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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을 보고 과거의 일을 알 수 있는가? 그야 대개는 옛날 사람이 쓴 기록을 보고 조사해서 비로소 알게 된다. 과거의 사실
뿐 아니라 과거의 전설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보물찾기하는 정도 기분으로 한번 들추어 보기로 하자. 물론 그 끝에 금은보
화는 없겠지만......
아이네이아스가 트로이 유민들을 데리고 이탈리아로 갔다는 이야기는 언제부터 존재했을까? 암흑시대를 거치면서 살아남은 전승
이 반영된 작품 가운데 비교적 오래되었다고 생각되는(기원전 8세기경 성립[?]) 자료로 『일리아스』가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는 거의 전설적인 존재인 '눈먼 시인' 호메로스의 작품이라고 한다. 사실 내용상『일리아스』는 트로이측 사령관이었던 헥토르
가 아킬레스와 대결을 하다가 죽고 그 사후 처리를 하는 정도에서 끝이 나므로, 그 뒤에 트로이가 멸망할 때 아이네이아스가 어떻
게 되었는지까지 직접 알려주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 『일리아스』를 살펴보면, 중간에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다음과 같은 상당히
의미심장한 예언을 한다.(Il.20.)
"크로노스의 아들(여기서는 제우스를 뜻함)은 다르다노스(트로이 왕가의 신화적인 조상으로, 제우스 신의 아들이라고
한다)를 필멸의 인간의 딸들에게서 태어난 모든 자식들 중에서 누구보다도 사랑했지요. 프리아모스(트로이의 왕으로,
아이네이아스의 아버지인 안키세스의 사촌이다)의 집안이 이미 크로노스의 아들의 미움을 샀으니, 이제는 아이네이
아스의 힘과 앞으로 태어날 그의 자손들이 대대로 트로이아인들을 다스리게 될 것이오."
트로이아인들을 다스린다는 것은 대체 무슨 의미인가? 비슷한 예언은 기원전 7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아프로디테에
게 바치는 송가」(Homeric Hymn to Aphrodite)에서도 또 등장한다.(H.H.5)
"안키세스여...(중략) 그대는 한 아들을 얻을 것인데, 그가 트로이 사람들을 다스리게 될 것이며, 대대로 번창하리
라."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아무래도 이런 말들이 진짜 신의 예언일 리가 없다. 트로이 전쟁 이후에 일어난 실제 상황을 반영해서 만
든 이야기일 것으로 생각하는 편이 더 합리적일 것이다. 그렇다면 전쟁이 끝나고 그리스군이 물러간 후 아이네이아스와 그 후손-
혹은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트로이를 재건했거나 혹은 그 근처 지역을 지배했던 것일 수도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처럼 보
이는 정보가 기원전후의 지리학자 스트라보의 글에 나온다. 그에 따르면 헥토르와 아이네이아스의 후손들이 '스켑시스'라는 도시
의 왕이 되었다는 정보가 나온다. 스켑시스란 오늘날의 터키 서단쪽에 있던 고대 도시로, 옛 트로이에서는 약간 남동쪽이다. 이 일
대(특히 이다(Ida)산)는 또한 아이네이아스의 원래 연고지였다고 전해진다.
이다(Ida) 산은 아이네이아스가 태어나 자랐다는 곳일뿐 아니라, 그 세력의 본래 수도(구(舊) 스켑시스라고 부른다)도 이곳에 있
었다고 한다. 전쟁이 끝난 후에 그가 이곳으로 돌아왔으리라고 가정해도 부자연스럽지 않다. 따라서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이 전
승은 호메로스의 서사시에 나오는 언급과 부합하는 것처럼 느껴진다.[1]
기가 아직 없었던 것일까? 다른 것 보다는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합리적일 것 같지만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자료가 너무 희소하므
로 단언하기가 어렵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사실 이런 해석은 받아들이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로마인이 바로 트로이인의 후손이
라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아이네이아스가 이탈리아로 갔다고 해도 예언에서 어긋나지는 않는다. 어디에 살건 간에 어쨌건
"트로이 사람들을 다스리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2]
이번에는 반대편으로부터 접근을 해 보자. 로마의 건국담은 처음부터 그런 형태였던 것일까? 확실한 점은, 아이네이아스가 로마의
시조라는 전설은 '표준적인' 전승이지 '유일한' 전승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사실은 제정 시대 작가들이 이미 분명히 고려하고 있
었다.
아우구스투스 시대에 활동한 수사학자 '할리카르나소스의 디오니시오스'는 20권으로 된『로마 고대지』라는 책을 썼다. 이 책은
로마의 초기 역사에 관련된 다양한 전승을 포함하고 있으며, 앞으로 종종 인용하게 될 것이다. 그 1권에서 디오니시오스는 로마 건
국에 관한 다양한 전설들을 소개했는데, 그 가운데는 '오디세이' 로 유명한 영웅 오디세우스와 키르케(오디세우스가 항해 도중에
만났다는 마녀) 사이에서'로무스', '안테이아스', '아르데이아스'라는 세 아들이 태어나, 각각 자기 이름을 딴 도시를 세웠다는
이야기가 들어있다.
문맥으로 보아 여기서 '로무스'가 세운 도시가 바로 로마이다. 나머지 둘은 안티움과 아르데아일 것이다. 한편 플루타르코스도 이
와 비슷한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오디세우스와 키르케의 아들인 '로마누스'가 로마를 세웠다는 것이다.[3]
아이네이아스와 오디세우스는 둘 다 트로이 전쟁의 영웅이며, 전쟁 이후 바다를 헤매며 방랑을 했다는 후일담이 붙은 것도 같다.
그런 두 사람이 모두 로마 건국자의 선조로 거론되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그런데 디오니시오스가 수집한 이야기 중에는 흥미있
는 정도를 넘어 참으로 괴상하게 느껴지는 것까지 있으니, 여기서는 아예 아이네이아스와 오디세우스가 같이 이탈리아에 와
서 로마를 세운다.[4]
전설이나 신화가 지역이나 전승자에 따라 차이를 보이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심지어 역사 기록도 쓰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
르다. 고대의 여러 작가들이 보고한 로마 건국의 내력이 한결같이 똑같았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했을 것이다.
아무튼 형태가 어떻든간에, 아이네이아스가 이탈리아로 갔다는 식의 전설은 비교적 오래된 것 같다. 아이네이아스와 오디세우스
가 함께 로마를 세웠다는 이야기의 경우를 한번 살펴보자. 디오니시오스는 그 출처로 『아르고스의 헤라신의 여사제들』을 제시
했는데 이것은 기원전 5세기 사람인 '레스보스의 헬라니코스'가 쓴 책이다.
그가 어디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로마의 기원을 아이네이아스와 관련짓는 것은 따라서 최소한 기원전 5세기 후
반까지는 거슬러 올라가는 셈이다. 스토리로 보아 이 전설은 그 기원이 되는 보다 단순한 요소들이 합쳐져서 만들어졌으리라고 짐
작해도 크게 어색하지 않다.[5] 즉, 아이네이아스나 그 후손이 로마를 세웠다는 전설은 이미 그 이전부터 존재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이 추측에 도움이 될만한 자료는 있는가?
'스테시코로스'는 기원전 7세기 중엽에서 6세기 중엽에 걸쳐 살았던 시인인데, 지은 작품 가운데『일리오스 함락』이라는 것이 있
다. 그 원문은 실전되어 지금은 볼 수 없다. 바로 여기에 아이네이아스가 이탈리아로 갔다는 언급이 들어 있었으리라는 "견해가 존
재"한다. 로마를 세웠다고까지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유명한 트로이 영웅이 이탈리아까지 왔다는 말이 일단 나온다면 그 다음
단계로 유력한 이탈리아 도시의 건국담과 연결되기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일리오스 함락』은 이미 사라졌다면서 무엇을 보고 그런 사실을 아는가? 문제가 되는 것은 '카피톨리노의 일리카 석판'이
라는 유물이다. 이 석판에는 트로이 전쟁의 여러 장면이 그려져 있는데, 특히 아이네이아스가 트로이를 탈출하여 이탈리아로 가
는 등의 모습이 나온다. 그런데 이와 함께 판의 가운데 쯤에 "스테시코로스의 일리오스 함락" 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어서, 마
치 이 작품이 바로 석판에 나오는 글과 그림에 묘사된 상황의 출처인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이 문구의 실체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많은 논란이 있었다. 석판에 묘사된 모든 장면이 스테시코로스의 시에 출전을 두었을까? 혹
시 일부만 그런 것은 아닐까? 사용된 일부 단어나 소재의 내력에 관해서도 문제가 제기되었으며, 스테시코로스가 그런 말을 했었
다면 어찌하여 그 시인의 작품들을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할리카르나소스의 디오니시오스가 『로마 고대지』에서 이를
지적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도 생기는 것이다.[6]
만약 카피톨리노의 일리카 석판이 정말 『일리오스 함락』에 기반을 두었다고 가정한다면 늦어도 기원전 6세기 중엽, 빠르면 기원
전 7세기 말에 벌써 아이네이아스의 '이탈리아행' 이야기가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인 셈이다. 기원전 6세기 중엽이라면, 로마
는 표준적인 연대기에 따른다면 대략 에트루리아인 왕 세르비우스 툴리우스가 지배하던 시기에 해당한다. 로마 공화국도 아직 출
현하지 않은 먼 옛날이다. 그러나 그 처음의 가정이 아직 확실하지 않다고 생각되므로 짧은 글에서 이 이상 가타부타 말하기란 어
렵겠다.
이제 이번 글을 마치면서 다시 로마인들에게 돌아가자. 정황으로 보아 로마인들은 아이네이아스에 대해 일찍부터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굳이 그들이 정말로 트로이의 후손이라고 가정해야만 할 필요 없이, 로마와 가깝고 아직 로마가 성장하기 전에 이탈리아
중, 북부의 주된 세력이었던 에트루리아에서 아이네이아스가 매우 인기있는 모티프였기 때문이다. 특히 그가 자기 아버지 안키세
스를 구출하여 트로이를 탈출하는 장면이 인기가 있었던 것 같다. 주지하다시피 로마인들은 에트루리아로부터 많은 것을 얻고, 또
배웠다. 자신들의 과거도 에트루리아인들이 좋아하던 옛날 이야기로부터 배웠을까? 결코 불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헬라니코스가 한창 활동하던 기원전 5세기 후반, 로마는 하나의 도시국가였고 중부 이탈리아는 아직 그들의 것이 아니었다. 로마
에서 불과 16km 떨어진 곳에 있던 에트루리아인의 도시 베이이(Veii)는 강적으로, 혈전끝에 로마가 이 도시를 정복하는 것은 기원
전 4세기 초의 일로 전해진다. 로마인들이 자신이 누구이고, 누구의 후손이라고 생각했건 간에 그것은 아직 지중해 세계에서 그다
지 중요하지 않은 문제였다. 아직까지는 말이다.
헬라니코스의 작품과는 별개의 것으로 생각된다. 비슷한 이야기로 생각될 수 있는 문구가 여기에 나타난다. 즉, 뱀이 나타나 라오
콘(그리스군이 놔두고 간 목마를 의심한 사제)을 죽이는 불길한 징조가 나타나자 "아이네이아스와 그 동료들(혹은 아이네이아스
의 동료들?)은 이다 산으로 후퇴했다" 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일리오스 함락(Iliou persis)』은 대부분의 내용이 실전되었으므
로,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기는 어렵겠다.
[2] 스트라보(13.1)를 참고하여 작성했다. 당시에 이미 그런 논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3] Plut. Rom. 2
[4] AR 1.72
[5] 이 전설의 구성 요소에 대해서는 Friedrich Solmsen, 「Aeneas Founded Rome with Odysseus」, 『Harvard Studies in
Classical Philology』, Vol. 90 (1986), pp. 93-110 가 참고된다.
[6] 일리카 석판에 대한 소개와 분석은 Nicholas Horsfall, 「Stesichorus at Bovillae?」, 『The Journal of Hellenic Studies』,
Vol. 99 (1979), pp. 26-48 를 참조할 수 있다.
첫댓글 이건 뭐 논문급이여 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이래서 동양처럼 정사가 필요한 거임. (응?)
서양에는 정사라고 할만한게 없나요???
el5311/ 공화정 시대 로마의 경우, 누가 만들거나 선정하려고 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정사' 로 번역될만한 타이틀을 단 것은 현존하지 않습니다. 여러 역사가가 쓴 책을 비롯한 다양한 사료가 취합되는데, 그것은 오늘날 동아시아 역사를 설명할 때도 다르지는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