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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여행9 - 웨스터민스터에서 호스가즈 지나 트라팔가 광장 넬슨을 보다!
10월 13일 우리 부부는 하이드파크 공원 에서 지하철로 웨스터민스터 역에 내려 빅벤 과
런던아이 를 지나 고풍스러운 웨스터민스터 사원 을 구경합니다.
이 사원 은 영국을 정복한 “프랑스 노르망디공 윌리엄”이 자신이 잉글랜드의 정당한
후계자 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건축해서는“대관식”까지 치렀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보는 사원 은 당시의 건축물 은 아니고...“1245년 헨리 3세에 의해
고딕식으로 재건축” 되었다고 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 을 나와 Parliament St 대로를 따라 북쪽으로 걷는데... 이 거리는
건물들이 5층 규모 바로크풍 양식으로 과거 대영제국의 영광 을 보는듯 합니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국회의사당과 빅벤 그리고 그 너머로 템즈강의 풍경 을 기웃거리
며 천천히 걸어갑니다.
그러고는 네거리를 지나 화이트홀 대로 Whitehall St. 로 접어드니 도로 한가운데에
무슨 조형물 이 보이네요?
2차 세계대전 World War 2 라는 문구가 보여 그럼 2차 세계대전 전몰자 위령비 인가
했는 데....
자세히 살펴 보노라니 안전모에다가 작업복 차림 으로 그 앞 부분에 The Women of
라는 글귀가 보입니다?
그럼 "2차 세계대전의 부인들" 이라는 의미이니, 전물자 위령비 에 부인들 이라....
이건 또 무슨 뜻이람?
오래 전에 영국의 부인들은 여성의 투표권 획득을 위해 1,865년에 여성 참정권 위원회
를 결성하여 벌인 청원과 시위가 번번히 좌절되자 방화와 투석 을 하기에 이릅니다.
심지어 왕실이 참관하는 경마 대회에 몸을 투신하는 등 갖은 투쟁을 했으나 지도자들
이 체포되어 감옥에 갖히는등 희생만 크고 별 성과는 없었는데....
1차 세계 대전에서 전국민 총동원체제가 되어 남자들이 모두 전선 으로 떠나자 노동력
이 부족해 지니 여자들이 농장과 공장에서 식량과 군수품 생산 에 동원되었습니다.
전쟁에 공을 세워 그 덕분에 전쟁이 끝난 1,918년에 30세 이상 여성들이 선거권 을
얻고 이어 1,928년에는 20세 이상의 모든 성인 여성 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아테네에서 서민 들은 재산이 없어 전쟁 무구 를 갖추지 못해 전쟁터에 나가지 못하니
자연히 발언권(투표권) 이라고는 없었습니다!
페르시아 전쟁 이 터지자 살라미스 해전 에 전투함의 배 밑창에서 노잡이 로 참전하여
공을 세웠기 때문에 동등한 권리를 획득해 민주주의 가 시작된 것과 마찬가지 일러나?
그럼 2차 세계대전 에서도 1차 대전 이상으로 부인들이 전선의 간호병 은 물론이고 농장
과 공장 그리고 광산 에 동원되어 큰 희생과 역활을 했던 모양입니다?
그러고는 왼쪽편에 수상 관저 인 다우닝가 를 지나니 이어 여왕 위병연대 건물 인
호스가즈 Horse Guards 에 이릅니다.
여기 호스가즈 앞에는 무수히 많은 관광객들 이 몰려 있는데, 그중에는 단체로 구경
온 같은 색깔의 옷을 입은 어린 학생들 의 모습이 이채롭습니다.
그리고 정문 에는 근사한 복장 을 하고 말에 올라 탄 기마위병 이 서 있어 관광객
들이 저마다 기념 촬영 을 하느라 난리도 아닙니다!
아무리 보아도 17세기 금빛 근위병 제복 을 입은 기수가 말에 올라 타고서 근무를
서는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 이네요!
여기서 출발한 근위 기병 이 좀 전에 우리가 보았던 그 버킹엄 궁전 까지 행진 해
가는 것일러나?
조금 더 걸으니 트라팔가 광장 이 보이고 왼쪽으로 근사한 문 이 보이는데.... 저게
바로 애드미럴티 아치 Admiralty Arch 인가 봅니다?
그럼 저 문 으로 들어가면 오른쪽이 세인트 제임스 파크 공원 이고 왼쪽에 웰링턴
병영 을 지나면 이어 버킹엄 궁전 이 나타나는가 보네요!
그러니까 이 문은 그냥 평범한 일개 문과 도로는 아니고.... 바로 영국의 심장부 로
향하는 주요 통로 인 셈입니다!
호스가즈 와 애드미리티 아치 를 거쳐 다시 대영 제국의 심장부였던 Whitehall 대로
를 걸어 드디어 트라팔가 광장 에 도착하는데...
드넓은 광장 한 복판에는 프랑스 함대 격파 를 기념하는 넬슨 제독의 기념비 는 하늘
을 찌를듯 합니다!
넬슨 제독 은 여러면에서 이순신 장군 에 비견되는 인물인데 1805년 영국을 침략
하려는 나폴레옹 이 프랑스- 스페인 연합 함대 를 띄우자 전쟁에 돌입합니다.
10월 21일 트라팔가르해전 전투에서 넬슨제독은 기함에 " England expects that
every man will do his duty" 깃발을 올립니다.
이날 기함 빅토리호에 탄 넬슨 은 전투 도중 르두타블호의 프랑스 저격수가 쏜 탄환
에 맞았는데, 해전이 승리했다는 보고를 받고는 숨을 거둡니다.
그를 죽게한 탄환은 윈저성 에 보관되어 있다는 데.... 100년의 세월이 흘러 1,905년
대마도 해전 에서 러시아 함대를 격파 한.....
일본 해군의 무용 을 기리는 의미에서 "넬슨의 머리카락 한줌" 을 일본에 기증해 현재
자위대 박물관에 보관중 이라고 합니다!!!
넬슨의 머리카락이 일본에??? 왜냐하면 당시 일본은 영국과 "영일동맹" 을 맺어
영국의 지원으로 러일전쟁에서 승리했으니....
일본의 해전 승리는 곧 러시아의 남진 (인도 쟁탈전) 을 저지하는 영국의 승리
이기도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넬슨 은 1,797년 지중해에서 스페인 해군을 격파했으며 1,798년 나일강 해전 에서 프랑스
해군을 격파해 인도를 노리는 프랑스의 나폴레옹에게 좌절을 안겨주었던 해군 제독입니다.
세월이 흘러 1904년 10월 11일 로제스트 벤스키 가 지휘하는 28척의 러시아함대 는 발트해
를 떠난후 영국 함대의 저지 로 지중해(수에즈 운하) 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러시아 해군은 멀리 아프리카를 도는 긴 항해 를 해야만 하였는데, 당시 군함은 수시로
항구에 상륙해 석탄과 물, 식량 을 공급받고 선원이 쉬어야 하는 데.....
아프리카에서 인도, 말레이시아 에 이르기 까지 대부분이 영국의 식민지라 아예 입항을
할 수 조차 없었으니... 러시아 해군이 겪은 극심한 고통 은 이루 다 말할수 없습니다!!!
무려 8개월을 항해 하여 마침내 1905년 5월 27일 쓰시마(대마도) 해협에 나타난
자체가 엄청난 기적 이라 할 수 있으니....
영국으로 부터 첩보를 받아 훈련하며 대기중 인 일본 도고 제독의 연합함대 에
의해 격파되는 것은 필연 이었으리라!!!
전쟁터에서 죽은 것 까지 이순신 장군 과 닮았는데, 단 이순신은 의도적으로 자살
에 가까운 죽음으로 그 대신에 후손을 살렸지만.....
만약에 이순신이 살았으면 전쟁 후에 의병장 김덕령 장군 처럼 선조의 미움과 조정
의 탄핵으로 죽음을 면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넬슨은 그런 비극은 없었으나... 적자가 없어 자손이 끊겼다는 불운을 주고 받습니다.
조선에서는 임진왜란후 "공신 책봉" 을 하면서 조선 8도에서 공이 있는 자들은 비상한
관심과 기대를 갖는지라 몇년이 지나도록 쉽게 정하지 못하다가.....
마침내 선조를 따라 도망쳐 의주 까지 호종한 문신 들은 일개 내시 까지 포함해 공신의
숫자 가 무려 90여명 에 이릅니다!!!
8년간 전쟁터에서 풍찬노숙 하며 부모처자 까지 돌보지 않고 실제로 목숨을 걸고
왜적과 싸운 장수(무신)는 불과 18명 뿐이었으니.... 그럼 90 대 18 이라?
조선은 "칼의 나라" 가 아니고....... "붓의 나라" 이었기 때문 일러나???
그것도 1등 공신 3명 은 이미 전사한 이순신과 원균 그리고 전쟁이 끝난후에 이미
병사한 권율등 모두 "죽은자들 뿐" 입니다.
" 전쟁터에 나간 장수의 공이 지극히 높으면 임금도 시기하고 하늘도 미워한다 "
고 했던가요?
붓을 쥔자들의 농간으로 일개 내시도 십수명이나 공신칭호 를 받는 데, 전장터
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 무장 과.....
재산을 바쳐 궐기한 의병 들은 대부분이 공신의 반열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이 엉터리 논공행상 은... 2~ 30년 후의 정묘호란 과 병자호란에서 임금이 남한산성
에 갇혀 죽어가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관군이야 출동을 하긴 했으나 대부분은 적당히 싸웠고 조선 8도에서 의병 은 임진왜란
때의 10% 도 채 일어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경상 좌병사 허완과 우병사 민영 그리고 충청 병사 이의배는 4만명의 병력 을 이끌고
경기도 광주 쌍태령 에 이르렀으나.....
청나라 기병 선봉대로 불과 400명 기마대의 기습적인 돌격 앞에 전멸을 면치 못하고
산산히 부서져 도망쳐 버렸고 전라도 병사들도 싸움에는 소극적 이라....
이후 전투 다운 전투 한번 없었고! 임금을 위해 목숨 바쳐 싸울 이유 무엇 이겠는가?
단지 전라병사 김준룡 만이, 임금이 포위된줄 뻔연히 알면서도 왕명이 없다는 핑계로
한사코 병사들의 출동을 허락하지 않는 전라 감사 때문에 지체하며 애를 태우다가....
마침내 구원하라는 왕명이 어렵게 도달하자 김수만등 전라 의병과 관군을 이끌고 즉시
달려 와 용인의 광교산 에서 한싸움을 이기긴 했으나!!!.
화약과 식량 부족 으로 청나라 본진을 피해 수원으로 물러나니, 전라감사 이시방은 6천
군사를 거느리고도 총 한방 쏘아보지 못하고 공주로 줄행랑쳐서 모두 흩어져 버렸지요!
이후 평안도 감사 홍명구가 3천 으로 금화 평야에서 무너진후 평안병사 유림이 2천 병사
로 산에 진을 치고 한 싸움 이겼으나.... 천여명 남짓한 병사로 무엇을 할수 있었으랴?
그렇다고 붓을 쥔 자들이 칼을 잡을리 만무하니, 10만 청나라 대군에 비할바가 아니라
삼전도에서 3궤 9고두의 치욕 을 맞았던 것이니 자업자득 이라고 해야 할거나!!!
트라팔가 광장 에는 많은 사람들이 휴식중인 데, 그중에 넬슨제독 기념비 하단부에는
사람들이 올라 앉아 쉬고 있고 분수는 잠잠합니다.
이윽고 트라팔가 광장 을 뒤로하고는 내셔널갤러리 를 지나 왼쪽으로 두 블록 더 가서
Haymarket St. 거리로 들어섭니다.
도로를 따라 50미터쯤 올라가니 오른쪽에는 영국 왕실 소유로 연극 "고도를 그리며" 와
뮤지컬 마거릿이 초연되었던 화려한 로열 헤이마켓 극장 Royal Haymarket 보입니다.
그리고 건너편에는 우리가 찾는 뮤지컬 극장 허 마제스티 Her Majesty's Theatre 가
그 중후한 자태를 드러냅니다.
여기 웨스트엔드의 마제스티 극장 에서 상연하는 "오페라의 유령" 은 카메룬 메킨토시
라는 영국 사람이 제작했다는 데....
놀라운 것은 4대 뮤지컬인 "캣츠", "레 미제라블", "미스 사이공" 과 "오페라의 유령"
네 작품을 카메룬 메킨토시 한사람 이 모두 제작했다는 것이네요?
특히나 "미스 사이공" 은 전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는데, 푸치니 가 제작한
일본 나가사키를 무대로 한 "나비부인" 을 빼닮았으니.....
추악한 베트남 전쟁 에서 꽃피운 사랑 이지만 모성애 탓인지 자신을 희생하는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가 전세계인의 마음에 닿았던 것일러나?
고풍스러운 아름다운 건물의 허 마제스티 극장 앞에는 오늘도 일본인 단체 등 수많은
관광객들이 운집해 있는 데 예전에 우리 부부는.....
레스트 스퀘어 사설 매표소에서 18.5 파운드에 싼 티켓을 구입하여 여기서 오페라의
유령 The Phantom of Opera 을 본적이 있는데..... 아직도 상연하고 있네요?
당시 뮤지컬의 시작과 함께 거대한 물체가 천장으로 치솟는 데...... 놀라서 쳐다보니
샹들리에 였던게 새삼스레 생각이 납니다.
그러고는 거리에 옛날 로마 병정과 무희, 그리고 꼬끼리며 중세 유럽 복장을 한 신사와
숙녀들이 나타나고... 이어 삼각 관계의 사랑이야기 가 이어졌던가요?
무대 복장과 호수에 배를 타고 오는 모습이며 극 속에서 “무대가 반대로 바뀌는”등
볼거리는 풍부했던 추억을 되살리곤 다시 되돌아 섭니다.
허 마제스티 극장 외관만 보고는 5분쯤 걸어 다시 트라팔가 광장 으로 되돌아 와서는
무료 입장인 내셔널갤러리 National Gallery 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울 마눌은 공짜라면 확실히 그 의미대로 실천하는지라, 동전만 만지작 거리다가
그냥 뒤따라 들어 갑니다.
1실 초기 이탈리아 에서 46실 까지 연대순으로 르네상스 , 플랑드르 명화를 보는데...
정말 시간이 부족한 것이 원망스럽습니다.
화려하고 섬세한 그림 이며 예술품 그 자체인 미술관 건물 에 이르기까지 감탄하지
않을게 없습니다!
종교화 등 그림들이 대작인데도 어찌나 섬세한지 현미경 을 대고 그렸나 싶을 정도
인 데......
고흐의 해바라기 며 벨라스케스의 천사 가 들고 있는 거울에 비친 여인의 그림과 이어
대사들 이라는 그림을 보는 데....
17세기쯤 될려나... 당시 복장을 한 두사람의 발 밑에 무슨 큰 접시 같은게 떠 있는데
저게 보는 각도에 따라 달리보이는 시각효과 를 내는 모양 입니다!!!
그러고는 마눌을 재촉해 갤러리 를 나오니 트라팔가 광장 에서는 푸른옷에 빨강
망토 를 두른 베트맨 이벤트 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러고는 갑자기 광장을 향해 오토바이족 수백명이 모여 드는 데...... 여기서 곧 무슨
집회라도 열 모양이네요?
개중에는 가죽옷 을 야무치게 챙겨 입은 여성들도 더러 보이는 것이... 마치 여자 파일럿
을 보는 듯도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참 신기한 것이 조금전에는 한산 했는데..... 어디서 시간을
정확히 맞추어.....
이 많는 사람들이 모여든 걸까요? 그리고 놀라운 것은 전혀 소란스럽지도 않으니!!!
이윽고 트라팔가르 광장 을 떠나 2시 방향으로 길을 잡아 걸어서 물어 물어 코벤트
가든 으로 가는 데......
코벤트 가든 이라는 글자 그대로 시장 마당 앞에 큰 건물 한 채 인데 그기서 맥주들
을 마시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