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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어지간히도 덥다.
칠월 방아깨비같은 여윈 몸을 이끌고 급한 된비알을 억적박적 기어 오르노라니 금새 삶아 놓은 녹비끈마냥 노골노골 해져 천상 설잡아 놓은 복날 개새끼 형국이더라.
삼동리에 외자하게 소문난 객이 즐겨입는 쫄쫄이 바지(인라인바지)는 노드린듯 흐르는 땀을 견디지 못하고 사추리를 벌겋게 헤집어 놓아 걸을 때 마다 바지에 똥싼놈처럼 엉거주춤허니 그 또한 곰배팔이 목판끼듯 가히 아름답지가 못하더라.
능선이나 봉우리마다 식수가 짜서 한방울의 물이 천금보다 더 귀해 감히 함부로 마실 요량은 꿈에서도 힘든지라 절집에서 이르는 급수공덕의 큰 화두가 절로 해득되니 총망중에도 갓바위 부처의 영험함에 합장배례가 절로 인다.
부실한 먹거리로 선생님(이원호님)은 설사까지 겹쳐 염병난 동네 까마귀 울디끼 환성산 오름길은 이래저래 안팎 곱사등 신세로 죽을 맛이더라.
두어해전부터 을사년 주린 까마귀 곤수박 탐하디끼 가팔환초(가산,팔공산,환성산,초례산)에 목을 매고 있다가 불각시에 선생님을 졸라 한번 도전해보쟈고 하니 날개 찢어진 버마재미같은 객의 목자를 한참이나 이렇게 보시다가,
“정히 뜻이 그러시다면 가보지요.”
쾌히 응낙을 하신다.
이리하여 씻고벗고 달랑 둘뿐인 가팔환초 종주대를 급조하여 기왕이면 시원한 야간산행으로 노수를 줄이자고 작정이 되어 저녁 대궁상 자위도 돌기전에 다비암 축담길을 끼고 실개천을 건너서는 가산 된비알을 진둥한둥 타고 오른다.
선무당 액막이 하디끼 팔공산 신령께 ‘완주까지는 바라지 않으니 두다리 멀쩡하게 산에서 내려주시면 그 은혜 백골난망 이로소이다’라고 몇 번이나 봉사 괘문 외듯 속으로 구시렁거렸으니 딱히 객으로서도 자신이 서는 길은 아닌셈이였다.
마빡에 불관자 번쩍이며 가파른 된비알을 연방 콩심는 시늉을 하며 기어 오르노라니 납덩이가 든겄처럼 무거운 바람을 멘 등때기엔 금새 구정물같은 땀이 흥건하고 저고리에선 오뉴월 보리밥 쉬어터진 냄새가 진동을 한다.
아직 한여름이 될려면 보리쌀 서너말은 착실히 먹어야 될터인데도 바람 한점 없는 산중의 갑갑한 기운은 장작불 활활거리는 한증막과 진배없어 가난뱅이 구들장에 물난리 겹친격으로 초장부터 뻐근한 산행을 예고한다.
그래도 가끔씩 보이는 달구벌의 야경과 신록의 싱싱한 내음새, 땅을 구르며 달려가는 멧톹의 발자욱 소리를 벗삼아 오르는 길이 전연 운치가 없지는 아니하였다.
북두칠성의 국자 꼬리가 제법 돌아섰을 때 걸음은 가산을 지나고 전구간을 통털어 가장 걷기 좋은 한티재까지는 길이 잘도 넘어간다.
한티재 넓은 주차장엔 가뭄탄 방죽에 올챙이 오글거리디끼 많은 사람들이 초여름 밤내음을 즐기고 있다.
매점에 들러 선생님은 국수로 객은 라면과 밥한공기를 추가하여 대충 허기를 꺼고는 식수 4병을 더 챙겨 다시 서봉으로 길을 나선다.
그런데 어데서 면분이 많은 두사람이 흘낏 시야속을 헤집고 들어온다.
아이고 반갑기도 하지, 태달사(태극을 닮은 사람들) 까장(카페쥔장)이신 주왕성님과 태달사 최고의 화용월태를 자랑하는 김대리님이 위문공연을 오셨네.
객 일행의 걸음을 얼추 짐작으로 찾아 왔는데 보따리엔 감자탕이 그득하다.
조보에 공지한 시간보다 조금 일찍 서둘렀노라 변명을 늘어 놓으니 폰은 폼으로 들고다니냐며 지청구에 타박이 걸찍하게 쏟아진다.
너무 고맙고 미안한 맘에 묵묵부답으로 먼산 바라기를 한다.
고마운 두분과 헤어져 파계재로 길을 놓는데 무거운 등짐 탓인지 자꾸만 선생님의 뒷태와 멀어져간다.
나름대로 종짓굽은 떨어졌다 자부했는데 이제보니 그마저도 아닌 모양이다.
성전암에서 큰공부를 하시던 성철 스님은 마음의 짐을 비우려 밤새 이 팔공의 능선을 걸어 다녀셨다는데 객은 기껏 자그마한 물력을 하나 이기지 못해 허둥대나 싶어 뒤꼭지가 뻐근하도록 어금니를 사려 물었으나 종래 걸음매가 회복 되지를 않아 파계봉 오름길에서 결국은 피같은 식수 두병을 보시하고 말았다.
욕심을 덜어내니 갑자기 겨드랑이에 용비늘이 솟은듯, 팔팔결 걸음이 쉬워져 마치 비장방의 환술을 시험하는듯 하더라.
파계봉과 까다롭다는 톱니 능선을 우회하여 서봉에 서니 어느덧 희부옇게 하늘이 밝아오고 동봉에 이렇을때엔 찬란한 태양이 수목의 이파리에 앉은 이슬을 알알이 보석으로 비쳐낸다.
저어만치 보이는 환성산을 바라보매 도대체가 언제 닿을까 싶어 갓바위로 가는길이 더디고 더디다.
그래도 굽저는 노새가 천리를 가더라고 선생님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길이 어느새 영험함의 대명사가 된지 오래인 갓바위를 지나고 용주사 뒷봉우리를 너머 명마산으로 쉼없이 이어진다.
명마산 가는길은 바로 건너에 환성산이 지척으로 걸려있어 호박잎에 청개구리 뛰어 오르듯 한달음에 닿을수 있으리라 여겼으나 이것이 얼마나 큰 착각 인지를 깨닫는데는 그리 큰 시간이 걸리지 않더라.
김유신 장군의 전설이 서린 명마산 장군바위는 아무리 봐도 그 신기한 모양새가 하늘이 직접 내신겄이라고 밖에는 달리 해석의 여지가 없더라.
장군바위에서 되돌아 나와 능선고개로 하산하는 길은 초입은 약갼 모양새가
불량하지만 줄딸기가 지천인 길은 천천히 우편 사면을 타고 부드럽게 마을로 내려선다.
가팔환초를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들린다는 국도변의 그 유명한 거시기 식당에 들러 점심을 드는데 객은 두공기로도 부족해 찬그릇까지 개죽사발로 깨끗이 핥아내는데 반해 선생님은 밥 한공기를 채 드시지 못하고 숟갈을 내려 놓으신다. 아직도 갈길이 먼데....
식당에서 물을 보충하여 환성산을 향해 꾸여꾸역 올라가는데 금방 맹꽁이 배가 되도록 우겨넣은 식탐이 화를 자초해 도대체가 길이 붓지를 않고 명마산 어름에서 불때는 완만하던 산세가 점심참에 지각 변동이래두 만난겐지 오르느니 된비알에 급경사로 흔연 대접을 하는데 정말로 입에 게거품을 물지 않은게 천만 다행이더라.
서두에서 언급한대로 선생님은 설사까지 겹처 설상가상의 고단한 행색이 처참하기 이를데 없어 괜한 선생님을 부추겨 욕을 뵈게하나 싶어 이 또한 면목이 서지 않는다.
몇 번이나 까무러치며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던 길이 드뎌 정상에 이렀으나 시원한 바람을 커녕 뙤약볕이 기승을 부려 오뉴월 엿가락 늘어지디끼 바위 등걸에 기대니 장마통에 토담 무너지듯 온 삭신이 널부러진다.
성령까지는 내리막길이요, 성령에서 낙타봉까지는 쉼없는 빨래판 능선으로 올록볼록 엠보싱 산행이 더욱 기를 빼놓는다.
타는목을 감싸쥐고 낙타봉 으름을 기웃거릴 때 역시 대구의 산꾼 김두현님을 만나 시원한 얼음물과 오이를 대접받는데 그분은 친절하게 왔던길을 되돌아 서서 초례봉으로 길라잡이를 기꺼이 자청한다.
그분 역시 단신 가팔환초를 종주한 빼어난 산꾼이였다. 자리를 빌어 진심으로 감사 드린다.
초례봉 안부엔 주왕성님과 코스모스님이 마중을 나와 있다.
도대체가 미안하고 무안한 맘에 뭐라 대꾸할 말이 없어 함흥 장승마냥 우두커니 섰노라니 두분이 힘들게 지고오신 음식을 지성스레 권하는데 산꾼의 의리가 목메어 차마 넘기기 힘들더라.
초례봉에서 정상석을 만져보고는 하산을 서두른다.
신숙주라면 우리 역사에서 세종의 고명을 저버린 신하로 흔히 만고의 충신으로 일컫어지는 사육신과는 대척점에 서있는 인물이다.
충과 의를 중요시 여기는 우리 민족의 정서상 그의 학문적 정치적 업적과는 무관하게 혹평을 받아온게 사실인데 오늘은 좀 다른 그의 비밀스런 얘기 한자락을 들어보자. 날이 더운 만큼 납량극으로 귀신 얘기를 좀 해야겠다.
일찍이 숙주가 약관의 나이에 과거를 보러 물살을 날치는 은어떼 마냥 기세좋게 정시문과에 나섰겄다.
그의 아버지가 아직 어린 나이를 경계하여 학문이 무르익기를 기다리라고 충고하였으나 그의 기개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였다.
숙주가 과장이 마련된 경복궁 앞에 당도하니 전국 팔도에서 모인 갓쓴 도포짜리들이 그름같이 모였고 그 북새통에서 한몫 보려는 장수들이 차일치고 멍석 깔아 여리꾼을 호령하여 도포짜리들을 유혹하고 엿장수와 떡장수는 고사하고 본데없는 각설이까지 어한을 할 탁주잔을 얻을 요량으로 안달재신으로 돌아치더라.
마침내 시간이 되어 궐문이 열리니 전국의 도포짜리들이 일시에 몰려들어 서로 상석을 차지하겠노라 아귀다툼이 벌어지는데 금군별장들이 이리뛰고 저리뛰며 육모방망이를 손오공 여의봉 휘두르듯 머리위로 두르며 위엄을 세웠건만 법석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더라.
나름대로 믿는바가 있었던 숙주는 천천히 과장으로 들어 서려는데 이런변이 있나, 갑자기 궐문이 거대한 괴물의 아가리로 변해 수많은 선비들을 삼키고 있는게 아닌가.
팔자 사나운 강아지 꿈에서 범을 만나더라고 전신을 휩싸오는 공포에 숙주는 가위눌린 놈처럼 기동이 지난이더라.
뒷걸음질로 도망을 하려 했으나 두다리가 함흥 장승같이 땅에 박힌듯 꼼짝을 않으니 또 그런 낭패가 없더라.
그때 누군가 자기의 소매를 끌어 당기기에 숙주가 흠칫 정신을 차려 바라보니 이제 겨우 칠팔세나 됨직한 푸른옷을 앙증맞게 차려 입은 청의 동자가 자기를 빤히 바라보고 섰다.
그 동자는 숙주가 뭐랄 겨를도 없이 손으로 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너무 놀라지 마십시요, 저 괴물은 제가 대인을 만나기위해 술수를 부려만든
환영일 뿐입니다.”
“나를 만나기 위해 만든 환영이라고 ”
어안이 벙벙해진 숙주가 되묻자,
동자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인다. 숙주가 다시 바라보니 괴물은 간데없고 두다리가 짧음을 한하며 과장으로 달려가는 도포짜리들의 발길만 낭자하다.
“이로써 네가 범상한 아이가 아니란건 자명해 졌다마는 네가 무슨 염으로 이런 환술을 나에게 시험하는 겄이냐?”
숙주의 약간 꾸짖는 듯한 물음에,
“예 저는 대인이 훗날 큰일을 하실분임을 알기에 평생 모시고쟈 온겄입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건 동자의 다음 말이였다.
“대인어른 사람들은 저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
동자의 말에 놀라 정신을 차려보니 주위의 사람들이 혼잣말하는 자기를 쳐다보고 실성끼 있는 놈으로 여기고 있더라.
숙주가 가만히 혼자 생각하기를
‘사람의 눈에 띄지가 않는다면 이는 귀신이 분명한데 혹 해꼬지라도 있으면 어찌할까’
동자가 빙긋이 웃으며 말하기를,
“대인께서는 저를 비루한 잡귀로 생각 하시는데 절대 그런일은 없을 겄이니 안심 하소서. 그리고 이제 그만 과장으로 들어 가십시요, 좋은일이 기다리고 있을 겄있니다.”
그리고는 두세걸음 뒤쳐저 숙주를 따라가는데 전혀 발소리가 없더라.
숙주는 이런 기이한 인연을 얻어 평생을 동자와 함께 하게 되었는데 동자는 집안의 대소사는 물론이고 조정의 큰일까지도 그의 말을 따르면 어긋나는 일이 없었다.
또한 영릉(세종)의 유탁을 저버려 난신이라는 말을 들으면서까지 사육신의 의리에 서지 않았던겄도 동자의 간곡한 호소 때문이였다한다.
“하늘이 정하신 일은 인력으로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충신으로 만고에 이름을 남기겠고 대인은 나라를 굳건히 세우는 주춧돌이 되소서.
동자는 언제나 다른 사람한테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고 먹는겄도 숙주가 남긴 대궁밥을 조금 먹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양은 조금도 줄지 않았다 한다.
숙주는 누구에게도 이 비밀을 말할수 없었고 또 말한데도 믿어 줄 사람도 없는지라 평생을 가슴에 담고 동자와 소통하며 살았다한다
그가 천수를 다하고 저승 문턱을 넘어서려 할 때 자식들에게 마지막 유언을 남겼다.
“나중에 내 제사상을 차릴 때 반드시 그 옆에 따로 조그만 상을 하나 더 보도록 해라. 그것만이 내가 그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보답일게야.”
신숙주는 이말을 마지막으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머리맡에 앉았던 청의동자도 홀연히 사라졌다.
그 후 그의 자손들은 그의 제사엔 어김없이 동자의 몫까지 함께 보았는데 지금도 어쩌는지는 알길이 없다.
아마도 신경수 선생님께 한번 여쭤보면 아실려나,,,
초례산에서 내려서는 길은 정상부를 제외하고는 완만한 능선의 연속으로 달구벌 백성들의 산책로로 더할 나위가 없더라.
한담을 나누며 내려서는 길이 어느새 신서지에 이르고 머언 골짝 어느 토담집 굴뚝엔 저녁참 연기가 솟아날듯 하더라.
아! 참으로 긴 하루였다.
2008년 5월31~ 6월1일. 난테 진맹익,,
첫댓글 역시 난테님이십니다. 오랫만에 님의 글을 보니 가슴이 확 뚫리는 기분입니다. 기왕 질내 놓은 길 백설이 만건곤 할제 한 번 더 종주하시면 가팔환초의 매력에 흠뻑 빠지실건데..... 좋은 산행기 고맙습니다.
참 대단하신 두 분이십니다. 난테님의 글에서 이번 종주산행 고생이 묻어나옵니다. 그래도 지원팀이 있어 무사히 종주산행을 마칠 수 있었나 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난테아우 가팔환초야 아무나 하는 것이지만 (물론 아무나 할 수 없지만) 이런 글을 정말 아무나 쓸 수 없습니다. 읽으면 읽을 수록 씹으면 씹을 수록 진국이 우러 나오는 아우님의 산기는 가히 초국보급 산기입니다. 나중에 모아서 책을 만들면 틀림없이 베스트 셀러가 될 것이외다. ^^ 우찌 비유도 이리도 기가 막히게 하시는지 읽을때 마다 탄복, 감탄, 경악 합니다. 우리도 팔공산주를 해봤지만 팔공산 주만 하더라도 지리주에 맞먹는 주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가팔환초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정말 욕 마이 봣습니다.
크으~ 한참 읽고 또 읽어도 버릴것 하나 없는 왕건이만 있는 글입니다 ,,에휴 나는 무식해서리 ,,,ㅋㅋㅋㅋ 덕분에 저도 진등한등 다녀온것 같습니다,^^/그리고 모스님의 출장식당은 가히 더없는 반가움였겠습니다^^
애쓰셨습니다. 떠날때 광고하고 떠나는지요. 보급대의 노고도 고맙고, 웬 야사는 그리도 많이 아시는지. 덕분에 산행기가 풍요로워 집니다.
늦었지만 수고 많았습니다. 원호님과 난테님과의 만남 소중히 기억할께요. 저는 두번째 가팔환초를 생각하고 있읍니다. 첫번째는 집이 반야월인 관계로 초례봉에서 출발했지만 두번째는(27일)가산에서 출발할 예정 입니다.원호님 난테님 언제나 안산,즐산 하세요.
어메 이곳에 오셨군요 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란테님..............^^&
주왕산님의 도움에 진심으로 감사 드리며 자주 들러 주시기 바랍니다.
방장님 말씀처럼 산행기 모아서 책을 만들어 보시기를 강력합니다...재밌는 야사까지 곁들여져 산행기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어 놓으시는 난테님...정말 대단하세요...두분의 체력이 대단하심은 세상이 다아는 사실일테구요...수고 많으셨습니다...
난테님 이제야 산행기 보는 설리입당정말 책만들어내시면 으로 열독하겠습니다. 정말 한단어 한단어 표현끝내주네요...<오뉴월 보리밥 쉬어터진 냄새> <가난뱅이 구들장에 물난리 겹친격>어쩜 이다지도 똑똑 떨어지는 붓놀림을 하실수있는건지요... 난테님 직업이 궁금해지는 설리라네요... 오뉴월 보리밥 쉬어터진 냄새는 맡아보시기나 하신건지요 설리는 난테님 열독팬되었답니다..건필하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