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03 살림교회 주일공동예배(사순절 제 3주일)
하나님의 어리석음과 약함
출20:1-11; 고전1:18-25; 요2:13-22
노자의 <도덕경>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부드러움이 단단함을 이기고 약함이 강함을 이기는 것을 세상 사람들이 모두 모르지 않는데, 그렇게 하지를 못한다.” 아무리 참된 진리일지라도 그 진리를 직접 경험하지 못하고 머리로 아는데 머문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못하는 사변적 지식에 불과합니다. 빠르게 흐르고 변하는 세상은 모든 것의 가치를 수치화해서 값을 매깁니다. 이런 세상의 흐름 속에서 사람들은 혹여 자신이 사라져버릴까 존재 가치를 증명해내려고 업적을 쌓고 성취하는데 골몰합니다.
학생들은 성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고, 어른들은 연봉이나 매출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도록 요구받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들이 수치화될 때, 그 안에 담긴 보이지 않는 의미와 가치가 평가절하 되기 쉽습니다. 돈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은 하지만,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안정되고 안락한 생활이 전부인 것처럼 보여주는 세상의 시선을 따라서 우리의 눈도 으레 단단하고 강한 것을 향하게 됩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는 진리를 경험하는 일은 세상의 흐름을 거스르는 어리석은 일처럼 보이기 십상입니다.
오늘 함께 읽은 고린도전서 말씀도 도덕경과 같은 흐름에서 읽힙니다. “십자가의 말씀이 멸망할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사람인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1:18)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의 지혜보다 더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함이 사람의 강함보다 더 강합니다.”(1:25) 고린도서의 저자인 사도 바울은 복음을 “십자가의 말씀”으로 설명합니다. 하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는 이야기는 당시 독실한 유대인들에게는 신성모독이고, 진지한 그리스인들에게는 웃음거리나 걸림돌이 될 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의 지혜보다 더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함이 사람의 강함보다 더 강하다는 말씀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우리 안에서 여전히 울림을 줍니다. 우리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이 세상의 그 어떤 힘보다 강력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처형 사건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온갖 저항과 죄를 뚫고 우리 속으로 들어오고야 말았습니다. 인간의 마음과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힘은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 속에서 변하지 않는 가치와 영원을 지니고 살도록 부름 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일상은 영원함과 변함없는 것들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것에 집중할 때 일상 속에 숨겨진 비밀이 드러납니다. 그것은 바로 언제, 어디에나 있는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입니다. 태초에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신 그 하나님께서 ‘내 장기를 창조하시고, 내 모태에서 나를 짜 맞추셨습니다.’(시139:13)
하나님의 사랑으로 빚어진 우리 안에는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를 밝혀주는 사랑과 빛이 있습니다. 어른이 되어가면서 잃어버린 어린아이의 순진무구한 웃음은 우리가 잃어버린 인간의 본래 모습이 어떠할지를 짐작하게 합니다. 어두운 밤하늘을 비추는 달과 별들처럼 우리 안에 깃든 하나님의 형상은 우리를 맑고 아름답게 빛나게 합니다. 이 빛은 자신의 생각과 신념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우리의 참된 본성을 가만히 드러내어 줍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렇게 희망차지도 밝지도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게다가, 시커먼 자기 속내를 들여다보면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고백하기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이렇게 형편없는 자신 안에 하나님의 빛과 사랑이 감춰져 있다고 믿는 일은 저절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감춰진 빛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수련이 필요합니다. 단순함, 고요함, 깊은 평화 속에 가만히 머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야만 우리 안에 감추어진 영원하고 변치 않는 빛과 사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성전을 정화하시는 요한복음 말씀은 그런 점에서 매우 상징적입니다. 유월절이 가까워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장사꾼들과 환전상들이 들어와 시장 바닥이 되어 버린 성전을 예수님은 뒤집어엎어 청결하게 하셨습니다. 소와 양과 비둘기, 돈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들이 있지 말아야 할 곳에 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습니다. 즉,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든 것이 문제였습니다.
우리 내면에도 하나님께서 머무시는 성전이 있습니다. 우리를 단순함, 고요함, 깊은 평화 속에 머물지 못하도록 소, 양, 비둘기와 장사꾼들은 우리의 내면을 한바탕 소란스럽게 휘저어 놓습니다. 이것들을 치워내는 정화작업을 거쳐야만 우리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자리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짐승들과 장사꾼들이 끊임없이 우리의 성전 안으로 밀고 들어오겠지만, 우리는 그것들의 실체를 직면하고 계속해서 떠나보내야 합니다. 주의해야 할 것은 소란을 일으키는 짐승들과 장사꾼들을 너무 부정적으로 대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의 불완전함이 거룩함으로 변형되는 질료가 되기 때문입니다.
성전정화 사건은 개인의 영성적인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드러내는 기독론적인 표지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당시의 어마어마한 교권에 대항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놀라운 권위와 용기는 평범한 유대인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기적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낡은 종교를 벗어나 새로운 이스라엘, 새로운 질서가 창출되도록 예수님이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구원의 표지가 직접 되어 주셨습니다. 즉, 유대인들에게 참된 파스카, 유월절의 진정한 의미를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유월절은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유대인들이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노예에서 자유인이 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십계명은 본래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근본적인 원칙들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을 억압하고 통제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그들을 억누르는 모든 것에서 해방되어 자유인의 삶을 누리도록 주신 것이었습니다. 한결같은 하나님의 사랑을 당신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배우고 경험하라고 주신 말씀이 십계명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변질되어 버린 율법과 유월절의 본래 의미를 예수님께서 다시 새롭게 갱신하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우리 안에 이미 있는 빛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안에 이미 있는 빛이 하나의 소리가 되어 우리를 지금도 이끌고 있습니다. 그 빛을 따라가는 우리의 작은 움직임들은 노래가 되고, 리듬이 됩니다. 우리 안에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노래와 리듬은 억눌려있는 우리의 영혼을 자유롭게 해방시키는 길이 되어줍니다. 이 일련의 과정은 아프고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우리가 잃어버린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과 가벼움을 되찾아줄 것입니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의 지혜보다 더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함이 사람의 강함보다 더 강합니다.” 세상의 방식대로 떠밀려 살도록 자신을 내버려두지 마십시오. 우리의 생각과 신념이 우리의 현실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있는 그대로 직면하여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자신만의 리듬을 따라가면서 자기에게 다가오는 삶을 차근차근 살아가길 바랍니다.
성령의 은사 중에 지혜의 은사가 있습니다. 지혜의 은사는 하나님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우리가 처한 현실에 대해 신성한 시각을 불어넣는 것입니다. 사건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괴롭고 고통스러운 상황일지라도 그 안에 계신 하나님의 현존과 활동을 깨닫는 것입니다. 여기서 지혜는 개념적이거나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사전을 읽는 것과도 다릅니다. 지혜의 은사는 실재를 있는 그대로 경험하도록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이 지혜의 빛 안에서 우리 삶을 바라보도록 노력하는 것이 하나님의 지혜이며, 방식입니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원하는 방향대로만 흘러가지 않고 우리 자신은 불완전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빛으로 이루어진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신념이 우리의 삶을 제단하고 제한하도록 허용하지 마십시오. 단순함, 고요함, 깊은 평화 가운데 머물며 우리 안에 감춰진 빛을 발견하십시오. 그 빛은 하나의 소리가 되어 우리를 자유와 사랑으로 이끌어줄 것입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기에 어리석고 약해보인다고해서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소리를 밀어내지 마십시오. 작고 세밀한 소리, 아주 희미한 빛이 우리를 자유의 땅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우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십니다.
다함께 기도드리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우리가 단순함과 고요함 그리고 깊은 평화 가운데 머물며 아버지의 눈으로 우리 자신을 바라보고 사랑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