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레길을 자주 걷습니다. 특히 가을에는... 한 방향으로 걸으라는 표지가 있는 곳도 있고, 그냥, 임의로 걸으면 되는 길도 있습니다. 걷다 보면 방향에 따라 보이는 게 많이 달라짐을 느낍니다. 가끔 뒤돌아보기도 하지만 그것과, 아예 걷는 방향을 반대로 하는 것과는 풍경이 달리 느껴집니다. 같은 사물이라도 보는 방향, 걷는 방향에 따라 이리 달리 보이는데 사람의 일은 오죽하겠다 싶습니다. 한겨레와 조선일보를 같이 보는 이유이며, 경향신문과 동아일보를 함께 읽는 이유입니다.
불가에서는 생로병사를 인생의 네 가지 고통으로 얘기합니다. 대부분의 이에겐 ‘생’빼고는 모두 고통으로 느껴집니다. 하지만 저는 ‘사’가 늘 고통인 건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행복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는 거라 생각합니다. 다만, 남은 이에게는 슬픔이자 고통일 수 있겠지요. ‘죽음’을 우리말로는 참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죽었다(돌아가셨다), 갔다, 세상을 하직했다, 떠났다, 유명을 달리했다 등 한글 표현 외에 한자어로 30여개의 단어가 있네요. 종교별로는 기독교에서는 소천, 천주교에서는 선종, 불교에서는 열반, 입적, 타계라고 합니다. 영어에서도 died 외에 pass away, kick the bucket, push up daisies, depart from this life, bite the dust 등 다양한 표현이 존재하지만 한국어의 다양한 표현에는 못 미칩니다.
며칠 전 노태우 전 대통령이 작고하셨고, 그 소식을 언론매체에서 일제히 전했습니다. 타이틀에 그분의 ‘죽음’을 표현한 단어 선정을 보고 그 언론사가 견지하는 입장을 바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한겨레신문,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연합뉴스, KBS, MBC, SBS에서는 ‘사망’이란 표현을 썼고, 조중동에서는 ‘서거’, ‘별세’라는 단어를 썼더군요.
인터넷사전에서 보면 죽음은 ‘생물의 목숨이 끊어지는 일’을 이르고, ‘별세는 ’윗사람이 세상을 떠남‘, ’서거는 ‘'죽어서 세상을 떠남' 의 높임말’, ‘사망은 ’사람의 목숨이 끊어짐‘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론 어느 쪽에 치우치지 않은 ’작고‘로 표현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작고‘는 사전에 ’고인이 되었다는 뜻으로, 사람의 죽음을 높여 이르는 말‘이라 풀어놓았습니다. 어찌되었건 그는 오늘 공과 과를 모두 뒤로 하고 국가장을 치른 뒤 영면에 들었습니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중 공만 있는 이도, 과만 있는 이도 없지만 정권에 따라 공이 지나치게 부각되기도 하고, 과가 모든 걸 덮어버리기도 합니다. 아쉬운 지점입니다. 진보의 입장이건, 보수의 관점이건 잘 한건 잘 한 것이고,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으로 평가하는 게 맞습니다. 당리당략 때문에, 개인의 유불리에 따라 개관적 사실을 주관으로 덮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요즘 더욱 강해집니다. 선거철이 다가오면서 그런 경향도 짙어지고, 그에 따른 제 느낌도 강해집니다.
우리말에 '눈부처'라는 말이 있습니다. "눈동자에 비치어 나타난 사람의 형상"이라는 뜻입니다. 눈부처는 두 사람이 서로 똑바로 마주 봤을 때
상대방의 눈동자에 보이는 내 모습입니다. 다른 사람의 눈을 마주할 때 비로소 나를 발견하게 되는 거죠. 제발 남 탓하고 흠집 내기 전에 자신을 먼저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상대방의 눈동자에 비친 게 바로 ‘적확한 나’입니다.
자연은 대상을 가려 자신을 꾸미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변화하면서도 일관된 모습으로 우리에게 항상 감동을 줍니다.
https://blog.naver.com/bornfreelee/222551624813
https://blog.naver.com/bornfreelee/222549217325
역사를 되돌아보는 일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개인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공과 과를 부족하지 않고 넘치지도 않게...
https://blog.naver.com/bornfreelee/222553187894
눈부처(모셔온 글)=======
그대의 눈동자에 아직
내가 새겨지지 않았다면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서서
그대의 눈부처 되리
떠나가도 헤어져도
오래오래 잊혀지지 않는
사랑한다 말해놓고 돌아서면
지워지는 그림자가 아니라
무시로 스쳐가는 구름이 아니라
호수의 바닥이 된 하늘처럼
깊이 뿌리내리고
눈 깜박일 때마다
눈동자 가득 살아나는 얼굴
나, 그대의 눈부처 되리
-----문수현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