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육소봉이 물었다.
"그의 내공이 형편없는 것이었나?"
힘이 달리면 검법도 흐트러지는 법이었다.
육소봉이 또 물었다.
"그의 대단한 실력이 어떻게 삼십 초의 공격 후에 계속할 수 없게 되었을
까?" 서문취설이 말했다.
"내가 말했지만, 나도 알 수가 없었다네."
육소봉이 심각하게 물었다.
"그가 자네와 싸우기 전에 내공을 다른 사람에게 많이 소모한 것은 아닐
까? 혹 어떤 사람이 먼저 그와 싸웠다든지." 서문취설이 차갑게 말했다.
"자네는 공격을 할 때, 다른 사람에게 말할 기회를 언제 주나?" 서문취설
의 얼굴에는 여전히 표정이 없었지만, 어두운 눈빛을 띠고 한참을 있다가
조용히 말했다.
"그가 죽기 전에 이상한 말을 한마디 했는데."
"그가 뭐라고 말했는가?"
"그가 말하길 그는....."
칼을 뽑았을 때, 칼끝에는 아직 피가 맺혀 있었다.
독고일학은 다른 사람의 칼 끝에 자기의 피가 맺혀 한 방울 한 방울씩 떨
어지는 것을 보고 있었다. 얼굴에는 고통이나 두려움의 기색은 없었고 도리
어 크게 소리쳤다.
"나는 잘 알았어, 나는 잘 알았어....."
서문취설이 말했다.
"그는 잘 알았다고 말했어!"
육소봉은 얼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는 무엇을 잘 알았다는 것이지?"
서문취설의 눈에 서린 어두움이 깊어졌고 길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마 그는 인생이 아침 이슬같이 촉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겠지. 그가
이름과 지위를 바꾸면서까지 얻은 것이 공허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겠지....."
육소봉이 생각을 하다 차분히 말했다.
"인생이 짧기 때문에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는 것이지. 그는 도대체 정말
무엇을 알았다는 것일까? 잘 모른다는 것인가? 그가 말하려는 진실은 무엇
이었을까?" 서문취설의 눈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 시간이 지나고
갑자기 그는 뜻밖의 말을 하는 것이었다.
"배가 고프군."
육소봉은 놀라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배가 고프다고?"
서문취설이 쌀쌀하게 대답했다.
"나는 사람을 죽이고 나면 항상 배가 고프지."
이 집은 무성한 뽕나무숲 바깥에 있는 작은 주막으로 이미 문이 열려 있
었다. 뽕나무숲에는 몇 집이 있었고, 뽕나무 숲 밖에도 몇 집이 있었는데,
대부분 누에를 치는 사람들이었다.
이 집은 큰길과 가까이 있고, 사방에 창이 나 있는 작은 오두막으로 지나
가는 사람들에게 간단한 술과 안주를 팔고 있었다. 아미사수가 여기 도착했
을 때 주인은 벌써 잠들어 있었다. 그러나 어느 누가 이렇게 아름다운 네
명의 소녀를 거절할 수 있겠는가? 주막에는 세 개의 탁자만이 있었고, 아주
잘 정돈되어 있었다. 안주도 깔끔했고 부드러운 술이 소녀들의 입맛에 잘
맞아서 그녀들은 아주 즐겁게 먹고 있었다.
소녀들이 즐거워하고 있을 때 말하는 것은 다른 것이 많다. 그녀들이 시
끌벅적하게 말하며 웃는 것이 마치 아주 즐거워하는 한 무리의 닭 같아 보
였다.
손수청이 갑자기 말했다.
"네가 말하는 그 성이 화(花)인 사람, 약간은 강남 사투리를 쓰던데 그 화
씨 집안의 사람 아니야?" 석수설이 물었다.
"그 화씨라니?"
손수청이 대답했다.
"강남의 화씨, 듣기엔 하루 종일 말을 타고 달려도 여전히 그들 집안의
토지 안이라고 하던데." 마수진이 말했다.
"나도 그 사람들을 알고 있지만, 화만루가 그 집안 사람 같지는 않던데."
손수청이 물었다.
"왜 그래요?"
마수진이 대답했다.
"듣기에 그 집안 생활이 아주 호화로워서 먹고 마시고 입는 것에 대단히
신경을 많이 쓴다고 하던걸. 그들 집의 마부조차도 바깥에 나갈 때에는 부
잣집 도련님 같다는데, 그 화만루는 아주 검소해 보이잖아. 게다가 나는 그
들 아들 중에 장님이 있다는 말을 듣지 못했거든." 석수설이 즉시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장님이 뭐가 어때요? 그는 장님이기는 하지만 그가 볼 수 있는 것은 우
리같이 눈이 있는 사람들보다 훨씬 많아요." 마수진도 자기 말이 타당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의 무공은 얼마나 대단한지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사이에 손을 내밀어
네 칼을 잡을 수 있는 정도였지." 손수청이 웃으며 말했다.
"그것이 아마 저 계집아이가 그에게 빠진 이유일 거야." 석수설은 그녀를
노려보고는 말했다.
"인정하지 않으면 다음번에 네가 한 번 시험해 보면 되잖아. 나는 그를
대신해 허풍을 떠는 것이 아니야. 세상에서 그보다 뛰어난 사람은 없어." 손
수청이 물었다.
"서문취설? 그의 검법은 어떻고?"
석수설은 말없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문취설의 그 검법은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마수진이 말했다.
"듣기로는 서문취설은 검법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집안도 아주 좋다고
하던걸. 만매산장의 부귀 영화가 절대로 강남의 화씨에 뒤떨어지지는 않을
거야." 손수청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나는 그 사람이 좋아. 집안 때문이 아니야. 그가 빈털터리라 하더라도 나
는 똑같이 그를 좋아할 거야." 석수설이 조그맣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그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아무리 훑어봐도 사랑스러운 곳은 한 군
데도 없던데." 손수청이 말했다.
"그의 사랑스러운 점을 왜 언니가 봐야 하지? 나는....." 그녀의 목소리가
갑자기 끊겼고, 얼굴이 귀끝까지 붉어졌다. 이때 밖에서 한 사람이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눈처럼 하얀 옷을 입은, 바로 서문취설이었다. 석수설도
말을 하지 못했다. 시끄럽던 소녀들이 갑자기 모두들 입을 다물었다. 그녀들
은 서문취설만 본 것이 아니라 화만루와 육소봉도 보았다.
서문취설의 칼끝같이 날카로운 두 눈은 그녀들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
다. 홀연히 걸어오더니 차갑게 말했다.
"나는 소소영을 죽였을 뿐만 아니라 지금 독고일학도 죽였소." 소녀들의
얼굴은 모두 변했다. 특히 손수청의 얼굴은 거의 혈색이 하나도 없이 창백
해졌다.
어린 소녀의 마음속에는 복수가 사랑하는 마음을 몰아내기가 쉬운 것이었
다. 게다가 소소영은 아주 멋져서 이 네 명의 사매(師妹)가 모두들 그를 좋
아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들은 그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스승
의 원수라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손수청이 실성한 듯 물었다.
"당신은, 당신은 뭐라고 했어요?"
서문취설이 말했다.
"나는 독고일학을 죽였소."
석수설이 갑자기 펄쩍 뛰며 큰소리로 말했다.
"우리 둘째 언니가 그렇게 당신을 좋아하는데, 당신은, 당신은.....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가 있어요?" 누가 그녀가 이런 말을 하리라고 상상이나 했
을까? 서문취설도 멍해지는 것 같았다.
손수청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며 갑자기 이를 악물더니, 한 쌍의 칼
을 칼집에서 꺼내었다. 검광(劍光)을 번쩍이며 서문취설의 가슴을 향해 한스
럽게 칼을 겨누었다.
서문취설은 맞서 싸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가볍게 소매를 뿌리쳐 뒤로
7, 8척은 미끄러져 물러났다.
손수청의 눈이 붉어지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사부님을 죽였으니, 나는 당신과 싸우겠어요." 그녀는 두 개의 칼
을 가지고 이를 악물고는 서문취설을 향해 다가갔다. 검의 초식은 가볍고
민첩하며 변화가 많았다. 칼빛이 번쩍하더니 꽃잎이 비에 떨어지는 것처럼
잠깐 사이에 칠초의 공격을 하였다.
언니가 한 쌍의 칼을 칼집에서 꺼내는 것을 보고 석수설이 크게 소리쳤
다.
"이것은 우리와 서문취설의 일이니 다른 사람들은 상관하지 마세요." 그녀
가 이렇게 말한 것은 화만루가 들으라고 한 것이었다. 사실상 화만루도 손
을 쓸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가 어떻게 이 네 명의 소녀가 서문취설의 칼에 죽게 내버려둘
수 있겠는가? 이때, 탕,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서문취설이 소매로 손수청의
팔꿈치를 밀어올려, 그녀의 왼손에 있던 칼로 그녀의 오른손에 있던 칼에
부딪히게 했다.
칼이 서로 부딪치며 그녀는 손이 저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두 개의
칼은 어느 순간엔가 서문취설의 손에 가 있는 것이었다.
서문취설이 차갑게 말했다.
"물러나라. 내가 칼을 꺼내지 않게!"
그의 목소리는 차갑기는 했지만 눈빛은 차갑지 않았다. 그래서 손수청이
아직 살아 있는 것이었다.
그도 사람이고, 남자인데, 어떻게 자기를 좋아하는 아름다운 소녀에게 칼
을 들이밀 수 있겠는가? 손수청의 얼굴이 더 하얗게 되면서 눈에는 눈물이
반짝이고 이를 악물고는 말했다.
"우리들은 오늘 당신과 싸우려고 온 것이라고 말했어요. 당신을 죽이지
못하면, 곧..... 당신 앞에서 죽어야 합니다." 서문취설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
다.
"죽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어. 너희들이 복수를 하려거든 빨리 청의루
108명을 모두 불러오는 것이 좋을 거야." 손수청은 많이 놀란 듯이 물었다.
"당신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서문취설이 말했다.
"독고일학이 청의루의 두목이니, 청의루....."
손수청이 그의 말을 끊고는 화를 내며 말했다.
"당신은 지금 사부님의 청의루라고 말하는 건가요? 당신 미쳤어요? 그분
이 이번에 관중(關中)에 온 것은 한 가지 소식을 듣고 온 것이에요. 청의제
일루가 있는 곳을 알고....." 갑자기 뒤쪽 창가에서 '쨍'하는 소리가 나더니,
가느다란 검은 빛이 창을 깨고 들어와서는 손수청의 등을 때렸다.
손수청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서문취설을 향해 넘어졌다. 석수설은 창 가
까이 있었고 소리를 치며 몸을 돌려 엎드렸지만, 이때 창가에서 또 검은 빛
이 들어왔다. 얼마나 빠르게 오던지 그녀는 피할 방법이 없었다. 그녀는 큰
소리를 지르며 손에 들고 있던 칼을 떨어뜨리고는 넘어졌다. 이때 손수청은
서문취설에게 넘어져 있었고, 서문취설은 한 손을 내밀어 그녀의 허리를 안
고 다른 한 손으로 칼을 빼내었다. 칼빛이 번쩍이며 그와 칼이 하나가 되는
듯하더니 갑자기 창 밖으로 나갔다.
육소봉은 벌써 다른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마수진과 엽수주도 다급
한 소리를 듣고는 따라서 나갔다.
밤은 더욱 깊어 창 뒤의 채소밭에 저녁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곳에는 아
무도 없었다.
이 무성한 뽕나무숲을 지나는데,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문취설의 칼
빛은 숲으로 들어갔다.
마수진과 엽수주도 망설이지 않고 그를 따라 들어갔다. 뽕나무숲 안에 있
는 몇 집은 모두 잠들어 있어 불빛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서문취설의 칼
빛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한 마리의 누런 개가 숲 뒤쪽으로 작은 길을 향해
미친 듯이 짖으며 달려가는 것이었다.
마수진이 말했다.
"쫓아가자. 무슨 일이든 우리는 둘째를 쫓아가야지." 이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두 사람은 쫓아가고 있었다.
육소봉은 쫓아가지 않고 나무 아래에 멈추어서는 허리를 굽혀 물건 하나
를 살펴 보았다.
첫댓글 즐독하였습니다
즐~~~~~~감!
감사합니다
감사 합니다
즐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