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4월 28일은 이충무공 탄신
제481주년을 맞는 날입니다.
이날은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충의를 길이 기리고 빛내고자 제정한
법정 기념일입니다.
충무공탄신일에는 충무공의 우국충정을
기리는 다양한 기념행사가 열리며,
이는 1545년 4월 28일 태어난
이순신 장군의 탄신을 기념하는 것으로,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법정 기념일로 지정돼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충무공과 오리 이원익 정승과의
얽힌 사연의 실록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리 이원익 정승의 직언
-오리 이원익(梧里 李元翼) 정승
이순신을 죽음에서 살려낸 청백리-
1597년(선조 30년), 정유재란 속에서 조선은
깊은 수렁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해 2월, 원균의 모함으로 나라를 지켜온 영웅,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은 왕명을 거역했다는 죄로
한산 통제영에서 체포됩니다.
한양으로 압송되어 옥에 갇혀 국 형장이 열려
혹독한 국문(고문)을 받으며 사형을 눈앞에 둔
상황이었습니다.
이순신에 대한 국문이 진행되던 어전 회의에서
선조는 이순신을 '무군(無君)한 죄인‘으로 단정하고
사형을 강하게 밀어붙였고, 대신들은 한 목소리로
외칩니다. “역적이니 마땅히 죽여야 합니다.”
대부분의 대신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 침묵하거나
선조의 뜻에 동조했습니다.
그를 발탁했던 유성룡조차 “공은 공, 사는 사”라며
나서지 못했습니다.
동조와 침묵이 가득한 절체절명의 순간, 두 명의
재상이 나섭니다.
한 사람은 우의정 정탁(鄭琢)은 '신구차(伸救箚)’
라는 상소문으로 구명을 청해 선조의 마음을
움직였고,
또 한 사람은 바로 영의정 이원익(李元翼, 1547~
1634)입니다. 이원익의 호(號)는 오리(梧里)입니다.
그래서 이원익을 흔히 오리 이원익, 또는 오리
대감이라고 불렀습니다.
그의 초라한 초가집이 오동나무(梧, 오)가 있는
마을(里, 리)에 있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청렴결백한 삶을
상징하는 별칭이 되었습니다.
그가 결정적인 직언을 올리기를,
“이순신을 죽이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신을 이해시킬 대안을 내 놓으신다면
따르겠습니다.
단, 원균만은 제외해 주시옵소서
또한 전하께서 전시에 신을 폐하지 못하시듯,
신 또한 전쟁 중 이순신을 폐할 수 없사옵니다.”
이 한마디는 단순한 변호가 아니었습니다.
원균의 무능함을 지적함과 함께, 이순신 외에
조선 수군을 맡길 인물이 없다는 냉정한 현실을
짚은, 국가를 위한 현명한 판단이었습니다.
당시 이원익은 육·해군을 총괄하는 도체찰사로,
전시 최고 책임자였습니다.
전시 상황에서는 그의 승낙 없이는 중대한 군사
결정이 어려운 위치였습니다.
결국 선조는 사형을 거두고, 이순신에게 백의
종군을 명합니다.
그리고, 그는 다시 바다로 돌아가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합니다.
이 결정은 조선 수군을 되살리고 나라를 지키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올바른 판단이
한 나라의 운명을 바꾼 순간이었습니다.
권력보다 무거운 책임
이원익의 말이 힘을 가졌던 이유는 그의
삶이었습니다.
그는 선조· 광해군· 인조 세 왕을 섬긴 영의정
이었지만, 평생 초가집에서 살며 청렴을 지킨
청백리였습니다.
“뜻과 행동은 나보다 나은 사람과 비교하고,
분수와 복은 나보다 못한 사람과 비교하라.”
라고 주장하는 사심 없는 삶이 있었기에 그의
말은 권력보다 무거웠습니다.
그의 직언은 단순한 반대가 아니라, 대안 없는
처벌은 곧 국가의 파멸이라는 준엄한 경고이기도
하였습니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한 사람을 끝까지 지켜낸
신념, 그 판단은 한 장수를 살렸고, 결국 나라와
백성을 살렸습니다.
아무리 힘든 시대라도 마음을 알아주는 단 한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대장부의 자존심이요
명예일 것입니다.
이순신은 그런 사람을 같은 시대에 만난,
어쩌면 행복한 인물이었습니다.
오리 이원익은 87세로 생을 마감하며 자식들
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고, 사당이나 비석도
세우지 말라.”
그래서일지도 모릅니다.
그의 이름은 조용히 남았지만, 그의 정신은
더 깊이 살아 있습니다.
세월이 430여 년이 흘렀습니다.
시대는 변했지만, 권력 앞에서 침묵하는
모습은 낯설지 않습니다.
역사를 바꾸는 것은 많은 사람이 아니라,
결국 올바른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시대에도 묻고 싶습니다.
과연 이원익과 같은, 청렴하고 정정당당하고
판단력이 뛰어나며 책임감이 투철한 충신,
이만큼 훌륭한 인물이 있는가.?
- 옮긴 글 -
첫댓글
이순신장군은 정말 명장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