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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기
오 상 원
뒷집 무너진 흙담벽 곁에서 무엇인가 어른거리는 것이 얼핏 눈에 스쳤다. 꼬마는 숨을 죽이고 살며시 총구를 그쪽으로 돌렸다. 이마에서 땀이 흘렀다. 이번에는 꼭 먼저 쏘아 잡아야지. 꼬마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무너진 담벽 쪽의 동정을 계속 살펐다. 머리 끝이 담벽 끝에서 살금살금 이쪽으로 움직여오고 있다. 꼬마는 총신¹을 살며시 올리고 표적을 가늠했다. 이번에는 꼭 먼저 쏘아서 놈을 죽여야지. 긴장한 꼬마의 입가에는 어느덧 웃음이 번지어가고 있었다. 필경 이쪽으로 돌아오겠지. 그러나 이쪽 담 모퉁이까지 오기엔 아직 시간이 있었다. 꼬마는 이마의 땀을 손등으로 문질렀다. 그리고 문득 하늘을 쳐다보았다. 흩어지는 담배 연기처럼 뿌연 구름이 속 하늘을 드러낸 채 한쪽으로 비끼고 그 너머로 맑은 하늘이 샛물처럼 시원스레 꼬마의 눈을 적셔주었다.
야아, 하늘은 언제 봐도 좋다! 꼬마는 들었던 총신을 약간 내리었다. 저토록 푸른데 캄캄하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그 우주인인가 누군가 머리가 좀 돈 모양이지, 로켓을 타고 하늘에 올라갔다 내려온 우주인이 하늘을 푸르지가 않고 캄캄하기만 했다고 말하더란 얘기를 들었을 때 꼬마는 기분이 잡쳐지고 공연히 우울해지기까지 했다.
그때 어디선가 인기척이 났다. 꼬마는 급히 인기척이 나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동태를 살폈다. 두부장수 아저씨가 손수레를 끌고 좁다란 골목길을 돌아 나오고 있었다. 벌써 아침들을 다 먹었는데 저렇게 게을러가지고 무슨 장사를 하겠누. 꼬마는 혼자 중얼거렸다. 골목길을 막 돌아섰을 때 길모퉁이 집 벽 창문이 드르륵 열렸다. 머리가 푸수수 헝클어진 색시가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두부장수를 불렀다. 저런 게으름뱅이 여자가 있으니까 게으름뱅이 두부장수도 해먹기 마련이지. 꼬마는 쿡쿡 혼자 웃었다. 그리고 꼬마는 정신이 든 듯 급히 무너진 흙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무런 기척이 없다. 꼬마는 조심스레 총신을 들고 급히 주위를 살펴보았다.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났다. 그때 구멍가게 곁에서 갑자기 빵빵 총소리를 지르면서 훈이가 기관단총을 휘두르며 달려 나왔다. 꼬마는 반사적으로 그쪽으로 총구를 돌려대고 같이 쏘아댔다. 땅 땅 땅…… 기관단총을 마구 휘두르던 훈이는 성이 난 듯이 우뚝 섰다.
“아냐. 내가 먼저 쏘았다. 넌 죽었어.”
“아냐. 난 안 맞았거든. 네가 내 총에 맞았단 말야. 그러니까 네가 죽어야지.”
“씨이, 내가 먼저 쏘았는데.”
“난 키는 작지만 역 전의 용사란 말야. 그러니까 안 죽거든.”
둘이서 승강이를 하고 있을 때 이쪽 담 곁에서 총소리가 연방 울렸다. 그리고 한 어린이가 사격 태세를 한 채 으스대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섰다. 짱구였다.
“자, 너희들은 둘 다 죽었단 말야. 죽은 시늉을 빨리 해.”
“싫어.”
꼬마가 볼멘소리로 말했다.
“나도 싫어.”
훈이도 부루퉁했다.
“그럼 전쟁이랄 게 뭐 있니. 죽은 사람도 없는데.”
“밤낮 우리만 죽는걸 뭐.”
“당연하지 뭐니. 너희들은 죽기로 이미 정해져 있거든. 전쟁이란 늘 그런 건데 뭐.”
“그런 전쟁 싫다.”
“나도 싫다.”
훈이는 이마의 땀을 문지르며 기관단총을 멋쩍은 듯이 어깨에 멨다. 꼬마는 그냥 총을 든 채 서 있었다.
“그럼 다시 하자.”
짱구가 말했다.
“싱겁다. 난 안 한다.”
꼬마는 총으로 사용하던 막대기를 내던졌다.
“나도 안 한다.”
훈이는 기관단총을 어깨에 멘 채 크게 습을 한 번 내쉬었다.
“그럼 뭐 하고 노니?”
짱구가 말했다.
“……”
“……”
세 어린이는 서로 얼굴만 마주 보고 잠시 말이 없었다. 하고 놀 것이 없었다. 싱거웠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을 깜박거리던 꼬마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 아버지들은 우리처럼 꼬마였을 때 뭐 하고 놀았을까?”
“……?”
“……?”
“우리처럼 전쟁놀이하고 놀았을까?”
“…… 모르겠다.”
“…… 나도 모르겠다.”
꼬마가 먼저 또 피식 웃었다. 훈이가 따라 피식 웃었다. 짱구도 피식 피식 웃었다.
“우리 할아버지들은 뭐 하고 놀았을까?”
이번에는 짱구가 말했다.
“글쎄…….”
“난 할아버지가 없어 모른다.”
세 어린이는 갑자기 아버지와 할아버지들이 자기들처럼 어렸을 때 무슨 놀이를 하고 놀았는지 궁금했다. 알고 싶었다. 그리고 자기들도 그런 놀이를 하며 한번 놀아보고 싶어졌다.
“니, 할아버지 한테 가서 물어보자.”
“그러자.”
훈이가 앞장을 서고 꼬마와 짱구가 뒤따랐다. 한길 가에 있는 할아버지 복덕방을 향해 그들은 골목길을 빠져 나갔다.
자전거 수선가게 앞에 이르렀을 때였다. 앞서 가던 훈이가 걸음을 멈추고 우뚝 섰다. 뒤따라가던 꼬마와 짱구도 걸음을 멈추었다. 세 어린이는 마치 자기들의 눈을 의심이나 하듯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그리고 꼭같이 다시 자전거 수선가게 안으로 시선을 돌렸다. 세 어린이는 약속이나 한 듯이 또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아아 어쩌면…… 그들은 웃었다.
항상 다 낡은 작업복에 기름투성이를 하고 자전거 바퀴를 돌려가며 쓸고 닦고 하던 절름발이 아저씨가 오늘은 그게 아니었다. 희한했다. 가게 안도 마찬가지였다. 여느 때 같으면 기름통과 고무풀통 그리고 부러진 자전거 바퀴살 등 낡은 부속품들이 여기저기 뒹굴어 있고 이러한 것들 사이를 절름발이 아저씨는 기름투성이 걸레를 들고 성큼성큼 기어 다니면서 부지런하게 일을 하고 있어야 할 판인데 오늘은 그게 아니었다. 가게 안도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기름투성이 결레 조각도 땅 위에 흐트러진 기름 자국도 없었다. 더욱이 놀란 것은 절름발이 아저씨의 모습이었다. 어쩌면 저렇게 의젓할 수 있을까. 마치 딴사람만 같았다. 깨끗한 군복에 군모를 쓰고 왼편 가슴팍에는 훈장이 다섯 개나 이쁘장하게 달려 있는 것이다.
절름발이 아저씨는 어린이들을 보자
“오, 우리 꼬마 장군 각하!”
하고 빙긋 웃으며 거수경례를 해 보였다. 참으로 늠름한 모습이었다. 세 어린이는 절름발이 아저씨를 지금까지 너무도 하찮게 보아온 데 대해 부끄럽고 무안한 생각마저 들었다.
절름발이 아저씨는 지팡이를 짚고 절름거리며 걸어 나왔다. 늘 기름투성이던 얼굴은 수염 하나 없이 곱게 다듬어저 있었다. 어디로 보나 자전거 고치는 아저씨 같지가 않았다.
“아저씨!”
세 어린이는 절름발이 아저씨를 둘러쌌다. 군복에서는 장롱에서 갓 꺼내 입었는지 나프탈렌 냄새가 싸하니 아직 풍기고 있었다. 등어리와 팔소매에는 개켰던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
“아저씨!”
“응?”
절름발이 아저씨는 세 어린이의 머리를 번갈아 쓰다듬어주었다.
“아저씨, 어디 가세요?”
“응, 시내에 들어간다.”
“아저씨 근사하네요.”
“호오, 그래.”
“왜 이런 근사한 옷 있으면서 입지 않아요?”
“일 년에 꼭 한 번만 입는단다.”
“왜요?”
“오늘만 이걸 입는 날이지. 너희들도 인제 크면 얄게 된단다. 자 시간이 늦겠다. 빨리 가야지.”
절름발이 아저씨는 지팡이를 짚고 절름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세 어린이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따라나섰다.
“아저씨 가슴에 단 건 뭐예요?”
꼬마가 물었다.
“훈장이지.”
“훈장은 누가 주는데요.”
“나라에서 주지.”
“왜요?”
“전쟁에 나가 잘 싸우고 공을 세우면 누구에게나 주는 거란다.”
“근사하네요.”
“부러우냐? 그러나 너희들 때엔 이런 것이 필요 없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만.”
“아저씬 누구하고 싸웠는데요?”
이번엔 훈이가 물었다.
“너희들은 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이란다. 그때 우리나라에 큰 전쟁이 있었거던. 너희 아버지들도 모두 나가 싸웠단다.”
“그런데 우리 아버진 전연 그런 말 안 하시데요.”
“슬픈 얘기니까 안 하시겠지. 그땐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으니까. 집집마다 할아버지나 누나나 아버지가 죽어갔단다. 너희들도 집안에 누가 죽으면 슬프지? 그땐 아버지랑, 할머니랑, 엄마랑 모두 슬펐단다.”
“그렇지만 우린 하나도 슬프지 않네요?”
“너희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러지. 어른들은 아직도 그때의 일들을 잊지 않고 있단다.”
꼬마는 문득 어머니 얼굴이 눈앞에 떠올랐다. 그리고 언젠가 쥐어박히던 생각이 나서 갑자기 마음이 울적해졌다: 어머니는 한때 집에 자주 찾아오던 어떤 남자와 늘 싸움을 했었다. 그러면 야간 고등학교에 다니던 형은 낡은 가구들이 마구 흘어져 있고 먼지가 뽀얗게 앉은 골방에 혼자 들어가서 조그만 사진틀과 태극 무늬가 있는 계급장을 말없이 들여다보고 있곤 했다. 그날도 그랬었다. 형은 골방에 들어가 사진틀을 말없이 들여다보고 있었다. 안방에선 어머니와 그 남자가 서로 다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꼬마는 살며시 골방으로 들어가 형 곁으로 갔다. 형은 돌아다보지도 않았다. 사진틀에는 군모와 군복을 입은 사람이 정면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씩씩해 보였다.
“성, 거 누군데……?”
“……”
형은 말이 없었다.
“응? 누구니?”
꼬마가 또 졸라대니까 그때서야
“아버지다.”
하고 나직이 입속에서 말했다.
“우리 아버˙치?”
“아니……”
형은 크게 한숨을 죽이고 사진틀을 서람 속에다 넣어버렸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하버지는 전쟁 때 죽었어.”
형은 혼잣말처럼 속삭이고 쓰게 입맛을 다셨다.
“아버지가 죽었어?”
“내 아버지는 죽었어.”
“그럼 난?”
“넌 아버지가 없다. 엄마뿐이야.”
형은 말끝과 함께 태극 무늬가 있는 계급장을 서랍 속에 집어넣은 후 동생을 쳐다보지도 않고 그냥 쓸쓸히 골방을 나가버렸다. 순간 꼬마는 갑자기 설움이 왈칵 복받쳐 올랐다. 꼬마는 며칠 동안 잠이 안 왔다. 어느 날 꼬마는 골방에서 그 사진틀을 꺼내갖고 어머니한테로 갔다.
“엄마, 이거 누구니? 우리 아버지?'’
그러자 어머니는 사진틀을 획 빼앗고 꼬마를 마구 쥐어박았다. 왜 어머니가 그랬는지 알 수 없었다. 꼬마는 그때 마구 흐느끼면서 어렴픗이나마 형과 자기와는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런 울적한 생각에 젖어 있던 꼬마는 문득 사진틀 속의 군복이 눈앞에 삼삼하게 떠올랐다.
“아저씨?”
“응?”
절름발이 아저씨는 힘이 드는지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면서 걸음을 멈추고 이마의 땀을 씻었다. 제법 햇볕이 따가웠다.
“어깨에 태극 무늬가 있는 동그란 거 두 개를 달고 있으면 그게 뭐 예요?”
“그게, 옛날 전쟁 때 계급장인데 중령이란다.”
“그럼 굉장히 높게요?”
“그럼. 어떻게 그런 걸 다 묻지?”
“아녜요. 그저 물었을 뿐예요.”
꼬마는 쓸쓸히 웃었다.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높은 사람들도 많이 죽었겠네요?”
“많이 죽었지. 우리 소대장도 대대장도 다 죽었단다.”
“누구하고 싸웠는데요?”
“인민군이지, 일요일날 새벽에 모두 잠든 틈을 타서 쳐 나왔거던. 이북에서 말이지.”
“이북은 아주 먼 덴가요?”
“아니지. 모두 우리나라란다.”
“그 사람들은 어떻게 생겼는데요? 껌어요?”
“우리와 꼭같이 생겼지.”
“눈도 코도 입도?”
“그럼. 같은 민족인데.”
“말은 어떻게 해요?”
“말도 꼭 같지.”
“그런 데 싸웠군요.”
“나쁜 놈들이니까. 그럼 아저씨도 싸우다가 이렇게 다리를 다쳤단다.”
“안됐 네요.”
절름발이 아저씨는 또 지팡이를 짚어가며 걷기 시작했다. 그들은 무너진 하수도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며칠 전 쏟아져 내린 비로 하수도가 무너진 채 내버려져 있었다.
“아저씨 도와드릴까요?”
“아니 괜찮다. 자 옆으로들 비키렴.”
아저씨는 눈가늠으로 무너진 하수구의 폭을 재면서 잠시 몸의 중심을 가다듬고 나서 한쪽 발로 껑충 뛰어넘었다. 그리고 앞으로 쓰러지려는 몸을 급히 지팡이로 가누며 발돋움을 했다.
“아저씨, 그때 싸우던 얘기 해줘요.”
짱구가 못 견디게 졸라댔다.
“지금은 안 돼. 시간이 늦음 안 되거든. 오늘은 옛날 싸우다 살아남은 전우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이는 날이란 말야.”
“우리도 따라가면 안 되나요?”
“안 되지. 자아 너희들은 어서 가서 전쟁놀이나 하렴. 기관단총은 그렇게 메는 게 아니란다. 이렇게 거꾸로 메었다가 재빠르게 두루룩 갈겨야지, 알았지?”
“네.”
절름발이 아저씨는 군모를 추켜올리고 이마의 땀을 닦았다. 그리고 지팡이를 짚으며 큰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세 어린이는 점점 멀어져가는 그 뒷모습을 쓸쓸히 바라보고 있다가 생각이 난 듯이 복덕방이 있는 쪽으로 접어들었다.
복덕방에는 긴 나무 의자만이 동그마니 놓여 있고 아무도 없었다. 여느 때 같으면 할아버지들이 모여 앉아 한참 잡담을 늘어놓고 있을 판인데 오늘은 한적했다.
“할아버지 어디 가셨어요?”
“승길이냐? 동네 어른들하고 모두 시내로 들어가셨단다. 구경들을 하러 가신다더만 사람 구경에 고생들이나 하시지 웬…….”
할머니가 옷을 꿰매던 손을 멓추고 돋보기안경 너머로 훈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세 어린이는 적이 실망스러웠다. 하고 놀 것이 없었다. 꼬마가 한길 가에다 고추를 내놓고 오줌을 갈겨댔다. 훈이와 짱구는 고추를 덜렁 내놓고 오줌을 싸 갈겼다.
“뭐하고 노니?”
“하고 놀 게 없다. 참 싱겁다.”
“참 따분하다.”
잠시 후 짱구가 좋은 섕각이 떠올랐다는 듯이 손뼉을 쳤다.
“뭔데·……”
“우리 데모놀이 하자.”
“그러자.”
“그래 하자.”
“그럼 너희 둘은 학생이고 난 경찰관이다.”
“응, 그래.”
꼬마와 훈이는 서로 어깨를 단단히 꼈다. 그러나 곧 꼬마가 의아스러운 표정을 했다.
“그런데 무엇을 반대하니?”
“참 반대할 게 없잖어?”
“그런 건 알 필요 없어. 무조건 반대하면 돼. 그리고 마구 소리를 지르면서 데모를 하란 말야.”
짱구가 아는 체하고 말했다.
“그러자.”
“그럼 너는 골목에 숨어 있다 나와야 해. 데모가 한참 지나갈 때 골목에 있다가 경찰관이 최루탄을 쏘면서 나오는 거거든.”
“자 시작이다.”
꼬마와 훈이는 어깨를 꽉 끼고 머리를 내저으면서 데모를 하기 시작했다.
“반대! 반대! 모두 무조건 반대다!”
꼬마와 훈이는 길이 좁다는 듯이 갈지자로 왔다 갔다 하면서 전진을 시작했다.
“반대! 반대! 모두 무조건 반대다!”
두 어린이는 서로 소리를 냅다 지르며 달음질쳤다. 골목에 숨어있던 짱구가 어디서 났는지 신문지로 방독면같이 입을 삐죽하게 만들어 쓰고 뛰어나오며 탕탕하고 최루탄을 쏘아댔다. 길 한가운데는 먼지가 뽀얗게 솟았다. 연탄재 덩이를 최루탄으로 던진 것이었다. 꼬마와 훈이는 면지 속을 마구 날뛰었다.
“아냐. 최루탄을 쏘면 도망가야 해.”
“그래 도망가자.”
꼬마와 훈이는 각기 헤어져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짱구는 급히 호주머니에서 호루라기를 내어 냅다 불며 이들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꼬마가 드디어 목덜미를 붙잡혔다. 둘은 서로 어깻숨을 들까불면서 연탄 먼지를 후후 불어 젖혔다.
“에끼 놈들 같으니, 장난도 할 게 있지…….”
지나가던 동네 노인이 뽀얗게 흩어지는 연탄재를 피하면서 꾸중을 쳤다.
“왜요? 데모놀이 하면 안 되나요…….”
꼬마가 부루퉁해서 노인을 마주 보았다.
“데모놀이라니, 웬. 새 새끼들이나 잡고 놀 일이지……쯧쯧.”
노인은 혀를 찼다.
“새 새끼가 어디 있길래요?’
꼬마가 입을 삐죽했다.
“그렇군. 허허, 인제 애들 노는 것도 변했다니까, 웬!”
노인은 혼자 중얼거리며 손등짐을 지고 지나가버렸다. :
노인의 모습이 저만치 사라졌을 때 꼬마는 화풀이나 하듯 한에 흩어진 연탄재 덩이를 발길 닿는 대로 차 팽개쳤다. 짱구와 훈이도 뒤따라 연탄재 부스러기들을 마구 차 팽개쳤다.
“데모놀이도 싱겁다.”
“참 싱겁다. 그만두자.”
“나도 안 한다.”
세 어린이는 잠시 동안 말을 잊고 멀리 시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내엔 무슨 구경이 있을까?”
“글쎄…….”
“할아버지도 자전거 가게 절름발이 아저씨도 모두 갔거든.”
“우리도 가볼까?”
“그러다 엄마한테 야단맞음 어떡해.”
“몰래 갔다 오지 뭐.”
“들키면 야단맞아.”
“그럼 넌 관둬.”
“그래 난 안 간다.”
꼬마는 돌아섰다. 짱구와 훈이는 큰길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혼자 돌아서기는 했으나 꼬마는 마음 한구석이 서운했다. 한두 걸음 발을 옮기다 말고 꼬마도 곧 그들을 뒤따라갔다.
“안 간다더니 왜 따라오니?”
“저 큰길까지 만 갈 테야.”
“그래. 우린 시내까지 들어간다.”
짱구와 훈이는 꼬마가 뒤따라오자 더욱 신이 나서 걸었다. 꼬마도 뒤떨어지지 않으려고 바싹 다가서서 따라갔다. 지금까진 꼭 같이 어울렸었는데 따돌리우는 것이 어딘가 모르게 분했다.
“시내에는 자동차가 많겠지?”
꼬마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럼, 자동차뿐인 줄 알어. 전차도 다니구 사람들도 많다.”
꼬마는 이들이 상대를 안 해줄까 근심이었는데 말대꾸를 해줘 기운을 얻었다.
“높은 집들도 많겠지?”
“십층집도 있다. 하늘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단 말야.”
짱구가 제법 아는 듯이 으스댔다.
시내로 통하는 도로에 나서자 세 어린이는 서로서로 손을 꼭 잡았다. 사람들을 가득가득 실은 버스와 합승이 쉴 새 없이 꼬리를 물고 시내로 시내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학생, 어른, 아이들 할 것 없이 줄레줄래 널따란 한길 양쪽을 메우고 시내로 들어가고들 있었다.
“야아, 신난다.”
짱구가 소리를 쳤다. 세 어린이는 사람들의 물결 속에 곧 휩쓸려 들어갔다. 꼬마는 엄마한테 야단맞을 일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덩달아 신이 나 했다. 길 위는 사람들의 발길에서 일어나는 먼지가 뽀얗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꼬마는 그 면지 때문에 목구멍이 자꾸 칼칼했다: 훈이도 짱구도 마찬가지였다. 땀이 났다. 세 어린이는 연방 이마의 땀을 손등으로 문지르며 서로서로 손을 꼭 잡고 걸었다.
전차 종점에는 수많은 사람이 줄지어 서서 북적 대고 있었다. 연방 사람들을 가득 싣고 전차가 떠나도 사람들은 줄어드는 기색조차 없었다. 아니 도리어 자꾸자꾸 불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세 어린이는 사람들의 물결에 밀려 엉겁결에 전차 속으로 말려 들어갔다. 어떻게 타게 됐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어른들 사이에 묻어 들어간 것이었다. 전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I마는 비로소 덜컥 겁이 났다. 공연히 따라왔다고 후회했다. 엄마가 알면 호되게 야단을 맞을 텐데. 어쩌면 지금쯤 찾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어른들 허리 사이에 끼어서 씩씩거리떠 신이 나서 웃고 있는 짱구와 훈이를 보자 꼬마는 적이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짱구와 훈이가 혹시 겁이 나 있는 자기에 대해 눈치를 챘을까 해서 일부러 웃어 보였다.
교통이 차단된 데서 세 어린이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전차에서 내렸다. 거리에는 전차와 자동차가 수없이 줄지어 이중 삼중으로 늘어섰고 사람들의 물결이 길마다 넘실거리고 있었다.
“여기가 어디니?”
꼬마가 연신 두리번거렸다.
“아저씨, 여기가 어디예요?”
“바로 저기가 파고다공원이란다.”
한 아저씨가 손가락질하며 가르쳐주었다.
“아, 저게 파고다공원이다. 내 그림책에 있었다.”
“나도 그림책에서 봤다. 야, 신난다.”
세 어린이는 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아, 거북 비석이다!”
짱구가 소리쳤다.
“저기 탑도 서 있다.”
이번에는 훈이가 소리쳤다.
“그런데 웬 사람이 이렇게 많으니?”
공원 안에는 여기저기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서 시장판처럼 북적거리고 있었다. 팔각정 앞에 모여선 군중들 속에서 함성이 일어났다. 어떤 사람이 열변을 토하자 또 와 함성이 솟아올랐다.
세 어린이는 그쪽으로 가서 어른들 틈을 비비고 들어갔다. 열변은 계속되고 있었다.
“나는 6·25 나던 날 동두천 최전방에 있었소. 그때부터 나는 사 년 동안 최전방에서 공산군들과 싸워왔소. 부상도 여러 번 했소. 그 후 나는 소령으로 제대했던 거요. 그러나 여러분! 국가를 위해 온갖 힘을 다해 싸웠건만 그 후 국가가 나에게 베푼 게 뭐였나 말이오. 지게였소. 하루 사오십 원 벌이를 위해 지게를 져야 하는 것뿐이었소. 지금 시내 한복판에선 성대히 식을 올리리고 있소. 누구를 위한 식이냔 말요? 자, 인제 내게 남은 건 이 낡은 세 조각의 훈장뿐이오. 누구도 탐내지 않는 이 세 조각의 낡은 훈장뿐이란 말요.”
어린이 놀이터 쪽에선 신나게 불러대는 유행가 소리가 기타의 반주와 함께 들려오고 있었다.
“저쪽이 재밌는갑다.”
“그래. 그리로 가자. 뭐라는지 떠들기만 하고 싱겁다.”
세 어린이는 그쪽으로 갔다. 사람들이 빙 둘러선 한가운데서 한 사내가 기타를 쳐가면서 구성지게 노랫가락을 주워 넘기고 있었다. 그러나 세 어린이는 다시 그곳을 빠져나왔다. 돌담 곁 잔디밭에는 허름한 옷차림의 노동자들이 떠드는 소리들과는 아랑곳도 없다는 듯이 종잇조각으로 얼굴을 가리고 낮잠들을 자고 있었다.
“쯧쯧, 꼬마 녀석들, 이리 오렴.”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에 세 어린이는 동시에 걸음을 멈추고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후줄그레한 옷차림의 낯선 어른이 나무 그늘 밑에서 그들을 보고 손짓을 하고 있었다.
“왜요?”
꼬마가 물었다.
“자, 오징어 먹으렴.”
낯선 어른 앞에는 소주병과 찢어발긴 오징어가 놓여 있었다. 술기가 눈 가장자리를 불그름히 물들이고 있었다.
“아뇨.”
꼬마가 고개를 저었다.
“너 몇 살이니?”
“일곱 살이에요.”
꼬마가 대답했다.
“너는?”
“여덟 살이에요.”
훈이가 대답했다.
“너는?”
“같아요.”
짱구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구경 들 나왔니?”
“네.”
“집이 어딘데?”
“저기…… 멀어요.”
꼬마가 대답했다.
“저기 어디?”
“아주 멀어요.”
“그러다 길을 잃을라…….”
“아저씬 집이 어딘데요?”
“집?” 낯선 어른은 쓰게 웃었다. “여기지…….”
“여기가 집예요?”
꼬마가 눈을 휘둥글리며 말을 받았다:
“그럼.”
“여기가 공원이지 어디 집예요?”
“그렇지. 집이 아니지.” 낯선 어른은 잠깐 말을 끊었다가 곧 이었다.
“아저씬 그만 길을 잃어버렸단다.”
“아유, 우습다. 어른도 길을 잃어버려요?”
“그럼, 어른도 길을 잃어버리지. 아저씬 정말 길을 잃어버렸단다. 길을 잃어버린 어른들처럼 불쌍한 게 없지. 너희들이나 길을 잃어버리지 말렴.”
꼬마는 입을 오무락거렸다. 낯선 아저씨가 참으로 우스웠다.
“왜 길을 잃어버렸음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지 않아요?”
“너희들은 길을 잃었다가도 찾아가지만 어른들은 길을 잃으면 그것으로 그만이란다. 물어볼 사람도 없고 또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지.”
낯선 아저씨는 소주병을 기울이면서 쓸쓸히 웃었다.
“참 아저씬 이상하네요.”
“자, 그럼 어서 가서 구경들이나 하렴:”
“아저씨 안녕히 계셔요.”
세 어린이는 공원을 나서면서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낄낄거리며 웃었다. 저만한 나이에 길을 잃다니! 참 우스운 아저씨였다.
거리에는 여전히 사람들의 물결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전차와 버스들은 텅텅 빈 채 길 한복판에 장사진을 이루고 서 있었다. 세 어린이는 사람의 물결 속에 휩쓸려 마냥 결어가고 있었다. 몹시 땀이 났다. 어느덧 해는 하늘 한가운데 높이 솟아 있었다. 큰 네거리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 지금까지 서서히 흘러가던 사람의 물결은 밀물에 되밀리는 강물처럼 그곳에서 주춤거렸다. 세 어린이는 어른들 틈을 비집고 빠져나왔다. 훤히 트인 차도에는 자동차의 그림자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헌병과 경찰관이 요란하게 호각을 불어대며 차도로 밀려 내려오는 군중을 정리하느라고 부산하게 법석대고 있을 뿐이었다. 세 어린이가 있는 곳에서부터 네거리까지는 아직도 까마득했다.
“우리 저기까지 가보자.”
“그러자.”
세 어린이는 살금살금 차도로 빠져나와 네거리 쪽으로 조금씩 다가갔다. 네거리 근처에는 지붕은 물론 가로수 위에까지 구경꾼들이 닥지닥지 매달려 있고 그 밑에서는 밑에서대로 사람들이 서로 앞에 나서려고 밀고 밀리고 있었다. 발자국 하나 옮겨놀 틈조차 없었다.
이윽고 네거리 건너편에서 행진곡이 우렁차게 울려 나오기 시작했다. 짱구와 훈이는 신바람이 났다. 꼬마도 신이 났다. 자꾸 어깨가 으쓱거려졌다.
앞장선 지프차에 이어 완전 무장한 군인의 대열이 걸음도 당당히 행진해왔다. 동시에 일제히 군중들 속에서 박수갈채가 터져나왔다. 박수갈채는 그칠 줄을 몰랐다. 완전 무장한 군대의 대열은 계속 지나가고 있었다. 백 명, 이백 명, 천 명……
“아! 군인 아저씨들이 참 많다!”
꼬마가 소리쳤다.
“얼만지 헬 수도 없다.”
훈이가 맞장구를 쳤다. 어디서인가 땅을 뒤흔드는 듯한 육중한 소리가 짐승의 울음소리처럼 땅을 구르고 울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이 무슨 날일까?”
“글쎄…….”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모여 구경을 하고 군인들이 지나가는 걸 보니까 좋은 날인 모양이다.
“아까 자전거 가게 절름발이 아저씨는 슬프다고 했는데?”
“뭔지 모르겠다. 구경이나 실컷 하자.”
땅을 뒤흔드는 듯한 육중한 소리가 바로 발밑에서 세차게 울려오고 있었다.
“야! 탱크다!”
꼬마가 소리쳤다. 긴 포문이 하늘을 향해 지그시 비껴 보는 전차 포대(砲臺) 위에는 상반신을 드러낸 탱크병이 빨강과 파랑을 들고 똑바로 앞을 노려보고 있었다.
“또 온다. 또 온다. 아, 참 많다!”
꼬마는 발을 구르며 눈이 휘둥그레져서 좋아했다.
“신난다!”
훈이도 잇달아 소리를 쳤다. 짱구는 짱구대로 발돋움을 하고 정신없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전차대에 이어서 각종 대포들의 행렬이 지나갔다. 많은 차량의 엔진 소리에 눌려 그토록 우렁차던 밴드의 행진곡은 모깃소리처럼 간간이 앵앵거리고 있었다. 그때 하늘에서 고막을 찢는 듯한 폭음 소리가 길게 꼬리를 이으며 쏜살같이 지나갔다. 제트기의 편대 비행이었다. 한쪽 획이 짧은 시옷자형으로 네 대의 제트기가 고층 건물 꼭대기를 스칠 듯이 바람을 끊고 지나가자 또 한쪽에서 그들을 가로지르며 네 대가 꼭같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세 어린이에게는 순간순간이 모두 홍분의 연속이었다. 밴드가 불어대는 행진곡이 또다시 우렁차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교통순경의 호각 소리가 요란한 속에 갑자기 군중들이 응성 거리기 시작했다. 식이 모두 끝난 모양이었다. 흰 백차²와 사이드카³에 둘러싸여 검은 세단 차가 미끄러지듯 네거리 한복판을 지나가자 군중들 속에서 박수갈채가 일제히 터져 나왔다. 이어서 십여 대의 고급 세단 차가 쏜살같이 뒤따랐다.
이윽고 네거리에 모여 섰던 군중들의 물결이 갑자기 무너지면서 차도 위로 일제히 쏟아져 나왔다. 세 어린이는 군중 속으로 삽시간에 휩싸여 들어갔다. 요란하게 울리는 호각 소리, 앞뒤로 밀려 쏟아지는 군중들의 물결, 세 어린이는 이리 밀리고 저리 쫓기고 어디로 어떻 게 흘러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사람, 사람, 사람의 물결, 세 어린이는 서로 놓치지 않으려고 손을 꼭 붙잡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이들을 휩쓸고 밀려오고 밀려가는 사람들의 물결은 마치 성난 파도처럼 사정없이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세 어린이는 이 사람의 급류에 휩쓸려 틈만 있으면 솟구쳐 오르려고 발버등을 쳤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더 사정없이 휘말려 들어가기만 했다. 이 발길에 차이고 저 발길에 휘감기고 온몸의 근육이 저마다의 균형을 잃고 있었다. 언제 어떻게 손들을 놓아버렸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꼬마는 급기야 울음을 터뜨렸다. 훈이도 울음을 터뜨렸다. 짱구도 엉엉 울고 있었다. 세 어린이는 저마다 왈칵 겁이 나서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사람의 물결에 휘말려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며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얼마나 이렇게 뿗불이 헤어져 부대끼면서 울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들이 길 한 모퉁이에서 다시 만났을 때 세 어린이는 서로 네 탓이라는 듯이 힘없이 주먹질을 하면서 울고 있었다.
“엄마한테 야단맞는다.”
“나도 야단맞는다.”
“빨리 가아.”
그러나 세 어린이는 어디를 어떻게 가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짱구가 훈이 손을 잡았다. 훈도 꼬마의 손을 잡았다. 또 울음이 왈칵 솟아 나왔다. 세 어린이는 아직 사람의 물결이 채 가시지 않은 네거리를 방향 없이 주춤주춤 걷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모두 나쁘다.”
꼬마가 울음을 머금으며 투덜거렸다.
“모두 나쁘다. 우릴 그냥 내버렸다.”
짱구도 울음을 씹으면서 말했다.
“치사하다. 모두 치사하다.”
훈이도 한마디 했다. 그리고 뺨으로 흘러내리는 눈물들을 닦았다.
세 어린이는 갑자기 세상이 무서워졌다. 사람들이, 군중이 무서워졌다. 그들은 손을 꼭 잡고 연방 훌쩍이면서 하여튼 발길 내키는 대로 걸었다. 이들 세 어린이가 울먹이면서 결어오는 것을 보자 한 노인이 물었다.
“너희들 왜 울고 있어?”
“길을 잃어버렸어요.”
꼬마가 눈물기 어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쯧쯧”
노인은 혀를 찼다. 길을 메웠던 사람들의 물결은 서서히 이젠 거리에서 걷혀가고 있었다. 빵집 앞을 지났을 때 길모퉁이에서 구멍가게를 지키고 있던 아주머니가 울먹이며 걸어오는 세 어린이를 보고 또 물었다.
“왜들 우니?”
“길을 잃어버렸어요.”
이번엔 훈이가 눈물을 닦으며 입속에서 중얼거렸다.
“저런 쯧쯧…… 집이 어딘데?”
“멀어요.”
“얼마나?”
“아주 멀어요.”
차도의 질서는 인제 회복돼서 전차와 자동차가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다. 설렁탕집 앞을 지날 때였다. 이번에는 어떤 젊은이가 물었다.
“왜들 울지?”
세 어린이는 갑자기 더욱 서러워져 왈칵 또 울음을 터뜨렸다.
짱구가 화가 치민 듯이 울먹이며 투덜댔다.
“길을 잃어버렸대두요.”
따가운 햇살만이 길 잃은 세 어린이를 쨍하니 내리쬐고 있었다.
-끝-
2016년 6월 22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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