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아귀
김소연
탁상시계를 던져본 적이 있다
손아귀에 적당했고 소중할 것도 없었던 것을
방바닥에 내던져
부서뜨려본 적이 있다
부서지는 것은 부서지면서 소리를 냈다
부서뜨리는 내 귀에 들려주겠다는 듯이 소리를 냈다
고백이 적힌 편지를
맹세가 적힌 종이를
두 손으로 맞잡고
천천히 찢어본 적이 있다
이렇게 가벼운 것이잖아 하며
손목의 각도를 천천히 틀면서 종이를 찢은 적이 있다
찢어지는 것도 찢어지면서 소리를 냈다
찢고 있는 내 귀에 기어이 각인되겠다는 듯 날카롭게
높은 소리를 냈다
무너지는 것들도
무너지는 소리를 시끄럽게 낸다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다는 것을 항변하는
함성처럼 웅장하게 큰 소리를 냈다
이 소리들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이 소리들을 내가
기억하는 것이 나의 무고를 증명한다는 듯
기억을 한다 하지만
망가지는 것들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다
조용히 오래오래 망가져 간다
다 망가지고나서야
누군가에게 발견이 되는 것이다
기억에만 귀를 기울이며 지나간 소리들을 명심하느라
조용히 오래오래 내 귀는 멀어버렸다
한밤중에 눈을 뜨면 내가 키우는 식물이
자객처럼 칼을 뽑아 나를 겨누고 있다
칼날 아래 목을 드리우고
매일매일 무화과처럼 나를 말린다
시원하게 두 동강이 나서
벌레가 바글대는 내부를 활짝 전개할 날을 손꼽는다
오늘 아침 나의 식물은
기어이 화분을 두 동강 냈다
징그럽고 억척스럽고 비대해진 뿌리들이
그 안에 갇혀 있었다
—《시로 여는 세상》2016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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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 1967년 경북 경주 출생. 1993년 《현대시사상》으로 등단. 시집『극에 달하다』『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눈물이라는 뼈』『수학자의 아침』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