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4월2일(목)흐림
구름이 아무리 오고가더라도, 눈비바람이 아무리 세차게 몰아쳐도, 미세먼지가 아무리 짙다 해도 허공을 물들이거나 때를 묻힐 수 없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변덕스런 감정이 아무리 오가더라도, 생각에 생각 꼬리를 물고 흘러간다 해도, 흐리멍덩 무지가 아무리 짙다 해도 결국은 마음의 문을 지나가버리고야 만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버릴 것이 모두 버려지고, 지나갈 것이 모두 지나가게 내버려 두면 결국은 마음 텅 빈 여백이 드러난다. 지금 이대로 텅 빈 공백이라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인간만사 길흉화복 희로애락 그대로 텅 빈 백지 위에 그려진 그림이다. 생생히 실감나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자기가 그리는 그림 속에 있다. 그림그리기를 그만 두면 화가도 그림도 사라지고 텅 빈 백지만 남는데, 그러면 백지라 할 것도 없으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지구문명이 한계에 부딪히고 생태계가 아무리 교란되었다 하더라도 허공은 눈 하나 깜박이지 않는다. 광막한 우주에서 지구라는 티끌이 없어진들 무슨 대수이랴! 인간의 사정을 일체 봐주지 않는 대자연의 공평무사함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2020년4월3일(금)맑음
공작새 깃 펼친 듯 만발한 벗 나무
후광을 발하여 마음까지 빛나
환해진 마음에 봄 경치 읊으려 입 벌렸더니
입속으로 날아든 낙화가 말문을 막네,
눈 가득 봄빛이여, 무슨 말이 필요하랴
붉은 꽃잎 떨어지는 곳마다 백지에 손도장 찍는다,
뽀얀 산목련, 자주빛 자목련, 아련한 벚꽃, 발그스레 복사꽃,
눈 내린 배꽃, 붉은 동백, 새하얀 조팝, 흰새발톱 탱자꽃, 보랏빛 제비꽃
모두가 마하무드라, 진리의 손짓
여기가 거기이며, 이것이 그것이라
지금여기 일체가 드러난 이대로 일뿐!
2020년4월5일(일)맑음
꽃잎은 무심하여 필 때도 좋고 떨어질 때도 좋아
봄바람에 실려 가는 낙화여
생사가 무엇이뇨, 자유로 날아가라
에릭크랩턴Eric Crapton과 밥말리Bob Marley 음악을 듣다.
2020년4월7일(화)맑음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도 잡는다. 그런데 그 지푸라기를 빼앗아야 한다. 최소한 살기 위해서 이것만은 붙잡아야 되는 것-목숨, 가족, 소유, 재산, 자아관념-을 빼앗아 버려야한다. 그러면 빠질 ‘물’도 없고 물에 빠져 죽을 ‘사람’도 없다. 이미 지푸라기까지도 놓아버린 사람은 흐름과 하나가 되어 죽을 ‘사람’도 없고 ‘죽음’도 없다.
물에 빠진 사람 건져놓으니 보따리 내놓으라한다. 그 사람과 보따리를 다시 물에 던져버려야 한다. 건져내봐야 다시 욕계의 흐름에 빠져 죽을 게 뻔하니까. 물에 빠져 죽을 ‘사람’도 없고 챙겨야할 ‘보따리’도 없다. 자기로부터 자유로운 낙화는 생사를 잊고 물을 따라 흘러갈 뿐이다. 물과 함께 흘러가는 낙화에겐 흐르는 물도 없고 흘러가는 낙화도 없다. 不去不來!
세상이 삼독심에 오염되어 있고 번뇌라는 병원균에 전염되어 있다. 삼독번뇌는 전염성이 강하여 대인접촉을 피해야한다. 적당한 기간 동안 자가격리 하면서 면역력을 길러야한다. 그래서 성스러운 침묵을 지키면서, 외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했으며, 적정처에서 몸과 마음을 안정시키고 마음집중과 통찰력을 닦으라했다. 팔정도가 삼독번뇌라는 전염병을 치료하면서 면역력을 키우는 법이다. 면역력을 갖춘 건강한 사람은 병에 걸린 사람이 낫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것이 보살의 길이다. 그래서 보살은 중생을 위한 의사이면서 간호사가 되라고 하셨다.
칠봉산 산행 다녀오다.
2020년4월9일(목)흐림
백장암에서 행선스님, 선일스님, 젊은 스님 세분이 와서 점심 공양하고 차담을 나누다.
2020년4월10일(금)흐림
‘지금 여기’를 지워버리는 경계의 끝까지 나갔다가 다시 ‘지금 여기’로 돌아오라. 세상의 끝까지 나갔다가 세상을 보는 눈을 얻어 다시 돌아오라. 지금 여기에 모든 있는 것들을 싹 쓸어버리고 난 다음 새 판을 짜라. 자기 몸을 화장하고 남은 재를 밭에 뿌려 거름으로 써라. 죽은 자를 다시 죽여야 비로소 산 사람을 보리라.
세상의 지식이 끝닿은 곳에서 그 지식의 한계를 터뜨려 폭파시켜라. 본래적인 무지에 눈을 뜨고 다시 지식으로 소통하는 사람의 영역으로 돌아오라. 마치 흐르는 물에 상추를 씻어 먹듯 너의 반조가 항상 싱싱하게 깨어있게 하라.
소위 ‘불교’도 지식이며 정보이다. 모든 지식체계는 권위주의적이다. 그러므로 불교를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에서 권위주의적 행태가 재현될 가능성은 항상 있다. 그런 식으로 전달되는 불교는 사람을 기존질서와 기성관념체계에 짜 맞추어 넣는 이데올로기 역할을 할 뿐이다. 이런 건 부처님의 전법정신을 배반하는 짓이다. 부처님은 우리들에게 욕계의 질서에 순응하게 만들고 세계체제에 종속된 삶을 살도록 강요하거나 유인하거나 지속하게 만드는 모든 교육과 사상과 철학과 종교를 돌파하고 코뿔소의 외뿔처럼 홀로 가라 하셨다. 천지간에 단독자로 우뚝 서서 자기를 섬으로 삼고 자기를 등불로 삼아 가야할 길을 가라고 하셨다. 세상 어디에서도 자기자리를 만들지 않기에 지위(position)가 없는 인간은 眞如진여를 산다. 이것이 무위진인無位眞人이라고 임제선사가 말했을까? 탈체제, 탈권위, 절대적 아나키스트, 무위진인은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이며,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이요,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이다.
2020년4월11일(토)부슬비
부슬부슬 비 내린다. 홈통에 물 흐르는 소리가 공룡의 내장에서 먹은 게 소화되느라 부글거리는 것처럼 들린다. 봄은 쪼랑쪼랑 흐르다 지나갈 것이다. 올해 봄은 적막하고 빈 껍질이다.
2020년4월13일(월)흐림
영원히 자기 것이 될 수도 없고 그래서 만족될 수도 없는 욕망, 그것은 세상이 네 몸과 마음에 새겨 넣은 것인데, 그 잡히지 않을 욕망을 만족시키려 평생을 쫓아가는 삶이 인간이 하는 짓이다. 그들은 언어와 관념으로 바벨탑을 쌓아 세계라 부르며 문명이라 자찬하면서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폐쇄회로를 맴돌고 있다.
생각이 없는 듯 어름한 듯 티끌 날리는 골목에 엎어져 돌멩인 듯 잡초인 듯 살자. 사람을 더럽히고 땅을 더럽히고 하늘에 때 묻히는 놈으로 살지 말라. 사람을 이용하거나 불교를 이용하여 살지 말라. 너의 삶이 누군가에게 부담이 될 때가 네가 죽어야할 때이다. 깨어있다는 것은 죽음과 친구하는 삶이다.
梅月堂 夢中作 매월당 김시습 몽중작
一間茅屋雨蕭蕭, 일간모옥우소소 한 칸 초가에 부슬 비 내리니
春半如秋意寂廖; 춘반여추의적료 봄이 한참인데도 가을처럼 마음이 고적해
俗客不來山鳥語, 속객불래산조어 세상 손님 오지 않고 산새만 지저귀는데
箇中淸味請誰描. 개중청미청수묘 그 중에 맑은 맛은 누구에게 부탁하여 그려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