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세상-10주년 기념, 가족이야기
내 존경하는 재단법인 행복세상 김성호 이사장님이 법무부장관직에 재임하시던 10여 년 전의 세월로 거스른다.
김 이사장님이 당시 사법연수원 졸업을 앞둔 맏이에게 띄우는 A4용지 11쪽 짜리 한 통 편지를 쓰셨다.
‘치열하면서도 풋풋한 인생이기를!’이라는 제목의 편지였었는데, 어찌어찌한 경로로 내 그 편지를 입수해서 읽어봤었다.
‘새로운 출발점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의욕을 불태우고 있을 아들에게 아비의 소망을 몇 가지 적어본다.’
모두를 그렇게 적고, 계속해서 맏이에게 바라는 네 가지 소망과 그 소망에 대한 이유를 하나하나 풀어가는 내용이었다.
김 이사장님은 그 네 가지 소망을 이렇게 적었다.
‘첫째는 모든 것의 중심에 인간(人間)을 두라는 것이고, 둘째는 열정적으로 살라는 것이며, 셋째는 항상 떳떳한 처신을 하라는 것이고, 마지막으로 가족에 대한 책무이다.’
그리고 김 이사장님은 그 소망에 대한 이유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고귀한 신분에 따르는 도덕적 의무인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의 유래도 설명했고, ‘한 손은 자신을 위해 사용하고 나머지 한 손은 남을 돕기 위해 사용하라’고 했던 오드리 헵번의 말도 인용했고, 정신을 한 곳으로 모으면 무슨 일이든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는 의미의 ‘정신일도 하사불성’(精神一到 何事不成)이라는 문장을 설명하면서 청나라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옹정제의 일화를 소개했고, 1,000번 이상의 실패를 거듭한 끝에 전구를 발명한 에디슨과 청각을 잃고도 ‘합창’등 불멸의 교향곡을 남긴 베토벤에 대한 이야기도 했고, 미래에 대한 강력한 희망이 곧 ‘긍정적 사고’(Positive Thinking)라면서 그리스 신화에서 비롯된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도 인용했고, ‘인생의 2막에 필요한 마인드로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는 믿음이다. 믿으면 진짜 그렇게 된다. 그러니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져보자. 그러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잠재적 가능성을 찾아낼 수 있으며, 위기 속에서도 기회를 찾을 수 있다.’고 한 ‘2막’의 작가 스티브 폴란의 말도 인용했고, ‘현재의 시련을 미래의 꿈을 실현시키는 기회로 승화시키는 긍정적 사고가 필요하다.’고 한 ‘해리포터’의 작가 J. K. 롤링의 말도 인용했고, ‘생즉필사 사즉필생’(生卽必死 死卽必生)이라면서 치열한 삶을 산 이순신 장군에 대한 이야기도 했고,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라는 서정주의 한 줄 시구도 인용했고, 울지 않는 소쩍새가 울 때까지 토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의 발아래서 몇 십 년을 참고 인내한 도꾸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삶을 소개하기도 했고, ‘유사자연향 하심당풍립’(有麝自然香 河心當風立) 곧 ‘사향은 저절로 향기를 풍기기 마련인데 어찌 반드시 바람을 맞이하여서일까’라는 명심보감의 한 구절을 인용하기도 했다.
편지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옛말들을 빌려 잔소리를 많이 한 것 같다. 자식에 대한 노파심으로 아비의 신조를 지나치게 강조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소망한다. 치열하면서도 풋풋한 인생이기를!’
김 이사장님이 맏이에게 바라는 그 네 가지 소망 중에, 내게 특별한 감동으로 와 닿은 소망이 하나 있었다.
마지막 네 번째의 소망으로 가족에 대한 책무였다.
다음은 ‘가족에 대한 책무를 잊지 말아라’라는 제목으로 풀어간 그 대목 전문이다.
‘아버지는 네가 네 어머니를 진심으로 공경하고 있음을 알기에 정말 기쁘다. 네 어머니는 공무원 남편을 둔 탓에 남의 눈에 안 뜨게 있는 듯 없는 듯 조심스럽게 살아왔지만, 너희 형제에 대한 애정은 누구에게도 비길 수 없으니 네가 네 어머니에게 극진한 마음을 가짐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네 어렸을 적 원인불명의 중병으로 생사의 기로를 헤맬 때 네 어머니는 마치 세상을 다 잃은 것같았다. 네가 회복되어서야 비로소 제 정신을 차렸음을 아는지? 어찌 네 어머니의 헌신을 글로서 다 표현할 수 있으랴 만은 너희들의 성공이 이를 보답하는 길임을 부디 명심하여라. 너희 형제의 우애 역시 남다른 데가 있으니 나는 안심한다. 네 동생은 영리하지만 영악하지 못하고 건강도 걱정스러우니 늘 관심을 가져 주기 바란다. 특히 부탁하고 싶은 것은 너의 큰 고모에게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해주었으면 한다. 큰 고모는 홀로 된 몸으로 아버지 어릴 적부터 집안 살림을 도맡았을 뿐 아니라 아버지와 어머니를 대신하여 장기간 병환에 든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극진히 수발하느라 청, 장, 노년을 모두 바쳤으니 마땅히 부모의 예로 모셔야 한다. 나는 네가 우아하고 기품 있는, 참한 여자를 아내로 맞아 평생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행복이란 서로 믿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니 부디 신애인화(信愛忍和)의 지혜와 덕성을 공유하기를 기원한다.’
한 집안의 맏이고 장손이고 종손인 내게도 귀감이 되는 말씀이었다.
재단법인 행복세상의 설립 10주년 기념행사가 열리는 CGV영등포 스타리움관을 찾아가는 길에 영등포 본전통을 지나가게 됐다.
“어디서 점심 좀 먹고 갑시다.”
마침 점심때여서 내 그렇게 아내에게 권했고, 아내도 선뜻 동의했다.
그곳 영동포 본전통이라면, 4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지금의 서울남부지방검찰청 전신인 서울지방검찰청영등포지청이 영등포 문래동에 터 잡고 있을 때, 내 그 청에 근무하면서 숱하게 드나들었던 영등포의 중심으로, 구석구석 모르는 곳이 없었다.
김용명, 성도기, 김일섭, 조관호, 김금영, 이종희 등, 당시 검찰청 축구시합에서 우승한 팀의 동료들과 어울려 술판을 벌이면서 온갖 사연을 남긴 곳이 바로 그곳 본전통이었고, 1차 저녁에 2차 생맥주에 3차 포장마차까지 가면서 벌인 술판 끝판에 옆자리 또래 젊은이와 시비가 붙어 영등포경찰서에 붙잡혀 갔다가 살그머니 탈출한 사연도 바로 그곳 본전통에서였다.
그렇게 숱한 사연을 남긴 그곳에서 지난날 드나들든 음식점도 몇 집 그대로여서, 어느 집으로 찾아들까하고 본전통 골목으로 들어섰을 때였다.
“여기저기 기웃거릴 필요 없어요. 딱 한 곳 있어요. 그저 따라만 오세요.”
아내가 그리 말하면서 앞장서고 있었다.
어디 갈 것인지, 그 목적지가 빤했다.
영등포 역전에서 영등포사거리까지 큰길 오른쪽 인도를 따라가다가 옛 금강제화터에서 우회전 하면, 거기가 곧 그 유명한 먹자골목인 본전통이었다.
그 골목으로 들어서서 첫 번째 골목 네거리를 지나고, 그 다음 골목 네거리 오른쪽 코너에 있는 함흥냉면집이, 냉면 좋아하는 아내가 찾아간 집이었다.
‘50년 냉면 명가’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있었다.
나는 원래 냉면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
함흥이 고향인 부모님을 둔 덕에 아내는 함흥냉면을 좋아했고, 나는 그런 아내를 얻은 덕에 함흥냉면의 존재를 알게 됐고, 그 맛도 알게 됐고, 또 즐기기까지 하게 됐다.
그래서 그 집을 자주 찾게 됐다.
그러다보니 내 입맛으로는, 함흥냉면이라면 당시 서울에서 제일로 꼽던 오장동 냉면보다 그 집 냉면을 한 수 위로 칠 정도였다.
처음에는 아내하고만 그 집을 찾아다녔지만, 곧 두 아들도 데리고 다녔고, 틈틈이 내 형제에 처가 식구들까지 해서 우리 집안 모두를 데리고 그 집을 찾아 냉면 맛을 보여주고는 했었다.
내게 있어서는 가족 챙기는 현장이 곧 함흥냉면 그 집이었다.
4반세기 전쯤의 일로, 우리 아버지가 일흔인 지금의 내 나이쯤이었을 때였다.
아내가 치매기가 좀 더 짙어진 우리 아버지 입맛 돋우어드린다면서, 나와 함께 그 집을 찾았었다.
지금도 그날의 우리 아버지가 그 집에서 냉면 드시던 순간을 생각하면, 그저 내 두 눈에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는 한다.
삶의 마감이 임박했음을 맨 처음 느낀 날이었기 때문이다.
내 묻는 말에 대한 아버지의 답을 듣고 내 그렇게 느꼈다.
이리 물었었다.
“아버지, 이 집 냉면 맛있지요?”
당연히 맛있다고 답하실 줄 알았다.
아니었다.
전혀 예상 밖의 답을 하셨다.
곧 이 답이었다.
“내 다 됐는가보다. 맛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