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림토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왜곡하는 역사
번호: 196 글쓴이: 나랏글/조회: 14 날짜: 2004/12/25 23:54
가림토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왜곡하는 역사
글쓴이: 해 루 부
그들이 가림토를 주장하기 위해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는 기록들이 있습니다. 세종실록과 훈민정음해례의 정인지서문, 그리고 실록에 기록된 최만리상소문입니다. 그곳에는 공통적으로 언문(한글)이 옛글자인 전(篆)의 모양을 본떳다는 기록들이 있습니다.
한 번 살펴볼까요.
세종실록 102권 42장
是月上親制諺文二十八字其字倣古篆
이달에 임금이 몸소 언문 스물 여덟자를 지었는데, 그 글자는 옛글자인 전(篆)을 모방하였고
훈민정음해례의 정인지서문
癸亥冬. 我殿下創制正音二十八字 略揭例義以示之 名曰訓民正音. 象形而字倣古篆
계해년 겨울에 우리 전하께서 비로소 정음 28자를 창제하시고, 간략하게 예의(例義)를 들어 보이시고 이름을 훈민정음이라 지으셨다. 이 글자는 상형해서 만들되 글자 모양은 옛글자인 전(篆)을 본떴고,
최만리 상소문
曰 諺文皆本古字 非新字也 則字形雖倣古之篆文
혹시 말하기를 언문은 모두 옛글자를 근본으로 삼은 것으로 새로운자가 아니라고 하신다면 곧 자형(字形)은 비록 옛날의 전문(篆文)을 모방하였더라도
어떻습니까?
모르는 상태에서 이 기록을 본 후 그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정말 그럴듯합니다.
[한글은 세종대왕이 친히 지은것이 아니라 옛부터 전해온 전(篆)이라는 글자를 모방한 것에 불과했구나]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세종대왕도 거짓말쟁이이고 창제원리를 밝힌 훈민정음해례도 거짓이며 우리는 4200년전 청동기시대에 이미 표음문자이자 문자역사에서 가장 발달된 형태라는 음소문자를 가진 자랑스런 민족이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이 가림토란 문자로부터 니혼의 신대문자, 인디아의 산스크리트문자, 몽골의 파스파문자, 니혼의 갑골문, 슈메르의 쐐기문자(그들은 슈메르가 수밀이국이며 단군조선의 식민지라고 주장하지요)들이 나왔으니 그야말로 우리민족은 인류문자의 祖宗이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쁘고 자랑스러우십니까? 아니면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흥분을 가라앉히고 이성을 되찾아 차근차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도록 하지요. 그리고 저 위의 기록들은 너무 단편적이니 그 문장의 앞뒤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세종실록 102권 42장입니다.
是月上親制諺文二十八字 其字倣古篆
分爲初中終聲 合之然後乃成字 凡于文字及本國俚語 皆可得而書 字雖簡要 轉換無窮 是謂訓民正音
이달에 임금이 몸소 언문 스물 여덟자를 지었는데, 그 글자는 고전을 모방하였고, 첫소리•가운뎃소리•끝소리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룬다. 무릇 문자에 관한 것과 우리 말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요약되었지마는 전환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이라고 이른다
첫째로 왜 親制라는 말을 썼을까요? 단순한 모방인데 임금이 친히 지었다고 하는것은 뭔가 이상하군요. 조선시대의 사관들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고 배웠는데... 그리고 저 위의 篆이라는 글자는 정말 가림토를 가리킬까요? 그렇다면 가림토라 하지않고 굳이 篆이라 쓴 이유는 무엇일까요? 서예에서 전서, 예서, 해서, 행서, 초서할때의 그 전서(篆書)와 햇갈리게 해 놓은 이유는 과연 뭘까요? 조금 이상하지만 계속 살펴보겠습니다.
정인지서문
癸亥冬. 我殿下創制正音二十八字 略揭例義以示之 名曰訓民正音.
象形而字倣古篆 因聲而音犀七調. 三極之義 二氣之妙 莫不該括
以二十八字而轉換無窮 簡而要 精而通. 故智者不終朝而會 愚者可浹旬而學 以是解書 可以知其義. 以是聽訟 可以得其情. 계해년 겨울에 우리 전하께서 비로소 정음 28자를 창제하시고, 간략하게 예의(例義)를 들어 보이시고 이름을 훈민정음이라고 지으셨다. 이 글자는 상형해서 만들되 글자 모양은 고전(古篆)을 본떴고, 소리의 원리를 바탕으로 하였으므로 음은 칠조에 맞고, 삼재의 뜻과 이기(二氣,陰陽)의 묘가 다 포함되지 않은 것이 없다. 이 28글자를 가지고도 전환이 무궁하여 간단하고도 요긴하고 정(精)하고도 통하는 까닭에, 슬기로운 사람은 하루 아침을 마치기도 전에 (이를) 깨우치고, 어리석은 이라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다. 이 글자로써 한문을 풀면 그 뜻을 알 수 있고, 이 글자로써 송사를 심리하더라도 그 실정(實情)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는 創制라는 낱말을 썼군요. 단순히 4200년전에 있던 가림토란 글자를 모방했을 뿐인데 창제라는 말을 쓰다니 정인지 이 양반은 과장이 심한 것 같습니다. 그 밑에 훈민정음의 훌륭한 기능에 대해 상당히 자랑하고 있군요. 이미 4200년전의 가림토가 가졌던 기능인데 뭘 새삼스럽게 이렇게 자랑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자기네들이 새로 만든것도 아니면서. 그 다음의 글을 좀 더 보겠습니다.
恭惟我殿下
天 之聖 制度施爲超越百王. 正音之作 無所祖述 而成於自然.
豈以其至理之無所不在 而非人爲之私也. 夫東方有國 不爲不久
而開物成務之大智 盖有待於今日也歟.
공손히 생각하옵건데, 우리 전하께서는 하늘이 내신 성인으로서 지으신 법도와 베푸신 시정 업적이 백왕(온갖 임금)을 초월하여, 정음을 지으심도 어떤 선인(先人)의 설을 이어 받으심이 없이 자연으로 이룩하신 것이라. 참으로 그 지극한 이치가 들어 있지 아니한 데가 없으니, (이는) 어떤 개인의 사적(私的)인 조작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대저 동방에 나라가 있음이 오래 되지 않음이 아니나, 문물을 창조하시고 사업을 성취시켜 주실 큰 지혜는 대개 오늘을 기다리심이 계옵셨구나!
아무리 자신의 임금이라지만 칭찬이 너무 과한 것 같습니다. 세종께서 없는것을 만든것도 아니고 단순히 4200년전부터 있었던 것을 모방했을 뿐인데 이런 칭찬이라니...
한데 저건 또 뭡니까?
정음을 지으심도 어떤 선인의 설을 이어 받으심이 없이 자연으로 이룩하신 것이다? 4200년전의 을보륵이란 사람이 지은 가림토를 단순히 모방한 주제에 어떤 선인의 설도 이어받지 않았다니 이건 거짓말이 너무 심하군요. 점점 더 이상해지는데 최만리의 상소도 한 번 살펴보도록 하지요.
최만리의 상소문
我朝自祖宗以來 至誠事大 一遵華制 今當同文同軌之時 創作諺文 有駭觀聽 曰 諺文皆本古字 非新字也 則字形雖倣古之篆文 用音合字 盡反於古 實無所據 若流中國 或有非議之者 豈不有愧於事大慕華
우리나라는 조종조이래로 지성으로 사대(事大)하고, 한결같이 중화의 제도를 준수하여 지금 동문동궤(同文同軌)의 때를 당하옵는데 언문을 창작하신 것을 듣고 봄에 이상히 여길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이럴 때 혹시 말하기를 언문은 모두 옛글자를 근본으로 삼은 것으로 새로운자가 아니라고 하신다면 곧 자형(字形)은 비록 옛날의 전문(篆文)을 모방하였더라도 용음(用音)과 합자(合字)가 옛것과 반대되는 일이며, 실로 근거할바가 없는 바입니다. 만약 니혼에 흘러가서 혹시 옳지 못함을 의논하는 사람이 있을때는 어찌 사대모화(事大慕華)에 부끄럽지 않겠습니까.
정말 읽고 있자니 사대주의의 극치를 보는것 같습니다. 기분 나쁘군요. 그렇지만 우리의 목적은 그게 아니니까 일단 넘어가겠습니다. 해석을 자세히 살펴보죠.
밑줄 친 부분이 핵심에 해당되는 곳입니다.
가만히 살펴보니 최만리는 훈민정음이 옛 글자인 篆文의 모양을 모방했다는 것을 누구로부터 들어서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자신이 알고 있었던 것 같지는 않군요. 뭐 이게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 넘어가도록 하죠. 그런데 이게 뭡니까? 엄청난 말이 있군요. 훈민정음이 모양은 옛 글자인 篆文을 모방했는데 용음(소리를 표현하는 방법)과 합자(초성,중성,종성을 합하여 소리가 이루어 짐을 의미)는 옛 글과 전혀 관계가 없으니 실로 근거가 없다고 세종대왕께 개기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림토를 주장하는 사람들로부터 4200년전의 가림토는 표음문자이며 문자사상 가장 발달된 형태의 음소문자라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증거로 내세운 위의 사료들로부터 가림토는 조선시대 역사기록에 고전(古篆)이라고 표현되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당연히 古篆 즉 가림토의 모양이나 음가(音價) 그리고 초.중.종성을 합하여 소리를 형성하는 음소문자의 특질 이런것들을 모방하여 만들어진 훈민정음은 최만리의 상소에서 이렇게 나타나야 하지 않을까요?
최만리:
언문은 그 모양은 고전을 본떳고 용음과 합자역시 고전과 일치하니 이는 니혼의 한자와 전혀 달라서 이를 이제 사용하려함은 사대모화에 위배되니 이 어찌 부끄럽지 않겠습니까?
최만리가 제정신이라면 위와 같이 말해야 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이제까지 살펴보았지만 실록을 쓴 사관이나 정인지나 최만리나 모두 제정신이 아닌 것 같군요. 정말 그럴까요? 물론 그렇지 않다는 것을 다 아시겠지요. 조선조의 역사기록에 나타난 옛글자인 전(古篆)은 가림토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가림토란 말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기록중에서 오직 한군데 1979년 이유립이란 사람이 발표한 환단고기란 책속에만 존재하고 있는 낱말입니다. 그 어떤 역사기록에도 그 어떤 유적이나 유물속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그 글자로 쓰여진 어떠한 유물이나 유적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종이 한조각 돌맹이 하나도 없습니다.
도대체 4200년전 청동기시대에 표음문자이자 문자사상 가장 발달된 형태의 음소문자가 만들어졌는데 아무도 아는 사람은 없어서(알고 있었다면 사용하지 않을리가 없겠죠. 사용했다면 어떤 형태로든 유물이나 기록이 남겠죠.) 사람들은 불편하기 짝이없는 표의문자이자 음절문자인 한자를 3600년간 사용하다가 느닷없이 3600년 후 세종대왕앞에 갑자기 가림토가 다시 나타나서 세종대왕이 이를 보고 배꼈다는 저들의 주장을 믿어야 합니까? 말아야 합니까?
슈메르인들이 기원전 3000년경부터 약 3000년간 사용했다는 설형문자(쐐기문자)는 점토판에 주로 새겨져 있습니다. 이것이 어느정도 발견되었을까요? 약 40만점정도가 발견되었습니다. 왠만한 박물관을 통째로 채우고도 남을 양이죠. 당연한 일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매일매일 말과 글을 몇 천년간 사용했는데 그정도의 기록도 적은거지요.
인터넷에서 가림토를 검색해 보면 엄청난 양의 자료들이 나타납니다.
가보면 위에 적은 저 사료의 기록들을 올려놓거나 가끔은 별 희안한 문양이 새겨진 돌맹이조각의 사진을 올려놓고 이것이 가림토의 증거이다라며 자랑스러워 하는 글들을 봅니다. 그들은 단지 이곳 저곳에서 자료를 옮기기만 할 뿐 그냥 남이 가림토가 있었다고 하니 우리는 위대한 역사를 가지고 있었구나라고 좋아하죠.
정말 4200년전에 가림토가 있어서 40만여점의 유물은 아니어도 40점이라도 발견되어 줬더라면
내가 왜 이런 글을 쓰겠습니까?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가림토가 있어야만 역사가 자랑스럽습니까?세종대왕을 거짓말쟁이로 만들고 전세계의 언어학자들이 감탄하고 찬양하는 문자창제원리가 기록된 훈민정음해례본을 거짓이 기록된 책으로 만드는 한이 있어도 가림토가 있어야만 역사가 자랑스러워 지십니까? 티끌만한 역사적 흔적도 없는 가림토를 주장해야만 애국자가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판단은 여러분께 맡기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가끔 이 가림토에 대한 주장을 처음 했던, 그리고 지금도 단순한 주장만이 아니라 꾸준히 왜곡된 증거들을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정체가 궁금합니다. 그들이 왜 저 위에서 봤듯이 역사기록에서 자신의 구미에 맞는 몇개의 글자만 취한 후 앞 뒤 문장 다 날려버리고 제멋대로 해석해서 왜곡된 증거들을 만들어서 퍼뜨리는지 그 저의가 의심스럽습니다.
가림토에 대한 저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가림토는 허구입니다. 물론 환단고기란 책의 진위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합니다. 왜냐하면 그 책의 내용 중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지식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후대에 어떤 종교적 목적에 의해 인위적으로 가필된 허구의 내용도 분명히 있다고 믿습니다. 가림토가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석기와 청동기가 혼합된 4200년전에 음소문자가 만들어졌을리도 없으며 문자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점의 역사적 흔적도 남기지 않은 문자. 이것을 믿기 위해서 소중한 우리의 역사들을 모두 거짓으로 만들지 않으면 안되는 그런짓은 전 도저히 못하겠습니다.
******************************************************************************
소현비
트로이역사가 그 유적을 발굴하기 전까지 트로이역사를 믿지 않았죠. 지금 만주와 화북지방 일대에 피라미드식 고조선 무덤들이 많은데 이것을 지나인들이 발굴을 금하고 있지 않습니까.만일 현 중국의 유적 유물 등을 발굴할 수만 있다면 회원님의 주장도 바뀌어지리라 봅니다.
트로이역사가 그 유적을 발굴하기 전까지 트로이역사를 믿지 않았죠. 지금 만주와 화북지방 일대에 피라미드식 고조선 무덤들이 많은데 이것을 지나인들이 발굴을 금하고 있지 않습니까.만일 현 중국의 유적 유물 등을 발굴할 수만 있다면 회원님의 주장도 바뀌어지리라 봅니다. [11:56:28]
첫댓글소현비님 말씀대로 사료나 유물 등이 발견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니 속단할 수 없으며, 환단고기나 규원사화 등의 내용은 중국사료를 통하여 사실로 밝혀진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사료를 무시한다면 그건 올바른 역사관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이 점은 추후 다시 논해봅시다.
첫댓글 소현비님 말씀대로 사료나 유물 등이 발견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니 속단할 수 없으며, 환단고기나 규원사화 등의 내용은 중국사료를 통하여 사실로 밝혀진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사료를 무시한다면 그건 올바른 역사관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이 점은 추후 다시 논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