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관계 2
그가 처음 이 회사의 이 과로 다른 동기 두 명과 배치되었을 때부터 대리가 된 지금까지 장수과장으로 있는
그녀가 처음 한 말이었다. 이상하게도 다른 회사 같으면 과장의 자리는 한두 번 변동이 있을 법도 한데 그가
근무하는 부서는 과장이 장기집권이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불만이 그에게는 없었다.
그것은 바로 그와 그녀의 관계 때문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가 컴퓨터를 열고 메일을 확인하지만 그녀에게서 온 메일은 없었다.
지난 삼 년 동안 월 화 수 목 금 하루도 빼지 않고 보내주던 메일이었고, 이 메일에 관한 한 개인적인 만남에서
조차 내색하지 않던 그녀만의 고집스러운 업무였는데 말이다. 그랬었다. 그녀와 개인적인 만남에서 가끔 한 번씩
회사 업무에 관한 대화를 하려고 하면 눈을 조용히 내리 깔면서 꼭 이런 자리에서 그런 얘기를 해야 하냐고 되묻던
그녀였던 것이다. 그는 메일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묘하게 어깨의 힘이 빠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고 보니 사람이란 참 묘한 동물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그 느낌이라는 것 말이다. 흔히 꿈자리가 뒤숭숭하다고
하는 말처럼 분명한 과학적 근거가 없는데도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는 묘한 기분 말이다.
그가 어깨의 힘이 빠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그 느낌이 가슴의 크기를 확장하면서 두근거리고 긴장하려 할
그 때 누군가 어깨를 툭! 친다. 그가 돌아보니 그와 함께 입사해서 같은 날 대리가 된 남궁이었다. 물론 남궁은 그의
성이다. 그가 대답대신 회전의자를 빙그르 돌리며 그를 보자
“혹시! 강 대리 말이야, 너 히천 소문 들었어?”
이게 무슨 말인가? 천 과장 소문이라니. 그는 잠시 어제 저녁 그녀와 함께 있었던 시간을 돌이켜 본다.
퇴근이야 각자가 했지만 퇴근 후 그들만의 비밀 아닌 비밀스러운 장소에서 함께 저녁을 먹고 분명 낮에 누군가의
흔적이 남겨 있었겠지만 그런 것을 개의치 않고 들어가 그들의 흔적을 남기는 행위를 하고 다시 나와 생맥주로
조금 전 흠뻑 흘렸던 땀을 보충하고 헤어지기 전 까지 그녀는 그에게 회사에 관한 말은 일절 하지 않았다.
아니 어제 뿐 아니라 언제나 그랬었다.
“아니! 무슨 소문?”
그의 머리에는 수많은 생각들이 지나간다. 그녀와 언쟁이 있으면 으레 하는 헤어지자는 말이나 기분이 상하면 집의
어른들을 들먹이며 선을 보라고 한다고 하는 말들이 주마등처럼 그의 머리를 훑으며 지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참 사람이란 묘한 동물이다. 그의 머리에는 그런 생각들이 후다닥 지나가면서도 동시에 그녀의 군더더기
하나 없는 몸매가 보이고 그녀가 그의 밑에서 신음처럼 뱉어 낸 수많은 음향들이 기억나며 그와 동시에 만일 그녀
에게 자신이 바라지 않는 일들이 일어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까지 그 짧은 시간에 그 많은 생각들과 기억들이
한 여름 장맛비 쏟아지는 것처럼 그의 뇌리를 훑고 지나가는 것이다.
“히천이 사표 냈다고 소문났는데.”
“히천이 사표를! 왜?”
사무실에 근무하는 그녀의 부하 직원들은 그녀를 천 과장이라고 부르지 않았고 대신 히천이라고 불렀다.
히스테리 천 과장이라는 의미였다.
“그건 나도 모르겠고, 어제 저녁 퇴근하면서 부장에게 사직서 제출하고 갔다는 소문이야.”
그는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분명 어제 저녁에도 그녀에게서 그런 느낌은 전혀 받지 않았었다.
하긴 그녀에게서 그녀와의 만남을 통해 그가 알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그저 그녀가 원하는
대로 그렇게 만나고 헤어지고 했을 뿐이었던 것이었다.
“나도 아침에 출근해서 들은 말이기 때문에 그 이상은 모르겠어.”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휴게실에 가서 자판기 커피를 한 잔 빼서 탁자위에 올려
놓고 그녀의 전화번호를 찾아 걸었다. 그러고 보니 그는 그녀에게 전화를 개인적으로 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사실
을 깨닫는다. 그녀 역시 그에게 개인적인 전화를 한 적은 없다. 만나고 싶으면 메일이나 문자로 시간과 장소를 알려
주었고 그 역시 그녀에게 그런 식으로 만남을 유지했을 뿐이었다는 사실 말이다.
전화벨이 몇 번 울리더니 이 번호는 없는 번호라는 안내 음성이 들려온다. 그는 그 음성을 들으며 기운이 쭉 빠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첫댓글 무슨 일일까요....
그러게요. 나도 궁금해서 조금 더 살펴보려 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