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 시조에서 격물치지의 구현: 자연, 인간, 그리고 존재의 탐구

[김태균]

■ 현대 시조에서 격물치지의 구현: 자연, 인간, 그리고 존재의 탐구

‘격물치지(格物致知)’의 격(格)은 가까이 마주한다는 뜻이고 물(物)은 물질세계의 모든 것을 일컫는 개념이다. 치지(致知)는 아는 것의 극치, 즉 인간의 능력껏 최대한 정확하고 자세히 안다는 뜻이다. 이는 사물의 본질을 깊이 탐구하고, 이를 통해 얻은 깨달음과 지식을 삶과 예술에 적용하는 과정을 강조한다. 이런 의미에서 격물치지는 시조 창작 원리와 맞닿아 있다. 사물의 본질을 깊이 관찰하고, 이를 통해 시적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다. 이는 자연의 현상과 일상의 사물에서 얻은 깨달음을 통해 삶의 의미를 탐구하고, 개인의 경험과 감정을 통해 보편적 인간 경험을 표현하는 것을 포함한다.

1. 현상이나 사물의 본질 탐구

현대시조는 일상적인 사물이나 자연 현상을 깊이 있게 관찰하고, 그 속에 담긴 본질적 의미를 발견하는 데 중점을 둔다. 이는 격물치지가 지향하는 바와 일치한다. 시인은 사물의 외형적 묘사를 넘어, 그 내면에 숨겨진 의미와 이치를 탐구하여 작품에 담아낸다. 예를 들어, 최은희의 「흐미 초원의 노래」에서는 몽골의 자연과 유목민들의 생활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탐구하고, 이를 시조로 잘 풀어낸다.

  초원에 터를 잡은 바람의 아들딸이

  목울대에 깊이 박힌 심연(深淵)의 소리 뽑아

  대륙에 아침을 연다

  제국의 그날처럼

  나직하되 굵은 목청 말발굽을 일으키며

  갓난아기 살찌우는 유르트 속 자장가

  청청한 하늘 소리에

  범접 못 할 땅 울림

  달려도 지치지 않는 지상의 모든 것들

  시나브로 흐려지는 몽고반점 다독이며

  또 한 번 사자후 토할

  칭기즈칸 부른다.

-최은희 「흐미 초원의 노래」 전문

이 작품에서는 초원의 바람, 유르트 속 자장가 등 자연과 인간 생활의 구체적인 이미지를 통해 자연과 인간의 상호작용을 깊이 있게 탐구하고 있다.

2. 철학적 성찰과 깨달음

현대시조는 짧은 형식 속에 많은 의미를 담아내야 하기 때문에 깊은 철학적 성찰과 깨달음을 요구한다. 격물치지의 정신은 이러한 성찰을 통해 사물의 이치를 깨닫고, 이를 바탕으로 더 높은 수준의 지식과 지혜를 추구하는 것이다. 임만규의 「사막에서」는 사막이라는 극한의 자연 환경을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고, 내면의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참으로 멀리 왔다 그래도 가야 한다

  눈앞이 황량하니 나도 곧 사막되나

  세상은 열려있어도

  길 찾기는 어렵다

  욕망은 신기루라 꿈처럼 뒤척이고

  먼 길을 걸어가면 추억도 짐이 되나

  가슴이 너무 기름져

  발걸음이 무겁다

  여기서 실종되면 세상은 끝이 난다

  마음을 열어야지 모래에 갇히려나

  버리고 모두 버리고

  가족 찾아 걷는다

-임만규 「사막에서」 전문

이 작품에서는 사막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인간 내면의 고독과 갈등을 탐구하며, 이를 통해 얻은 깨달음을 시조라는 그릇에 담아내고 있다.

3. 인간 경험의 보편성 표현

현대시조는 개인의 경험과 감정을 통해 보편적 인간 경험을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둔다. 격물치지의 정신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인간 경험의 본질을 탐구하고, 이를 통해 얻은 깨달음을 작품에 반영하는 것이다. 유성철의 「얼마나 될까」는 인간 관계의 거리감을 별과 별 사이의 물리적 거리에 비유하여 표현함으로써 보편적인 감정적 고뇌를 탐구하고 있다.

  이 별과 저 별 사이 얼마나 되시려나

  아무리 당기어도 다가갈 수가 없어

  밤새껏 애가 타도록 바라보는 저 거리는

  그대 맘 이곳까지 얼마나 걸리려나

  아무리 기다려도 찾아올 기미 없어

  오늘도 애를 태우며 지새우는 이 거리는

-유성철 「얼마나 될까」 전문

이 작품에서는 별과 별 사이의 거리를 통해 인간 관계의 본질적인 거리를 탐구하며, 그로 인한 감정적 고통을 표현하고 있다.

현대시조는 격물치지의 정신을 바탕으로 사물의 본질을 깊이 탐구하고, 이를 통해 얻은 깨달음과 지식을 작품에 담아낸다. 이는 현대 시조가 단순한 미적 표현을 넘어, 깊은 철학적 성찰과 인간 경험의 본질을 탐구하는 도구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현대시조와 격물치지의 관계는 사물과 인간, 그리고 존재의 탐구를 통해 삶의 의미를 깊이 있게 성찰하고자 하는 공통된 목표를 지니고 있다. (리뷰: 김태균)

[김태균]

오전에 단톡방에 채현병 명예이사장님이 올려주신 '격물치지'를 읽고 예전에 다산의 격물치지 사상에 경도되었던 게 생각났습니다. 현대시조에서 격물치지 정신을 구현하는 게 현대시조 영역 확장에 큰 도움이 되리라 보며 몇 줄 적은 것입니다. 부족한 내용 보태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