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육소봉이 웃으며 말했다.
"조금도 틀리지 않았군요!"
곽천청이 물었다.
"이 세상에는 한 방울의 술도 마실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당신은 어
떤 사람인지 아십니까?" 육소봉이 대답했다.
"모릅니다."
"머리통이 붙어 있는 채로 술을 마시고 싶다면 빨리 그런 생각을 바꾸는
게 좋을 것이오." 육소봉이 웃으며 말했다.
"술을 훔치는 것은 책을 훔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아한 도둑질이지요.
붙잡힌다 해도 절대로 머리를 부수어버리는 죄명을 씌우지는 않지요." 곽천
청이 말했다.
"그것도 어떤 사람에게 잡히느냐에 딸린 거죠!"
육소봉이 웃으며 물었다.
"당신과 곽휴는 오백년 전이라면 한가족이었을텐데, 당신은 뭐가 두렵습
니까?" 곽천청이 대답했다.
"그의 작은 집에 108종의 매복장치가 있다고 직접 내게 말했어요. 그가
청하지 않은 손님이 들어오면, 누구든 살아서 나가기가 힘들다고 했지요."
그는 또 이어서 말을 했다.
"그 장치들이 사람을 알아보지 못할텐데..... 당신의 성이 곽이어도 좋고,
육이어도 좋지요. 아무것도 구분할 수가 없을 테니까요." 육소봉도 마침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내 눈썹이 네 조각에서 줄어들어 두 조각이 되어도 상관이 없지만, 머리
는 하나밖에 없는데 반쪽이 줄어들 수는 없는 것이지요." 그는 쓴웃음을 지
으며 또 말을 이었다.
"몇 개의 술항아리를 위해서 108개의 장치를 해놓았다니 그가 어떻게 재
산을 모았는지 이상하군요." 곽천청이 말했다.
"아마 그는 술을 훔쳐가는 것만 막으려는 의도는 아닐 것입니다." 육소봉
의 눈이 반짝이며 말했다.
"당신은 그 작은 집에 다른 비밀이 있다는 것입니까?" 곽천청이 웃으며
조용히 말했다.
"모든 사람들이 크고 작은 비밀을 가지고 있지요....." 육소봉이 말했다.
"정말로 비밀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한 종류의 사람밖에 없지요." 곽천청
이 물었다.
"어떤 종류의 사람인가요?"
"죽은 사람이지요."
곽천청의 눈빛도 반짝이며 말했다.
"곽휴는 죽은 사람이 아니지요."
육소봉이 말했다.
"그는 아니지요."
가장 무서운 것도 죽은 사람이다. 그 사람이 살아서는 얼마나 부드럽고
아름다웠는지는 몰라도 죽고나면, 무섭게 변하는 것이다.
석수설의 시체 위에 이미 하얀 천이 덮여져 있다.
탁자에는 불이 켜져 있고 화만루는 등잔 옆에 앉아 움직이지도 않고 조용
히 있다. 그는 갔다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석수설이 살았든 죽었든, 그는 그녀를 혼자 여기에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
이다.
주막의 주인도 이미 달아나고 등불만이 남아 있는 이곳은 장님에게는 등
불이 필요없다는 것을 잊어버린 듯했다.
사방이 고요하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육소봉이 들어왔을 때도 아
무런 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화만루는 고개를 돌려 그를 마주보고 물었다.
"자네 술 마셨나?"
육소봉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약간 마셨지."
화만루는 차갑게 말했다.
"이렇게 큰 일이 났는데, 술 마실 기분이 남아 있다니 정말 알 수 없는
사람이야." 그는 정색을 하였다. 그가 얼굴을 굳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육소봉은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자네는 나에게 감탄하는 것인가?"
그가 화난 사람을 대하는 방법은---너는 화가 났으니 네게 맘껏 화를 내
겠다, 화가 나면 어떻게 되는지 한 번 보겠다, 화가 나서 죽나 안 죽나 한
번 보자는 것이었다.
화만루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육소봉을 잘 알고 있어서, 육소봉 때문
에 화를 내다가 죽을 생각은 없었다.
육소봉이 어쩔 줄을 몰라 멋적은 듯이 말했다.
"사실은 자네도 마셨어야 했는데, 술의 가장 좋은 점은 많은 생각을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잊게 해주는 것이지." 화만루는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입
을 열었다.
"조금 전에 어떤 사람을 보았는데....."
육소봉이 말했다.
"자네가 조금 전에 본 것은 아주 많은 사람이네."
"그러나 그 사람은 내가 여기서는 절대로 못볼 사람이었다네." 육소봉이
물었다.
"누구인데?"
화만루가 대답했다.
"상관비연이었어!"
육소봉이 놀라서 물었다.
"그녀가 아직 죽지 않았단 말인가?"
화만루가 침울하게 대답했다.
"그녀는 아직 죽지 않았지만, 살아 있는 것이나 죽은 것이나 별 차이가
없었어." "왜?"
"그녀는 다른 사람의 손아귀에 있어, 행동도 완전히 그 사람의 통제속에
있었어." 육소봉이 놀라서 물었다.
"자네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있나?"
"그녀가 분명하게 말을 하지 않아 나도 추측해 보면 그 사람은 분명히....."
"분명히 누구인가?"
"곽휴일 거야!"
육소봉은 앉았다가는 갑자기 일어나서 실성한 듯 물었다.
"곽휴라고?"
"상관비연이 이번에 나를 찾아온 것도 억지로 온 것이었어. 나에게 이 일
에 상관하지 말라고 충고하러 온 것이었어. 지금 우리가 이 일에 참견하기
를 바라지 않는 사람은 곽휴뿐이지 않은가." 육소봉이 앉아서 한참을 있다
가 말했다.
"나는 조금 전에 어떤 사람을 못 보았네."
이 말은 아주 이상한 말이어서, 금방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네가 못 본 사람은 아주 많지!"
"그러나 그 사람은 반드시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었어. 내가 주광보기
각에 간 것은 그녀를 찾으려는 것이었는데." "상관단봉 말인가?"
"맞아."
"그녀는 그곳에 없었나?"
"그녀는 오지 않았고, 어떤 사람이 곽천청에게 편지를 남겨 그더러 나에
게 전해 주라고 했다더군!" 화만루가 물었다.
"뭐라고 쓰여 있었나?"
"헛소리 같은 몇 마디의 알듯말듯한 말이 있었어."
"어떤 말인가?"
"단봉을 구하기 어려우니 마음을 돌려라. 만약 그렇지 않으면 목숨을 유
지하기 어려우리라!" 화만루가 침울하게 말했다.
"자네에게 이 일에 참견하지 말라는 것 같은데."
육소봉이 말했다.
"우리들이 이 일에 참견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지
않은가?" "자네는 그 편지를 쓴 사람이 곽휴일 거라고 생각하나?" "나는 그
가 어떤 일을 시작하면 절대로 도중에 그만두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네." 성공하는 사람은 무슨 일이든 도중에 그만두지 않는 법이다.
"사공적성이 상관단봉을 훔치지 못했고 그는 의외로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보내어 길에서 기다리다가 마침내 상관단봉을 잡아간 것일 거야." "
나는 조금 전에 그의 술 반 항아리를 마셨지."
화만루가 놀라움을 숨기지 않고 물었다.
"자네는 벌써 그를 만났나?"
육소봉이 말했다.
"아니야. 술은 그가 곽천청에게 준 것이었네. 그는 주광보기각 뒤쪽산에
작은 집을 가지고 있다는군." 화만루가 놀라 물었다.
"작은 집이라고?"
육소봉이 또박또박 얘기했다.
"그래, 작은 집."
화만루도 일어섰다가 다시 앉았다. 한참을 있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자네는 아까 손수청이 말한 것을 기억하고 있나?"
육소봉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
"독고일학은 이번에 관중에 소식 하나를 듣고 온 것이다. 그는 청의 제일
루가 있는....." 화만루의 얼굴에도 빛이 났다.
"자네는 곽휴의 그 작은 집이 청의제일루라고 생각하지 않나?" 육소봉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이 말은 대답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화만루가 말했다.
"그러나 대금붕왕의 말에 따르면 청의루의 두목은 독고일학이지 않은가!"
육소봉이 말했다.
"그가 얻은 소식이 반드시 맞는 것이 아닐 수도 있지." 화만루도 인정을
하였다.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억울함을 당하기도 하고,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
을 억울하게 만들기도 하지." 육소봉은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지금 주정이 없는 것이 애석하군."
화만루가 물었다.
"왜 그러나?"
육소봉이 말했다.
"그 작은 집에 108개의 장치가 매복되어 있다는데." 화만루가 물었다.
"자네는 그 작은 집에 가보려는 건가?"
"가보고 싶어."
"매복되어 있다는 그 장치들이 자네를 놀라게 하지는 않을까?" "전혀 아
닐 거야."
육소봉은 어떤 일을 시작하면, 절대로 도중에 그만두는 일이 없었다. 어떤
일도 절대로 그를 그만두게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산은 높지 않았고, 산세가 아름답고 뛰어났다. 조금 높은 산 위에서 한 줄
기 등불을 볼 수가 있었다. 등불은 어둠 속에서 더 밝게 빛났다.
화만루의 눈에는 어둠만이 있을 뿐이었다.
육소봉이 말했다.
"나는 그 작은 집을 보았네."
화만루가 물었다.
"어디에 있나?"
육소봉이 대답했다.
"앞에 있는 숲을 지나서야 도착할 수가 있을 거야. 집에는 등불이 아직
켜 있어." "자네 생각에는 곽휴가 거기에 있을 것 같나?"
"모르겠네."
"내가 얘기했듯이, 모든 사람에게는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을 억울하게
하는 때가 있어." "나는 귀머거리는 아니니 들었네."
"나는 자네를 일깨우려는 것뿐이야. 곽휴가 자네의 친구이니 자네에게는
잘 대해줄 거야." 육소봉이 차갑게 말했다.
"자네는 내가 그를 억울하게 할 것이라 여기나? 나는 항상 억울함을 당해
도 다른 사람을 억울하게 하지는 않네." 그는 마음속에 있는 모순된 감정
때문에 답답하다고 느꼈다.
이 일을 빨리 마무리지으려면 이 비밀을 빨리 알리는 것이 가장 좋은 방
법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음흉한 청의루의 두목이 정말로 그의 친구가 아
니기를 바랐다.
숲은 봄 나뭇잎의 맑은 향기를 지니고 있었고, 바람 속의 찬기운이 무겁
기는 했지만 온세상은 평화롭고 안정되어 있었다.
사람도 없고, 소리도 없다. 인간 세상의 왁자함과 번뇌가 이 푸른 산밖으
로 모두가 단절 된 것 같았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고, 가장 두려운 일이 종종 이런 평화로움 속에 숨
어 있다.
육소봉이 말했다.
"나는 이런 상황을 좋아하지 않네."
화만루가 물었다.
"어떤 상황 말인가?"
"지금 여기는 아주 조용하지. 너무 시끄럽거나, 너무 조용할 때에 나는 항
상 긴장감을 느낀다네." "왜 그런가?"
"내가 매번 이상한 일을 만날 때는, 항상 이런 상황에서였거든!" 화만루가
말했다.
"정말로 긴장이 되면 말을 많이 하게. 말을 하다보면 종종 긴장을 잊게
되지." 육소봉이 물었다.
"내가 어떤 얘기를 하기를 원하나?"
화만루가 대답했다.
"곽휴에 대해 얘기해 주게."
"그 사람의 일은 자네도 알고 있는 게 얼마되지 않나 보군." "나는 그가
아주 괴팍하고 이상한 부자 노인이라는 것과, 평생을 두고도 사람 사귀는
것을 싫어해서 그가 가장 신임하는 부하조차도 종종 그를 찾아내지 못한다
는 것이네." 육소봉이 말했다.
"그는 사람을 만나는 것을 싫어할 뿐만 아니라, 여자도 싫어한다네. 그래
서 지금까지 홀아비로 있는 것이지." 화만루가 말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두들 약간은 좋아하는 것이 있을텐데." 육소봉이 말했
다.
"그가 좋아하는 것은 오직 술 마시는 것이야. 술 마시는 것을 좋아할 뿐
만 아니라, 세상의 각양각색의 명주를 모아 저장하는 것도 좋아하지." 화만
루가 말했다.
"듣기로는 그의 무공도 대단하다고 하던데."
육소봉이 말했다.
"나도 그의 무공을 직접 본 적은 없네. 그러나 내가 보증하지만 그의 경
공이나 내공, 혈을 찌르는 기술 등은 누구에게도 뒤떨어지지 않을 거야." 화
만루가 말했다.
"그런가?"
첫댓글 즐독하였습니다
즐감하고 감니다
즐감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즐~~~~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