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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꾸르실료 DE COLORES 원문보기 글쓴이: 야고보 아저씨
2023년 10월 22일 연중 제29주일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오늘은 전교 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인으로서 받은 선교 사명을 깨닫고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하여 기도하고 행동합시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8,16-20
그때에 16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
17 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18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2023년 전교 주일 담화(2023년 10월 22일)
타오르는 마음, 움직이는 두 발(루카 24,13-35 참조)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올해 전교 주일을 위하여 저는 루카 복음서의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 이야기(루카 24,13-35 참조)에서 영감을 받아 ‘타오르는 마음, 움직이는 두 발’을 주제로 선택하였습니다. 두 제자는 혼란스럽고 낙담하였지만, 말씀 안에서 그리고 빵을 떼며 이루어진 그리스도와의 만남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다시 길을 떠나고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선포하려는 열렬한 열망을 그들 안에 불붙였습니다. 복음서 이야기에서 드러나는 몇 가지 표상들을 통하여 우리는 제자들의 이러한 변화를 이해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성경을 풀이해 주시는 것을 들었을 때에 속에서 마음이 타올랐고, 그분을 알아보았을 때에 눈이 열렸으며, 마침내 두 발을 떼어 길을 떠났습니다. 선교하는 모든 제자의 여정을 반영하는 이 세 가지 표상을 묵상함으로써 우리는 오늘날 세상의 복음화를 위한 열정을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1.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올랐습니다. 선교 활동에서 하느님 말씀은 마음을 밝혀 주고 변화시킵니다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두 제자의 마음은, 그들이 믿었던 예수님의 죽음으로 낙담한 표정에서 드러나듯이 침통하였습니다(루카 24,17 참조). 십자가에 못 박힌 스승의 실패를 마주하며, 그분이야말로 메시아일 것이라는 그들의 기대는 무너졌습니다(루카 24,21 참조).
그때, “그렇게 이야기하고 토론하는데, 바로 예수님께서 가까이 가시어 그들과 함께 걸으셨습니다”(루카 24,15). 제자들을 처음 부르셨을 때와 같이 주님께서는 두 제자들이 혼란을 느끼는 지금도 주도권을 잡으십니다. 그분께서 그들에게 다가가시고 그들 곁에서 걸으십니다. 마찬가지로 주님께서는 크신 자비로, 우리의 모든 실패, 의심, 나약함 그리고 우리를 ‘어리석고 마음이 굼뜨게’(루카 24,25 참조) 하며 믿음이 약한 사람들이 되게 하는 실망과 비관에도 우리와 함께하시는 데에 지치지 않으십니다.
그때처럼 오늘날에도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당신의 선교하는 제자들 가까이에 머무르시고 그들 곁에서 걸으십니다. 그들을 에워싸고 압도하려 하는 무법의 신비에 그들이 길을 잃고 낙담하며 두려워할 때 특히 그렇게 하십니다. 그러니, “희망을 빼앗기지 않도록 합시다!”(「복음의 기쁨」, 86항) 주님은 우리의 모든 문제보다 크시고, 특히 우리가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는 우리의 사명을 수행하며 그러한 문제들을 만날 때에 더 크신 분이십니다. 결국 이 사명은 그분의 것이며 우리는 그분의 겸손한 협력자이자 “쓸모없는 종”(루카 17,10)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세상의 모든 선교사, 특히 그 어떤 형태로든 고난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저의 친밀함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벗 여러분, 부활하신 주님께서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먼 땅의 복음화 사명을 위한 여러분의 관대함과 그 사명을 위하여 여러분이 치르고 있는 희생을 보십니다. 우리 삶의 모든 날이 평온하고 쾌청한 것은 아닐지라도 주 예수님께서 수난 전에 당신의 친구들에게 하신 말씀을 결코 잊지 맙시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두 제자의 이야기를 들으시고 나서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습니다”(루카 24,27). 제자들이 나중에 서로 이야기한 것처럼, 그들의 마음에 전율이 흘렀습니다. “길에서나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루카 24,32)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도록 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신 예수님께서 바로 살아 있는 말씀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마음을 밝혀 주시고 변화시키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면에서 우리는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다.”(「이사야서 주해」[Commentarii in Isaiam], 서문)라는 예로니모 성인의 말씀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을 열어 주시는 주님께서 안 계신다면, 성경을 깊이 이해하기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반대의 경우도 참으로 그러합니다. 곧 성경이 없다면 이 세상에서 예수님과 그분 교회의 사명에 따른 여러 사건은 이해되지 못한 채 남아 있을 것입니다”(‘하느님의 말씀 주일’ 제정에 관한 교황 교서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1항). 이는 성경에 대한 지식이 그리스도인의 삶에 그리고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을 선포하는 데에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로 이어집니다.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은 자신의 생각이나 계획이 아닌 무엇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고 있는 것입니까? 차가운 마음은 결코 다른 이의 마음을 타오르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성경의 의미를 풀이해 주시며 우리와 동행하시려는 부활하신 주님께 언제나 기꺼이 우리 자신을 내어 맡깁시다. 주님께서 우리 속에서 마음이 타오르게 하시기를 빕니다. 주님의 성령께서 주시는 힘과 지혜로 우리가 세상에 주님 구원의 신비를 선포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우리를 밝혀 주시고 변화시키시기를 빕니다.
2. 빵을 떼실 때에 우리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은 사명의 원천이며 정점이십니다
하느님 말씀으로 그들의 마음이 타올랐다는 사실은,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이 신비로운 나그네에게 날이 저물고 있으니 함께 묵자고 청하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함께 식탁에 앉았을 때에 예수님께서 빵을 떼시자 그들의 눈이 열렸고 그분을 알아보았습니다. 제자들의 눈이 열리게 한 결정적 요인은 예수님께서 하신 행동의 순서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셨으며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셨습니다. 이는 유다인 집안의 가장이 하는 일상적 행동들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은총과 함께 행하시니 그 행동들은 그분과 함께 식탁에 앉은 두 사람에게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의 표징과 무엇보다 성찬례 곧 십자가 희생의 성사의 모든 표징을 새롭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빵을 떼시는 예수님을 그들이 알아보았을 때 “그분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습니다”(루카 24,31). 여기서 우리는 우리 신앙의 본질적 실재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곧 빵을 떼시는 그리스도께서 이제는, 제자들이 함께 나누고 먹었던 떼어진 빵이 되신 것입니다. 제자들을 더욱더 타오르게 하시고자 이제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의 마음에 들어가셨기에 그분은 더 이상 눈에 보이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이는 부활하신 주님과의 만남이라는 자신들의 고유한 체험을 모든 이와 나누고자 곧바로 길을 떠나도록 제자들을 재촉합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빵을 떼어 주시는 분이시면서 동시에 우리를 위하여 떼어진 빵 자체이십니다. 이는 선교하는 모든 제자가, 예수님처럼 그리고 그분 안에서, 성령의 활동을 통하여 빵을 떼고 세상을 위하여 떼어진 빵이 되도록 부름받았다는 사실로 이어집니다.
여기서 기억해야만 하는 것은 굶주린 이들을 위하여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물질적인 빵을 떼는 것이 이미 그리스도인 사명의 활동이라는 사실입니다. 성찬례가 교회의 삶과 사명의 원천이자 정점일진대, 탁월하게 뛰어난 사명의 활동, 그리스도 자체인 성찬의 빵을 떼는 것보다 더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베네딕토 16세 교황께서는 다음과 같이 알려 주셨습니다. “우리가 성체성사로 거행하는 사랑은 우리 혼자만 간직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랑은 본성상 모든 이와 나누어야 합니다.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세상은 그리스도를 뵙고 그분을 믿어야 합니다. 따라서 성찬례는 교회 생활뿐 아니라 교회 사명의 원천이며 정점입니다. 곧 ‘진정한 성찬의 교회는 선교하는 교회입니다.’”(「사랑의 성사」, 84항).
열매를 맺으려면 우리는 예수님과 일치되어 있어야 합니다(요한 15,4-9 참조). 이 일치는 매일의 기도, 특히 성체 조배를 통하여, 성체 안에 우리와 함께 계시는 주님의 현존 앞에 침묵하며 머무를 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맺는 이 친교를 마음을 다하여 키움으로써 선교하는 제자는 행동하는 신비가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날이 저물 때,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열렬한 간청을 되새기면서 우리 마음이 언제나 예수님의 친구가 되기를 열망하기를 빕니다.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주님!’(루카 24,29 참조).
3.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관하여 다른 이들에게 전하는 기쁨으로 우리는 두 발을 떼어 길을 떠납니다. 언제나 밖으로 나가는 교회의 영원한 젊음
눈이 열려 ‘빵을 떼시는’ 예수님을 알아본 다음, 제자들은 ‘지체 없이 길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루카 24,33 참조). 주님을 만난 기쁨을 다른 이들과 나누고자 서둘러 길을 떠나는 이 모습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복음의 기쁨은 예수님을 만나는 모든 이의 마음과 삶을 가득 채워 줍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죄와 슬픔, 내적 공허와 외로움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기쁨이 끊임없이 새로 생겨납니다”(「복음의 기쁨」, 1항). 모든 이에게 예수님에 대하여 전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타올라 길을 떠나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참되게 만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선교를 위한 가장 근본적이고 주요한 자원은 성경과 성찬례 안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알게 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자기 마음에 그분의 불을, 자기 눈빛에 그분의 빛을 지니고 다닙니다. 그들은 가장 어려운 상황과 가장 어두운 순간에서조차 결코 사멸하지 않는 생명을 증언할 수 있습니다.
‘길을 떠나는 두 발’이라는 표상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모든 사람과 민족에게 심지어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교회에 맡기신 사명, ‘만민 선교’(missio ad gentes)의 영원한 유효함을 다시 한번 우리에게 상기시킵니다. 그 어떤 때보다도 오늘날, 너무나 많은 불의한 상황과 너무나 많은 분열과 전쟁들로 상처 입은 우리 인류 가족에게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평화와 구원의 기쁜 소식이 필요합니다. 저는 이번 기회를 통하여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모두 복음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든 이에게 선포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의무를 강요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쁨을 나누는 사람, 아름다운 전망을 보여 주는 사람, 그리고 풍요로운 잔치에 다른 이들을 초대하는 사람입니다”(「복음의 기쁨」, 14항). 선교적 회심은, “선교 활동이 모든 교회 활동의 패러다임”(「복음의 기쁨」, 15항)이기에 우리가 개인적으로 그리고 공동체적으로 우리 자신을 위하여 세워야 하는 중요한 목표로 남아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확언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사랑은 우리를 사로잡고 다그칩니다(2코린 5,14 참조). 이 사랑은 두 가지 측면을 지닙니다. 곧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이며, 그 사랑이 그분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불러일으키고 영감을 주며 자극합니다. 교회가 끊임없이 새롭게 길을 떠나는 가운데 영원히 젊게 해 주는 사랑입니다. “그분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살아 있는 이들이 이제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자기들을 위하여 돌아가셨다가 되살아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시려는 것”(2코린 5,15)이라는 확신 안에서 교회의 모든 구성원에게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사명이 맡겨집니다. 우리는 모두 이 선교 운동에 힘을 보탤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와 활동, 물질적 봉헌과 우리 고통의 봉헌, 우리의 개인적 증언들을 통해서 할 수 있습니다. ‘교황청 전교기구’는 영적 차원과 물질적 차원 모두에서 이 선교 협력에 힘을 싣는 특별한 수단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전교 주일에 모인 헌금은 ‘교황청 전교회’에 봉헌됩니다.
교회의 선교 활동의 시급성은 자연스럽게 모든 교회 구성원과 모든 차원에서의 더욱 친밀한 선교 협력을 요청합니다. 이는 교회가 친교, 참여, 사명이라는 핵심 단어에 따라 수행하고 있는 시노달리타스 여정의 근본적 목표입니다. 이 여정은 교회가 자기 자신 안으로 돌아서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믿고 실천하여야 하는 것에 대한 국민 투표도 아니며, 인간적 선호도의 문제도 분명히 아닙니다. 오히려 이는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처럼 부활하신 주님께 귀 기울이며 길을 떠나는 과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의 뜻을 풀이해 주시고 우리를 위하여 빵을 떼시고자 언제나 우리 가운데 오십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성령의 힘으로 세상에서 그분의 사명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길에서 겪은 일에 대하여 다른 이들에게 이야기한 것(루카 24,35 참조)과 똑같이, 우리의 선포 또한 주님이신 그리스도와, 그분의 삶과 수난과 죽음과 부활, 그리고 우리 삶 안에서 그분의 사랑이 완성하신 경이로운 일들에 대한 기쁜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주님과의 만남으로 밝혀지고 그분의 영의 다그침을 받아 우리 다시 한번 길을 떠납시다. 타오르는 마음과 열린 두 눈과 움직이는 두 발로 다시 한번 길을 떠납시다. 다른 이들의 마음이 하느님 말씀으로 타오르게 하고 다른 이들의 눈이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께 열리게 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온 인류에게 베풀어 주신 하느님의 평화와 구원의 길을 모든 이가 함께 걷도록 초대하기 위하여 길을 떠납시다.
길이신 우리의 모후,
그리스도의 선교하는 제자들의 어머니,
선교의 모후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로마 성 요한 라테라노 대성전에서
2023년 1월 6일
주님 공현 대축일
프란치스코
[내용출처 - https://cbck.or.kr/Notice/20230442?page=2&gb=K1200 ]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10,9-18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9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0 곧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11 성경도 “그를 믿는 이는 누구나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 하고 말합니다.
12 유다인과 그리스인 사이에 차별이 없습니다. 같은 주님께서 모든 사람의 주님으로서,
당신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13 과연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4 그런데 자기가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받들어 부를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15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16 그러나 모든 사람이 복음에 순종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이사야도 “주님, 저희가 전한 말을 누가 믿었습니까?” 하고 말합니다.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18 그러나 나는 묻습니다. 그들이 들은 적이 없다는 것입니까? 물론 들었습니다.
“그들의 소리는 온 땅으로, 그들의 말은 누리 끝까지 퍼져 나갔다.”
축일10월 22일 성 요한 바오로 2세 (John Paul II)
신분 : 교황
활동 연도 : 1920-2005년
같은 이름 : 바울로, 바울루스, 빠울로, 빠울루스, 얀, 요안네스,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파울로, 파울루스, 폴, 후안
1920년 5월 18일 폴란드 바도비체(Wadowice)에서 탄생한 카롤 요제프 보이티와(Karol Josef Wojtyla)는 1978년 10월 16일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아버지 카롤 보이티와(Karol Wojtyla)와 어머니 에밀리아 카초로프스카(Emilia Kaczorowska)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세례를 받았다. 교사였던 그의 어머니는 1929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의사였던 그의 형 에드문트(Edmund)도 1932년에 사망하였다. 폴란드 육군 하사관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점령하고 있던 1941년에 세상을 떠났다. 어린 시절과 청년기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는 아픔을 겪은 그는 9살 때 첫영성체를 하고 18살 때 견진성사를 받았다. 고향인 바도비체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크라쿠프(Krakow)의 야기엘론스키(Jagiellonski) 대학교에 입학하였다. 1939년 9월 폴란드를 점령한 나치 세력이 대학교를 폐쇄하자 젊은 카롤은 독일군으로 징집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석회암 채석장과 솔웨이(Solway)의 화학 공장에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사제 성소를 발견한 카롤은 1942년부터 아담 사피에하(Adam Sapieha) 대주교가 운영하는 크라쿠프의 지하 신학교에서 비밀리에 사제 수업을 받기 시작하였다. 또한 카롤은 지하 극단인 ‘랩소디 극장’의 연극 활동에 참여하고 후원하기도 하였다. 종전 이후 카롤은 다시 열린 크라쿠프 신학교와 야기엘론스키 대학교 신학부에서 학업을 계속하여 1946년 11월 1일 크라쿠프 교구장인 아담 사피에하 추기경으로부터 사제품을 받았다. 그 후 아담 사피에하 추기경은 그를 로마로 보내 계속해서 공부하도록 했다. 그는 1948년 6월 십자가의 성 요한의 작품에 드러난 신앙을 주제로 쓴 논문(Doctrina de fide apud S. Ioannem a Cruce)으로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당시 그는 방학이 되면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에 있는 폴란드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사목활동을 하였다.
1948년 여름에 폴란드로 돌아온 그는 크라쿠프 인근 니에고비치(Niegowice) 마을의 승천 성당과 크라쿠프의 성 플로리아누스(Florianus) 성당에서 본당신부로 사목하였다. 1951년까지 그는 야기엘론스키 대학교의 교목으로 있으면서 철학과 신학 연구를 계속하였다. 1953년 그는 루뱅 대학교에서 “막스 셸러(Max Scheler)의 윤리 체계를 바탕으로 한 그리스도교 윤리학 성립 가능성에 관한 성찰”을 주제로 한 박사 논문을 제출하였다. 그 후 그는 크라쿠프 신학교에서 사회윤리학을 강의하고, 1956년에 가톨릭 루블린 대학교(Catholic University of Lublin)의 윤리학 교수가 되었다. 그 당시 그는 가톨릭 신문에 현대 교회의 문제에 대한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글을 기고했고, 시와 희곡에도 관심을 두어 여러 작품을 출판했으며, 학생들과의 다양한 야외 활동과 운동 및 토론에도 즐겨 참여하였다.
1958년 7월 4일 교황 비오 12세(Pius XII)는 그를 옴비(Ombi)의 명의 주교 겸 크라쿠프 교구의 보좌주교로 임명하였다. 그는 1958년 9월 28일 크라쿠프의 바벨 주교좌성당(Wawel Cathedral)에서 유게니우스 바지아크(Eugeniusz Baziak) 대주교에게서 주교품을 받음으로써 38세로 폴란드에서 가장 젊은 주교가 되었다.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는 1963년 12월 30일 그를 크라쿠프의 대주교로 임명하였고, 1967년 6월 26일에는 추기경으로 임명하였다. 카롤 보이티와 대주교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년)에도 참석하여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 헌장”(Gaudium et spes)과 “종교 자유에 관한 선언”(Dignitatis Humanae)을 준비하는 데에도 기여하였다. 그는 또한 교황직에 오르기 전까지 세계주교대의원회의(Synod of Bishops)의 다섯 번의 회의 중 네 번을 참석하였다.
그는 1978년 10월 16일 제264대 교황으로 선출됨으로써 교황 하드리아누스 6세(Hadrianus VI, 1522~1523년 재위) 이래 455년 만의 비(非)이탈리아인 교황이자 최초의 슬라브인 교황이 되었다. 1978년 10월 22일에 교황으로 즉위하여 보편 교회의 목자 직무를 수행하기 시작하였다. 교황 성 바오로 6세의 선종 이후 교황좌에 오른 교황 요한 바오로 1세(Joannes Paulus I)가 한 달여 만에 갑자기 선종한 후 교황으로 선출된 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시작한 교황 성 요한 23세(Joannes XXIII)와 공의회를 마무리한 교황 성 바오로 6세의 뜻을 계승하고자 한 전임자의 뜻을 이어받아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라는 교황명을 선택하였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27년간 사도좌 직무를 수행하면서 이탈리아에서 146회의 사목 방문을 하고, 로마 교구장으로서 로마의 332개 본당 중 317개의 본당을 방문하였다. 그는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로서 보편 교회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나타내기 위하여 세계 129개국을 사목 방문했다.
그가 반포한 주요 문헌으로는 14개의 회칙, 15개의 교황 권고, 11개의 교황령과 45개의 교황 교서가 있다. 그는 또한 여러 책도 저술하였다. 여기에는 “희망의 문턱을 넘어서”(Crossing the Threshold of Hope, 1994년 10월), “은총과 신비 : 사제 수품 50주년을 맞이하여”(Gift and Mystery : On the Fiftieth Anniversary of My Priestly Ordination, 1996년 11월), “로마 삼부작 - 명상”(Roman Triptych : Meditations, 2003년 3월), “일어나 가자”(Rise, Let Us Be On Our Way, 2004년 5월), “기억과 신원”(Memory and Identity, 2005년 2월) 등이 포함된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47차례의 시복식을 주재하여 1,338명을 복자품에 올렸고, 51차례의 시성식을 주재하여 총 482명을 성인품에 올렸다. 또한 9차례의 추기경 회의를 소집하여 231명(1명의 비밀 추기경 제외)의 추기경을 임명하였다. 그는 1978년부터 세계주교대의원회의를 15회 소집하였다. 여기에는 정기총회 6회(1980, 1983, 1987, 1990, 1994, 2001년), 임시총회 1회(1985년), 특별총회 8회(1980, 1991, 1994, 1995, 1997, 1998[2회], 1999년)가 있다.
1981년 5월 13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성 베드로 광장에서 신자들과 만나는 도중 괴한의 습격을 받아 총탄을 맞고 쓰러졌다. 성모님의 자애로운 손길 덕분에 총알이 그의 심장을 살짝 비켜 가서 목숨을 구한 그는 대수술 후 오랜 회복기를 거친 다음 암살 미수범이 있는 교도소를 직접 찾아가 대화를 나누고 그를 용서하였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새 삶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더욱 영웅적 덕행을 발휘하며 사목 활동에 힘을 쏟았다. 그는 목자로서 신자들을 배려하기 위해 많은 교구를 설립했고, 라틴 가톨릭 교회와 동방 가톨릭 교회를 위한 교회법전도 공표하였다. 또한 하느님 백성을 격려하는 특별한 영적 의미가 있는 구원의 해, 마리아의 해, 성체성사의 해, 2000년 대희년 등을 제정하였다. 그는 또한 신앙에 대한 젊은이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s)를 제정하였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만큼 사람들을 많이 만난 교황은 없을 것이다. 매주 수요일에 있는 일반 알현(1,160회 이상) 때 1천 7백만 명 이상의 순례객이 교황을 만났다. 여기에 특별 알현이나 예식(2000년 대희년에만 800만 명), 이탈리아를 포함 전 세계의 사도 방문에서 만난 수백만의 신자들이 추가된다. 38회의 공식 방문을 통하여 많은 정부 관리도 교황을 알현하였다. 그리고 738차례의 알현과 모임을 통해 국가 원수들을, 246회의 알현과 모임을 통해 총리들을 만났다.
1996년부터 파킨슨병을 비롯한 여러 합병증으로 고생하던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바티칸 교황궁에서 2000년에 그가 제정한 하느님의 자비 주일(부활 제2주일, 사백주일) 전야인 2005년 4월 2일 토요일 오후 9시 37분에 선종하였다. “나는 행복합니다. 그대들도 행복하십시오.”라는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선종한 그는 4월 8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거행된 장례미사 뒤에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의 지하 무덤에 묻혔다. 그리고 2011년 5월 1일, 생전에 그가 제정하고 그 전야에 선종한 하느님의 자비 주일에 로마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Benedictus XVI)에 의해 가톨릭 교회 역사상 최단기간에 복자품에 올랐다. 그의 축일은 교황 즉위 기념일인 10월 22일로 정해졌다. 그리고 2014년 4월 27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에 프란치스코(Franciscus) 교황에 의해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성 요한 23세 교황과 함께 시성식을 갖고 성인품에 올랐다.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과 시성은 한국 가톨릭 교회에도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1984년 5월 3일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황 중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으며, 6일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100만여 명이 운집한 가운데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미사와 한국 103위 순교복자 시성식을 거행했다. 이는 시복 시성식을 바티칸에서 거행하는 교회의 오랜 전통을 깬 파격이기도 했다. 1989년 10월 5일 제44차 세계성체대회를 맞아 다시 한국을 찾은 그는 65만여 명이 운집한 여의도 광장에서 남북한의 화해를 바라는 평화 메시지를 낭독했고, 5·18 광주 민중항쟁의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두 번에 걸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의 방한은 한국 천주교회의 비약적인 성장에 큰 영향을 끼쳤다.
오늘 축일을 맞은 요한 바오로(John Paul)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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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꾸르실료 DE COLORES 원문보기 글쓴이: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