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 4:10]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니라....."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 '모든 하늘'이라는 것은 유대인들이 하늘을 일곱층으로 생각했던 것을 암시하는데.그리스도는 그 모든 하늘보다 더 높은 곳에 계신다.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니라 - 본절은 '히나'('하기위하여')로 시작하는 목적절로 본절이 그리스도께서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목적임을 시사한다.
그목적은 '만물을 충만케 하는 것'이다. '만물을 충만케'에 해당하는 헬라어 '플레로세타 판타'는 온 우주에 임재해 있을 뿐만 아니라 만물을 그의 주권 아래 두심을 뜻한다. 그리스도께서 온 우주를 통치하는 통치자가 되셔서 모든 존재들의 생명을 주관하시며 영향력을 행사하신다.
[엡 4:11]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그가...주셨으니 - 본절에 언급된 직분중 세 직분 즉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는 전체 교회를 대상으로 사역했던 것인 반면 나머지 두 직분 곧 '목사'와 '교사'는 지역 교회에 국한된 직분들이다. 이러한 직분들에서 다음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1) 직분의 다양성이다.
교회는 한가지 직무나 은사만으로 운영될 수 없으며 각자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개성이나 은사로 서로 협력하는 가운데 진정한 하나됨을 발견할 수 있다. (2) 직분의 통일성이다. 이러한 다양한 직분들은 서로 협력하여 한 몸을 이루게 하는 영적인 유기체이다. 사도 - 하나님에 의해서 보냄을 받은 자로 교회를 설립하고 교회를 섬긴 자이다.
이들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 외에 바울 자신과 바나바, 실라 등을 의미하는데 이들은 예수님을 목격하고 부활하신 주를 증거하였다.. 선지자 - 하나님의 계시를 중재하며, 죄를 깨닫게 하고 교회를 훈계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극심한 박해와 직권 오용 그리고 정경의 등장으로 인해 후에 교회에서 사라졌다
복음 전하는 자 - 선교의 차원에서 복음을 선포하는 자로 빌립, 디모데 에바브라 등이 이에 해당된다. 목사와 교사 - 혹자는 두 직분 사이에 관사가 하나밖에 없다는 이유로 같은 직분이 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직분상 그 기능이 어느 정도는 중복된다 할지라도 동일한 사람으로 볼 수 없으며, 관사가 하나밖에 없는 것은 두 직분이 지역 교회에서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목사'는 교회를 양육하고 돌보며 인도하는 자이며 '교사'는 사도적 교훈을 보존하고 전달하는 자라고 볼 수 있다.
[엡 4: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바울은 교회 안에 다양한 직분을 세우신 목적에 대해서 세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성도를 온전케 하며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스 톤 카타르티스몬'은 외과 의학에서 부러진 뼈를 맞추거나 찢어진 그물을 수리할 때(마 4:21), 또는 범죄한 자를 바로잡는다고 할 때 사용되었다.
복음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목적을 실현하며 성도들이 온전케 되도록 회복시키고 훈련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 이것은 교회의 구성원들이 각자의 직분이나 기능을 감당할 수 있도록 '틀'을 제공하는 것으로 회복과 훈련을 통해 온전케 된 성도들이 하나됨의 사역을 감당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 본절은 그리스도께서 은사를 주신 궁극적인 목적으로서 성도 각자의 특별한 직분을 사용하여 교회를 성장시키고 온 성도들을 영적으로 성장시킴을 시사한다. 비록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워 가는 것이 모든 지체의 과제이지만 특히 사역자들은 사도적 복음과 전승을 전달하고 해석하는 독특하고 중요한 과제로 나머지 지체들을 세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엡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의 헬라어 '에이스 안드라 텔레이온'은 문자적으로 '더할 나위 없이 완전히 성장한 인간이 되다'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안드라'는 남성 단수형으로 전체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한 새사람'을 이룸을 시사하며 '텔레이온'은 '완전'보다는 '성숙'의 의미를 내포한다
이것은 다음 절에서 언급되는 어린 아이와 대조적인 것으로 '성숙한 성인'에 강조점이 있다. 본문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사람이 된 교회가 원리상 교회 내에 이미 성숙함과 온전함을 획득하였음을 암시한다. 한편 '믿는 것'은 믿음의 행위라기보다 믿음의 내용을 의미하는 것이며 '믿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는 일은 그리스도가 중심이 된 구원에 포함된 모든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런 '믿음'과 '지식'의 대상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이다. '하나님의 아들'은 바울의 전통적인 기독론적 칭호이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되게 하는 것은 목사와 교사들에게 부여된 과제로서, 목사와 교사는 그리스도에 대한 한 믿음과 한 지식을 향한 점진적 진보가 있어야 함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 - 교회가 지향해야 할 완전한 영적 성숙을 나타낸다. 여기서 '장성한'에 해당하는 헬라어 '헬리키아스'는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1) '나이'를 의미한다. 이것은 성인이 된다는 것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유년기를 벗어나 '영적으로 성숙한 분량의 연령에 이름'을 시사한다.
(2) '키'를 의미한다. 헬라의 고전 작품에서는 '분량'을 나타내는 헬라어 '메트론'과 함께 사용하여 '영적으로 자라난다'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본절은 전체 교회가 추구해야 할 목표를 위하여 더욱더 그리스도의 속성과 능력을 채워가야 함을 시사한다.
[엡 4: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본절은 '히나''...하기 위하여)로 시작되는 목적절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해야 하는 이유를 나타낸다.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 본절은 성인이면서도 영적인 면에서는 아직 어린아이에 머물러 있는 자의 특징을 나타낸다. 신약성경에서 '어린아이'는 영적 미숙을 시사한다.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 '궤술'의 헬라어 '퀴베이아'는 문자적으로 '주사위를 던지다'는 의미로 당시의 속임수나 사기를 가리킨다. 또한 '유혹'의 헬라어 '파누르기아'는 거짓 교사들이 미성숙의 길로 들어서도록 교활하게 유도함을 의미한다.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함이라 -
영적 미숙아의 특징은 '요동하는 것'이다. '요동치'로 번역된 헬라어 '클뤼도니조메노이'는 조타 장치가 없는 배처럼 바람 부는 대로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들은 조그만 어려움이나 거짓 교리에 대해 쉽게 넘어간다.그러나 성숙한 자는 진리를 분별하는 능력을 가지며 어떤 거짓된 풍조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한편 '모든 교훈의 풍조'는 바울이 앞절에서 말한 '믿는 것과 아는 일이 하나가 되는것'에 반대되는 모든 교훈을 의미한다. 즉 바울은 영적 미숙아가 앞서 말한 거짓교사들의 사기와 교활함에 쉽게 빠지지 않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숙해가야 함을 권면한다.
[엡 4: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찌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개역 성경에는 '데''그러나'가 생략되어 있다. '데'는 앞절과 본절을 대비시키고 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 본절은 교회 성장의 수단을 나타낸다. '참된 것을 하여'의 헬라어 '알레듀온테스'는 문자적으로 '진리를 말하여'를 의미하는데. 이것은 교회가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는 것을 시사한다. 교회의 복음 선포는 '사랑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사랑'은 진리에 대해 충성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 '범사에'에 대해서 혹자는 '우주'로 해석하여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목적을 우주에 전하는 것이 교회의 역할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범사에'는 부사적 목적격으로 '모든 방법으로'로 이해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앞절과 본절에서 성장에 관계된 것은 우주가 아니라 교회이기 때문이다. 한편 그리스도인의 성장의 목표와 척도(尺度)는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인의 전 생애 과정 속에서 일관된 목표는 그리스도를 닮는 것으로, 질적인면에서 그리스도의 충만한 분량에까지 자라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