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팔자는 시래기 팔자와 같은 길을 걸었다 !
어제저녁 별미 반찬이 먹고 싶어 마트에서 무시래기를 사다가
가진 양념을 넣고 무쳐 먹었는데 별로 맛이 없었다.
필자가 요리를 잘못했나?
입맛이 변했나!
1960,70년대만 해도 시골은 물론이고 도시의 일부가정집에는 “시래기”를
줄줄이 역어 걸어놓은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때 대한민국 GDP는 8,90달러 였다.
시래기 무침. 시래기국. 시래기밥.
김장철이면 버려지는 배추 잎과 무청을 짚으로 엮어 말려 시래기를 만들었다.
가을부터 겨우내 마른 시래기는 김치와 함께 반찬의 중심역활을 했다
그나마 조금 살기가 나은 집에는 시래깃국에 마른 멸치를 몇 마리 넣으면
그 맛이 한결 고급이었다.
시래기는 주로 된장을 풀어 넣고 시래깃국으로 먹었다.
시래기는 조선 후기 문신이며 학자인 이가환(李嘉煥)이 사물(事物)의 이름을
한자와 우리말로 함께 기록한 “물보(物譜·1802년)”란 책에 “시락이(棲菹서저)”
이름으로 처음 등장한다.
서(棲)-살고있다 저(菹)-절임저
중국어사전에는 “棲菹(서저)”라는 말이 없다.
일본어에는 “히바(ひば乾葉)”라하여 한국 시래기와 비슷한 의미가 있다.
중국어사전에는 시래기를 “채간(菜干)”이라하였는데 이 뜻은
“채소 말랭이. 말린 채소”로 우리의 배추 잎이나 무잎을 말린 “시래기”와는
의미가 다르다.
시래기(棲菹)어원이 어디서 왔는지 궁금하다.
시래기에 관련된 기록 중에는
1897년 미국 선교사 제임스 스콧 게일 목사가 편찬한 “한영자전(韓英字典)”에는
시래기를 “고채(枯菜) 즉 마른 나물로 풀어쓰고 ”국물(soup)에 사용된다”고
기록되어 있다.
시래기는 오랫동안 구황작물(救荒作物)이었다.
※구황작물(救荒作物)-가물고 농사가 안 되는 해에도 생명력이 강하여 재배(栽培)하여
수확(收穫)할 수 있는 작물(作物)이다.
가뭄에나 장마에도 강(強)하고 척박(瘠薄)한 땅에도 잘 자라는 작물.
시래기는 일본식민지 말기부터 1960년대 박정희 5.16군사혁명이 일어나기까지
보릿고개를 넘는 한국 국민들의 생존을 위한 소중한 동아줄 같은 음식이었다.
집집마다 울타리나 흙벽에 역은 시래기가 주렁주렁 달린 것이 마치 생명을
엮어놓은 것과 같은 풍경이었다.
백석(白石)시인이 있다.
평안북도 정주 사람이다.
성북동 길상사(吉祥寺) 이전의 이름은 서울 3대 요정중의 하나인 대원각(大苑閣)이다.
대원각(大苑閣)주인은 기생 김영한(金英韓·1916~1999)이다.
백석(白石)시인과 김영한(金英韓)은 이승에서 사랑을 이루지 못한 연인사이다.
사랑을 이루지 못한 기생 김영한(金英韓)이 송광사에 대원각을 보시한 것이
지금의 길상사(吉祥寺)다.
시인 백석(白石)은 시래기에 관한 시(詩)를 여럿 남겼다.
그는 1939년 11월 8일 자 조선일보에 발표한 “구장로(球場路)”란 시에서
아래의 시를 썼다.
“주류판매업(酒類販賣業)이라고 써 붙인 그 뜨스한 구들에서
따끈한 삼십오도 소주나 한잔 마시고 그리고,
그 시래깃국에 소피(선지)를 넣고 두부를 두고 끓인 구수한 술국을
뜨끈히 몇 사발이고 왕사발로 몇 사발이고 먹자”
라고 읊었다.
지금은 도시고 시골이고 아파트가 즐비하다.
아파트가 아니고 단독주택이라도 처마에 “시래기”를 걸어놓은 것을 볼 수 없다.
우리 식탁에서 일상에서 끼니마다 밥상을 차지하던 “시래기” 모습이 자취를 감췄다.
대신에 강원도나 여러 무를 재배하는 지역에서 “무시래기”는 건강식품으로
계획생산을 하여 시장에 새로운 신분으로 보급하고 있다.
마트에 진열되어 있는 삶은 무시래기 가격도 그냥 무시할 수 없다.
“귀한 몸”이라는 뜻이다.
2000년대 들어 섬유소와 비타민이 풍부한 식품이라는 연구에 따라서
웰빙 식품 (well-being食品)으로 그 인기가 새로운 인식으로 보게 되었다.
그전 배고플대 할수없이 먹던 “천한 신분”이 아니다.
가만히 생각하면
한국 국민의 팔자는 “시래기”와 같은 길을 걸어왔다는 생각이다.
8.15 광복 후 가난에 쪼들린 한국 국민은 사람대접을 받지 못했다.
시래기도 미군부대가 먹고 버린 음식찌꺼기 “부대찌개”의 근처에도 못갔다.
그런데 세상이 변하여 GDP 3만5천 달러 한국 국민이 사람대접을 받고 있다.
돼지 소나 먹던 “시래기”가 밥상에서 상석(上席)을 차지하며 웰빙식품 대접을 박고 있다.
한국국민과 시래기가 신분상승이 된 것이다.
언젠가 “한국은 처음이다”라는 TV 프로에서 한국을 찾은 유럽 여행객이
선지가 들어있는 시래기국을 먹으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원더풀(wonderful)
소리를 지르는 것을 보았다.
세월이 변하니 사람팔자 시래기 팔자도 변한다.
제발 시래기와 한국 사람이 1950년 이전 팔자로 안 돌아가기를 바란다.
농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