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에서 진정한 천재들은 세상을 바꾸는 업적을 남겼다.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 모차르트의 교향곡 제41번,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 에디슨의 백열전구, 잡스의 아이폰, 볼테르와 루소가 불태운 계몽의 불꽃까지.
그 이름만으로도 사람들은 경외감을 느낀다. 그러나 그 빛나는 성취 뒤편에는 놀랍게도 치졸하고
유치하며, 때로는 잔인하기까지 한 ‘인간적인’ 자존심 싸움이 도사리고 있었다.
천재라 해서 인성이 고결하거나 도덕적으로 모범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상대의
재능을 인정하는 데 극도로 인색했고, 시기와 질투로 가득 찬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웃어넘길 작은 자존심이 천재들에게는 큰 싸움으로 번졌다. 그들은 세상을 바꿀
만큼 명석했지만, 정작 ‘상대방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일에는 서툴렀다.
위대한 업적과 별개로 그들은 서로를 ‘도둑’, ‘괴물’, ‘악당’으로 몰아세우며 진흙탕 싸움을 벌였다.
이러한 사례들은 천재성이 결코 인격의 완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다소 불편한 진실을 일깨워준다.
미켈란젤로 VS 라파엘로
르네상스 예술의 황금기를 이끈 두 거장,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 이들은 인류사에 남을 불후의
걸작을 남겼으나, 정작 그들의 관계는 예술이 추구하는 조화나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두 천재는 서로를 인정하기보다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민망하리만큼 치열한 경쟁과 반목 속에서
자존심 싸움을 벌였다.
1508년, 교황 율리우스 2세는 두 예술가를 로마로 불러들였다.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를, 라파엘로는 교황의 개인 서재인 ‘서명의 방’ 벽화를 맡았다.
겉으로는 협력하는 듯 보였으나 수면 아래에서는 이미 전쟁이 시작되고 있었다.
당시 서른세 살의 미켈란젤로는 조각가 출신의 고독한 괴짜였다.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고 자신의
작품에만 결벽증적으로 집착하는 고립된 천재였다.
반면 스물다섯 살의 라파엘로는 ‘미술의 왕자’라 불릴 만큼 사교적이고 우아했다. 제자들을 거느리고
다니며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청년이었다.
성격부터 상반된 두 거장은 서로를 강하게 견제하기 시작했다.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천장 작업을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작업실 문을 걸어 잠그고 홀로 4년 동안 고군분투했다.
그러나 라파엘로의 친구인 건축가 브라만테가 몰래 문을 열어주면서 라파엘로가 그 현장을 훔쳐보게
된다. 미켈란젤로의 압도적인 화풍에 충격을 받은 라파엘로는 자신의 작업을 전면 수정했다.
이미 구상했던 벽화를 지워내고 인체의 근육을 더 역동적으로 묘사하며 미켈란젤로의 스타일을
흡수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미켈란젤로는 격노했다. 그는 주변에 “라파엘로가 아는 미술은 전부 나에게서 훔쳐
간 것”이라며 비난을 쏟아냈다.
라파엘로 역시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그의 걸작 '아테네 학당'에는 미켈란젤로를 향한 풍자가
숨어 있다.
화면 중앙 계단에 홀로 앉아 턱을 괸 채 생각에 잠긴 인물은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인데, 바로
미켈란젤로를 모델로 삼았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세상을 비관적으로 보며 늘 고독했던 ‘울보 철학자’로 알려져 있다. 라파엘로는
그 인물의 얼굴에 미켈란젤로 특유의 짜증 섞인 표정과 고립된 성격을 그대로 담아냈다.
“당신은 늘 혼자서 투덜대는 고립된 천재일 뿐”이라는 은밀하고도 날카로운 복수였다.
두 사람의 갈등은 로마 거리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어느 날, 많은 제자를 거느리고 활보하던
라파엘로와 마주친 미켈란젤로가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너는 마치 장군처럼 부하들을 줄줄이 끌고 다니는구나.” 라파엘로의 사교적인 성격을 비꼬는
말이었다.
그러자 라파엘로도 지지 않고 즉각 응수했다. “당신은 사형집행인처럼 늘 혼자서 고독하게
다니는군요.”
서로의 성격과 작업 방식을 비난하며 벌어진 이 설전은 두 천재의 화해할 수 없는 간극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미켈란젤로에게 라파엘로는 ‘얄미운 천재’였다. 자신은 고통 속에서 예술혼을 불태우는데, 라파엘로는
사람들의 사랑과 정치적 수완을 통해 손쉽게 성과를 내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반면 라파엘로에게 미켈란젤로는 천재성은 인정하나 공감하기 힘든 ‘구시대의 괴짜’에 불과했다.
라파엘로는 서른일곱에 요절했고, 미켈란젤로는 여든아홉까지 장수했다.
라파엘로가 죽었을 때 미켈란젤로는 “그는 왕처럼 살다 왕처럼 죽었다”고 평했으나, 그 말속에는
진심 어린 애도보다는 뼈 있는 가시가 돋쳐 있었다.
르네상스 미술계는 후원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비방과 도용이 난무하던 전쟁터였다. 그러나
이 치졸한 자존심 싸움은 역설적으로 압도적인 창작 에너지를 낳았다.
서로에게 지지 않으려는 오기와 질투가 예술적 한계를 뛰어넘게 만든 것이다. 만약 이들의 경쟁이
없었다면 '시스티나 천장화'도, '아테네 학당'도 지금과 같은 경지에 오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천재들의 치열한 경쟁과 반목은 인류에게 불멸의 걸작이라는 가장 값진 선물을 남겼다.
<오늘의 팝송> Hard To Say I'm Sorry / Chicago
Hard To Say I'm Sorry는 그룹 Chicago가 1982년 발표한 곡으로 빌보드 핫100 1위를 기록한 곡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진심 어린 사과와 화해의 감정을 담은 노래다. Chicago는 1967년 미국 시카고에서 결성된 록 밴드다.
https://youtu.be/wEwNcnklcskhttps://youtu.be/wEwNcnklcsk
첫댓글
천재들의 진흙탕 갱쟁은 마치 숫사자들의
자리차지와 같은 경쟁이었다.
결국 천재들의 치열한 경쟁과 반목은
인류에게 불멸의 걸작이라는 가장 값진 선물을 남겼다.
평온의 시대만 있었다면 인류의 영웅은 없었을 것이다.
전쟁은 영웅을 낳았다.
맞습니다, 혼란과 위기가 닥쳤을때
영웅이 나옵니다.
감사합니다. 시니방장님.
33살 미켈란젤로와 25살 라파엘로,
천재성을 지닌 두사람이 싸울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네요
자신의 작품에 집착하는 혼자를 고집하며 창작해낸
압도적인 화풍을 훔쳤으니 당연 화가 날만하네요
둘다 불멸의 걸작을 남길만한 천재인데
더 많은 걸작을 창작할 천재가 안타깝게도 37살에 요절하였으니~
자존심 싸움은 치졸할수밖에 없지요
더구나 위대한 작품을 창작하는 천재들이니 말입니다
카페에 주구장창 할일없이 들락거리며
남 흉이나 보고 자랑을 일삼는 웃기는 인간들은
그저 남 헐뜯어 상처내는 짓꺼리나 남기니 말입니다
유익하고 재미난 이야기 갖고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재밋고 유익한 글 올려주던 도빈님도
상식없이 헐뜯는 짓거리들 때문에 나가셨기에
비온뒤님의 글이 오르기를 기다렸습니다 감사합니다!
라파엘로는 워낙 미남이고 사교적이어서
여인들의 인기를 독차지한 바람둥이었다고 합니다.
그가 요절한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합니다.
카페에 다양한 분들이 계시니 서로 이해하고 넘어가야
하는데 도빈님에게 그런 일이 있었다니 안타깝네요.
감사합니다. 캔디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