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힘내세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번 투쟁뿐만 아니라
진정한 의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은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합니다.
다음은 한양대 정신과교수셨던 김이영선생님의 글입니다.
[ 병의원 폐업 사태의 본질 ]
김이영(삼성서울병원)
1976년말, 나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1977년부터 한국
에 최초로 의료보험제도가 도입될 예정이었고, 신참 전문
의였던 나는 신경정신의학회에서 의료보험정책관계 위원회
의 말석을 차지하고 실무작업을 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정
신과 환자들은 치료비가 없어서 조기퇴원하는 수가 많았
고, 그래서 기껏 노력한 치료가 수포로 돌아가기 일수였
다. 이제는 가난한 사람도 치료비 걱정않고 치료받을 수
있고, 의사는 치료비 생각하지 않고 정성껏 치료만 하면
되니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그래서 정신과진료의 특수성을 감안해서 이상적인 수가체계
를 만들어 보건사회부에 제출하였다. 그러나 첫번째 나온
보건사회부의 의료보험진료수가표를 보는 순간 우리는 절망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 우리가 그토록 많은 시간을 들여
서 우리의 안을 만들었는지! 어차피 우리의 의견을 그렇
게 묵살할 것이었으면 왜 의견은 물었는지! 그렇게 철저
히 일본 것을 베낄 양이면 차라리 일본 수가표를 주고 번역
하라고 할 일이지, 왜 우리의 시간을 그렇게 빼앗았는지!
더구나 “이약은 써도 되고, 저약은 안된다”, “왜 일주
일에 두번만 면담하랬는 데 네번 했느냐? 두번의 면담비
는 환수한다!”는 소리를 듣고, 쥐꼬리만한 전문지식밖에
없는 행정관료들이 환자 치료를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고 간섭하는 데 질려 절망하게 되기에는 2년이 채 안 걸
렸다. 더구나 기껏 치료행위를 하고 청구한 치료비를 환수
하면서 의사들을 도둑놈으로 몰 때 면허증 반납이나 외국이
민을 생각한 것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뒤로 1985년까지 학회 정신보건향상위원회와 의료보험위
원회에서 의료보험관계의 일을, 그 뒤로는 정신보건정책위
원에서 정신보건법과 정신보건정책관계의 일을 하다가
1999년에 학회의 일선에서 물러났다. 전문의로서 대외적
인 활동의 대부분을 정신보건정책과 관련된 일만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의 정신보건정책관련 활동을 돌아보면 "내가 과연
무엇을 했나?"하는 좌절감만 남는다. 그많은 시간과 토론
과 연구를 거친 대 정부 건의에서 전문가인 의사들의 요구
가 반영된 기억이 없다. 정부가 우리의 의견을 묻는 것은
의견을 들어 정책에 반영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
대의 정책을 펴기 위해서가 아닌가 의심될 정도였다. 그러
면서 우리 의료계의 의견은 항상 "현실을 모른다", "집단
이기주의다", "환자를 볼모로 자기 욕심만 챙기려 한다"면
서 묵살당하기가 거의 30년이다.
우리 의사들은 정당한 요구를 하면서도 "환자를 볼모로--
"만 나오면 울며 겨자 먹기로 수그러들었다. 정부는 여기
에 재미가 붙었다. 논리적으로 수세에 몰리면 들고 나오
는 것이 "환자를 볼모로---"였고 그 방법은 언제나 통했
다. 의사는 환자를 떠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물어 보자! 누가 환자를 볼모로 잡았는가?
지난 수십년동안 의료계에서 정부에 요구한 각종 보건정책
중에서 제대로 반영된 것이 어떤 것이 있는지 한번 점검해
보라고 하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왜 1년씩이나
시간이 있었는 데 무엇하고 있었느냐고 묻는다.
답은 이렇다.
합리적인 근거로 많은 정책을 제시했고, 요구했다. 정부
가 들어주지 않았을 뿐이다.
이번 폐업사건에서 의사는 이제 그 "환자를 볼모로---"라
고 몰아 부쳐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들이다. “환자를 볼
모로--”란 말만 나오면 “양보하면 우리의 뜻을 반영하겠
지”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정부의 말을 들어주면 돌아오는
것은 뒤통수치기였다. “환자를 볼모로--”란 말을 하도
많이 들어서 의사들도 면역이 생겼다. 당신들이 걸핏하면
우리에게 “환자를 볼모로---”했기에 이제는 그말의 약발
이 없어진 것이다.
나는 이상주의자이지만 현실을 무시하고 이상만을 추구하
는 멍청이가 아닐 뿐 아니라, 겉으로는 이상을 완벽하게
추구해야 한다고 극단적인 주장을 펴서 남의 주장을 묵살하
면서 안으로는 자신의 실속만을 채우는 사기꾼은 더더욱 아
니다. 그러나 그런 나의 의료인으로서의 이상은 앞에서 말
한대로 좌절로 끝나가고 있다.
나는 이런 나의 모습이 자신의 의학지식으로 국민의 건강
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게 활용하려는 우리나라 의사의 평
균적인 모습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평균적인 의사들은 이상의 좌절로 점철된 지난 수십년간의
자신의 인생이 아무것도 아니었음에 참담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제 의사의 자존심이나 양심, 이것만으로 견디어
낼 수 있는 한계에 도달했다. 후배들에게는 이런 참담함
을 되풀이 하게 할 수 없다.
이것이 이번 의사들의 폐업사태의 진정한 원인이다.
그래도 여기까지 버틴 것은 우리 정책당국이나 공무원들에
게 쥐꼬리만한 기대가 있어서가 아니라 나를 바라보는 환자
가 있고, 내 입에서 뭔가 하나라도 배울만한 말이 나오는
가를 바라고 있는 제자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시
행하려는 의약분업은 환자들에게나 제자들에게 내가 할 일
이 없어 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물러날 수밖에!
국민들에게, 정부에게 부탁하노니 제발 우리 의사들이 의
사다운 일을 할 수 있게 해 주기 바란다. 전문가는 전문가
답게 대우해 주기 바란다. 그래야 이번 사태가 마무리 된
다음에라도 아름다운 의료의 꽃이 필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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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포크라테스
[펀글]병의원 폐업 사태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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