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호 논골 등대 길
11살 계집아이가 부모 없이 이모 집에 얹혀살던 곳
어판장에 오징어가 군데군데 거름더미처럼 쌓여 미처
사람 손을 못 얻으면 벌겋게 상해 가던 시절
여름 장마 길게 이어지면 볕을 못 쬐어 상해 가는 오징어
연탄불로 억지로 말리는데 거기서 몇 마리 걷어다가
물에 삶아 소금 찍어 먹으며 원수 같은 빗줄기 그치길
어른도 빌고 아이도 빌고 빌었다.
어른들은 오징어가 상품으로 못 나오니 속이 타서 빌고
아이들은 누울 자리도 없이 방에다 연탄 화덕 몇 개씩 들여놔서
더위에 지글지글 오징어처럼 삶아지는 것이 싫어서 비는 것이다.
“야야 이까 배 들어온다~아”
“자야 양재기 칼 들고 온나”
오징어 배 갈라서 내장 제거하고 다리 쫙 벌려 눈알 떼어
덕장에 말릴 수 있게 손질하는 일인데
20마리 한 두름 손질해서 받는 돈은 3원,
오징어가 넘치게 나는 날이면 두름 당 오 원도 준다.
그럴 때 그 기쁨이란
“명자야 얼매 벌었나?
”응 30원 벌었다‘ “자야 니는 얼매 벌었나?
”나는 20원밖에 못벌었다“
어린 우리 손은 잽싸지 못해서 잘 벌어야 30십원 정도
손이 빠른 새댁들은 200원 300원까지 벌기도 했다.
논골 담길 길가에 작은 찻집 나포리
작년 여름 만발했던 뜨락은 황량한 채 자유로이 비어 있고
작고 협소한 출입문 앞 돌계단, 다리도 쉴 겸 볕도 쬘겸해서
앉아 봤다. 오징어 먹물로 칠갑해가며 종일 20원 벌어 논골
비탈길을 허기져 올라오던 내 열한 살은 카페 나포리 외양같이
낡고 휑하다.
96세 시어머니 병환을 기회?로 병원에 내쳐 놓고 속시원해 하는
삼척 동생과 논골 작은 주막에 마주 앉았다.
김치부침개와 잔 막걸리 두 잔을 시켜 한 모금 들이키던 동생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언니 어머이가 집에 한 번만 데려다 달라고 애원하며
우는데 거짓으로 우는체 하거니 못들은체 했더니 손자가 오니 굵은 눈물이
방울져 흐르더라 내가 그걸 보니... 다시 한 모금 마시면서 눈물을 훔치는 동생
시집온 날부터 본인 70된 지금까지 모셔온 시부모 이제 한 분 남은 시어머니는 섬망증세와
치매가 겹쳐 일어서지 못하신다.
현재까지 요양원 등급 받기 위해 한 달째 병원에 계시는데
정신이 들면 “에미야 집에 가자, 집에 가자 여기는 요양원이야”
한달 째 속 끓이는 동생과 논골 주막을 나와 이리저리 바람의 언덕길을
헤매었다
9순 시어미와 80이 되는 남편을 둔 내 동생
그 남편도 병환으로 거동을 못한다.
인생에서 제일 끔찍하고 잔인한 일은 노년에 찾아온다는 사실에 지금 멀쩡한 우리를
갈등하게 하고 안절부절 못하게 하기도 한다.
카페 나포리
산울림 노래가 흐르는 가운데 대추차 두 잔 시켜 놓고 앉았다
“순경아 사진 찍을 때는 웃고 찍자 자~~
묵호 논골 등대 앞
머리부터 신발까지 오징어 먹물과 내장 부산물로 뒤집어쓴
계집아이가 지금 보얗게 화장한 얼굴로 그 자리 그 길에서
늙어가고 있다.
저의 작은누이도 새엄마의 박해를 피해서
어린나이에 이모집에 수시로 가서 살았는데
그 이모마저 사고로 돌아가시니 어린 누이의
설움은 노래와 시가 되었습니다.
늘 어린 누이의 환영을 안고 사시는 적토마님 죽어도 잊지 못할 겁니다
누이에 대한 슬픔과 불쌍한 어린 영혼에 적토마님이 쓰신 글에는 그 애잔함이
언제나 빠지지 않지요 슬픔을 안고 사는 사람은 항상 차분한 정서가 엿보이지요
그리움의 시선으로 사물을 보게 되니까요
묵호 논골 등대 길 , 11살 어린 소녀의 지난한 삶을 영화처럼 보여 주시는 운선님의 글 !!!
마음이 져려와서 그만 읽을랍니다 .
그때 그시절 , 춥고 , 배고프고, 아프다가 , 못 일어나면 죽고 ---
끔찍한 세월들 떠 올리기가 싫어서 .
죄송합니다 ㅠㅠ 전 이제 지독한 굶주림의 기억에서 벗어나 기본적인 의식주를 누리게 되어 심성이 많이 보드라워졌어 그런가 아무렇지 않게 그 시절을 회상했습니다 이젠 그 어떤 나쁜 기억도 저를 힘들게 하진 않지요 그리고 몰라서 그렇지 저 보다 더 힘들게 살았던 분들도 많았던 그 시절이었으니까요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