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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우리는 미사 때마다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라는 신앙고백을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부활을 이해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나 결국은 믿음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유한한 인간이 무한의 세계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것과 지금의 상태인 육신이 그대로 부활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나의 상태로 부활한다면 얼마나 불공평한 일이며 화낼 사람 또한 얼마나 많겠습니까? 새파란 청춘일 때는 몰라도 나이 들어 허리가 굽어 걷기도 힘든 상태라면, 사고로 신체의 일부가 불편한 상태라면, 그 상태로의 부활은 결코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일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장면을 목격한 사람은 아무도 없으나 부활하신 주님의 발현으로 제자들과 그 외의 많은 이들이 그분을 만났고, 부활을 체험하였기에 그리스도교는 오늘날까지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분을 처음 만난 제자들과 여인들은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다고 성경은 전하고 있지만 이것은 부활하신 분과 십자가에 달리신 분이 동일한 분임에도 부활 후의 모습은 다르셨다는 증거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코린도 15장에서 “한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으면 새 싹이 나서 다른 몸체가 되듯이 우리는 죽어서 비록 썩어 없어질 것으로 묻히지만 썩지 않는 것으로 되살아나고 비천한 것으로 묻히지만 영광스러운 것으로 되살아나며 물질적인 몸으로 묻히지만 영적인 몸으로 되살아난다. 물질적인 몸이 있으면 영적인 몸도 있다”라고 육신의 부활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우리는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겠지만 하느님께 굳은 믿음을 두고 살아가는 한, 그 죽음을 넘어서는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임은 분명합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거룩한 변모를 통해 보여주신 부활에 대한 진정한 믿음이 있다면 죽음을 넘어서는 부활, 고통을 넘어서는 영광, 절망을 넘어서는 희망 이러한 신앙의 신비는 우리의 삶에도 마찬가지로 일어나는 신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죽을 것 같은 큰 고통과 어려움, 역경과 시련을 만나기도 하지만 그것으로 우리 삶이 끝나는 것이 아니지요. 지금의 고통과 시련을 잠시 인내하고 견뎌낸다면, 그 너머에는 큰 기쁨과 열매가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요?
나무와 들풀이 혹독한 겨울을 보내지만 늘 푸른 싹을 내는 것처럼, 또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지만 그 끝에는 언제나 밝은 빛이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육신의 부활을 믿는 부활 신앙이 있기에 오늘 현재도 살아갈 가치가 있으며 앞으로도 미래를 희망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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