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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불교 발전의 주역들 주부
글/스텔라 박
UCLA MARC(Mindful Awareness Research Center)에서 실시하는 1년짜리 자격증 프로그램, TMF(Training in Mindfulness Facilitators) 과정을 공부 중이다.
1년 내내, 여러 권의 책을 읽고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 숙제가 만만치 않다. 숙제 하나 마치고 나면 다음 숙제가 또 주어진다. 학생들은 또한 MARC에서 실시하는 여러 MAPs Class(Mindfulness Applied Practices) 수업도 듣고 한 달에 한두 차례, 하루 종일 UCLA 캠퍼스에서 실시하는 워크숍도 참가한다. 그리고 1년에 4차례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 교육을 받는 나흘간의 프랙티컴(Practicum)에 참가해 강도 높은 직업 교육을 받는다.
4월 말에 열렸던 두 번째 프랙티컴 때에는 ‘다양성 교육(Diversity Education)’에 대해 많은 시간이 할애되었다. 다양성 교육이란 다인종으로 구성된 나라인 ‘미국’이라는 토양에서 나오는 여러 문제들을 마음챙김으로 접근하는 것이었다.
다양성 교육 시간, 40여 명으로 제한된 올해 TMF 참가자들은 돌아가며 자신의 인종적 문화적 종교적 배경에 대해 말하는 시간을 가졌다. 미국인들은 자신의 나이, 결혼 여부 등 개인 정보를 노출하는 것에 대해 병적일 만큼 꺼리는 경향이 있다. 이런 문화적 특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개인적 정보들을 돌아가며 털어놓는 ‘다양성 교육’ 시간은 내게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자기 소개는 선생님들이라고 피해가지 않았다. UCLA MARC의 교육 담당 디렉터인 다이애나 윈스턴(Diana Winston)의 차례가 됐을 때다.
“저는 다이애나 윈스턴입니다. 유대인이고 중산층이에요. 종교적으로는 주부(Jubu)입니다.”
그녀가 ‘주부’라고 했을 때, 난 잠깐 그녀가 딸을 키우며 살림도 한다는 의미로 한국어인 ‘주부’를 있는 그대로 말하나,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말이 미국이라는 토양에서 나온 새로운 단어임을 곧 알아차렸다.
유대인으로서 불교신자로 전향한 이들을 일컬어‘주부(JuBu, Jewish Buddhist 또는 부주Buju)’라 칭한다. 주부(Jubu)는 미국에서의 불교 역사와 포교를 논할 때 절대 가볍게 볼 수 없는 집단으로 불교 명상과 불교 윤리를 수행하는 유대인을 일컫는다. 유대인으로 태어나 완전히 불교로 개종한 이들을 말하지만 주요 종교 수행은 불교이면서 아직까지 유대교적 삶의 방식을 지키는 이들, 유대인이면서 명상과 불교에 관심이 많은 이들까지를 포함하기도 한다.
물론 미국 전체 인구 가운데 주부(Jubu)의 비율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하지만 유대인들 가운데, 그리고 불교도들 가운데 그 비율은 상당하며 그들의 영향력은 엄청나다. 한 통계는 최근 새롭게 불교신자로 등록하는 이들 가운데 유대교 전통을 지닌 이들(Jubu)이 차지하는 비율이 약 30퍼센트 정도라고 분석했다. 게다가 현재 활동 중인 저명한 불교 스승 중 다수는 유대인들이다. 그들의 영향력을 고려한다면 미국 불교계의 미래는 주부(Jubu)들의 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주부(Jubu)의 유래
처음‘주부(Jubu)’라는 표현이 소개돼 주류사회에서 널리 사용되게 된 계기는 유대계 시인인 로저 카메네츠(Rodger Kamenetz)의 저서, <연꽃 속의 유대인(The Jew in the Lotus, 1994)이라는 책이 출간되면서부터이다. 이 책은 로저 카메네츠가 여러 명의 유대인들과 달라이라마를 친견하기 위해 다람살라를 여행하면서 겪은 이야기들을 서술하고 있다. 이 책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책 속에서 설명하고 있는 ‘주부(Jubu)’라는 부류, 또는 종교형태가 대중의 눈을 사로 잡은 것이다. 이후 주부(Jubu)는 미국에서 일반 명사로 사용될 만큼 보편적인 표현이 됐다.
주지하는 대로 티베트 불교의 지도자인 달라이라마와 그의 추종자들은 1959년, 중국의 침공으로 고향인 티베트에서 추방돼 북인도 다람살라에 망명 중이다. 달라이라마는 현재 망명 중인 티베트인과 유대인들 사이의 연결고리를 보았다. 그리고 지난 1900년의 세월 동안 전 세계로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어떻게 그들의 종교와 언어, 그리고 민족적 동질성을 유지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표현했다고 한다. 망명 중인 티베트인들이 티베트 불교를 삶 가운데 실천해 그들의 전통과 핏줄을 유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유대인들의 역사에서 찾은 것이다. 달라이라마는 이들을 접견하면서 유대교에 대해 물었고 유대교와 불교의 유사성을 발견하려 했었다고 한다.
달라이라마 친견에 관한 얘기로 시작해 이 책은 불교 수행을 통해 영적 만족을 찾은 유대인이 늘고 있는 현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들은 불교적인 명상 테크닉을 빌어 수행을 하고 불교 철학을 수용하며 일부는 독신생활을 하는 승려가 되기도 한다. 로저 카메네츠가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눴던 주부(Jubu)들은 불교 철학과 명상이 그들의 유대인으로서의 아이덴터티를 더욱 풍성하게 채워줬다고 말한다고.
유대계 미국인의 불교화 과정
유대계 미국인으로서 최초로 불교로 전향한 이는 1893년, 시카고 세계종교의회(The World Parliament of Religions)에 참여했던 찰스 스트라우스(Charles Strauss)였다. 그는 시카고 세계종교회의 직후에 대중들을 상대로 한 강연에서 자신이 불교신자임을 천명했다고 한다. 그의 커밍아웃은 같은 해 9월 27일자, 시카고 트리뷴지에도 보도가 됐었다. 당시 신문 기사를 읽어보니 그는 오랜 기간 뉴욕 일대에서 레이스 커튼 도매업을 성공적으로 운영해왔고 유명인사 반열에 들어 있었던 것 같다. 유대인인 그가 아시아의 신비한 종교로 전향했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니는 것을 당시의 미국인들은 신문 기사로 다룰 만큼 낯설어 했었다. 그는 훗날 저작 활동을 통해 서구 세계에 불교를 소개하는 대표적 스승이 되었다.
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미국에서는 비트 제너레이션(Beat Generation)과 함께 불교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다. 비트 제너레이션이란 전쟁을 겪고 지쳐있던 전후세대를 의미한다. 이들은 절망감을 극복하기 위해 가치관의 혁신을 갈망했다. 당시 작가인 잭 캐로액(Jack Kerouac)은 <다르마를 찾는 백수들(Dharma Bums)>이라는 소설을 통해 불교를 전했다.
선(Zen) 불교는 당시 미국 문화계와 지성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유대계로 시인이자 환경운동가인 개리 스나이더(Gary Snyder)는1956년 일본으로 건너가 임제종의 선불교 공부를 하고, 불교 경전과 불교 서적들을 연구 번역했다. 1969년 귀국 후에는 평화운동과 환경운동에 헌신하며, 동양철학과 불교의 대중화에 공헌했다.
유대계 미국 시인인 앨런 긴스버그(Allen Ginsberg)는 트룽파 린포체와 스즈키 순류로부터 불법을 배웠고 참여적인 시로 미국인들의 가슴을 울렸다. 그는 나로파 대학이 설립되던 해부터 강단에 서기도 했다.
요컨대 이 시기의 미국 지성인들은 20세기를 이끌어 갈 새로운 대안사상으로서의 불교를 발전시켜 나간다.
유대인 불교 스승 봇물 터지다
1960년대 말에는 새로운 일련의 유대인들이 불교도가 되었다. 조셉 골드스타인(Joseph Goldstein), 잭 콘필드(Jack Kornfield), 섀론 잘츠버그(Sharon Salzberg) 등 미국 불교사에 있어 중요한 스승들이 인사이트 명상회(Insight Meditation Society)를 창립했으며 실비아 부르스타인(Sylvia Boorstein)은 샌프란시스코의 스피릿 록 명상센터(Spirit Rock Meditation Center) 에서 가르침을 펼쳤다. 이들 모두가 타일랜드, 버어마 등 남방불교의 승려들로부터 위빠사나 명상을 배운 자들이다. 작가 태로 골드(Taro Gold, 일본의 니치렌 종)와 그 외 일련의 유대인 불교 스승들이 2000년대 초에 부상하면서 유대인 불교도들은 미국의 불교계의 지도자층으로 자리잡게 된다. 현재 미국 불교학자의 70퍼센트가 유대인이라는 수치가 이를 증명해준다.
델리 라마(Deli Lama)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유대인 명상 교사, 라마 수리아 다스(Lama Surya Das, 본명은 제프리 밀러 Jeffrey Miller)는 그의 책, <내 안의 붓다 일깨우기(Awakening the Buddha Within)>에서 유대인 수행자들이 얼마나 많은가에 대해 코믹하게 쓰고 있다.
“한 유명한 수행자를 찾아 히말라야를 찾은 유대인 여성이 있었있다. 그녀는 비행기, 기차, 인력거를 바꿔 타면서 산 넘고 물 건너 네팔의 한 불교 사원으로 향했다. 간신히 사원에 도착한 그녀를 맞이한 것은 가사를 걸친 스님이었다.
그녀는 즉각 수행자와의 면담을 요청했지만 스님은 현재 수행자가 산꼭대기의 동굴에서 묵언 수행 중이므로 만날 수 없다고 했다. 반드시 수행자를 만나고야 말겠다고 결심한 그녀는 스님에게 간절히 부탁했고 결국 승낙한 그는 만나게는 해주겠지만 지켜야 할 몇 가지 규칙이 있다고 했다. 수행자를 잠깐 동안만 만날 수 있고, 만나면 절을 해야 하며, 그에게 여덟 마디 이상 말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동의했고 길 안내를 해 줄 셰르파와 야크를 고용해 다시 길을 떠났다. 마침내 그녀는 기진맥진한 채 높은 산의 동굴 입구에 다다랐다. 구루에게 말을 여덟 마디만 할 수 있다는 규칙을 마음속에 되새긴 그녀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동굴 입구에서 절을 하며 말했다.
“셸던, 엄마다. 이 정도면 됐다. 그만 집으로 돌아가자.” ("Sheldon, it's your mother. Enough already, come home!")”
라마 수리아 다스는 셸던이 바로 유대인인 자기일 수도 있었다고 말한다. 그만큼 유대인들 가운데 구도의 길에 나선 이가 많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왜 불교에 매혹될까
<유대교 정신의 혁명(Revolution of Jewish Spirit: How to Revive Ruakh in Your Spiritual Life, Transform Your Synagogue & Inspire Your Jewish Community)>이라는 책의 저자인 엘렌 프랭클(Ellen Frankel) 역시 자신의 유대적 배경을 불교적으로 변용한 유대계 여성 작가이다.
그녀는 허핑턴포스트와 나눈 인터뷰에서 유대인들이 불교에 끌리는 이유를 영성(Spirituality), 신(God), 역사(History), 불교의 개방성(Open Invitation), 고통(Sufferings) 등 다섯가지 요소로 분석했다.
먼저 영성(Spirituality)의 부분이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성장 과정에서 늘 접해왔던 유대교에 대해 문화, 사회, 역사적 측면은 공감하지만 자신의 존재 깊은 부분과 연결되는 영적 차원에서는 뭔가 한참 부족함을 느낀다고 한다. 심지어 유대교 종교 지도자인 랍비들까지도 이러한 문제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있는 분위기이다. 물론 유대교 안에도 영적으로 심오한 수행법(카발라 등)이 있기는 하지만 전국 곳곳에 산재해 있는 유대교 회당에서는 이를 접할 수가 없다는 것. 그렇게 영적 갈증을 느끼던 유대인들은 마음챙김 명상, 자애 명상 등 불교적 수행을 통해 영적 연결성(Spiritual connection)을 발견하는 것이다.
두번째, 신(God)에 대한 부분이다. 유대교의 십계명 가운데 첫 번째 계명은 ‘나 외에 다른 신을 믿지 말라’는 것이다. 십계명 뿐만 아니라 전통적 유대법인 할라차에서도 유대인들은 하느님 외의 어떤 신이나 우상도 경배하면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특히 절을 하거나 향을 피우거나, 희생 제물을 바치는 것은 절대 용납되지 않는다. 유대교 외의 다른 종교 단체에 가입하거나 의식을 행하는 것 역시 금지되어 있다. 이는 배교적 행위이며 우상 숭배자로 규정된다.
유대인들이 불교를 편하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불교가 본질적으로 신을 믿지 않는 종교이기 때문이다. 붓다는 인류 보편의 불성을 이룬 선각자이지 신이 아니다.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불교 수행이 자신들의 십계명 가운데 가장 중요한 계명과 전혀 상충되지 않기 때문에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불교 수행을 하는 것은 다른 신에 대한 예배가 아닌 것이다. 설사 불상 앞에 향불을 피우고 음식을 바치고 불상 앞에서 절을 하더라도 이는 붓다를 신으로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붓다의 깨달음과 자애의 가르침에 대해 깊은 감사를 바치는 것이다.
유대인 무신론자와 불가지론자들 역시 종교적 타협 또는 투쟁 없이 불교수행에서 안식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사실 이 면에 대해서는 미국의 기독교도, 캐톨릭 교도, 이슬람 교도 중 일부 역시 마찬가지 입장을 갖고 있다.
다음은 역사적 측면이다. 인류 역사는 ‘유일신교도들의 종교 전쟁’이라는 주제로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종교 신념으로 인한 갈등이 많았었다. 특히나 유대교와 캐톨릭, 이슬람교, 개신교는 근원적으로 같은 뿌리에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굴곡진 갈등의 역사를 갖고 있다. 이에 반해 비폭력적이고 수용적인 불교는 유대인들과 충돌의 역사가 전무하다. 유대인들로서는 불교에 대한 집단 무의식적 편견과 증오가 없기 때문에 유대교 전통에 불교적 수행 전통을 결합시킨다는 것이 아무 문제 없이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네번째는 불교의 개방성(Open Invitation)을 들 수 있다. 다른 종교들, 예를 들어 기독교를 믿기로 결정했다면 세례를 받아야 하는 등, 일련의 통과의례가 있다. 하지만 불교적 수행을 하기 위해 꼭 불교도로 개종할 필요는 없다. 유대인으로서의 전통과 뿌리를 지키면서도 불교의 신앙 체계와 수행법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개방성은 미국의 유대인들을 불법으로 초청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고통이라는 공통분모를 들 수 있다. 불교는 삶이 고해임을 직시한다. 유대인들은 홀로코스트에서 정점을 이룬 고난과 박해의 깊은 역사를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도와 유대인들은 고통의 본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고통을 일으키는 마음의 작용에 대한 깊은 이해와 함께 고통으로부터 근본적으로 해탈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제시하는 불교적 세계관은 유대인들을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했다.
<붓다 또는 불상: 진실, 의미, 행복,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찾은 남자(Buddha or Bust: In Search of Truth, Meaning, Happiness and the Man Who Found Them All>라는 책의 저자인 페리 가핑클(Perry Garfinkel)은 아우슈비츠에서 열린 명상 수련회에 참가한 후의 깨달음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날 밤 갑자기 나는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던 유대인 조상들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들의 죽음으로 인해 세상 빛을 보지 못한, 태어나지 못한 아이들, 그리고 태어나지 못한 아이들의 태어나지 못한 자녀들까지 알아차렸다. 역사는 쓰여지지 않은 소설, 기록되지 못한 교향곡을 잃어버렸을지 모르지만 나는 이곳에서 희생된 이들이 후세대에게 물려주었을 수도 있는 사랑과 지혜를 만날 기회를 상실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분노하는 대신, 나는 내려놓음으로써 해방감을 맛보았다. 명상 수행을 하는 동안 나는 나를 나로부터 분리할 수 있는 상태에 도달했다. 그 상태에 집중함으로써 나는 두 가지 경험을 구별할 수 있었다. 홀로코스트 당시 이곳에서 일어났던 일, 그리고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 두 가지를 말이다. 과거 일어났던 역사적 사실에 내 감정, 내 의견, 내 반응, 내 판단을 덧칠하지 않고 그저 심플하게 지켜봄으로써 나는 홀로코스트를 그냥 일어난 과거의 사건으로 볼 수 있었다. 거기에는 책임 전가도, 슬픔도, 분노도, 미움도, 죄의식도 없었다.
이전까지 나의 마음은 마치 감옥에 갇혀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날 저녁, 내 생각과 감정은 비로소 해방됐고 나는 자유를 만끽했다.
함께 명상 수련회에 참가한 여성은 세상 다른 어느 곳보다 바로 지금 바로 여기, 아우슈비츠에서 가장 살아 있음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렇게도 많은 죽음의 이미지들로 둘러싸여 있는 가운데 가장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던 이유는 마음챙김 명상 수련에 있었다.”
그는 붓다의 말을 인용함으로써 고통과 분노에 대해 성찰하게 한다.
“분노의 감정을 들고 있는 것은 누군가에게 던지려는 의도로 뜨거운 불을 들고 있는 것과 같다. 하지만 불에 데이는 것은 바로 당신이다.”
세상에는 우리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고통이 있다. 이를 이해하려하는 노력을 내려놓을 때, 우리는 비로소 그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또한 고통받고 있는 것이 나 혼자만은 아님을 깨달을 때, 우리는 나와 남에 대해 연민의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주부(Jubu)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2014년, 유대교 랍비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밟고 있던 더스티 클래스(Dusty Class)란 유대인은 비교종교학 졸업 논문으로 여러 유형의 주부(Jubu)를 기술함과 함께 왜 불교가 그렇게도 유대인들에게 매혹적으로 다가오는지를 분석했다. <J’s, B’s and JUBUs: Jewish meditation and the Jewish-Buddhist connection in contemporary California.>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그는 주부(Jubu)를 3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있다.
첫번째는 ‘인터넷 주부(Internet JUBUs)’이다. 이들은 유대교와 불교에 동시에 관심을 갖고 온라인 자료들을 찾아보는 사람들이다. 이미 <연꽃 속의 유대인(The Jew in the Lotus)>과 같은 종류의 책은 읽어봤을 터이다. 이들은 유대교와 불교의 가르침이 거의 같다고 느낀다. 진정으로 종교적이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진지한 수행자일 가능성도 높은 부류들이 바로 인터넷 주부들이다.
두번째는 주부에서 유대교도로 전향한 이들(Jubu-turned-OJ)이다. 이는 학자이자 작가인 네이든 캐츠(Nathan Katz)가 만든 말이다. 이들은 유대교 전통에서 성장하긴 했지만 유대교의 영적인 면에 있어서는 더 이상 얻을 것이 없다는 생각으로 영적인 것을 찾아 유대교 밖으로 나간다. 결국 불교를 만나 불교 전통에서 수행을 하다가 불교의 가르침을 통해 다시금 유대교로 돌아온 이들이다.
세번째 불교신자 주부(Buddhish Jubus)는 유대교와 불교을 완벽하게 통합한 부류이다. <재미있네요. 당신, 불교신자도 유대교 신자 같지도 않아보여요.(That’s Funny, You Don’t Look Buddhist, and an observant Jew)>란 책의 저자인 실비아 부르스타인(Sylvia Boorstein)이 대표적 예라 할 수 있다. 그녀는 유대인으로서, 동시에 불교신자로서의 두 상반된 아이덴터티를 유지하면서도 아무런 갈등이 없다. 그녀는 명상이 깊어가던 시기, 자신이 어떤 영적 변화의 과정을 겪고 있는지를 깨닫도록 영감을 준 것은 바로 성경구절이라고 말한다.
“나는 빛으로 가득 채워진 듯한 느낌이었어요. 아니 실제 밝은 빛을 봤어요. 눈을 감고 있었음에도요. 나는 신과의 합일감으로 무아지경이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창세기 구절이 제 머리 속에 떠올랐어요. ‘아, 이 성경구절은 세상의 시작이 아니라 의식(Consciousness)이 깨어나는 것에 대해 쓴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더스티 클래스의 논문은 불교와 유대교의 상생 현상의 이유를 이렇게 분석한다.
첫째, 유대교가 문제일 때 불교는 그 해결점이 되기 때문이다. 많은 유대인들에게 있어 유대교의 엄숙함과 무게감은 신에게로 나아가는 예배와 영성에 오히려 방해요소가 됐다. 이에 반해 불교는 융통성이 있고 열려 있어 영성을 추구하는 유대인들을 포용할 수 있었다.
두번째, 유대교가 순수하게 문화적인 방식으로 수행할 수 있는 종교가 되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성전에 가지 않거나 유대인 같지 않거나 심지어 신을 믿지 않아도 유대교에 연결돼 있다고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받은 유대인들이 삶에 대해 근원적 질문을 던지고 영적인 해답을 추구할 때 그들은 유대교로 돌아가지 않아도 됐다. 이런 가운데 명상과 불교는 영적인 목마름을 가지고 있던 유대인들에게 즉각적인 영성을 제시해준 것이다.
마지막으로 유대인들은 역사적으로 지구촌 여러 곳에 여러 차례 이주 정착하면서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여왔으며 여러 종교의 전통과 텍스트를 차용해왔었기 때문이다.
노만 피셔
유대인 불교 지도자인 노만 피셔(Norman Fischer)는 이렇게 말한다.
“삶의 종교인 유대교는 많은 이들을 얼어붙게 만들고 죄의식과 두려움을 심어줬습니다. 신의 법칙들을 깨뜨릴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삶에 도전하지도 못하게 만들었죠. 반면 죽음의 종교인 불교는 삶에 대해 자유롭고 열려있고 흥미진진한 접근으로 유대교 전통에서의 문제점을 해결해줍니다.”
최근 주부(Jubu)가 늘어나면서 ‘유대인 요가(Jewish yoga)’나 명상클래스를 제공하는 유대교 회당이 늘고 있다. 또한 유대인들을 위한 영적 명상 수련회 같은 모임도 점점 더 인기를 끌고 있다. 그들은 또 본래 유대교 신비주의에 다시금 주의를 기울이며 불교도로 개종한 유대인들을 포용하려 한다.
유대교의 전통을 떠나지 않고도 불교도들이 지켜왔던 아름다운 수행 방법인 명상을 통해 영적인 깊이를 더할 수 있는 한, 미국에서의 유대교와 불교의 교류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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