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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3편 (팔일)
1장
孔子謂季氏 공자위계씨
八佾舞於庭 팔일무어정
是可忍也 시가인야
孰不可忍也 숙불가인야
공자께서 계씨를 일러 말씀하셨다.
자기 뜰에서 '팔일무'를 추게 하다니,
이런 일도 저지르는데,
감히 못할 것이 뭐가 있겠는가?
●팔일무는 천자의 연회에서만 출 수 있는 춤이었다.
이 글은 계씨 권문의 세도가 등등한 것에 대한 비판이다.
2장
三家者 삼가자
以雍徹 이옹철
子曰 자왈
相維辟公 天子穆穆 상유벽공 천자목목
奚取於三家之堂 해취어삼가지당
(맹씨, 숙씨, 계씨) 3가 사람들이
집안 제사를 끝낼 때, '雍(옹)'가를 부르며 끝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제후는 제사를 돕고, 천자의 모습은 그윽하다'는 노래를
(천자만 쓸 수 있는'雍(옹)'가를)
어찌 3가 사람들이 쓴단 말인가.
●공자는 정치를 바른 것으로, 또는 바르게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당시 노나라는 3대 명문가의 힘이 왕의 힘을 능가하고 있었다.
이것은 당시의 정치 관념에 비추어 바르지 못한 상황이었다.
공자는 이런 상황을 자주 비판한다.
의로움을 보고 행동하지 않는 것은 용기가 없는 것이다'라는
현실 참여적 행동정신을 볼 수 있다.
3장
子曰 자왈
人而不仁 인이불인
如禮何 여례하
人而不仁 인이불인
如樂何 여락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어질지 못하면
예절이 무슨 소용인가.
사람이 어질지 못하면
음악이 무슨 소용인가.
4장
林放問禮之本 임방문예지본
子曰 자왈
大哉問 대재문
禮 與其奢也 寧儉 예 여기사야 영검
喪 與其易也 寧戚 상 여기이야 영척
임방이 禮(예)에 대해 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중요한 질문이다.
예절은 사치한 것보다 검소한 것이 좋고,
상례는 형식적인 것보다 진정 슬퍼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임방은 공자의 제자였던 것 같다.
공자가 임방의 질문을 반가와한 것은
지엽이 아닌 근본을 물었기 때문이다.
5장
子曰 자왈
夷狄之有君 이적지유군
不如諸夏之亡也 불여제하지무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夷狄(이적: 오랑캐)에게는 임금이 있으니,
임금이 없는 (임금을 업수이 여기는) 諸夏(제하: 중국)보다 낫구나.
●亡(망)을 無(무: 없을 무)로 읽었다.
6장
季氏 旅於泰山 계씨 여어태산
子謂冉有曰 자위염유왈
女弗能救與 여불능구여
對曰 대왈
不能 불능
子曰 자왈
嗚呼 曾謂泰山不如林放乎 오호 증위태산불여임방호
계씨가 태산에서 旅(여)제사를 지냈다.
공자께서 염유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계씨의 잘못을) 막을 수 없었느냐?
염유가 대답했다.
막을 수 없었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오호, 누가 태산이 (예의 근본을 묻던) 임방만 못하다고 하더냐?
●태산은 천자가 旅(여)제사를 지내는 곳이어서,
노나라 지방 권문인 계씨가 제사를 지낼 수 없는 곳이었다.
태산이 임방처럼 예의 근본을 따져
계씨의 제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꾸짖음이다.
冉有(염유), 이름은 求(구), 자는 子有(자유).
논어에 자주 등장하며 염유 또는 염구로 불린다.
공자의 제자로 공자보다 29세 어렸다.
뛰어난 행정능력으로 계씨의 가신이 된다.
이상보다는 현실에 충실했던 것으로 보인다.
공자로부터 자주 질책을 받는다.
7장
子曰 자왈
君子 無所爭 군자 무소쟁
必也射乎 필야사호
揖讓而升 읍양이승
下而飮 하이음
其爭也君子 기쟁야군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다툼이 없다.
필시 있다면 활쏘기일 것이다.
서로 절하고 사양하면서 활쏘는 자리에 오르고,
(활을 쏘고) 내려와서는 같이 술을 마신다.
그렇게 다투는 것이 군자다.
8장
子夏問 자하문
巧笑倩兮 교소천혜
美目盼兮 미목반혜
素以爲絢兮 소이위현혜
何謂也 하위야
子曰 자왈
繪事後素 회사후소
曰 왈
禮後乎 예후호
子曰 자왈
起予者 商也 기여자 상야
始可與言詩已矣 시가여언시이의
자하가 물었다.
고운 미소 청초하고,
예쁜 눈 반짝인다.
소박한 흰색으로 현란한 무늬 이뤘구나.
이 시는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을 만들고난 다음 일이라는 뜻이다.
이에 대답했다.
예절은 (마음가짐을 갖추고난) 다음 일이겠군요?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를 일깨우는 자가 商(상: 자하의 이름)이구나.
이제 너와 함께 시를 이야기할 수 있겠다.
●시를 좋아하는 스승 공자로부터
'함께 시를 이야기할 수 있겠다' 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제자는
무척 기뻤을 것이이다.
9장
子曰 자왈
夏禮 吾能言之 하례 오능언지
杞不足徵也 기부족징야
殷禮 吾能言之 은례 오능언지
宋不足徵也 송부족징야
文獻 不足故也 문헌 부족고야
足則吾能徵 족즉오능징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하나라의 예에 대해서 내가 말할 수는 있다.
하지만 기나라에 이를 증명할만한 것이 충분히 남아있지 못하다.
은나라의 예에 대해서도 내가 말할 수는 있다.
하지만 송나라에 이를 증명할만한 것이 충분히 남아있지 못하다.
문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충분하기만 하다면 내가 (선대의 禮를)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기나라는 하나라의 후손이 이어 받은 나라다.
송나라는 은나라의 후손이 이어 받은 나라다.
고대 중국의 역사는 하나라를 거쳐 은나라(상나라)로, 그리고 주나라로 이어졌다.
고대의 정복전쟁에는 약간의 낭만이 존재했다.
나라의 씨를 말리지 않고 그 후손이 선대의 제사를 이어갈 수도록 배려해주는 멋이 있었다.
그래서 주나라가 천하를 정복한 공자 당시에도
멸망한 나라의 후손들이 기나라와 송나라에 존재할 수 있었다.
10장
子曰 자왈
禘自旣灌而往者 체자기관이왕자
吾不欲觀之矣 오불욕관지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禘(체)제사에서 술잔을 땅에 부어 비우는 이후의 절차는
나는 보고 싶지가 않다.
●禘(체)제사는 주나라의 국가적인 큰 행사였다.
이문장은 공자께서 중요한 제사가 진심 없이 형식적으로만
치러지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신 것이다.
11장
或問禘之說 혹문체지설
子曰 자왈
不知也 부지야
知其說者之於天下也 지기설자지어천하야
其如示諸斯乎 기여시저사호
指其掌 지기장
누군가 禘(체)제사에 대한 설명을 요구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모릅니다.
그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천하를 대함이
이것을 들여다 보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그처럼 쉬울 것입니다).
(그리고는) 손바닥을 가리키셨다.
●3장 팔일에서는 제사의 의미와 법도, 제사에 사용되는 음악과 무용 등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공자시대에 있어 제사는 우주와 인간을 이해하는 인식의 틀이었던 것 같다. 당시의 문화가 만들어낸 지적 행위의 정수였을 것이다.
12장
祭如在 제여재
祭神如神在 제신여신재
子曰 자왈
吾不與祭 如不祭 오불여제 여불제
조상에게 제사 지낼 때는 조상이 함께 계신 듯이 하고,
신에게 제사 지낼 때는 신이 함께 계신 듯이 한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자신이 제사에 참석하지 않으면, 제사를 지내지 않은 것과 같다.
●제사에 다른 사람을 대신 보내는 경우를 보고 이르신 말씀이다.
13장
王孫賈問曰 왕손가문왈
與其媚於奧 여기미어오
寧媚於竈 영미어조
何謂也 하위야
왕손가가 물었다.
집안 최고 신에게 기도하는 것보다
부뚜막 신에게 기도하는 것이 낫다는데,
무슨 말일까요?
子曰 자왈
不然 불연
獲罪於天 획죄어천
無所禱也 무소도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기도할 곳이 없습니다.
●왕손가는 위나라의 대부다.
공자는 한평생 벼슬 자리를 얻기 위해 넓디 넓은 중국을 떠돌며 노력했다.
이 이야기는 공자가 위나라에 머물르고 있을 때의 이야기다.
왕손가는 공자가 정계에 진출할 수 있는 뒷문을 열어주겠다고 은근히 제안한 것이다.
공자는 바르고 투명한 길이 아니면 가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기도할 곳이 없다" 단호한 거절이다.
14장
子曰 자왈
周監於二代 주감어이대
郁郁乎文哉 욱욱호문재
吾從周 오종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주나라는 (하나라, 은나라) 2대를 거울로 삼았다.
빛나고 빛난다. 그 문화여!
나는 주나라를 따르겠다.
15장
子入大廟 자입태묘
每事問 매사문
或曰 혹왈
孰謂鄹人之子 知禮乎 숙위추인지자 지례호
入大廟 每事問 입태묘 매사문
子聞之曰 자문지왈
是禮也 시례야
공자께서 태묘에 드시자
모든 절차를 물으며 하셨다.
누군가 말하기를
누가 鄹(추)인의 아들이 예를 안다고 했는가?
태묘에 들어서 모든 것을 물어보며 하던데?
공자께서 그 말을 듣고 말씀하셨다.
그것이 禮(예)다.
●大廟(태묘)는 노나라의 사당이다.
鄹(추)는 공자의 고향이다.
공자께서는 모르는 것 묻기를 주저하지 않으셨다.
아랫 사람에게 묻는 것도 부끄러워 하지 않으셨다.
배움에 있어 담백했다. 권위주의적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예를 차려야 하는 자리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 몰라 당황한 적이 있는가?
물어보면 된다. 심지어 공자께서도 그렇게 하셨다.
16장
子曰 자왈
射不主皮 사불주피
爲力不同科 위력부동과
古之道也 고지도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활쏘기는 과녁을 뚫는 것에 중점을 두지 않는다.
(과녁을 맞추는 것에 중점을 둔다.)
사람의 힘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옛사람의 道(도)가 이와 같았다.
17장
子貢欲去告朔之餼羊 자공욕거곡삭지희양
子曰 자왈
賜也 사야
爾愛其羊 이애기양
我愛其禮 아애기례
자공이 곡삭제에 양을 제물로 바치는 절차를 없애려 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야,
너는 양을 아껴서 그리했겠지만,
나는 곡삭제의 예를 아끼고 싶구나.
●告朔(곡삭)은 매달 초하루에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賜(사)는 자공의 이름이다.
18장
子曰 자왈
事君盡禮 사군진례
人以爲諂也 인이위첨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임금에게 예를 다하는 것을
사람들은 아첨한다고 여긴다.
●사람들은 쉽게 오해한다.
그래도 예를 갖출 대상에겐 예를 갖춰야 한다.
사람들을 의식해서 예를 갖추지 않는다면,
그건 사람들에게 아첨하는 것이다.
19장
定公問 정공문
君使臣 군사신
臣事君 신사군
如之何 여지하
정공이 물었다.
임금이 신하를 부리고
신하기 임금을 섬기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孔子對曰 공자대왈
君使臣以禮 군사신이례
臣事君以忠 신사군이충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임금은 禮(예)로써 신하를 부리고
신하는 忠(충)으로 임금을 섬겨야 합니다.
●정공은 노나라의 군주로, 애공의 아버지다.
忠(충)은 자기 진심을 다한다는 뜻이다.
임금이나 윗사람에게 복종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자신에게도 忠(충)할 수 있고,
아랫사람에게도 忠(충)할 수 있고,
일에도 忠(충)할 수 있다.
20장
子曰 자왈
關雎 관저
樂而不淫 낙이불음
哀而不傷 애이불상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관저의 시는
즐거우면서도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고,
슬프면서도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
●관저는 시경에 실린 시의 저자 중 한명이다.
21장
哀公問社於宰我 애공문사어재아
宰我對曰 재아대왈
夏后氏以松 하후씨이송
殷人以栢 은인이백
周人以栗 주인이율
曰使民戰栗 왈사민전율
애공이 宰我(재아)에게 社(사)에 대해 물었다.
재아가 이에 대답했다.
하나라 사람들은 소나무를 심었고,
은나라 사람들은 잣나무를 심었습니다.
주나라는 栗을(율, 밤나무를) 심습니다.
이것은 백성으로하여금 '전율(두려움)'을 느끼게 하려는 의도라 합니다.
子聞之曰 자문지왈
成事不說 성사불설
遂事不諫 수사불간
旣往不咎 기왕불구
공자께서 이를 듣고 말씀하셨다.
다된 일이니 말을 않겠다.
끝난 일이니 충고하지 않겠다.
지난 일이니 나무라지 않겠다.
●宰我(재아)는 宰予(재여)를 말한다.
宰予(재여)는 공자의 제자로 공자보다 29세 아래다.
성은 宰(재), 이름은 予(여), 자는 子我(자아)다.
언변이 뛰어났으나 공자로부터 자주 꾸지람을 듣는다.
社(사)는 나라의 제사를 지내는 공간이다. 社稷(사직)이라고도 한다.
어린 왕의 질문에 栗(밤나무 율)의 음을 빌어
재밌게 (하지만 바르지 않게) 대답한 것이다.
이를 두고 공자께서 노여워하시는 모습이다.
삐딱함은 재미를 주지만,
감동은 진실함에서 나온다.
22장
子曰 자왈
管仲之器小哉 관중지기소재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관중은 그릇이 작았다.
或曰 혹왈
管仲儉乎 관중검호
曰 왈
管氏有三歸 관씨유삼귀
官事不攝 관사불섭
焉得儉 언득검
누군가 물었다.
관중은 검소했습니까?
이에 대답하셨다.
관중은 부인이 셋이나 있었고,
집안 일을 보는 사람들도 일을 겸하는 경우가 없었다.
어찌 검소했다 하겠는가?
然則管仲知禮乎 연즉관중지례호
曰 왈
邦君樹塞門 방군수색문
管氏亦樹塞門 관씨역수색문
邦君爲兩君之好 有反坫 방군위양군지호 유반점
管氏亦有反坫 관씨역유반점
管氏而知禮 관씨이지례
孰不知禮 숙부지례
그러면 관중은 예를 알았습니까?
이에 대답하셨다.
임금이 수색문(집 안에 두는 낮은 담장, 제후만 쓸 수 있었다)을 쓰면
관중도 수색문을 썼고,
임금이 다른 임금을 맞아 반점(술잔 받침, 역시 제후만 쓸 수 있었다)을 쓰면
관중도 반점을 썼다.
관중이 예를 알았다 하면,
누군들 예를 모르겠는가?
●관중은 제나라 환공을 중국의 패자로 만든 명 대신이다.
공자보다 100년전 사람이다.
계씨가 집안에서 팔일무를 쓰는 예의 없음을 비판하면서 시작한
이번 장의 주제는 禮(예)를 바로 잡아 정치를 바로 세우자는 것이다.
관중은 당시 전설적인 명재상이었다.
공자가 관중을 신랄하게 비판한 것은
관중의 행적을 빌어 스스로의 세도를 정당화 하는
당시 노나라 권문들을 비판하기 위함이었다고 생각한다.
23장
子語魯大師樂曰 자어노태사악왈
樂其可知也 악기가지야
始作 시작
翕如也 흡여야
從之 종지
純如也 순여야
曒如也 교여야
繹如也 역여야
以成 이성
공자께서 노나라의 태사악(음악을 관장하는 관리)에게 말씀하셨다.
음악에 대해 알 것 같습니다.
시작할 때
흩어진 여러 소리들이 합해져서,
끝나갈수록
조화되고,
명료해지고,
찬란해집니다.
이렇게 한곡이 완성됩니다.
●공자는 음악을 무척 좋아했다.
악기도 좋아했고,
노래도 좋아했다.
멋장이다.
24장
儀封人請見曰 의봉인청현왈
君子之至於斯也 군자지어사야
吾未嘗不得見也 오미당부득현야
從者見之 종자현지
의봉인(儀(의)지방 국경 관리인)이 공자를 뵙고자 청하며 말했다.
군자가 이곳에 이르렀을 때,
내가 만나뵙지 못한 분은 없었오.
종자가 그를 공자께 인도했다.
出曰 출왈
二三子何患於喪乎 이삼자하환어상호
天下之無道也久矣 천하지무도야구의
天將以夫子爲木鐸 천장이부자위목탁
그가 나와서 말했다.
여러분 어찌 그리 근심하십니까?
천하가 무도한지 오래됐으나,
이제 하늘이 공자를 목탁으로 삼으려 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공자가 정치 이상을 펴기 위해 천하를 떠돌다
곤궁에 처한 시절의 이야기라고 생각된다.
공자라는 커다란 인물을 기록한 논어에는
이름 없이 자신의 길을 걸었던 은자와 현자들도 많이 등장한다.
그저그런 장삼이사들에게도 인생과 배움과 깨우침은 귀한 것이다.
의봉인은 본질을 볼 줄 알았던 참 멋진 사람이었던 것 같다.
25장
子謂韶 자위소
盡美矣 진미의
又盡善也 우진선야
謂武 위무
盡美矣 진미의
未盡善也 미진선야
공자께서 韶(소) 음악에 대해 말씀하셨다.
지극히 아름답다.
또 지극히 선하다.
武(무) 음악에 대해 말씀하셨다.
지극히 아름답다.
그러나 지극히 선하지는 못하다.
●韶(소)는 순임금의 음악이다.
武(무)는 주나라의 시조 무왕의 음악이다.
26장
子曰 자왈
居上不寬 거상불관
爲禮不敬 위례불경
臨喪不哀 임상불애
吾何以觀之哉 오하이관지재
높은 자리에 있음에도 관용스럽지 못하고
예를 행함에 공경함이 없고
상을 겪음에 슬퍼함이 없다면
내 어찌 그런 모습을 보아 넘길 수 있겠는가?
●관용, 공경, 슬픔, 이런 것들이
제사와 음악과 무용과 禮(예)의 근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