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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예레미야 29:4-11
제목: 예레미야의 편지
일시: 2021. 2. 14
장소: 라이프찌히 한인교회
I. 시드기야는 유다의 마지막 왕으로 바벨론의 느브갓네살이 꼭두각시로 세운 유다왕이었다. 그의 옆에는 두 명의 선지자가 있었다. 한 사람은 예레미야로 그는 하나님께서 심판의 도구로 쓰시는 바벨론을 거부하지 말고 “바벨론의 매를 맞으라”했다. 또 다른 선지자는 하나냐다. 그는 예레미야가 바벨론의 압제를 상징하기 위해 목에 걸고 나온 멍에를 빼앗아 꺽어버리고는 “하나님이 바벨론왕의 멍에를 꺽었느니라. 2년 안에 성전기구와 유다포로를 다 되돌아오게 하리라”(렘28:2)고 선언한다. 이에 시드기야는 예레미야의 듣기 싫은 진리를 택하기보다 하나냐의 듣기 좋은 거짓을 선택한다. 시드기야는 친애굽 반바벨론정책을 써서 반란을 일으킨다. 이에 진노한 바벨론왕 느브갓네살은 유다를 침공하여 예루살렘성전을 무너뜨린다. BC586년의 일이다. 시드기야는 생포되어 자신의 아들들이 죽임을 당하는 것을 두 눈으로 지켜보게 되고 곧이어 두 눈은 뽑히게 된다. 자신의 눈으로 마지막 본 영상이 그 비극이다. 그리고 쇠사슬로 결박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가 죽을 때까지 옥에 갇혀 살게 된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시드기야의 모욕적이고 비참한 결말과 유다백성들이 고통 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많이 울었다. 그래서 지은 것이 예레미야애가이며 학자들은 그를 눈물의 선지자라 말한다.
II. 예레미야의 충언을 듣지 않은 유다의 운명은 이미 결론이 나버렸고 더 이상 아무 소망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예레미야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는 백성 유다를 위해 정신을 가다듬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그는 파괴된 예루살렘성전에 남아 바벨론으로 잡혀간 유다포로들에게 하나님의 뜻이 담긴 편지를 쓴다. 편지의 내용은 명료했다, “있는 곳에서 살아 남아라!”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서 살며 텃밭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아내를 맞이하여 자녀를 낳으며 너희 아들이 아내를 맞이하며 너희 딸이 남편을 맞아 그들로 자녀를 낳게 하여 너희가 거기에서 번성하고 줄어들지 아니하게 하라”(렘29:5-6)
지금 바벨론 포로로 잡혀 갔다고 해서 절망하여 무기력하게 주저앉아 있지 말라는 것이다. 고향이 그리워 못난이 같이 날마다 눈물짓고 신세한탄만 하지 말라는 말이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지금 있는 곳에서 정면승부를 걸라고 한다. 왜냐하면 포로 되어 바벨론으로 가게 된 것이 못올 곳에 온 것이 아니고 와야 할 곳에 와있기 때문이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 잡혀 가게한 모든 포로에게”(렘29:4),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7절)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즉 바벨론 포로생활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기에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닌데”라고 생각지 말라는 것이다.
작년 설 즈음에 시진핑이 우한에 코로나 전염병이 생겼다고 공식 발표했다. 당시 저는 예정대로 한국을 방문했지만 경험한 것은 전쟁과 같은 코로나 난리였다. 아무래도 독일이 코로나가 심한 한국발 비행기를 막을 것 같아서 10여일 앞당겨 독일로 들어왔다. 그러나 제가 독일로 들어오자마자 독일이 코로나 전쟁이 시작되어 바로 그 주말 독일은 코로나로 사회가 록다운되어 버렸다. 돌아온 후 주일이 오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라 교우들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곧바로 영상주일예배 체제로 돌입했다. 그때 만해도 “한두 개월이면 끝나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오판이었다. 전 세계 어디도 코로나 프리존은 없고 1년이 지난 지금 오히려 더 강력해졌다. 게다가 영국, 남아공, 브라질발 신종 변이바이러스도 나오니 인류가 수십조원을 들여 만들어내고 있는 백신과 치료제가 그 속도를 쫓아갈까 은근 걱정이 된다. 미래학자들은 이 세상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 예측한다.
이러한 코로나시대에 바벨론 유다포로들에게 예레미야가 전한 편지가 내 눈에도 들어왔다. 예레미야가 바벨론에 포로된 유다백성들에게 그들이 머물고 있는 바벨론이란 환경 속에서도 할 것 다하고 살아가듯이, 오늘 코로나시대를 사는 우리 역시 코로나의 끝을 보고 사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일상을 살아가라는 예레미야의 메시지를 본 것이다. 바벨론의 제도, 낯선 문화, 자연환경, 언어... 등에 적응하면서 살아가듯 우리는 코로나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근래 제 머릿속에 있는 “코로나관”은 이렇다. “코로나는 더 이상 이유가 안 된다. 코로나를 이제 핑계일 뿐이다. “Corona” is not a good reason any more but now it is just a excuse.“ 이전에는 코로나 때문에 계획이 변경되도 이해가 되고 코로나 때문에 못 만나도 괜찮았고 코로나 때문에 공연이 취소되도 그러려니 했고, 코로나 때문에 예배를 못 드려도 괜찮았지만 이제 우리의 삶은 코로나를 계산한 삶이 되어야 한다. 코로나 때문에 ”살 확찐자“가 되었다고 해서 처음에는 많이 웃었는데 이제는 전혀 웃기지 않는다. 전에는 코로나는 이유가 되었지만 이제 코로나는 핑계일 뿐이다. 이제 판을 여기서부터 짜야 한다. 우리는 감떨어질 때까지 입만 벌리고 기다릴 수 없다. 우리는 그러기 때문에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할 수 있는 것을 말해야 한다.
물론 바벨론의 환경 속에서 일상을 회복하려 노력하지만 예루살렘에 있던 그대로 재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생존력이 거룩하지 않는가? 마치 우리가 독일에 살면서 설흉내를 내어도 완전할 수 없고 분위기가 나지는 않지만 그 사모함이 가상한 것과 같다! 사막에서 살아남는 칵투스 선인장은 수분을 뺏기지 않으려는 가시를 내고 멕시코의 메스키트라는 나무는 살아남기 위해 58미터까지 뿌리를 내리는 것같이 그 갈급함이 기특하다. 지금 우리 삶이 그러해야 한다. 그래서 독일에서도 삼겹살 제대로 먹어보자고 텃밭에 깻잎도 심는다. 그래서 한글교육이 충분치 않아도 한글학교를 통해 아이들에게 한국언어와 문화를 가르치려 한다. 바벨론 포로와 같은 코로나포로시대를 사는 우리는 예레미야의 편지를 읽어야 한다.
코스타유학생수련회도 26,27일 온라인영상으로라도 한다. 유한침선교사대회도 작년에는 코로나 때문에 못했지만 올해 4월에는 온라인영상으로 한다. 대학생 선교회 DFC에서 2월 16-18일까지 20학번 21학번 신입생들을 위해 웹 세미나를 개최하여 캠퍼스 미션을 한다. 저는 화요일(16일)PBTS 채플에서 말씀을 전한다. 계명대학교회는 2021년 설맞이 선교사를 위한 콘서트를 연다. 25일 07:00에 선교 zoom 강의가 있다. 오스나부르크 송안훈집사는 인터넷 극장을 오픈했다고 한다. 저는 이러한 몸부림에 박수갈채를 보낸다. 포로 생활이 끝날 때까지 주저 앉아 손 놓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손에 주어진 것, 내 눈에 들어온 것, 내 귀에 들리는 것,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라. 그것이 예레미야의 편지내용이다.
III. 예루살렘성전은 함락되고 유다는 패망했다.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고 유다는 이제 아무 소망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도는 유다가 완전히 멸망당하는 것이 아니었다. 잘려나간 나무지만 다시 그루터기에 새싹이 돋듯 생명이 돋아나기를 원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 유다 포로에게 좌절이 아닌 소망을 주기 원하셨다. 11절말씀에 하나님께서는 유다백성들을 향하신 당신의 뜻이 무엇인지 분명히 밝히고 있다.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러한 열악한 포로생활이라는 환경 속에서도 먹고 힘을 차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10절에서 구체적으로 바벨론포로 기간을 말씀하신다. 이전에 거짓 선지자 하나냐는 바벨론 포로생활이 2년 안에 끝난다고 했지만 하나님은 정확하게 당신의 플라눙을 말씀하고 있다.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렘29:10). 본토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게 하신 하나님이 그들을 다시 고국으로 불러들인다는 것이다.
예레미야의 편지를 잘 읽어본다면 바벨론 포로와 같이 코로나에 매여 있는 우리는 하나님이 재앙이 아닌 평안을 의도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신다(렘29:11). 우리는 우리의 일상을 깨뜨려버린 코로나나 그와 같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으로 인해 결박되어 사는 것이 아니요 우리를 평안과 소망으로 이끄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보고 살아야 한다.
미래와 희망이 있는 사람은 지금의 어려움도 이겨낸다. 끝이 있다는 말을 터널의 끝이라고 한다. 터널은 어둡다. 그러나 터널을 들어간 다음에는 나오는 끝이 있다. 우리는 동굴을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끝이 있는 터널을 지나고 있는 것이다. 터널이 좀 긴듯하나 끝이 보이지 않는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화이자,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있지만 올해 더 많은 다양한 백신이 개발되어 나온다. 뿐만 아니라 이미 길린 사람을 치료하는 치료약이 나온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올 년말 쯤되어서는 코로나라는 이름이 아니요 그냥 독감이라는 이름으로 통제가능한 동행자로 여기게 될 것이라고 분석한다. 오늘도 영하14도까지 내려간 추운 날씨이지만 봄이 되면 얼음 밑으로 물이 녹아 흐르듯이 우리를 결박하여 포로 삼은 바벨론이나 코로나가 녹아질 것이다. 그러한 내일과 소망의 메시지가 예레미야의 편지에 나온 하나님의 메시지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고 있는 사람은 70년 후에 돌아가게 될 그날을 위해서 준비하게 된다. 바벨론 포로시기가 끝날 것을 소망하고 기대하는 사람은 지금 여기서 준비해야 한다. 내일의 소망을 가진 사람은 오늘 최선을 다한다. 있는 곳에서 아까운 사람이 되라. 그런 사람은 어느 곳에서나 귀한 사람이 된다. 바벨론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예루살렘에서도 성공하지 못한다. 자신이 있는 곳에서 잘하고 바쁜 사람이 어디에서든지 환영받고 일복이 터진다. 지금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승부를 던져라. “코로나 끝나면”하는 것이 아니요 코로나 끝난 이후를 위해 지금 준비를 하라. 그때 가서 당황스럽게 일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워밍업을 한다.
집도 짓고 거기에 살며 텃밭도 가꾸고 열매도 먹고 결혼도 하고 평생 살 것처럼 살지만 유다포로들은 자신들이 바벨론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했다. 그들은 약속의 땅에 돌아갈 사람들이다. 예레미야는 바벨론 유다포로들에게 그들의 정체성과 그들이 가져야 할 소망과 미래를 제시하고 있다. 그들은 있는 곳에서 정착민처럼 최선을 다해 살지만 그냥 안주해서는 안되었다. 처음 바벨론에 가서 적응이 어렵고 힘들었지만 어느 정도 지낼만하니 안주하게 되었을 것이다. 또 다른 변화가 두려워 그냥 누르기로 들어가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70년 후의 미래와 소망을 가지고 있다면 운동할 때처럼 워밍업을 해 놓아야 한다. 운동선수들과 예술인들처럼 몸을 만들어야 한다. 감각이 무디어지게 해서는 안된다.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마비증세가 오게 된다. 굳어지기 전에 근육재활운동이 필요하다.
기부스를 해본 적이 있다. 팔이 뿌러져 약 3개월 동안 기부스를 하고 나니 움직임이 둔해진다. 근육도 쏙 빠진다. 팔뚝이 작아진 느낌이다. 또한 운동도 하지 않다가 갑자기 하게 되면 근육이 탄력성을 잃어 끊어지게 된다. 다치기도 쉽다.
바벨론의 유다포로들과 같이 코로나로 인해 지난 1년간 우리는 신앙생활의 기브스를 한 느낌이다. 우리는 기브스한대로 안주해서는 안된다. 영적인 운동도 하지 않으면 힘을 쓸 근력이 생기지 않는다. 혹 몸이 불어난다고 해도 체력이 아니라 뒤뚱거리는 체격만 커갈 수 있다. 신앙생활 재활의 시동을 걸어야 한다. 11시 예배만 있으니 주일이 심플하다. 새벽은 6:30 하니 시간이 좀 여유가 있다. 주일식사도 없으니 번거롭지 않다. 온라인으로 예배하니 편안하다. 심방을 하지 않아도 비대면 시대이니 전혀 부담이 없다, 행사도 없고 주일예배에 성도가 보이지 않아도 온라인으로 하고 있겠지라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여러 교회 활동들을 하지 않으니 조용히 스위스 산장에서 지내는 느낌이다.
그러나 바벨론의 임시 거처가 약속의 땅이 아닌 줄을 아는 사람은 돌아갈 그날을 위해 지금 워밍업을 한다. 지금 이대로의 안주가 아니요 미래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예레미야의 편지를 읽는 사람들은 내일을 위해 지금 몸을 만든다.
IV. 예레미야의 편지는 가슴으로 쓰는 편지이다. 눈물로 쓰는 편지이다. 그는 바벨론에 있는 사랑하는 동포 유다 포로들에게 편지한다. “동포여 먼 이국 땅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부디 살아 남으시오!” 그리고 미래에 대한 소망을 주고 있다. 70년 년 수가 차면 다시 포로에서 귀환시키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있으니 누구의 말과 환경에도 흔들리지 말고 미래의 희망을 가지시오!”
코로나가 터진지 1년이 되었다. 그러면서 예레미야의 편지가 내 마음에 담겼다. 코로나가 바벨론처럼 우리를 포로삼아 결박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영원히 우리를 잡지 못한다. 오늘 모든 지체들이 예레미야의 편지를 받으라. 하나님께서 터널의 끝에서 내일과 소망의 빛을 비추고 계신다. 내일을 소망하라. 곧 풀려질 것이다. 오늘 워밍업하며 몸을 만들라. 바벨론이나 코로나까지 콘트롤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소망하여 일이나 가정이나 신앙의 삶에 기브스한 것처럼 cool down 하여 뻣뻣히 굳은 삶이 아니요 warm up 하여 언제나 뛸 수 있는 준비태세를 갖추어 놓은 지혜로운 지체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