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주막의 주인은 겁에 질려 구석에 숨어 있었다.
화만루는 가볍게 석수설을 안고 있었다. 석수설의 심장은 아직 뛰고 있었
는데 아주 약하게 뛰고 있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에는 죽음의 빛이 서려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눈을
뜨고는 화만루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당신은..... 아직 가지 않았군요."
화만루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가지 않아요. 당신과 같이 있을 거죠."
석수설의 눈에는 이상한 표정이 나타났다. 기쁜 것 같기도 하고 슬픈 것
같기도 했다.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이 아직 나를 알아볼 줄 몰랐어요."
화만루가 말했다.
"나는 언제까지나 당신을 알 수 있어요."
석수설이 아주 처량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벙어리로 변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빨리 죽게 되었어요. 죽은 사
람은 말을 할 수 없잖아요? 그렇죠?" 화만루가 말했다.
"당신은, 당신은 죽지 않아요. 절대로 죽지 않아요." 석수설이 말했다.
"나를 위로하려 하지 않아도 돼요. 나는 내가 맞은 것이 독침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요." 화만루가 놀라 물었다.
"독침이라고?"
석수설이 말했다.
"나의 온몸이 마비된 것은 독이 퍼져서 그럴 거예요. 당신이, 당신이 나의
상처를 만져보면 데일 거예요." 그녀는 갑자기 화만루의 손을 잡더니 그녀
의 상처 위에 올려놓았다. 그녀의 상처는 명치였는데, 부드럽고 매끄러우며
포근했다. 그녀는 화만루의 찬 손을 잡고는 그녀의 부드러운 가슴에 놓았다.
그녀의 심장은 빨리 뛰기 시작했다.
화만루의 심장 또한 빨리 뛰기 시작했다. 이때 그는 육소봉의 목소리를
창 밖에서 들었다.
"그녀가 맞은 것이 어떤 암기(暗器)인가?"
화만루가 대답했다.
"독침이네."
육소봉이 잠깐 말이 없더니 갑자기 물었다.
"자네는 여기에 그녀를 남겨 두고 나와 함께 사람을 찾으러 가자구." 마지
막 한마디를 하는 그의 목소리는 멀리 있었다.
석수설이 숨이 차서는 말했다.
"당신은 가지 말고, 여기에서 나와 함께 있어 주세요!" 화만루가 말했다.
"당신은 눈을 감아봐요. 내가..... 대신 독침을 뽑아줄테니." 석수설의 창백
한 얼굴이 붉어지는 듯하고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당신은 정말 그렇게 해주실 건가요?"
화만루가 대답했다.
"당신이 원한다면....."
석수설이 말했다.
"나는 어떤 것도 괜찮아요. 그러나 나는 눈을 감지는 않을 거예요. 당신을
보고 싶으니까요."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약해져 가고 얼굴의 미소도 갑자
기 굳어졌다. 눈동자의 초점이 사라져 버렸다.
죽음, 잠깐 사이에 소리도 없이 그녀를 화만루의 품에서 뺏아갔다.
그러나 그녀의 눈동자는 여전히 화만루를 보고 있는 듯했다. 영원히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어둠, 화만루의 눈앞에는 어둠뿐이었다.
그는 자기가 앞을 못보는 것이 갑자기 원망스러웠다. 그녀의 마지막 눈동
자를 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녀의 이렇게 젊고, 청춘의 활력이 가득 찬 몸이 갑자기 얼음처럼 차갑
게 굳어진 것이었다.
화만루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려 소매로 가볍게 닦아내었다.
그는 움직이지도 않았고, 가지도 않았다. 그는 살아오면서 이런 무자비한
슬픔은 처음 느껴보았다.
바람은 창 밖에서, 문 밖에서 세차게 불어왔다. 사월의 바람이 꼭 한겨울
의 바람처럼 매서웠다.
그는 바람 속에서 향기가 실려 오는 것을 느꼈다. 그는 갑자기 뒤쪽창에
서 딱, 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고개를 돌리고 뛸 준비를 하였다.
그러나 이때 뒤쪽 창에서 부드럽고 감미로운 목소리가 들려와서는 가볍게
그에게 말했다.
"놀라지 마세요. 나예요!"
목소리는 그가 잘 아는 사람의 것이었다. 바로 그가 계속 생각해온 사람
이었다.
그는 놀라서 물었다.
"비연?"
"맞아요, 저예요. 당신이 아직까지 내 목소리를 알아들을 줄은 몰랐어요."
한 사람이 가볍게 뒤쪽 창에서 뛰어들어왔다. 목소리에는 질투 때문에 비꼬
는 듯했지만 조용히 말했다.
"나는 당신이 나를 잊은 줄 알았어요!"
화만루는 그곳에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당신은..... 당신이 어떻게 갑자기 여기에 온 것이지요?" 상관비연이 말했
다.
"당신은 내가 와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건가요?"
화만루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나는 단지 생각지 못했을 뿐이에요. 나는 당신이 이미....." "당신은 내가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나요?"
화만루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상관비연은 길게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나도 그녀처럼 당신의 품안에서 죽고 싶어요."
그녀는 천천히 걸어서 화만루 앞으로 와서는 말했다.
"나는 조금 전에 당신들을 보았어요. 그 모습은 좋게 받아들일 수 없었어
요. 그녀가 죽지 않았다면, 내가 그녀를 죽였을지도 몰라요." 화만루는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언젠가 나는 당신의 노랫소리를 들었습니다."
상관비연이 어둡게 말했다.
"만매산장 밖의 그 부서진 산신 사당이 아니었나요?" "그래요."
상관비연도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조용히 말했다.
"그러나 당신이 찾아왔을 때, 나는 벌써 가버렸지요." 화만루가 물었다.
"당신은 왜 가버렸나요?"
상관비연의 목소리는 더욱 작아져서는 대답했다.
"당신도 알겠지만, 나는 가고 싶지가 않았어요."
화만루가 물었다.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강요했나요?"
상관비연이 말했다.
"그 노래도 다른 사람이 나에게 부르라고 시킨 것이었어요. 원래는 그들
이 왜 그렇게 했는지 몰랐지만, 나중에 알게 되었어요. 그들은 당신을 그 사
당으로 유인하려던 것이었어요." 화만루가 물었다.
"그들이라니? 그들이 누구지요?"
상관비연은 이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매우 두
려운 듯이 떨기 시작했다.
화만루가 물었다.
"당신은 이미 어떤 사람들 손에 붙잡힌 것인가요?"
상관비연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너무 많은 것을 알지 않는 것이 좋을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그
렇지 않으면....." 화만루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된다는 거죠?"
상관비연은 또 한참이나 가만히 있다가 말했다.
"그날 그들이 당신을 유인해서 경고를 했지요. 이 일에 상관하지 말라고.
그들은 나에게 당신이 다시는 이 일에 상관하지 않게 설득하라고 했어요.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나에게 당신을 죽이라고 했어요!" 화
만루가 놀라 물었다.
"그들이 당신에게 나를 죽이라고 했다구요?"
상관비연이 말했다.
"맞아요, 그들은 당신이 절대로 내가 당신을 해치리라는 것을 생각지 못
할 거라고 알고 있어요. 그래서 절대로 나를 막지 않을 거라고. 그러나 그들
이 생각지 못한 것이 있어요. 내가 어떻게 냉혹하게 당신을 죽일 수가 있겠
어요?" 그녀는 갑자기 다가와서는 화만루를 꼭 껴안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당신은 그들이 누구인지 알았을 거예요. 그러나 당신은 그들의 힘
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아직 모를 거예요." 지금 염철산과 독고일학이 모두
죽었는데, 이 일을 막을 사람은 곽휴밖에 없는 것이다.
화만루가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들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상관이 없어요. 당신은 두려워하지 말아
요." 상관비연이 말했다.
"그러나 나는 두려워요. 나 자신 때문이 아니라, 당신 때문이에요. 나만 아
니었으면 당신들은 이 일에 연루되지 않았을텐데. 당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
면 내가 어떻게 살아갈 수가 있겠어요!" 그녀는 그를 꼭 안았는데, 온몸이
떨고 있었다. 그녀의 숨소리는 향기롭고 감미로웠다.
화만루는 양팔을 벌려 그녀를 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석수설의 시체
가 아직 그의 옆에 있었다. 이렇게 사랑스런 소녀가 방금 전에 그의 두 손
에 안겨서 죽었는데, 지금 그는 어떻게 같은 손으로 다른 사람을 안을 수가
있겠는가? 그의 마음에는 슬픔과 모순이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자기의 감정
을 억제하려 했지만 오히려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그가 다시 그녀를 안으려 했을 때 그녀가 갑자기 그를 밀어내고는 말했
다.
"내 생각을 당신이 이미 알았으리라 생각해요."
화만루가 말했다.
"잘 모르겠어요."
상관비연이 말했다.
"당신이 알든 모르든, 나는..... 나는 가야만 해요." 화만루가 놀라서 물었
다.
"당신은 가야 한다구요? 왜 가야 하죠?"
상관비연이 말했다.
"나도 가고 싶지 않지만, 가지 않을 수 없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고통과 공포가 가득 차 있었다. 이어서 말을 했다.
"당신이 나에게 조금이라도 좋은 감정이 있다면, 나에게 왜냐고 묻지 마
세요. 나를 잡지도 말고요.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당신을 해칠 뿐만 아니라
나도 해치는 거예요!" 화만루가 말했다.
"그러나 나는....."
상관비연이 말했다.
"나를 가게 해주세요. 당신이 잘 살고 있는 것을 알았으니, 나는 마음이
놓여요.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내게 미안할 거예요....." 그녀의 목소리는 점
점 멀리서 들리면서 사라져버렸다.
어둠, 화만루는 갑자기 자기가 끝없는 어둠과 적막 속으로 빠져버린 것처
럼 느껴졌다. 그는 그녀가 곤란해서 어쩔 수 없이 가야만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바보처럼 그곳에 서 있었다. 그녀의 어려움을 해결하는데 도
와줄 수 없고, 그녀의 고통을 위로해 줄 수 없는 것이 그가 조금전에 석수
설의 죽음을 보았던 것처럼 슬펐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도대체 무엇을 할 것인가?" 그의 귓
가에는 누군가 비웃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너는 장님을 뿐이야. 아무 쓸모도 없는 장님!"
장님이 살아가는 중에는 어둠이 있을 뿐이다. 절망적인 어둠이.
그는 두 손을 꽉 쥐고는 사월의 바람 속에 서 있었다. 갑자기 인생이 그
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에
는 어쩔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이 수없이 있을 것이었다.
그는 정말로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를 몰랐다.
사월은 제비가 돌아오는 때이다. 그러나 그의 제비는 날아가버렸다. 사람
의 청춘처럼 한 번 가서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
그는 천천히 걸어서 문 밖의 풀밭으로 갔다. 풀밭은 이슬로 젖어 있었다.
첫댓글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즐독합니다,
즐독하였습니다
즐감
즐~~~~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