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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겨울 어느날,
" 저 놈~ 잡아라!!!!!! "
후다닥..
헉) 헉))
하늘에선 하얀 눈을 내리고, 거리엔 바쁜 사람들의 발걸음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그 사이를 아주 빠르게 전력질주하는 두 사람이 있었으니..
앞서 뛰는 놈은 쫓기는 자요!!
얼마간의 거리를 두고 뛰는 놈은 쫓는 자로 보였다..
" 이.. 씨팍!! 안서!! "
뒤에 따라오는 놈은 연신 숨을 허덕거리며, 앞서 뛰는 놈을 향해 고함을 쳐대고 있었다..
하지만, 앞서 뛰던 놈은 한줌의 흔들림 없이 아주 오랫동안 달리기를 해 온듯..
숨까지 고르며.. 뛰고 있었다..
1시간후,
따돌렸다..
그 남자의 손에 들려 있던 갈색 장지갑!!
그 장지갑을 들고, 지하철 화장실로 향했다..
오랫동안 뛰어서인지, 참을 수 없는 생리 현상을 느낀 그 놈!! 지퍼를 내려 변기에
참았던 노폐물을 쏟아내더니.. 다시 옷을 추스렸다.. 그리고, 유유히 그 장지갑 안을
탐색하듯 빠른 손놀림으로 한 뭉치의 돈을 꺼내 들었다..
그때, 그의 눈에 한 가득 들어오는 한 가녀린 여자의 사진..
' 풋!! 멋같이 생긴 놈이.. 앤하나는 이쁜거 달고 다니네!! "
주민등록증에 박힌 그 지갑 주인의 얼굴과 그 가녀린 여자의 얼굴을 보며, 그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린채.. 미련 없이.. 화장실 쓰레기통속으로 그 장지갑을 획하니 던져
넣고는 미련 없이 그 곳을 빠져 나오는 그..
하지만, 몇 걸음 가지 않아 다시 무슨 생각에서인지.. 다시 그가 지갑을 버려둔 곳으로
성큼 성큼 들어가, 다시 그 지갑을 주워들고는 그 지갑속에서 웃고 있는 그 여자의 사진을
꺼내 자켓 안주머니에 소중히 넣고는 다시 지갑을 던져버리곤 그 곳을 떠났다..
*******
" 야!! 내가 쏜다.. 실컷 먹어!! "
보기에도 아주 질이 좋아보이지 않는 남자 서너명이 어느 고기집에 둘러 앉아, 포식을 하고
있었다..
질겅 질겅!!
맛있게 고기를 뜯는 놈!
캬~악!!
시원하게 소주를 들이키는 놈!
그들은 아주 기분 좋은 듯 주절거리며, 가죽 잠바에 노란머리를 가진 놈을 쳐다보며,
아주 흐믓한 웃음을 흘려주고 있었다..
" 야!! 신기성.. 너 어디서 한건했냐?"
적당히 취기가 돈 듯한 족제비같이 생긴 놈이 그 가죽잠바를 향해 아주 자랑스러운 듯
입을 열었다..
그 순간, 그 가죽 잠바를 입은 놈!! 신기성!!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까만 눈동자가 흔들릴 만큼 강한 눈빛을 그 족제비에게 쏟아 붓
더니..
" 이 씨팍!!! 목소리 안 낮춰!! 사주면 쳐먹어!! 쓸데 없는 소리 씹닥거리지말고!! "
기성의 억누르는 듯한 목소리에서 공포를 느낀 듯 그 족제비는 눈을 내려 깔고는
애궂은 고기점만 뒤적이고 있었다..
웅성웅성)
술과 고기로 배를 채운 그들..
헤어지기 아쉬운듯한 눈빛을 서로 교환을 했지만, 기성이는 급한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그들과 헤어지고, 8평 밖에 되지 않는 그의 집으로 향했다..
오늘따라 바람이 매우 차다..
그래도 기성이는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에 안도를 하고, 택시를 잡았다..
그리고, 집으로 도착하는 내내 그 사진속의 여자가 머리속에 맴도는 것을 아주 이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신기성 집
찰칵))
아주 둔탁한 자물쇠 따는 소리가 들려오고 그는 쓸려들어가듯..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옷도 벗지 않은채, 바로 보이는 침대 위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아까 마셔대던 소주에 취기를 느낀 그였지만, 당체 잠을 들수가 없었다..
자꾸만 사진속에서 웃고 있던 그녀가 머리속을 가득채워 오고 있었음에 다시 한번 그
안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사진을 꺼내들고서.. 음미하듯.. 찬찬히 뜯어보고 있었다..
너무나 아름답게 웃고 있는 그녀..
이세상 더러운 때라곤 한톨도 묻지 않은 그 얼굴..
그리고, 어딘지 슬퍼보이는 그 눈..
나도 모르게 그 사진을 내 가슴에 갖다대곤, 한번도 본적 없는 그녀에게 연민이
싹트는 그 자신에게 놀라고 있었다..
한달후..
오늘도 난 남의 호주머니를 노리며, 버스며 지하철등을 맴돌고 있었다..
불경기의 여파때문인지..
따는 지갑마다 만원짜리가 몇장!!
오늘도 표적을 찾지 못해.. 지하철을 갈아타며 전전하고 있을 그때,
아주 눈에 익은 여자 하나가 내가 탄 지하철 건너편에 서 있었다..
아주 눈에 익었다..
슬픔에 가득 찬 눈!!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갸날픈 몸매!!
나도 모르게 그녀 옆에 우두커니 서 버렸다..
그리고, 목적지도 없던 난, 그녀가 내려서는 곳에 따라 내렸다..
뚜벅뚜벅))
한참 앞에 걷던 그녀!!
나의 인기척을 알아챘는지.. 종종 걸음을 치고, 나도 또한 그녀를 놓치지 않기 위해
종종걸음을 쳤다..
지하철 매표소를 막 통과한 그녀는 갑자기 우두커니 서버렸다..
그리고, 조금만 건드려도 넘어질것 같은 갸냘픈 몸을 획하고 돌리더니, 앞서가던 걸음을
내게 돌렸다..
" 뭐예요!! 왜 자꾸 따라오는거예요?"
생긴것 같지 않게 앙칼진 그녀의 음성..
난 잠시 주춤하다.. 그런 그녀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리고,
" 아가씨!! 중증이지?"
내 말에 화들짝 놀라는 그녀..
재미있다.. 아니 그렇게 놀라는 그녀가 너무나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 그.... 그게 무슨 소리예요?"
난 피식 쓴 웃음을 날려주었다..
" 아.. 니!! 쿡!! 공주병이나, 뭐 그런거 있쟎아!! "
그제서야, 무슨말인지 알아들었다는 듯한 그녀의 표정..
하지만, 다시 표정 관리에 들어간 그녀.. 아까보다 더 사납게, 날 노려보며..
앵두같은 입술을 움직이고 있었다..
" 뭐.. 뭐냐구요!! 왜 자꾸 날 따라오냐니까!!.. 왠 공주병 타령이예요?"
난 호탕하게
하하하하하하하...
웃음을 날려주었다.. 그리곤
" 아가씨!! 총각이 아가씨 따라다니는게 뭐 큰일날 일이요!!"
그때서야, 약간 얼굴을 붉히는 그녀..
그리고, 어느새 우리 주위에 몰려든 사람들을 인식이라도 했는지.. 가던 걸음을 채촉하고
있었다..
하지만, 난 여기서 그녀를 놓쳐버리면 어쩜 영원히 못 볼것 같은 생각에 급히 달려가 그녀의
손을 낚아 챘다..
" 잠깐, 얘기좀 합시다!!"
걸음을 채촉하던 그녀는 이런 내가 아주 짜증스럽다는 듯..
내가 잡고 있던 속을 탁 쳐 내고는
" 저 첨 보는 사람하고는 할 말이 없는데요!! 그리고, 저 지금 무지 바쁘거든요!!
다른데가서 알아봐요!! "
싸늘한 한마디만을 남긴채.. 내 앞을 유유히 걸어가는 그녀..
하지만, 내 인생에 포기란 없다..
아니,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버림 받고 지금껏 버텨온 깡다구.. 그거 하나만은 내세울
수 있기에.. 나 아주 집요하게 그녀를 따라갔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서울대학병원!!
그녀는 내가 따라 온줄 알면서도 한치의 망설임 없이 그곳을 성큼성큼 걸어들어갔다..
하~
혹시.. 그녀가 간호사?
보기에는 의사 같지 않았기에... 난 그녀는 간호사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따라 들어가 말아?
잠시 갈등도 뒤로 한채, 난 그녀가 사라진 건물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여기 저기 병원복을 입은 사람들.. 그리고, 치료를 받으러 왔거나, 아님 아픈 사람들을
보기위해 온듯한 방문자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재빠르게 눈을 돌려 그녀를 찾기 위해 분주히 뛰어다녔지만, 어디에도 그녀는 없었다..
풋!!
그래, 니가 밖에서 여길 왔듯이 니가 돌아갈곳도 저 밖인것만은 틀림 없겠지!!
기다리지... 기다릴께!!
난 한번 찍어둔 건 사람이든 물건이든 절대 포기하는 일이 없거든!!
훗!! 그래, 기다릴께!!
난 속에 말을 하며, 출입문과 제일 가까운 의자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기대와는 달리, 오후에서, 저녁으로 넘어가는 시간까지 그녀의 그림자조차 볼 수
가 없었다..
오후 7시
난 포기하고 막 병원문을 나서려고 할때,
아주 갸냘픈 그녀가 한손으로 머리를 짚으며, 약간 비틀거리며.. 내 앞에 나타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빠르게 뛰어 그녀옆에 서서 그녀를 부축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서..
하지만, 그녀는 그런 날 보고 무슨 유령이라도 본듯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날 밀어내버렸다..
...
...
한동안 짧은 침묵이 흐른뒤..
그녀 또한 그렇게 서 있는 것 조차 힘이 들었는지.. 한 쪽에 있는 쇼파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
" 뭐예요!! 왜 여기 있는거예요?"
그녀의 물음에 난 또 다시 당황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흔들림 없는 내 눈 동자.. 그녀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하고 싶어했다..
사실, 초등학교 5학년이 내 지식의 전부인나..
거창하거나, 아름답게 말을 지어낼 여력도, 지식도 없었기에.. 그저 생각나는대로 말을
하고, 거침없이 행동하고 살았던 덕분에.. 이럴때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지금 이순간 꿀먹은 벙어리 시늉을 한다는 건 더 용납이 되지 않았기에...
" 아가씨가 맘에 드오!! 그래서, 아가씨 기다렸소!! "
내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한 그녀의 표정을 읽었다..
그리곤,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는 뭔가 생각하는 듯한 그녀..
그런 그녀 입에서 아주 뜻밖에 말을 듣고 말았다..
" ㅎㅎㅎ... 저 .. 아니, 다른 데가서 알아봐요!! 괜히 시간 낭비하지 말구.."
잠깐 지어보이는 허탈한 웃음..
난 떠올리고 있었다.. 그때, 내가 소매치기했어 가지고 있던 지갑속에서.. 티없이
해맑게 웃고 있던 그녀의 얼굴..
그것이 생각이 나자 난 잠시 당황하고 있었지만, 그녀에게 내색할 수는 없는 일인것을
그리고, 그녀가 시간낭비라는 말에 괜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 시간 낭비라니?"
그녀는 멍한 눈을 병원 천장 중앙에 달려 있던 크리스탈로 만든 천사를 응시하는 것 같더니,
곧 날 바라보았다..
" 저.. 여기 왜 온줄 아세요?''
난 그녀의 질문에 가만히 고개만 가로 저어보였다..
" 저 여기 혈액 투석받으러 온거예요!! 저 혈우암이거든요!! 그랬어..
수술 못 받으면, 몇개월 못 산대요!! 곧 죽은 여자와 연애하고 싶다면 저야 상관
없지만...
그러니까.. 괜한 힘 빼지 말고, 다른 데가서 알아봐요!!
오늘 첨 보고 별로 말을 많이 안해 봤지만, 참 좋으신 분같은데..
...
저 오늘 당신 제 가슴속에 남겨둘께요.. 그럼 안녕히!! "
그녀는 미련 없이 자리를 박차고 병원문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순간,
한번도 느껴본적이 없었던, 일만의 죄책감에 난 온몸이 떨려왔다..
그렇다면, 저 여자의 사진을 갖고 있던 그 남자가 가지고 있던 돈이 혹시 저여자를
살려내기 위해, 가지고 있던 돈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내 머리속을 스쳐지나가고,
난 지금 이순간 내 자신을 용서 할 수 없는 아주 비참하고, 혹독한 감정에 사로 잡혀
있었다..
멀어져 가는 그녀..
난 뛰어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순간 멈칫하던 그녀..
이번엔 앙칼진 목소리에 울음까지 섞여 나에게 고함을 쳐댔다..
" 이봐요!! 자꾸 왜 이러는 거예요!! 저 얼마 안 있음 죽는다구요!!
나 힘들어요!! 그런데 왜 자꾸.. 왜 자꾸 이러는 거예요!!
전 당신한테 줄 게 아무것도 없었요!! 아무것도 없다구요!! 흐흑.."
그런 그녀를 아무 말 없이 내 품속에 안아 넣었다..
다 내가 그녀를 이렇게 만든 것 같아.. 내 가슴속에서는 지금 울고 있는 이 여자보다
천갈래 만갈래 더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과 슬픔이 전해져 오고 있었다..
****
9시..
한동안 말없이.. 그녀의 흐느낌을 내 가슴으로 다 받아 낸 후,
그녀 또한 이젠 눈물이 말라버렸는지.. 아님, 감정을 추스렸는지.. 멍한 눈동자만을
허공으로 날리고 있었다..
" 흠!! 배 안고프오?"
나의 물음에 슬픔 미소를 짓던 여자는 고개만을 끄덕였다..
" 아.. 참!! 난 배가 너무 고픈데.. 당신 기다리느라.. 하루 종일 굶었더니!! 하하 "
내 말에 약간 당황하는 듯한 그녀..
이내 곧 쌩뚱맞은 표정을 지어보이며..
" 그러게 누가 절 기다래요!! "
" 하하하하하하 "
내 호탕한 웃음에 그녀 또한 살며시 살인적인 미소를 지어보였다..
" 자 갑시다!! 배 안고프더라도 하루종일 당신 기다린 보답으로 내가 먹는 건
지켜봐 줄거라고 믿소!! "
내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자 그녀 또한 날 따라 일어났다..
우리는 병원앞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화려한 네온싸인 흘러넘치는 시내 한복판으로
나왔다.. 그리고, 제일 먼저 눈에 띄인 음식점 안으로 들어갔다..
크리스마스.. 연말이 가까워졌어인지.. 여기저기 흥겨운 사람들의 체취가 흠씬 풍겨왔다..
우리도 복잡한 자리를 비집고 들어가 그 속에 묻혀가듯 소주한병과 삼겹살을 굽고 있었다..
" 저.. 기요!! 뭐하시는 분이예요?"
한참을 망설인 듯 보이는 그녀의 질문..
나 또한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곧 우리들이 곧잘 읊어대던 말을 내 뱉었다..
" 프리랜서요!! 혼자 작업하고, 뭐 그런 일 있쟎소.. 난 얽매이는 건 싫어하는
타입이라, 혼자 일하고 있소!! "
내 대답이 아주 의외였다는 그녀의 표정!!
하지만, 이내 곧 환한 웃음을 보내주고 있었다..
" 어머 그러세요!! 보기에는 그래 보여요!! "
내 가슴에 커다란 송곳으로 쿡쿡 찔러대는 통증을 느끼고 있었지만,
이다지도 환한 그녀에게 소매치기라고 말하기엔 이 현실이 너무나 가혹했다..
" 근데.. 전 당신 이름조차 몰라요!! "
약간 붉어진 그녀의 얼굴..
" 훗.. 신기성이라고 하오!! "
내 대답이 매우 흡족한듯한 그녀는
" 신기성.. 당신이랑 매 우 잘 어울리는 이름이네요!! 호호호호
신기성... 신기성..."
내가 듣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몇번이고 내 이름을 읊조리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묻지도 않았음에도 그녀는 자기 이름을 말하고 있었다..
" 전 박 하향이예요!! "
우리 부모님이 제 이름 지으시느라.. 일주일 동안 고민하셨다지뭐예요!!"
첨과는 사뭇다른 그녀의 정다운 말투..
난 흡족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알 수 없는 마법에 이끌리듯, 아주 시덥챦은 이야기들을 나눈후,
그 곳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헤어지기 아쉬워 아주 조용한 카페를 찾았다..
카페안))
그녀와 나, 아주 굵고 아름다운 촛불을 앞에 두고 마주보고 앉았다..
그리고, 아까와는 다른 어색한 침묵을 얼마간 보낸후, 아주 힘겹게 그녀가 입을
떼었다..
" 저.. 이거 아까부터 물어보고 싶었는데요!! 왜.. 저한테 이러시는 거예요?"
난 아주 편안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 느낌!!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운명 같은거!!
첨 하향씨를 봤을때부터.. 운명 같은거 그런거 느꼈거든!! 아마, 그런 느낌은
내 일생을 살면서 한번도 안올 그런 느낌일거란 생각에 그랬소!! "
내 대답이 그녀를 황홀하게 만들었는지 몰라도, 아주 애정어린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그녀..
그런 그녀를 보고 있자니, 내 가슴속에선 뭔지 모를 감정이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 저.. 말이예요.. 저도 아까 병원에서 당신 봤을때, 좀 떨렸었어요!!
아니 누군가 날 기다려 주고 있다는 거.. 기분이 좋았거든요!! 근데.. 아무것도 모르는
당신이 너무 안됬고 불쌍해서.. 그랬어.. 좀 못됐게 굴었어요!! 죄송해요!! "
왠지 모를 슬픔이 묻어 있는 그녀의 말에 나도 모르게 그녀의 손을 맞잡고 말았다..
그런 내 모습이 좀 어색하게 다가왔지만, 지금 내가 그러고 싶었기에.. 아니 그런
그녀를 꼭 안아주고 싶었지만, 그녀와 나 사이에 아주 커다란 테이블이 가로놓여
져 있었기에.. 난 손만이라도 잡아주고 싶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한걸까?.. 그녀는 일부로 내 손에서 그녀의 손을 빼 내지 않은
채, 고요한 눈을 들어 날 바라봐 주었다..
" 아냐!! 아니, 그런 맘 갖지 마시오!! 그러면 내가 더 미안해지쟎소!! "
진심이었다..
그런 내 심정을 알아주는 듯 그녀는 엷은 미소만을 띄우고 있었다..
" 근데, 하향씨가 앓고 있는 병 말이오!! 수술하면 낫는 병이오?"
뜬금없이 그녀의 아픔곳을 물어오는 내가 조금은 야속한 때문인지..
앵두같은 입술을 살짝 깨물어보이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 네.. 저번달에 오빠가 수술자금 마련해서 병원으로 오던길에 소매치기를 당하는 바람에
.. "
.....
한동안의 침묵..
난 그때 소매치기를 했었지!!
수표를 포함해 돈 천만원정도 될만한 아주 큰 돈을 만져보곤 그날,
친구들을 불러 고기를 사먹이고, 술도 사고, 내가 진 빚을 갚고도 남은 돈을 내 방 장판
밑에다 꼭꼭 숨겨 놓았었지..
그 돈이 이 여자 생명을 살릴 돈이었다니..
내 가슴이 뭉개지기 시작했다.. 아주 철저하게.. 뭉개어버리고 있었다..
난 사회악이었다.. 이세상에 살아서는 안될, 그런 악마같은 존재!!
난 여기껏 내가 이러고 싶어 이런짓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망할 놈의 사회가,
현실이 날 이런 구렁텅이로 밀어넣었다고 생각을 하고, 복수하는 의미에서
남의 호주머니나 핸드빽을 따는 걸 아주 당연시 하고 살았었는데..
.......
내 어두운 과거들을 들추어내고 있는 사이, 하향이가 입을 열었다..
" 어머, 죄송해요!! 제가 괜한 얘기를 했나봐요!! "
잠시 흐른 어색한 침묵이 꽤 무거웠었나보다!!
난 괜챦다는 말 대신 짧은 미소로 응답해주곤, 그런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 수술 지금이라도 해도 괜챦은 거요? "
내 물음에 놀란 토끼눈을 해보이는 그녀.. 그리고, 이내 피식 웃음을 흘리고 만다..
" 신경쓰지마세요!! 그렇게 말하면 꼭 내가 기성씨한테 제 수술 자금 해달라고 말
한게 되쟎아요!! ㅎㅎㅎㅎ 참 기성씨는 ~~~
무슨 말을 못하겠어요!! 제가 말을 하다보니까 그런 쓸데 없는 말까지 나왔가지고..
좀 주책맞죠?.. 그리고, 기성씨 저보다 나이도 많아보이는데... 자꾸 말 올리지말고,
그냥 말 놓으세요!! 기성씨 말하는 거 보면 꼭 노친네가 얘기하는 것 같아서..
쿡쿡!! "
쓰윽))
참 내사전에 여자한테 이렇게 말을 높여본건 처음이었다..
그래서, 반말 했다가, 약간 어색하게 좀 점쟎게 말한다는게... 흠.!!!
난 좀 쑥스러워 머리를 끅적거리다..
" 그래, 나도 좀 어색해서 말야!! 하향아~ 너 수술 지금이라도 늦지 않은거니?"
다시 짖궂게 물어대는 내가 야속했어인지..
아무말없이 쥬스잔만 만지작거리던 그녀..
" 기성씨.. 너무 늦었어요!! 우리 일어나요!!
오빠가 저 늦으면 또 걱정하세요!! ㅎㅎㅎㅎ 자 가요!! "
말을 돌리는 그녀..
난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아직 늦지 않았을것이라 확신했다..
집에 남은돈에 앞으로 손목이 부러져라 작업을 한다면, 그때,
내가 써버린 얼마간의 돈을 충당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언제가 될까?
이런 내 마음을 알리 없는 그녀는 벌써 일어서서는 문으로 나서고 있었다..
난 그런 그녀를 바라보다, 용수철 튕기듯.. 그 자리를 벗어나, 재빠르게 계산을 마친뒤,
그녀의 뒤를 따랐다..
눈이 오고 있었다..
그녀를 닮아 아주 깨끗한 순백의 눈이 그녀의 머리와 어깨에 살포시 내려 앉아,
그녀를 지켜주는 듯 보인다..
난 천천히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앞서 걷던 그녀에게 한마디 던졌다..
" 날씨 되게 춥다!! 니 손 잡고 싶은데... "
앞서 걷던 그녀, 다시 내 옆으로 살며시 다가와, 꽁꽁 얼은 내 손을 꽉 잡아주었다..
따뜻했다..
그녀의 체온,
내 꽁꽁 얼어붙은 마음까지 녹여줄 만큼 아주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 하향아!!
내가 너 살릴꺼야!!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너 살려 낼꺼야!!!
그러니까!! 그때까지만 아무일 없이 살아줘!!
아무일 없이.. 지금처럼 있어줘!!!!!! ]
아무도 듣지 못하는 내 속에말, 내 양심이 듣고, 내 가슴이 들어주었다..
하얀 눈,
오늘밤은 춥지 않았다..
온통 새 하얀 순백의 눈으로 이세상을 물들이고 있다는 것에 난 고마워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