한 진범이고 희수는 그 충격으로 정신이상이 되어 병원에 입원 중이라는 뉴스를 듣고 같은 화면에서 경찰에 잡혀있는 현영의 모습을 보고는 정신을 잃고 쓸어졌다.
숙영이 쓰러지며 그 충격으로 양수가 터졌다.
이를 보고 놀란 일하는 아주머니가 급히 숙영의 친정으로 연락하고는 앰브란스를 불러 병원으로 옮겼고 병원에서는 급하게 응급조치를 취했다.
현영의 소식에 놀라서 황당함에 빠져 미쳐 딸의 건강을 생각 못 했던 숙영의 부모는 일하는 아주머니의 연락을 받고 딸의 건강과 아기의 상태를 걱정하며 눈물이 범벅이 되며 허겁지겁 병원으로 달려와 응급처치가 끝날 때까지 기도하는 마음, 염불하는 마음으로 응급실 앞에서 가슴을 조이며 결과를 기다렸다.
그러나 산모가 의식불명인 체로 제왕절개 수술하여 낳은 아기는 딸아이로 미숙아가 되어 인큐베이터에 들어갔으며 산모는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경찰서에서 이 소식을 들은 현영의 부모도 숨 돌릴 틈도 없이 병원으로 왔다.
의사의 말은 산모도 아이도 위험한 상태라고 하며 특히 산모는 허약한 체질에 피를 많이 흘려 의식을 회복 못 하고 사망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산모와 아기의 건강이 불안하고 걱정스럽지만, 현영의 부모는 병원을 숙영의 부모에게 부탁하고 아들 문제를 손 놓고 있을 수 없어 다시 경찰서로 갔다.
인큐베이터 속의 아기는 그런대로 현상을 유지하고 있는데, 반해 10여 일이 지나도록 의식을 회복 못 하는 숙영으로 인해 숙영의 부모는 애가 끓는다.
자연 그렇게 믿음직스럽던 사위에 대한 원망이 생기고 숙영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로 잘못될까 봐 걱정이 태산이다.
20여 일이 지나며 점점 상태가 안 좋아지던 숙영은 의식을 잃은 지 한 달 만에 생명의 줄을 놓았다.
숙영의 사망 소식을 들은 현영의 부모는 병원의 장례예식장으로 올라오며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다.
자식은 범죄인으로 감옥으로 가게 되어있고 며느리는 그 충격으로 의식을 잃고 제왕절개 수술로 아이를 낳고는 죽고 손녀는 미숙아로 인큐베이터에 들어있으니 이게 무슨 하늘에 저주란 말인가.
병원에서 만난 사돈댁들은 손을 맞잡고 늘그막에 닥쳐온 불행에 말없이 눈물만 흘리고 그것을 보는 사돈들도 침통한 얼굴에 눈물방울이 흐른다.
감방에 있는 현영에게도 숙영의 사망 소식은 알려졌다.
숙영의 사망 소식을 들은 현영은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자기의 오기와 이기심으로 두 여자를 잃고 그렇게 우정이 깊었던 친구를 잃었으며 자기의 인생을 그르치게 했다는 회한이다.
그냥 희수를 놓아주었다면 만사가 좋았을 것을 희수에 대한 애증과 영섭과의 경쟁심리가 현영을 미망으로 몰아 이렇게까지 일을 그르치게 하다니.
인간은 참으로 어리석은 짐승인가 보다 파멸에 이르고야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니 늦어도 한참을 늦었다.
양쪽 부모들의 간장이 끊어지는 애달픔 속에 숙영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남편도 참석 못 하는 서글픈 장례식이, 하늘나라로 가는 숙영은 이 참혹한 상황에 제대로 눈을 감았을까.
참으로 가여운 여인이다. 영정 속에서 웃고 있는 숙영을 보고 보영은 그런 생각을 했다.
그렇게 양쪽 부모들의 애끓는 호곡 속에 장례는 치러지고 삼 오 제도 끝났다.
슬픔에 잠긴 이들에게 그래도 한 가지 위안이 있다면 인큐베이터 안에 아기가 점점 건강해져 곧 인큐베이터에서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아기가 인큐베이터에서 나오는 날 아기를 데리러 올라온 현영의 어머니와 병원에서 만난 아기의 외할머니는 아기의 기구한 운명에 아기를 붙잡고 또 한 번 쓰린 가슴을 쓸어내리며 눈물을 흘렸다.
그동안 법원에서는 현영의 재판이 열리어 징역 10년 구형을 받았다.
담당검사가 우연히 박태만 이었다.
영섭으로 인해 보영에게서 가끔 현영의 이야기를 들었던 태만은 보영에게 이 사실을 전했고 그 말을 들은 보영은 현영의 행실만 생각하면 괘심해서 버려두고 싶었으나 미우나 고우나 초등학교 동창으로 이십 년 넘도록 사귀어온 친구라 힘자라는 대로 도와 달라고 부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강간 상해와 유기죄로 더 높은 구형이 떨어질 전망이었지만 유기죄는 병자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고 입원비를 대어 주었다는 것이 참작되어 생각보다는 적은 형량이 떨어졌다. 다시 두 달여가 지나고 현영의 형이 선고되었다. 검사의 구형대로 10년의 징역형이.
나주의 정신병원을 다녀온 후부터 영섭의 희수를 찾는 일은 다시 시작되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희수의 불행이 자기로 인한 것이고 연약한 여인도 하나 못 지켜 주었다는 죄책감이 영섭의 행동을 멈추지 못하게 하고 있다.
정신이상으로 간 곳을 모를 때는 그래도 찾아볼 곳의 범위가 한정되어 있었지만, 이제는 어떻게 어디로 찾아가야 할지 모르고 이곳저곳을 헤매는, 그냥 정처 없는 방랑의 생활이다.
희수의 가엾은 처지를 생각하면 자기도 편한 생활을 할 수 없다는 자괴감이 영섭을 잡고 놓지 않는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영섭이 희수를 찾아 나선 지도 다시 이년이 지나고 있으며 아무런 성과가 없는 방랑에 지친 영섭이 해남의 한 촌락에 방을 하나 얻어 한 달째 쉬고 있는 상태었다.
다음의 찾아볼 곳을 계획하며
이런 영섭을 경제적으로 돕고 있는 사람이 00건설의 하남식 과장이다.
군에서와 직장에서 짧은 만남이었지만 영섭의 능력을 높이 사고 의리를 중요시하는 하과장은 영섭이 가 있는 곳을 수소문하여 경비가 떨어질 만하면 돈을 보내 준다
처음에는 거절하던 영섭도 희수의 문제가 해결되면 회사에 복직하여 일해서 갚으라는 하과장의 선심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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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의 긴 상념에 젖어 있던 영섭
밤 골까지 온 영섭의 앞에 영섭의 컴컴한 마음과 같이 밝은 달빛 아래 깊은 어둠을 드리우고 있는 밤나무밭에서는 늦은 가을밤에 하늬바람이 휘휘 돌아 나가며 짝 잃은 산 노루의 가늘고 슬픈 울음을 내고 우수수 떨어지는 가랑잎들과 서걱거리는 억새 풀잎 소리가 영섭의 마음과 같다.
희수네 동네로 들어가는 어귀에도 이렇게 밤나무와 억새가 무성한데
밤나무골을 바라보며 한없이 서 있을 것 같던 영섭이 돌아서 집으로 돌아왔지만, 방에 들어가 누어도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툇마루에 앉는다.
영섭의 마음을 대신하여 울어주는 툇돌 밑 귀뚜라미 소리를 벗하고 휘엉청 밝은 달을 바라보며 한밤을 지새워야 할 것 같다.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즐~~~~감!
잘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즐감하고 감니다
감사합니다
구리 천리향님!
무혈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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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왕비님!
지키미님!
다락방님
감사합니다.
요즘은 계속 비가 와서 마음을 우울하게 하네요.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