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출근한다
이진훈
논틀 건너 앞산이 뵈지 않을 만큼 안개가 자욱한 아침, 김 씨는 빗자루를 들고 교문 앞을 쓸고 있다. 학생들이 등교하려면 아직도 한 시간은 더 있어야 하지만 팽팽히 차오른 소변을 더는 참을 수 없어 매일 매일 새벽잠을 놓치고 있다. 친구들은 빨리 읍내 비뇨기과에 가서 전립선 검사를 해보라 성화를 댄다. 환갑도 전에 비뇨기과에 가기도 그렇고, 아내나 애들에게 알려지기라도 하면 그러잖아도 움츠려 지내는 형편인데 왠지 인생 쫑난 듯한 느낌이 들어 정년퇴임 후에나 가 볼까 망설이고 있는 김 씨이다.
전립선 덕분에 학교 안에서는 최고로 부지런한 수위아저씨로 일컬어지고 있다.
추석이 아직도 멀었는데 플라타너스 잎도 벌써 떨어지는 것을 보니 고향 빈집을 홀로 지키고 있는 오동나무는 아예 벌거벗고 추레하게 서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기도 했다. 학생들이 등교하고, 교직원들이 출근할 시간이면 교문 주변은 비질 잘해 놓은 절 마당같이 깨끗했다.
비질하느라 땀이 송글송글 맺힌 이마의 땀을 닦으며 수위실에서 시작해서 큰길가로 비질하며 나가는데 안개 속에서 누군가가 비칠비칠 교문을 향해 걸어오는 것이 어렴풋이 보였다. 안개를 헤치고 서서히 모습이 드러나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역시 오래 전 정년 퇴임한 박 교장의 낯익은 걸음걸이다. 걸음은 비칠비칠했으나 오른손은 높이 들어 김 씨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수위장, 안녕하시오! 오늘도 깨끗이 청소를 하고 계시는구만. 역시 우리 수위장이 최고야!”
“아니, 교장 선생님! 이렇게 이른 아침에 웬일이십니까?”
“웬일이라니? 나도 우리 수위장처럼 부지런 좀 떨어보는 거요. 어제 못다 한 결재가 좀 있어요.”
“네, 못다 하신 결재가 있으시군요. 천천히 나와서 하셔도 되는데 이렇게 꼭두새벽에 나오시다가 안갯길에 사고라도 나면 큰일이십니다. 어서 안으로 들어오세요.”
늘 그랬듯이 수위실로 모시고 들어가며 밝은 불빛 아래에서 박 교장의 입성을 위아래로 살펴보니 오늘도 고의춤은 풀어져 반쯤 흘러내렸고, 바짓가랑이는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은 날인데도 축축이 젖어 있다. 누가 볼세라 수위실 안쪽 숙직실로 들여보낸 뒤 황급히 전화기를 들었다.
“안녕하세요? 여기 양촌중학교 수위실입니다. 교장 선생님께서 오늘도 학교에 출근하셨습니다. 와서 모셔가야겠네요.”
“아이구, 김 선생님! 오늘도 학교에 가셨군요.바로 가겠습니다.”
삼십 분도 채 되지 않아 박 교장 아들의 승용차가 수위실 앞에 멈춰 섰다.
“아이구 이거, 번번이 죄송합니다. 잘 지켜본다 했는데 오늘도 어느 틈에 나가셨는지 벌써 학교에 출근하셨군요.”
“저렇게 나다니시다가 낙상하거나, 안개 속에 교통사고라도 당하시면 어쩌나 걱정입니다. 지난 봄에도 안개가 잔뜩 낀 날에 저 앞길에서 교통 사고로 못자리 보러 가던 노인이 죽섰다니까요.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이젠 요양병원으로 보내드려도 불효가 아닐 듯싶네요.”
“그러잖아도 지난주에 가족회의를 했었는데 어머니께서 한사코 반대하셔서 못했습니다. 더 이상 미룰 수가 없겠습니다. 어머니를 설득해야 봐야겠어요.”
“근데, 어디선가 들은 듯한데 남자 치매 환자들은 자기가 다니던 직장을 종종 찾아간다네요. 교장 선생님께서는 이 학교에서 무려 36년을 근무하셨으니 어찌 안 오고 싶어 하시겠어요? 당신이 손수 가꾼 꽃이며 나무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그리우셨겠지요. 어서 모시고 가세요. 곧 학생들이 등교하고 선생님들 출근할 시간입니다.”
아들이 박 교장을 모시고 가는 뒷모습을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던 김 씨의 손이 자기도 모르게 고의춤 아래를 더듬고 있다.
첫댓글 이진훈 자문위원님
보내주신 미니픽션 잘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