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서류를 보고 자기가 입원하게 된 동기를 알게 된 희수는 병원에 있으면 언젠가 누군가가 자기를 찾아오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만기일이 되면 병원에서 보호자에게 연락할 것이니 그러면 누군가가 자기를 데리러 올 것이 확실하다.
그때 영섭이나 현영이 찾아올 것이고 누가 찾아오든 그들을 도저히 다시 볼 수는 없다.
영섭은 염치가 없어 못 보고 현영은 만나는 것이 싫어 볼 수 없다는 생각에 그들이 찾아오기 전에 병원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고 기회를 보다 병이 거의 완쾌되어 희수에 대해 간병인들이나 경비들이 방심하는 틈을 타 밤에 용케 환자복 차림인 채로 병원을 나왔다.
병원을 나온 희수는 길가에 있는 고구마밭에서 고구마를 몇 개 캐 가지고 숲속으로 들어가 밤을 새웠다.
밤의 숲속이 무섭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마을에 들어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은 더욱 위험하고 더욱이 자기의 모골을 보고 정신병원에서 도망친 것을 알면 곧바로 병원으로 연락이 돼 잡혀갈 것이 자명하므로 두려움을 참았다.
때가 가을이지만 숲속에 낙엽이 쌓인 움푹진 곳에서 가랑잎을 덮고 지낸 하룻밤은 그런대로 지낼만 했다.
다음날 외딴집으로 내려가서 줄에 걸린 여자 옷 한 벌을 걷어 다시 숲으로 들어가 그 옷으로 갈아입고 환자 옷은 낙엽 속에 숨기고 어제 밭에서 캔 고구마를 먹고 나머지는 치마폭에 싸 들고 정처 없는 길을 떠났다.
맞지도 않은 옷을 걸치고 엉클어진 머리에 때 묻은 얼굴, 얼른 보면 거지 같으나 본디 아름다운 바탕은 속일 수가 없다.
길 가는 사람들이 그 어울리지 않는 모습에 흘깃거리며 지나간다.
그럴 때마다 떨리는 가슴을 조이며 태연을 가장하고 길을 가며 만약 누가 시비를 걸면 이제 나에게는 남은 것이 없으니 사생결단하리라 마음먹는다.
길을 가는 중에 길가에서 인심 좋아 보이는 아주머니들에게 가까운 비구니의 산사를 물었다.
처음에 병원을 나올 때는 어떤 계획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냥 병원으로 찾아오는 영섭이나 현영을 피하자는 생각이었으나 막상 병원을 떠나고 나니 갈 곳이 없다.
그래서 길을 걸으며 생각한 것이 몸을 숨기고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곳 그리고 지금 있는 곳에서 가까운 곳을 찾다 보니 산사가 좋을 것 같아 일단 산사로 피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들에게서 전남 승주군 조계산 선암사가 있다는 말을 듣고 밭에서 고구마나 감자 또는 무를 한두 개씩 뽑아서 배를 채우고 농가 근처 숲속의 낙엽 속에서 잠을 자며 걸어 10여 일 만에 선암사에 어렵사리 도착하였다.
절에서 행자들과 스님에게 사정하며 절에 있게 해달라고 애원하는 희수를 한 스님이 딱하게 생각하여 지주에게 데리고 갔다.
지주를 만난 희수는 교통사고로 갑자기 부모를 잃고 정신병이 걸려 먼 친척의 도움으로 정신병원에 있다가 다시 정신이 돌아왔는데 퇴원하고 나서 갈 곳이 없어 이곳까지 왔다고 거짓 반 진담 반으로 사정하고 불목하니로 있게 해 주기를 간절히 요청했다.
희수의 모습을 보고 그런 몸으로 불목하니의 일을 하겠냐고 반문하는 지주에게 일만 시켜주면 능히 할 수 있다고 희수가 주장해 희수의 딱한 사정과 희수의 결심을 들은 주지 스님이 절에 찾아든 중생을 저버릴 수 있겠냐며 승낙해 주었다.
선암사에서 불목하니로 있으면서 밥하고 빨래하고 물 긷고 청소하며 육 개월여를 보냈다.
농촌에서 자라 학교 다니며 틈틈이 집안일을 도운 것이 힘든 불목하니의 생활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동안 누가 이름이나 고향을 물으면 희수는 빙그레 웃고 말았다.
그래서 산사에서 희수의 별명은 소미가 되었고 나중에 비구니가 된 뒤 법호도 소미가 되었다.
육 개월이 지난 후 희수는 주지 스님이 강원도 청옥산에 관음사 주지 스님과 친분이 두텁다는 것을 알게 되어, 주지 스님에게 부탁하여 관음사로 갔다.
선암사도 좋은 산사인데 구태여 관음사로 갈 필요가 있느냐고 말리는 주지 스님에게는 비구니가 될 때까지 되도록 속세와 인연이 먼 곳으로 가서 불도에 정진하고 싶다고 우겼지만, 관광객이 많은 선암사에 있다가 혹시라도 아는 사람을 만나면 낭패일 것 같아 찾는 사람이 거의 없는 관음사를 선택한 것이다.
관음사로 옮겨 간 희수는 관음사에서도 제일 산속 깊은 암자에서 불목하니의 생활을 하였다.
희수가 선암사에서 청옥산 관음사로 옮길 때 그동안의 산사 생활하면서 한때 세상의 모든 애욕을 끊고 수녀원으로 가려고 마음먹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제 자기가 있을 곳은 산사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관음사로 옮길 때는 비구니가 되기로, 결심하고 옮긴 것이다
여기서 불목하니로 생활을 육 개월 더 한 희수는 주지의 도움으로 행자가 되어 부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정성을 다 했다.
행자가 되어 비구니가 되는 길만이 자기가 사바에서 얽혀 있던 은원의 관계를 끊어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세상의 모든 번뇌를 잃어버리고 도에 정진하며 다시 일 년여의 행자 생활 후 사미니가 되고 사미 십계와 팔경계 팔기계를 받아 열심히 닦고 익혀 다시 일 년이 지나고 선암사에서 불문에 들어온 지 3년여 만에 드디어 비구니가 되었다.
348계의 구족계를 받으며 비구니가 되던 날 성취에 기쁨도 있지만 정말 속세와의 인연을 완전히 끊는다는 생각에 서운한 생각이 없지 않았고 그동안 거의 생각지 않고 있던 영섭의 얼굴이 떠올라 눈에 이슬이 맺힌다.
“좋은 공부 결과로 비구니가 되는 날 눈에 이슬이 맺힘이 어쩐 일이냐? 아직도 속세에 인연을 끊지 못하였다는 말이냐?”
책망하시는 주지 스님의 말씀에 얼른 눈물을 거두고 합장하고 머리를 깊이 숙인다.
병원에서 나와서 몇 달 후부터 세상의 모든 은원을 잊기 위해 그렇게도 바라던 비구니가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어느 정도 탈속했다고 했지만, 비구니가 되던 날 속세를 그리워하고 영섭이를 생각하던 것을 보면 아직도 부족한 면이 많다고 스스로 느껴 속세로 나가는 것을 다시 일 년여 동안 미루며 도에 정진했다.
불문에 귀의해서 4년
그동안 암자와 산사만 오가며 은둔자의 생활을 하던 희수가 세상으로 나왔다.
주지 스님의 심부름으로 선암사를 다녀오게 된 것이다.
선암사를 가기 위해 관음사 절문을 나서는 희수의 마음은 감회가 새로웠다.
이제는 사바의 사람이 아니고 불문에 귀의한 비구니로서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고 망태를 지고 세상을 오가는 완전히 세상의 문외한이 된 것이다.
자기의 생은 이제 세상이 아니고 산속 절이다.
세상은 절과 절을 이어주기에 가끔 지나가는 길에 불과하게 되었다.
서울로 올라왔다.
삼 년 육 개월 전 선안사에서 관음사로 가며 이곳을 지날 때는 공연히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이 들어 허둥거리던 것이 생각이 났다.
그러나 지금은 잔잔한 호수 같다. 이제는 누구를 만나더라도 편안하게 대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삼 년 육 개월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자기의 전신인 희수는 죽고 소미로 다시 태어났기 때문이다. 아니 선암사 불목하니 생활을 합치면 사년 동안이다.
서울에 도착하니 아무래도 세상의 부모를 한 번은 찾아뵙는 것이 도리가 될 것 같아 신산리로 향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즐감하고 감니다
감사합니다
즐~~~~감!
감사합니다...
행복한 왕비님!
구리천리향님!
지키미님!
다락방님!
무혈님!
이초롱님!
감사합니다.
요새는 아침 저녁으로 가을 냄새를 풍깁니다
환절기에 감기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