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 내용중에서...
4가지 원칙
1.모든 구성된 현상들은 영원하지 않다. [제행무상 - 諸 行 無 常]
인간을 비롯하여 모든 만물들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2.모든 오염된 현상들은 고통스럽다. [일체개고 - 一 切 皆 苦]
공성을 깨달을때 근본적인 무지가 사라지면서 고통은 제거된다.
3.모든 현상들에는 내재하는 실재가 없다. [제법무아 - 諸 法 無 我]
자아를 포함해서 모든 현상들에겐 내재하는 실재가 없다.
그러나 우리의 근본적인 무지 때문에 우리는 모든 현상들에게
내재하는 실재가 있다고 오해한다.
즉, 독립적인 실재가 없다는 것.
근본적인 무지인 번뇌는
' 잘못 알고 있는 적극적인 상태' 이다.
자신의 존재의 본성에 관한 진실을 더 많이 밝혀 낼수록 무지의 힘은 더 약해진다.
본성이 드러날수록 근본적인 무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더 강하게 깨닫게 된다.
4.열반은 진정한 평화이다. [열반적정 - 涅 槃 寂 靜]
우리의 잘못된 견해가 사물을 왜곡시켜 본다는 것을 명상을 통해 깊이 확신하고 나면,
우리를 지배하고 있던 무지가 점차적으로 자연스럽게 감소되기 시작합니다.
사물들에게 내재하는 실재가 있다고 생각하는 무지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그런 자유만이
진정으로 영원히 행복한 상태이며 정신적 자유이며,
유일하게 진정한 평화이며, 유일하게 진정한 해탈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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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성과 형상 ' 에 대하여
공성만을 추구하게 되면
니체의 허무주의 철학과 같이
왜곡된 관념에 흐를 수 있으나
'형상은 공성이며 공성은 형상이다' 라는
완전함에 가까운 깨달음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
이는 ' 색즉시공 공즉시색 ' 에도
가깝다 할 수 있을것이다.
무엇이든 음과 양이 있으며
보이는것과 보이지 않는것이 있으며
삶과 죽음도 그러하고
악과 선도 그러하다
빛과 어둠이 그러하듯이........
어둠에서 빛을 볼 수 있고
악에서 선을 볼 수 있듯이
어느 한쪽만을 보게되면
온전함을 보지 못하는 우를,
편향된 관념에 빠지게 되니
온전하고 완전한 깨우침과 본성에 이르게 한다는 것은
모든것을 통찰하고 느끼고 깨우쳐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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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사람에게 의지하지 말고, 사람의 말에 의지하라.
단지 말에 의지하지 말고, 말의 의미에 의지하라.
단지 말의 추리적인 의미에 의지하지 말고,
말의 명확한 의미에 의지하라.
단지 지성적으로 이해하는 것에 의지하지 말고,
직접 체험하는 것에 의지하라.
중관학파는 '공성'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외부의 현상에 대한 집착과 혐오감을 근절 시킬 수 있으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내면 세계의 공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고요함이나 희열 등과 같은 경험에 집착하고
슬픔이나 공포 두려움과 같은 경험들을 혐오 할 수도 있습니다.
마음과 세계,
즉 내면적 현상과 외면적 현상이
모두 공성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관학파의 치밀한 사고입니다.
우리 자신이 이 공성을 철저히 이해하게 되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번뇌에 구속되지 않고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내면의 세계에 대해서도
내재하는 실재를 부정할 수 있다고 중관학파는 지적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의식은
분리된 매 순간마다의 의식이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이 매 순간마다
서로 원인과 조건의 역활을 하며 의존해서 발생하며,
바로 이전 순간의 의식은 사라지고
다음 순간의 의식이 생겨나는 과정이 이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중관학파는 의식이 독립된
실재로서 존재 한다고 인정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의식과 인식이라는
내면 세계도 독립적인 실재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이러함으로
우리는 외부세계와 내면세계에 대해
집착할 근거를 제거할 수 있다고 중관학파는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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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성과 연기 '
조건들로 태어난 것은 태어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 자체로 인하여 생긴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건들에 의존하고 있는 것을 '공성' 이라 한다.
이 공성을 아는 사람은 마음이 고요하다.
이기심에 대한 해독제로서
다른 중생들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기릅니다.
또한 사물이나 사건들을 고정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해독제로써
'존재하는 것들의 무상 無常 한 성질을 이해' 합니다.
마찬가지로 존재하는 것들의 본성, 즉 사건과 사물들의 본성을
올바로 통찰함으로써, 우리는 내재하는 실재가 있다는 생각을
서서히 없애 가다가 종국에는 근절 시킬 수 있습니다.
" 형상은 공성이고, 공성은 형상이다 "
공성은 형상과 다른것이 아니며, 형상도 공성과 다른것이 아니다.
" 형상을 떠나서 공성은 없다 "
공성은 무존재를 의미하지 않는다.
공성은 인과법칙을 가능하게 만든다.
공성은 현상에 내재하는 실재가 있다고
믿는 병을 치료하는 해독제라고 합니다.
따라서 그 마음속에는
더 이상 주체와 객체가 없습니다.
무지도 없고 무지의 소멸도 없고, 등등
늙음과 죽음도 없고 늙음과 죽음의 소멸도 없다.
그와 마친가지로
고통도 없고 고통의 원인도 없고
고통의 소멸도 없고 수행도 없다.
지혜도 없고 성취하는 것도 없고
성취하지 못함도 없다.
마음의 번뇌를 해독 시키는 수행을 함으로서
마음을 정화하는 과정을 완전히 마치면
모든 장애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됩니다.
이 깨끗한 마음의 공성을
진정한 열반 혹은 해탈이라고 합니다.
업과 번뇌가 소멸함으로써 중생은 자유로워진다.
업과 번뇌와 개념적인 사고는 모두 복잡하게
생각하는데서 나온다.
그 복잡한 생각들을 공성을 이용해서 제거할 수 있다.
삼세에 계시는 모든 부처님들도 이 심오한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해서 최상의 완전한 깨달음을 얻었다.
이외에도 탐진치..탐욕과 화냄과 어리석음을
반야바라밀다는 크게 도움이 될것이다.
중생을 윤회로부터 해방을 시키고
'개인의 열반이라는 고립적인 평화'에
안주하지 못하도록 하는데 있어서
반야발밀다는 훌륭한 해독제가 되기 때문이다.
반야바라밀다는
'모든 고통을 소멸시키는 진언'입니다.
그것은 이미 드러난 고통을 소멸 시킬 뿐만 아니라
미래의 고통을 가져올 성향들을 모두 제거하기 때문입니다.
반야바라밀다는 궁극적 진리이기 때문에'진실이다'
더 나아가서 세상 사람들 즉, 중생들을 위한
진정한 보리심을 가질때 그는 위대한 보살이 될 수 있다.
이는 중생들과 친밀감과 공감을 가지며
자비심과 더불어 나와 남이 다르지 않다는
모든 중생들과 동등하다는
일체감을 가지며, 서로의 입장을 바꿔서 생각할 줄 아는..
그들을 모두 열반에 이르게 하겠다는
사랑과 열정으로 모든 책임과 각오를 가지되
이를 실행하지 않는다면
깨달은자 본성을 깨우침에 이른 아라한에 머물것입니다.
그들은 깊은 산속 암자에 홀로 머물고 있는 각자(깨달은 자)에만
이른 소승불교에 머물수 밖에 없겠습니다.
즉 그들만의 세계에만 머무르는것이겠지요.
대승불교는 그차원을 넘어서는
모든 중생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차원상승하자는 목표를
둔 것과의 차이점이 있겠습니다.
즉 그들은 '보살의 경지에 이르는 사람들' 일것입니다.
출처: 달라이라마의 반야심경에서...
지음: 텐진 갸초(달라이라마) / 주민황 옮김
출판사: 무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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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의 '스프릿센스 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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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님의 질문에 대한 답변중에서...
제가 답변이 올바른지는 그러하나 나름대로....
'독립적인 실재가 없다' 는 뜻이 무엇인지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상계는 허상이 아닙니다.
실제적으로 물질계에서 체험하고 있기에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이것을 허상이자 환상이라고 하는 것은
"상대적인 용어"이기에 잘 분별해서 봐야 할것 같습니다.
현실이자 허상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물질계에 있어서 실제적이기에 이것을 거짓이라 할 수 없으나
상대적인 더 다른 몸체들이 우리 몸안에 또 겹쳐져 있는데
더 깊고 진실된 몸체들에 비하여 볼때는
허상에 가깝다고 논하고 있는것 뿐이지요.
물질적인 육체에 비하여 더 진실된 영체들이 겹쳐져 있는데
일곱체가 있습니다.육체는 껍데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허나 이 껍데기는 중요합니다.
나머지 여섯체를 담고 있는 "신의 전당" 이기도 하기에 말이지요.
사념체, 감정체, 아스트랄체, 에테르체, 영혼체, 끝으로 " 신령체" 로써
이렇게 우리는 7곱체로 겹쳐저 있기에
' 신의 분령 '이라고 하고, ' 신의 자식들 '이라고도 하지요.
우리들이 " 영혼의 완성 "을 이루고 " 신인합일 " 의 경지에 이르기 위하여
물질체에 가까운 지구체에서 학습하고 수련하는 것이
다른 우주에서 배우는것보다 훨씬 빠르다고 합니다.
그것은 쉽지도 어렵지도 않다고 합니다.
물론 지구도 생명체이고
우리네 영혼들의 성장을 위하여 오랜 세월동안 길러온 '어머니 지구'라고
표현 하기도 합니다.
이 지구체가 물질체에서 더 가벼운 속성체로 상승하고 있는데
우리 인류도 그렇게 가속화 되가고 있다고 합니다.
부정적이기보다는 모든것을 긍정적으로 볼 필요가 있지요.
앞서 질문하신
" 독립적인 실재가 없다 " 하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근원에서 왔다는 표현이라고 저는 봅니다.
그러니 우리 모든 인류는 본래가 하나이고
나눌 수 없는 존재이고 근원에서 하나였는데
자신이라는 각 객체를 체험하고자 하였기에
무색 투명에서 각 개별체로 나투어지면서
여러 우주여행들을 하며
색색별들의 체험여행을 하다가
이제는 근원으로 다시 돌아갈 때가 되었다는 것이지요.
간단히 표현하면 그렇습니다.
아주 세세하게 할려면 무척 길어지기에....^^
첫댓글 인류 모두가
보살이 되어 열반하는 그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