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 교 : 설월여자 고등학교 1학년 4반 박한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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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여는 열쇠, BMI
-‘뇌의 미래/미겔 니코렐리스/김영사’를 읽고-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그의 단편 소설 나무에서 아주 독특한 의사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그 의사는 신체가 뇌를 묶고 있기 때문에 고등한 사고에 한계가 있다고 믿었다. 그는 직접 신체에서 탈출하기를 결심했고 그의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그의 뇌는 영양액 속에 둥둥 떠 있게 되었다. 그는 완벽한 감각격리 탱크에서 오직 생각만 하며 살게 된 것이다.
현실에서 내 뇌를 분리한다면, 그리고 영양액 속에서 생존이 가능하다면 나는 나무의 의사처럼 그저 둥둥 떠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일단 나는 내 모든 신체에서 떨어져 나와 어떠한 감각도 받아들일 수 없다. 하지만 난 여전히 배가 고프고 허리가 찌뿌등하거나 엄마가 나를 깨우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내 뇌는 신체에서 온 감각이 없어도 내 신체상을 뚜렷이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환상지에서 감각이 뇌로 전달, 즉 뇌 스스로 감각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나는 환상통을 겪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각적 피드백이 불가능한 상태에 있기 때문에 오로지 정신활동으로 환상통과 환상지 현상을 극복해내야 한다. 혹은 외부인이 내 뇌의 감각피질이나 운동피질에 전기적 자극을 가해 환상지 현상을 차단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인 대책일 뿐 환상지를 없앨 수는 없다. 이 때 뇌는 아주 역동적인 모델 제작자라는 사실이 문제를 쉽게 해결해 준다. 만약 뇌가 감각피질과 운동피질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대대적인 재구성을 시행한다면, 뇌의 대부분이 사고를 담당하는 구역으로 전이될 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신체상은 사라지게 되고 자연스럽게 환상지도 없어진다.
나무의 의사는 영양액 속에서 현실에선 해결하지 못할 문제들을 해결하고, 또 거기서 문제점을 찾고 해결하기를 반복한다. 그의 동료가 그의 뇌를 떼어내기 전에 그가 뇌에 BMI를 연결해달라는 부탁도 했다면 그의 뇌 사진이 아인슈타인 옆에 실리게 됐을 것이다. BMI는 뉴런의 흥분과 근육의 수축이 분리될 수 있음을 이용하여 오로지 생각만으로 로봇팔과 같은 기계를 움직일 수 있게 하는 기술이다. 그럴 수 있게 되기까지는 정말로 많은 시간이 걸렸다. 국소주의가 힘을 갖던 때 신경생리학자들은 특정 감각이 특정 경로를 통해 부호화된다는 레이블라인 모델을 지지했다. 하지만 단일뉴런 각각의 활동전위를 측정하여 종합한 결과는 자극을 예측하지 못하며 뉴런 집단은 특정 시점을 제시하지 않으면 수용야의 공간적 영역을 제시할 수 없는 시공간 연속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뇌의 기본단위는 신경 앙상블이라는 것에 설득력이 가해진 것이다. 또한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도 뉴런은 흥분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에 호안 베스버그는 운동 전의 팔근육의 뉴런 활동 전위와 운동 시작 후 팔의 위치를 측정하여 운동 전의 뉴런의 전위만으로 팔의 운동을 예측할 수 있게 했다. 계속된 훈련과 기술적인 보완으로 현재 팔을 움직이는 상상만 해도 팔로봇을 움직일 수 있게 됐다. 나무의 의사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물론 그는 신체에 대한 집착이나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겠지만 영양액 속에 떠 있는 고깃덩어리보다는 나았을 것이다.
나는 내 뇌에 미세 전극을 심어 무수히 발생하는 활동전위를 읽어낼 수 있게 하겠다. 뇌의 미래에서 감정이나 기억과 같은 것을 BMI로 나타낼 수 있는지를 직접적으로 알려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상상을 통해 몸감각계 피질 뉴런을 활성시키고 그 전위를 기계에 옮기는 것과 추상적인 생각이나 감정을 기계에 옮기는 것이 다르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물론 신경 축중의 원리, 즉 같은 행동을 해도 절대 같은 패턴의 뉴런 활성이 이루어지지 않다는 것을 비추어 보아 고차원적인 생각을 부호화한다는 것이 팔의 운동 궤적을 구하는 것보다 더 막연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일본의 ATR연구소에서 꿈을 영상화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고 이 기술을 BMI에 응용할 전망이 있다고 발표했다. 무의식의 집합체인 꿈을 완전히 영상화하는 데 성공한다면 정신적 외상이 있는 사람들의 치료에 용이할 것이다. 뇌만 있는 상태에서 생각을 표현하고 싶다면 BMI로 뇌에 로봇팔을 연결해서 연필로 생각을 직접 쓰는 게 더 간단할 것이다. 혹은 BTBI 기술로 탐험쥐가 겪은 일을 해석쥐도 똑같이 느끼듯이 뇌를 다른 사람의 뇌에 연결해 기계라는 매개체의 소비 없이도 대량의 정보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내 뇌 또한 상대의 생각과 감정도 느끼면서 상대의 신체를 내 신체로 인식하기까지 할 것이다.
나무의 의사는, 그러니까 그의 뇌는 아무 기술도 알지 못하고 그렇게 존재하다가 먼 미래에 개의 식사감이 되어 그가 어떤 업적을 남겼는지 알리지도 못한 채 소멸한다. 그의 뇌는 매우 고등한 사고를 했던 위대한 생명체였지만 결국 그냥 공간만 차지한 살덩어리로 존재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인류 탄생 이후로 발전을 거듭해 지금의 삶을 살 수 있게 됐다. 그 발판은 과학이었고 과학은 자연처럼 당연히 인류 곁에 있었다. 그리고 몇몇 과학자들이 업적을 남기면 우리는 그들을 칭송하며 후대에까지 그들의 이름이 불리게 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 광활한 우주에서 너무나도 작은 지구에 살고 있다. 과학이 어디에나 존재한다면 이 우주 전체에 과학이 있는 것이다. 우주에서 자꾸만 예외적이고 기이한 현상이 나타난다면, 우주가 예외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과학이 예외적인 것이 된다. 나무의 의사의 사고가 그의 입장에서 고등했듯이 우리의 과학은 우리 입장에서 절대적이고 위대하다. 우주의 입장에서 우리는 지구라는 영양액에 담겨 너무나도 정적으로 존재할 뿐이다. 그렇게 보면 인간은 정말 무의미한 존재이다. 우리가 사는 이유를 찾으려 하면 할수록 더 초라해진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지구에 70억 개의 우주가 있다는 것이다. 그 우주는 우리 머리뼈 속 살덩어리의 모습으로 앉아있다. 우주에서 별이 탄생하고, 죽고 원초적인 힘으로 서로 상호작용하며 우주를 이루듯이 뉴런도 긴밀한 상호작용을 하며 뇌를 이루고 사람을 이룬다. 우리가 죽는 것이 삶을 무의미하게 만든다면 우주 또한 아무 의미가 없다. 의미의 유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뇌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명체가 감히 우주를 얘기하는 과학을 창조했고 우주를 넘어서는 상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 우리는 뇌가 신체에 묶여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그 매듭이 한 개씩 풀려나가고 있다. 뇌가 우리 몸에서 풀려나는 순간 우리의 우주가 미래를 열어놓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