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산리에 도착하여 집으로 향하면서 희수는 자기가 불문에 귀의하지 못했으면 이곳에 발을 들어 놓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을 마을사람들의 눈초리에서, 미소 짓는 얼굴에서 느낄 수가 있었다.
처음에는 지나가는 승려인 줄 알았던 사람들이 그 승려가 희수인 것을 알고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저희끼리 수군거린다.
희수의 변한 모습에 희수에게 다가와 말을 건네지는 못하지만 어쩜 동네 사람들은 5여 년 전에 윤간으로 겁탈당했던 희수보다도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은 희수를 더 흥미로운 눈초리로 쳐다보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희수는 얼굴 색 하나 변하지 않는다.
집에 도착하여 문 앞에서 불경을 외기 시작했다.
시주를 받으러 온 중인 줄 알고 쌀을 한 되 박 가지고 나오신 어머니는 처음에는 희수를 알아보지 못한다.
설마 희수가 중이 됐으리라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정신 이상이 되어 집을 나간 희수가 중이 됐으리라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그래서 희수를 자세히 보지 않은 때문이리라.
쌀을 시주 주머니에 넣고 돌아서는 어머니를 희수가 “어머니!”하고 불렸다.
처음에는 자기가 잘 못 들은 것으로 착각하고 그냥 가시는 어머니를 희수가 다시 크게 “어머니!”하고 불렸다.
그 소리에 돌아선 어머니가 희수를 유심히 보곤 기함할 정도로 놀래서 쓰러질 뻔한 것을 희수가 부축하였다.
“너- 너 희수가 아니냐?”
어머니가 금방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며 허둥허둥 물으신다.
“네 어머니 저 희수에요,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희수는 조용히 대답한다.
“그런데 네 모양이 무엇이냐?”
“어머니 저 불문에 귀의했어요. 비구니가 됐습니다.”
“무어라고? 중이 됐다고?”
“네! 중이 됐습니다.”
“아이구! 내 팔자야, 이 일을 어찌하면 좋으냐? 네가 중이 되다니. 현영이 그놈이 원수로구나.”
5년 만에 중이 되어 나타난 딸을 보는 어머니!
없어진 딸에 대한 상심으로 5년 만에 너무 늙어버린 어머니를 보는 딸!
이 들의 마음은 천 갈래 만 갈래다.
다시 눈물을 보이시는 어머니는 답답한 자기의 가슴을 치다가
“아이고 이게 무슨 형벌이냐? 네가 왜 이 꼴이 되어야 하냐?” 하시며 희수의 등을 쓰다듬는다.
“어머니 그런 말씀 마세요. 모두 지난 일이예요.”
하고 희수는 어머니의 손을 가만히 잡는다.
뜨거운 모녀의 정이 잡은 손을 타고 흐른다.
밖이 어수선하자 아버지도 나오시고 학교에서 막 돌아온 동생도 나왔다. 아버지와 동생도 희수의 모습을 보고 모두 놀래 말문이 막힌다.
“아버지 안녕하셨어요? 창수도 잘 있었니?”
희수의 인사가 끝나자
“밖에서 이러지 말고 어서 들어가자.”
아버지가 재촉하신다.
“이제 부모님을 뵈옵고 동생도 봤으니 이만 길을 가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몇 년 만에 집에 왔는데 집에 들어오지도 않고 간단 말이냐? 그럴 수는 없다.”
어머니가 막무가내로 잡으시고
“아무리 바쁘고 또 불문에 귀의 한 불자이지만 그동안 애태우며 너를 찾은 부모 생각도 해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 하룻저녁 유하고 가거라. 이제 헤어지면 또 언제 만날지 모르는데.”
하고 역정을 내시며 아버지도 잡으신다.
거친 세파를 이기지 못하고 불문에 귀의하여 비구니가 된 딸을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아버지, 그 딸과 하룻저녁이라도 같이 보내고 싶어 하시는 아버지의 깊은 정이 희수의 마음에 여울진다.
앞으로는 아버지, 어머니하고 불러보지도 못할 분들 마지막으로 세상의 법도에 따라 부모와 자식으로 하룻저녁 지내도 무리가 없을 것 같아 희수는 집안으로 든다.
저녁 동안에는 자연 그동안 지낸 일을 이야기하며 부모님은 희수의 모진 운명에 눈물을 흘리고, 현영과 영섭의 이야기를 들은 희수는 현영에게는 연민을, 희수가 실종되면서 아직까지 희수를 찾아 전국을 떠돌고 있는 영섭에게는 미안함과 안타까움 그리고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다음 날 새벽 절에서와 같이 일찍 일어난 희수는 새벽 불공을 드렸다.
아버지 어머니의 만수무강과 동생 창수의 밝은 앞날을 위해, 그리곤 조용히 집을 나왔다.
아침에 부모님과 동생을 뒤로하고 집을 나서면 어머니의 눈물과 아버지의 침통해 하시는 얼굴 그리고 동생 창수의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며 떠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간단한 인사의 말씀을 특히 창수에게 부모님을 부탁하는 글을 적은 쪽지를 남겨놓고 집을 나온 것이다.
아침상을 차려 놓고 희수를 깨우러 갔던 어머니는 희수가 남겨놓은 쪽지를 보고 다시 눈물을 쏟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아버지는 깊은 한숨을 쉬시고 창수의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신산리를 떠난 희수는 교도소로 현영을 찾아갔다.
부모님의 말씀을 듣고 현영이 교도소에 있는 것을 알고는 세상에서 맺어진 악업의 매듭을 풀기 위해
희수의 면회를 받은 현영은 상상을 초월하는 희수의 변모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처음 누군가 스님이 면회왔다는 소리를 듣고 자기를 찾아올 스님이 없는데 누굴까 하고 궁금한 생각을 하며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생각나는 사람이 없어 어느 사회봉사 단체에서 죄수들을 교화할 목적으로 목사나 스님을 보내 설교나 설법을 듣게 하여주는 사례가 있다는데 그런 이유로 온 스님이 아닌가 하는 생각하고 면회를 나와 자기를 기다리는 스님을 보고
처음에는 못 알아보았으나 자리에 앉으려고 하면서 다시 스님을 쳐다보다가 그 스님이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은 희수인 것을 알아보고는 아무리 강팍한 현영이라도 놀라고 당황했다.
놀라고 당황하여 면회석에 앉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하는 현영을 보고
“자리에 앉으시죠. 그래야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아요.”
조용한 희수의 말에 현영은 말 잘 듣는 어린아이와 같이 고개를 푹 숙이고 주저주저 다가와서 자리에 앉는다.
그런 현영을 보고 있는 희수의 얼굴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이 고요하기만 하다.
잠시 시간이 지난 후 희수가 말문을 열었다.
“영어에 몸이 되어 고생이 많으시군요. 제가 뵙기가 민망합니다. 혹여 지난날의 일로 해서 저에 대하여 미안한 마음을 갖고 계시다면 모두 잊어버리십시오. 저는 모두 잊었습니다. 또 이 말이 시주님을 위해 하는 말이라고 생각지 마십시오. 저는 새로 태어난 소미라는 비구니입니다. 시주께서 그래 주셔야 저의 세상에 쌓여있던 업보가 풀리고 저의 새로운 길이 열리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희수의 말이 잠시 멈추어 졌다.
현영은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희수를 보지 못한다.
만감이 가슴속에서 교차된다.
희수가 자기를 원망하며 저주를 퍼부어도 자기는 희수에게 할 말이 없는 사람이다.
사랑한다는 그래서 놓칠 수 없다는 욕심과 집착으로 자기가 그렇게 많이 골리고 애를 먹이고 나중에는 정조까지 유린한 여자가 중이 되어 나타났다는 사실도 놀라운데 자기를 걱정하는 말을 그것도 진정을 가지고 한다니
희수에게서 정말 고개를 들 수가 없다.
그러는 현영을 보며 희수는 ‘현영이 옛날과는 달라졌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현영을 보고 있던 희수가
“그러면 소승은 이만 물러갑니다. 부디 몸 건강하시길 빌겠습니다.”
하고 조용히 인사를 하고 일어나려고 하자
“희수야!”
하고 현영이 희수에 소매를 잡는다.
“말씀드린 것 같이 저는 희수가 아니라 소미라는 비구니입니다.”
현영의 돌출행동에도 당황하지 않고 이렇게 말하며 현영을 바라보는 희수의 눈이 고요하기만 하다.
그 눈에 마주치자 얼른 희수의 소매를 놓은 현영이
“아! 네, 죄송합니다. 스님을 대할 면목이 없습니다. 스님께는 무슨 말씀을 드려도 용서받을 수 없음을 잘 알지만, 염치없이 말씀드리니 지난날의 저의 잘못을 용서하십시오.” 한다.
“이미 소승의 마음과 뜻은 말씀드렸습니다. 부디 부처님의 가호가 있으시기를---.”
말을 맞힌 희수는 돌아서 나간다.
멀어져가는 희수를 잡지도 못하고 바라보는 현영은 자기가 한 여자의 인생을 완전히 망쳐놓았음을 통감하고 지난날의 자기의 어리석은 사랑놀음을 후회하는 마음이 크고 이제야 미망에서 깨어나는 것 같다.
그러나 지난날은 도리킬 수 없는 것 머리를 깎은 희수의 얼굴에 숙영의 병약한 하얀 얼굴이 겹친다.
숙영이 보고 싶다 몹시 가슴이 저리도록, 그러나 이제는 영영 볼 수 없는 사람을.
교도소를 나온 희수는 보영을 찾아갔다. 영섭과의 관계도 마무리하기 위해서.
첫댓글 즐~~~~감!
감사히 잘보았습니다...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무혈님!
이초롱님!
사노님!
행복한 왕비님!
다락방님!
감사합니다.
앞으로 몇 회 안 남은 것 같으니 끝까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