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한파가 몰아치는 동절기가 되면 혈액이 부족하다. 특히 지난 10월에는 병원에 혈액이 부족해 수술환자가족들이 직접 혈액을 구하러 다니기도 했다. 12월 21일 현재 대한적십자사가 보유하고 있는 농축적혈구, 농축혈소판 보유량은 각각 3.8일분, 2.5일분에 불과하다. 적정 혈액보유량이 5~7일분임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한 상태이다. 이렇게 혈액이 부족하면 대한적십자사 혈액원이나 한마음혈액원은 매번 1+1 이벤트와 같이 헌혈을 하면 선물 한 개 더 주는 임기응변식으로 위기를 넘겨 왔다.
▲ 12월 21일 현재 대한적십자사가 보유하고 있는 농축적혈구, 농축혈소판 보유량은 각각 3.8일분, 2.5일분에 불과하다. ⓒ한국백혈병환우회
우리가 찾은 학교의 일부 학생들도 '문화상품권, 영화티켓'을 준다는 사실과 헌혈을 연계시키고 있었다. 문화상품권, 영화티켓 등을 지급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이는 헌혈자에게 표하는 감사의 마음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적절한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아, 사람을 살리는 헌혈이 '피 뽑고 영화 보기 위한 수단의 의미'로 전락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특히 백혈병 환자들은 투병하는 동안 헌혈자들의 피를 가장 많이 수혈 받는다. 그래서 익명의 그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늘 가슴 한 곳에 자리한다. 헌혈이 얼마나 고귀한 일인지 너무나도 잘 안다.
헌혈은 피 뽑고 영화 보는 수단?
이젠 헌혈증진 및 헌혈문화의 패러다임을 장기적 관점으로 바꾸어야 한다. 우리나라도 이제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었다. 세계에서 출산율이 가장 적은 나라 중 하나이다. 노령인구가 늘어나 혈액 수요는 더욱 증가하지만 출산율이 낮아져 헌혈자는 더욱 줄어들게 될 것이다. 현재와 같은 약 5%대의 헌혈률이 계속 유지된다면 2030년에는 필요한 혈액량의 절반 밖에 공급받을 수 없을 걸로 예상된다.
현재 우리나라 헌혈자의 약 80%가 10대와 20대이다. 30대 이후 헌혈률은 급격히 떨어진다. 반면 미국, 유럽, 호주 등에서는 30대 이후 헌혈률이 10대, 20대보다 높다. 이는 사회적 중산층으로 혜택을 받으며 어려서부터 '헌혈은 사회에 마땅히 되돌려야 할 사회적 덕목'이라는 인식을 교육을 통해 자연스럽게 형성했기 때문이다. 헌혈교육이 미래의 혈액부족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백혈병환우회는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와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헌혈에듀케이션(Blood Donation Education)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헌혈에듀케이션은 사회적 공인이 일일 헌혈교사가 되어 미래의 예비헌혈자인 초중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헌혈의 필요성과 참된 의미를 교육하는 공익적 프로그램이다. 지금까지 CF모델 서단비(12월 6일, 오륜남초등학교), 가수 아이비(12월 20일, 인왕초등학교, 배우 선우(12월 21일, 시흥중학교)씨가 헌혈에듀케이션 일일교사 역할을 했다.
▲ 가수 아이비가 12월 20일(화) 인왕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헌혈에듀케이션(Blood Donation Education)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백혈병환우회
교육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전교생이나 학년 전체가 대상이 아닌, 한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헌혈교육을 하고 사회적 공인의 교육 장면을 동영상으로 제작해 해당 학교에 기증해서 다른 반 학생들도 영상 헌혈교육을 받는 방식을 취했다.
헌혈에듀케이션이 목표하는 바는, 적극적으로 헌혈에 참여하는 것뿐 아니라 예비 헌혈자들이 헌혈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일일 교사로 참여한 가수 아이비 씨 역시 헌혈과 수혈에서 생기는 문제를 다르게 본 적이 있다고 한다.
아이비 씨는 "무엇이든 정확히 아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저도 수혈과정에서 생기는 에이즈 감염 문제를 헌혈하면 생기는 문제인 줄 알고, 한때 헌혈이 위험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인터넷에 떠도는 잘못된 정보일 뿐이었어요"라고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이런 단편적인 예들은 헌혈교육을 하는 주요한 이유가 된다.
"빨간 팩은 헌혈자들이 살리는 환자의 생명"
▲ 헌혈은 건강한 사람이 자발적으로 대가없이 혈액을 나누는 생명나눔 봉사이다. ⓒ한국백혈병환우회
초·중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이번 교육의 핵심은 '건강한 사람이' '자발적으로' '대가없이' 하는 것으로 압축된다. 올바른 헌혈문화를 지향하며,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자발적 헌혈문화인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에 교육의 목표가 있다.
헌혈에듀케이션이 진행된 서울 시흥중학교 조재란 보건교사는 "헌혈은 만16세부터 할 수 있는데, 지금 학생들이 만 15~16세니까 적절한 타이밍에 교육이 이루어진 것 같다"며 "보건 교육에 헌혈이 따로 배당되지는 않았지만, 오늘 학생들의 반응을 보니까 헌혈 교육을 실시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며칠 전 MBC드라마 <애정만만세>에서 출산 중 과다출혈로 위기에 처한 채희수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때 간호사들이 끊임없이 옮겼던 빨간 팩이 바로 헌혈자들이 살리는 환자의 생명이다. 혈액은 의료 현장에서 공공재다. 공기와 물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듯, 의료현장에선 혈액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알면 사랑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우리가 장기적 관점의 헌혈교육에 보다 신경 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