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리스트
제목부터가 범상치 않죠?
유태인들의 생명을 구한 ‘쉰들러' 리스트가 아닌 신(神)들의 리스트라 이거죠.
그 사연부터 알고 시작합시다.
남정네들 군 생활은 길어야 3년인데 소주 두어 병 만 까놓으면 30년은 너끈히 우려먹지요.
“태상노군! 단군님! 여호와여!
오늘도 '군바리' 이야기를 하려는 소인배의 경솔함을 용서하소서”
70년 맹호부대 기갑연대. 베트남 안케 전투.
모월 모일 정오경 베트콩 토벌 '독수리 작전'에 첨병으로 전투 수행 중.
베트콩 E210(이투텐)대대 본부가 있다는 첩보로 험준한 산악 밀림 적지 깊숙이 진입했고 며칠째 수색을 하다가 밀림 속 소로에서 베트콩 특공조의 기습을 받았지요. 총알은 머리 위로 핑핑 나르지, 죽어 가는 동료는 '소대장님!' 을 열창(?)하지, 스콜이 쏟아부어 길 위로 피 개울이 되어 흐르지. 내가 그 상황에 내 정신이겠어? 그것도 초짜 첨병이……. 완전히 겁먹었지.
정신머리가 도망간 겁니다.
혼자서 응사하고 지랄 발광을 다해도 뒤 따라 오든 중대원은 모두 들고튀었는지 조용하더라고요.'아! 이 지옥에 나 뿐이구나.' 불안감, 절망감이 갑자기 엄습합디다. 밀림의 좁은 소로에서 돌격이 안 되니 중대장이 공중지원을 요청했는지 10여분 후 팬텀기들이 도착하여 폭탄을 내리 퍼붓는데……. 와! 환장하겠더라고요.
베트콩과 맨 앞에 나하고의 거리가 60여 미터밖에 안 떨어졌는데 그 놈을 보고 팬텀기가 내리 꽂히면서 폭탄을 쏟는데 지옥이 따로 없어요.
“팬텀기 조종사가 조금만 빨리 단추를 누르면…….”라는 공포감이 가득한데 아이고 무시라 끔찍하지.
거기다 비행기가 하강하는 음악(?)이 사람 죽이더라고요.
엄지로 귓구멍을 막고 네 손가락으로 눈을 덮고 팔꿈치로 몸을 들어 배를 땅에서 띄우고 있는 내 꼬락서니를 상상해 보세요.
그런다고 그 폭탄이 떨어지는 광음이 안 들리겠어요.
사람 잡는 거지 머!
쉥-! 하며 폭탄 떨어지는 소리가 지난 후 꽝! 하는 파열음이 나고,
순간적으로 무지무지한 지층충격파가 지나고 나면 파편이 정글에 튀어 흙먼지 나무 부스러기가 공중으로 올랐다가 우수수 떨어지며 순간적으로 장약 그을음이 열폭풍으로 마구잡이로 밀려드는 겁니다.
그런 장면이 1분 간격으로 한 시간여 되풀이된다고 생각해 보시라고.
생지옥 판에 아버지 하느님 안 부를 간 큰 천하장사가 있겠어요?
저절로 "아버지 하느님! 살려만 주시면 담에 꼭 예배당에 갈게요" 자동으로 나와요.
그러다가 그 와중에서 곰곰이 생각했지요.
'하느님이 바빠서 여기에 몬 오고 기도도 몬 들어 몬 우짜노'라고
그래서 옥황상제, 부처님, 포세이돈, 단군님, 알라……. 내가 알고 있는 신들은 전부 호명하며 청탁을 한 겁니다.
그 중에 한가한 신이 계시다가 내 애절한 기도를 듣고 '잘 봐 줄지' 누가 압니까! 어느 구름에 비가 들었는지 모른다 이거죠.
그 때부터 위급한 상황이면 ‘신들의 리스트’가 저절로 나옵니다. 에-효!!!
신들의 리스트를 호명하고 써 먹은 덕분인지는 몰라도 살아서 귀국하여 남은 1년 군 생활을 논산 훈련소 조교로 근무하게 되었지만 엄격한 훈련소 생활에 적응하느라 무진 애를 먹었습니다.
왜냐고요?
베트남에서는 작전 때는 죽음의 공포와 싸우느라 긴장의 연속이지만 일단 내무생활로 복귀하면 매우 자유로워 여유를 즐길 수 있지요.
그러나 조교 생활은 훈련병과 같이 행동해야 하기 때문에 매사에 모범이 되어야 하고 시범동작에서는 한 치의 실수를 용납지 않는 매우 까다로운 규범 속에 생활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더구나 우리 중대장은 규정과 모범을 강조하고 가차 없이 ‘쪼인트’를 까는 매우 차가운 사람이라 별명이 '명동 독사 대가리'였습니다.
명동에 무슨 독사가 있냐고요? 낸들 압니까. 뭐 땜에 명동인지…….
당시 지휘관과 동료들은 참전용사를 더위에 시달리다 파김치로 귀국하여 약간은 나사가 풀린 듯했기 때문에 ‘귀국병’(歸國兵)이라 하여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사건은 29연대 식당에서 터졌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 닭고기 국이 나옵니다.
훈련병, 기관병, 장교, 지정된 각 창구에서 배식받아 식사하는데 제 당번 훈련병이 서울 출신으로 너무 똑똑한 게 탈이었습니다.
닭고기가 나올 때는 늦게 배식받아야 '왕건이'를 많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는 내 것과 자기 것을 훈련병 창구에 늦게 뒤 밀어 '조교님 것'을 고지하여 식판이 비좁도록 엄청난 '왕건이'를 받아 왔습니다.
나는 똑똑한 당번 덕분이라 만족해하며 가득한 고기를 챙기려는데 마침 주번사관이 식당을 돌아보다가 나를 보았습니다.
하필이면 그 날의 주번사관이 '명동 독사 대가리' 일 줄이야…….
오! 부처님, 단군님! 염라대왕님!
그 순간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긴장이 등줄기를 타고 짜르르 흐릅디다. 월남전투 때도 이렇지 않았는데…….
"어-이! 첨병, 닭고기 매우 즐기나 본데 정량초과야, 그것도 훈련병 창구에서 받아 오던 구만."
훈련병 정량을 가로채는 대역죄인으로 몰렸지요.
"식판 들고 앞으롯"
"오!- 하느님, 부처님, 알라여! 무함마드여……."
그러나 이 난국에서 구제해 줄 신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좋아하는 닭고기를 왕창 먹도록 해 주겠다, 입을 크게 벌린다.실시!"
독사는 친절하게도 그 큰 닭다리를 두 개씩이나 작은 입에 억지로 쑤셔 넣어 주고는 "고기 조각 하나라도 삼켜서는 안 된다. 알았나!"
대답이 나올 리 없지요.
황송하게도 단춧구멍 같은 눈을 크게 뜨고 고개만 주억거렸지요.
식사하던 동료 조교들은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도 키득거립디다.
그래 맘껏 웃어라. 죽일 놈들! 누굴 향한 욕설인지 모르겠습디다.
내무반장이나 조교들은 항상 저처럼 먹는 게 관행인데…….
왜? 왜! 나만 가지고 이래! 썩을 놈의 독사 시키!
닭다리를 물고는 후줄근히 비 내리는 연병장에서 높은 포복을 시작했지요.
콧물인지 침인지 빗물인지 구분조차 안 되는 물들이 입가로 흐르고
가득 찬 닭고기 바람에 숨을 쉴 수가 없더군요.
참말로 고향 생각 간절합디다.
닭고기를 채 먹지도 못하고 적발되었다는 사실도 억울했지만 늦게 배식을 받으면 싫든 좋든 건더기가 많이 배식 되는 법인데 이것을 삼족을 멸할 죄인취급을 하다니. 독사 같은 놈!
알라시여! 당번병이 너무 똑똑한 것도 내 죄인가요?
동료들이 "남들은 다 잘먹고 잘사는데 니는 지독히 운이 없당께,
더 당하기 전에 명동 독사 대가리와 살풀이 굿이라도 한 번해 보랑께"
위로 아닌 위로를 합디다. 망할!
그 후유증이 아직 남아 지금도 닭다리를 보면 입맛이 싹 가시면서 악명 높은 명동 독사대가리의 차가운 눈빛이 떠오릅니다.
“에이그! 웬쑤같은 놈”
오! 한울님! 마리아여! 예수여! 알라여!
다음 사건이 터진 것은 아마도 가을인가 싶습니다.
베트남에서 가져온 소니 트랜지스터를 애지중지하여 휴식할 때 조금씩 듣느라고 항상 품에 넣고 다녔는데 야간 각계전투 훈련 날이었습니다.
훈련병들을 검댕으로 위장시킨 후 날이 어둡기 시작하면서 적지 침투훈련, 정숙 보행 훈련에 돌입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침투훈련이란 바스락 소리도 허용치 않는 매우 조용한 가운데 진행하므로 사방은 쥐 죽은 듯 고요했습니다.
이따금 중대장의 지시 소리만이 조용조용 하달되고 조교들은 돌아다니며 훈련병의 틀린 자세를 발로써 툭툭 차면서 교정해 주는 소리가 전부였지요.
시각이 8시를 넘기면서 훈련은 중반으로 접어들었습니다.
긴장하여 땅바닥을 죽은 듯 기고 있는 훈련병들과는 달리 조교들은 매달 하는 훈련이라 약간 지루하기 시작했습니다.
하필이면 그 시간에 우리 대한의 축구팀 화랑과 버마 팀과의 대망의 킹스컵 결승이 버마에서 벌어지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오늘의 축구 열기에 버금갈 정도로 그 당시 '붉은 악마' 화랑군단에 대한 열기는 대단했었지요.
중계 시간이 가까워오자 도무지 궁금증을 못 이긴 나는 어두워서 아무도 보지 못한다고 판단하고 품에 갖고 있던 트랜지스터에 리시버를 연결하여 혼자서 중계방송에 몰입하기 시작했습니다.
1 : 1의 팽팽한 스코어 속에서 이 광재아나운서는 목청을 높여서 실감나게 중계를 했고 양 팀의 막상막하 간 졸이는 경기는 후반으로 접어들었습니다.
밀고 밀리는 백중지세가 계속되고 추가 득점 없이 손에 땀을 쥐게 했지요.
후반전 종료를 얼마 남기지 않고 우리 화랑팀 스트라이커가 요리조리 단독으로 골문을 향해 돌진해 갔습니다.
이 광제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흥분 속에 완전히 미쳐 청취자를 몰아의 경지로 끌고 갔지요.
이 광재! 이 친구가 중계방송이라면 '한 중계'하는 유명인사지요.
듣는 저도 입안에 침이 바짝바짝 마를 지경이었습니다.
더디어 "슛"하는 멘트와 라디오에서도 군중들이 일시에
"와-" 하는 함성이 리시버를 통해 들리면서
"골인, 골인, 고국에 계시는 국민여러분……."
아나운서는 흥분하여 울먹이며 제대로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목이 멨고 저도 흥분하여 앉은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와- 골인, 골인" 아나운서와 같이 외치고 말았습니다.
그 자리가 야간 정숙보행 훈련장이며 숨어서 듣고 있었다는 것조차 깜빡했지요. 어찌되었겠습니까?
쥐 죽은 듯 조용히 포복훈련을 하는 중에 저 혼자 난데없이 골인을 외치며 방방 뛰었으니…….
땅바닥을 기던 훈련병들의 동작이 일시에 정지되며 모두 소리치는 괴물을 찾느라 두리번거립디다.
아뿔싸!
그제야 흥분이 싸늘하게 식고 제가 처한 상황의 위중함을 깨달았죠.
이후 사태는 불을 보듯 뻔하지 않습니까?
오! 아버지 하느님! 석가여! 예수 그리스도여!
안 그래도 '명동 독사 대가리'에게 찍혀있는 형편에……. 쯪쯔쯔
"어떤 새끼야! 당장 이리 나오지 못해!"
"임마 무슨 골인이야! 골빈 놈! 여기가 축구장인줄 알아! 첨병 이새끼 졸다가 꿈꾸었구먼. 조인트 앞으롯!"
독사가 약간의 은전을 베풀도록 기원하며 혼잣말로
"오!- 하느님, 부처님, 알라여!" 입버릇이 또 나왔지요.
"어! 이 놈 봐! 장가도 안간 놈이 얼라는 무슨 얼라야"
옥황상제님! 아나운서가 실감 나게 중계하는 것도 내 죕니까?
애꿎은 아나운서를 원망하며 며칠 동안 깨진 '조인트'를 끌었고 별명이 '쓸개 빠진 첨병'이 되었지요.
찍혀버린 이 몸이 쓸개까지 빠져 버렸으니. 쯪쯔쯔!.
이래서 제 초반 군 생활은 베트콩과의 전쟁으로 공포의 연속이었고
말년 생활은 독사 대가리와의 전쟁으로 불안의 나날이었다는 것 아닙니까.
어-휴 지겨워! 그 놈의 전쟁!!! 끝.
첫댓글 '인간은 삶이 두려워 사회를 만들고,죽음이 두려워 종교를
만들었다'
영국의 철학자 스펜서가 말했다죠.
베트남전의 국제정치학적 접근이나 휴머니즘 접근은
별론으로 하고,
한 젊은이가 베트남 참전을 통하여 삶과 죽음에 대한
새로운 통찰이 이루어진 과정을 재미나게 표현을
하셨네요.
이런 맛나는 음식은 한꺼번(중편)에 내 놓지 마시고
옴니버스 형식으로 내어 놓으세요.^^
우와~
우습고,너무너무 재밌따!!
옛날 애릴적에 만가방에서 만가보고
지배서 무협지 읽는것 보다 더 재밌네요.
82 다음편이 기다려집니다...^_^
헐~ 벌써 점심시간이라 급식실가서
짜부짜부하고 오겠습니다~ㅋㅋ
그러고보니 월남전을 다룬 무수한 영화들이 있었지요.
특히 언뜻 떠오르는 명작영화들,
지옥의 묵시록, 플래툰, 디어헌터가 떠오릅니다.
특히 지옥의 묵시록은 굉장했었지요.
지기님이 보시기에 그 영화와 현실의 베트남과 어느정도 차이가 있던가요?
아마 비슷했지 싶은데~
제가 격은 것으로는 '플래툰'(소대) 영화가 제일 비슷합니다.
전투가 붙었다하면 공포에 떨어서 머리만 처 박는 병사, 불안하여 고함을 지르는 사람, 광분하여 허공에 마구 총질하는 병사,
오인사격을 하여 동료를 부상입히고도 자기가 한 것조차 오리발을 내미는 병사.
난장판이지요. 플래툰이 제일 비슷합니다.
저도 관심이 있어서 하얀전쟁까지 다 보았거던요.
길고도 긴 전쟁터 같은 이야기
교장 선생님께선 문필가시지요
몇 번을 읽었습니다
적절한 댓글 쓰기가 좀 어렵습니다
저도 오라방 군대 다닐 때
군에 가서 짠 밥 한 그릇 얻어먹은 적이 있는데요
오랜 기억 속에서 쓰신 달필
조그마한 흔적과 함께
추천은 언제나 드립니다 ㅎ
헐!
베베 샘이 여자?!
제주도 출신인가요?
(오라방)이란 말은 제주도 방언 인데요...
오빠/부산 말로 오빠야~~~^^
저 남자인 줄 아셨습네깡?
실망요 ㅎ
부산서 오래 살았는데 바로 옆집에 제주도가 고향인 사람들이어서 제주말이 불시에 ㅋ
(아주망 빵빵 물에 감수꽝?)ㅎ
아지매 물질하러 갑니까~ㅋㅋ
난 영도 청학동 바닷가 출생지라 친구들도 부모들이 제주 출신들이 많아 자연히 제주 말을 잘 쓰고 잘 알아듣죠^^
저도 영도에서만
40년 살았습니다
얼마전 가보니 완전 달라졌더군요
부산 하면 자다가도
벌떡하도록 그리운 제 2의 고향입니다
하여 다른 카페는 안 가도 여기는 뻔질나게 들락거리지요
정겨워서요 ㅎ
네~ 여태 남자인줄 알고 있었네요!
질문: 이곳 배움터 지킴이 카페완 어떤 연유로 활동하시나요?
현재 지킴이로 봉사중인가요?
울 지기님 팬 클럽 회원인가요?ㅎㅎ
저도 처음에 왜 왔는지 잊었습니다
올해로 만 12년된 회원입니다
지킴이는 아니고요
근무할 때 지킴이 선생님들과 잘 지냈습니다
아마 지기님께선
처음 제가 어찌 왔는지
아실 것 같기도 하고요
팬 클럽도 아닌데
클럽이 있다면
가입시켜 주시나요? ㅎ
아!
그렇군요.
그럼 현재 거주지는요?
부산이 아닙니까?
네. 지금은 경기도
아마도 전국구요 ㅋ
식사중 나중에~^^
죄송...
네 저도 식사 준비 완료
막 먹고 어디 가야합니다
여기 식구들이 아직 안 오네요 ㅋ
https://cafe.daum.net/851-5204/7uAe/1208
여기 처음 올린 작품이네요
아마도 카페를 검색하다가
부산, 배움, 지킴이
이래서 가입한 것 같습니다
등업방에도 제 글이 없는 걸 보니까요~
교장 선생님 맞나요?
지금 작품을 보니 "김미애"라고 본명(?)이 있군요.^_^
방금 확인했습니다.
허면 "베베"란 고상한 닉은 무슨 뜻이 담겨저 있습니까?
현재 카페 방문자 란에 머물고 계시네요?!ㅎㅎ
베베 = bebe (불어로 아기)= baby
입니다
관심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