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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사태 밑바닥의 루소포비아
양평
전 세계 매스컴이 온통 우크라이나 사태로 도배돼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이근 전 대위가 의용군으로 싸우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입국한 것이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가 전사했다는 가짜뉴스가 나돌아서 다들 놀라는가 하면 그가 여행금지 지역인 우크라이나에 무단입국 한 것으로
외교부가 그를 경찰에 고발한 것을 두고는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한국 매스컴들의 그런 열기를 보면 갑자기 시간이 냉전시대로 돌아가 러시아가 ‘소련’이 된 느낌이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는 냉전시절 세계 곳곳에서 혁명을 부추긴 소련의 모습이니 두말할 것도 없는 악이고
그에 맞서 싸우는 우크라이나는 자유세계의 선봉으로 선의 대명사가 돼 있는 것이다.
그들이 지키려는 것은 서방세계의 자산인 자유고 그래서 휴머니즘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서구 매스컴의 그 열기에 휩쓸려 그 밑바닥의 또 다른 어두운 측면은 거의 묻히거나 외면되고 있다.
폴란드나 헝가리 등 이웃 국가들이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한 가족처럼 돕는 모습을 대서특필하다보니
그 나라들이 어느새 인도주의 천국처럼 비치는 것이 그렇다.
그 나라들이 2015년 이후 유럽에 몰려온 시리아 난민들을 냉대하다 못해
적대하다시피 했던 사실은 까맣게 잊히고 있다.
그처럼 여러 해 전의 사태를 들먹일 것도 없다.
이번 사태의 혼란 속에서도 그런 인종차별 현상은 어김없이 드러났다.
우크라이나에서 폴란드 등으로 국경을 넘어가는 과정에서 백인들은 우선적으로 입국이 허용됐지만
아프리카나 중동 또는 인도인들은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했던 것이다.
그것은 가는 과정에서의 문제일 뿐 그들이 인접국으로 가고 나서 정착을 하는 과정에서 겪을 인종차별은 뻔한 일이다.
그들이 우크라이나에서 겨우 자리 잡을 때까지 겪었던 고난의 과정을 반복해야 하거나
그보다 더 심할 가능성이 크다.
백인 난민들이 몰려와 그렇지 않아도 골치 아픈 판에 원래부터 달갑지 않은 존재인 유색인 난민까지
끼어있으니 얼마나 귀찮은 존재인가. 하지만 그런 정도의 인종갈등은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표피적인 것들이다.
역사학자들은 아예 이번 갈등 자체가 하나의 인종갈등 같은 측면이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주장은 엉뚱한 소리로 비칠 수 있다.
우크라이나는 말할 것 없고 러시아도 백인 국가이자 유럽 국가여서다.
러시아의 오랜 역사적 수도로 현재의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키이우는 물론이고
그 뒤에 수도가 됐던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도 유럽에 소재해 있다.
종교도 기독교다.
그럼에도 러시아 전 국토의 73%는 아시아에 있으니 이 나라는 그 큰 몸통을 아시아에 둔 채
유럽에는 얼굴만 내밀고 있는 형국이기도 하다. 더욱이 아시아 쪽에는 이슬람교를 비롯해
이단의 종교를 신봉하는 소수민족들도 많다.
하지만 러시아와 유럽의 심리적 장벽에서 그런 무슬림들의 존재는 하찮은 셈이다.
가장 큰 장벽은 오히려 기독교, 정확히 말하면 ‘러시아의 기독교’ 자체에 있다.
우리 동아시아인들에게 ‘동방정교’나 ‘그리스정교’ 또는 ‘러시아 정교’라는 명칭은
‘서방정교’라 할 수 있는 로마가톨릭교나 거기서 파생된 개신교와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기독교의 역사를 더듬어 올라갈수록 그들의 사이에는 심연처럼 깊은 장벽 같은 것이 비친다.
다만 우리는 주로 서방, 즉 로마 기독교 세계와 접해서 그 세계의 눈으로만 기독교 세계를 보다시피 했다.
중국 등 동아시아에 기독교를 전파한 것도 로마 교황청 산하의 포르투갈 사제들이었고
그 뒤 동양을 지배하다시피 한 기독교 국가도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와 미국 등 서방교회 산하였다.
동방교회 세력으로는 러시아가 20세기 초에 동아시아에 진출하려 했으나 동양국가인 일본에게도 제지당하는 식이었다.
그러다가 냉전 시대까지 거치는 동안 우리에게 동방정교는 역사책에서나 존재하는 종교처럼 비쳤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서방측, 즉 서유럽과 미국 등의 매스컴을 통해서만 역사를 보다시피 했다.
로마교황청이 주도하고 서유럽 국가들이 참가한 십자군이 세계 역사상 가장 성스러운 군대로
우리의 의식에 자리 잡고 있는 것도 그런 것이다.
그래서 십자군이 얼마나 어두운 발자취를 남겼는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특히 이집트를 공략하러 간다던 4차 십자군이 엉뚱하게 동로마의 수도, 즉 동방정교의 중심인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해서
살인과 약탈 및 강간의 만행을 저질렀던 사실은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십자군과 관련된 문예물이라면 그저 ‘사자왕 리처드’와 이슬람의 영웅 살라딘의 대결이나 떠올리는 정도다.
기독교를 위해 일어났다는 십자군이 기독교 도시를 반달족보다 더 야만적으로 짓밟았으니
그것은 살라딘 이야기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만큼 엄청난 서사임에도
그것을 소재로 한 서구의 문학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저 마지못해 역사책에 간략히 기록된 정도다.
그런 반작용으로 러시아가 서방 기독교들을 탄압하고 있다는 사실도
우리에게는 먼 곳의 희미한 소식으로 전해진 정도다.
소련의 몰락 직후 집권한 보리스 옐친은 서방 교회와 선교사들의 정부 등록을 의무화하고
이들의 활동을 제한한 1997년 연방법을 제정했고 그것을 푸틴이 2001년에 더욱 강화해
개신교 개종을 금지하는 것을 명시했던 것이 그 시작이다.
하지만 오늘날 서구를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는 '루소포비아(러시아 혐오·Russophobia)‘의 원인은
그런 종교적인 요소만이 아니다. 종교를 떠나서도 유라시아 대륙을 넓게 차지하고 있는
러시아의 그 방대한 넓이에 유럽은 위압감을 느낀다. 더욱이 그 방대한 국토가 아시아권에 주로 퍼져 있어
인종적인 이질감도 심하다. 실제로 징기스칸의 몽골제국에서
그 주무대는 오늘날 러시아에 해당하는 지역이라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인종도 수상한 인간들의 대국이 이웃해 있으니 유럽인들에게는 어딘지 꺼림칙하고
두려움을 주는 나라인 셈이다. 그런 심리는 러시아가 나폴레옹 군을 물리치면서 가중됐다.
나폴레옹 전쟁이라면 프랑스를 상대로 전 유럽이 싸운 셈이고 거기서 가장 큰 공을 세운 것이 러시아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러시아의 그런 공적은 이상한 공포로 다가온 셈이다.
그래선지 나폴레옹을 몰락시키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러시아의 미하일 쿠투조프 장군의 존재는
우리에게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그보다는 고작 한나절의 싸움인 워털루 전쟁에 참가했던 여러 나라 장군의 하나일 뿐인
영국의 아서 웰즐리 웰링턴의 이름은 너무 익숙하다.
그 루소포비아는 소련의 공산주의 혁명으로 20세기를 그늘지게 해서 더욱 가중됐지만
그런 이데올로기의 문제는 아주 심각한 것은 아니다.
20세기에는 공산주의와 대척점에 있는 나치즘도 세계를 뒤흔들었다.
러시아의 공산주의가 세계를 얼어붙게만 했다면 나치즘은 아예 유럽을 초토화시켰다.
더욱이 나치즘이 연합군과의 싸움에서 베를린 함락이라는 끝장까지 이어졌다면
소련은 저절로 무너졌으니 이데올로기 싸움이랄 것도 없다시피 됐다.
하지만 나치가 무너진 뒤의 동서독은 별 거부반응이 없이 각각 동서 유럽사회에 적응했다.
하지만 소련은 힘없이 무너졌으나 러시아는 유럽사회에 적응하기가 어렵다.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는 사라지고 소련 시절의 국토도 많이 떨어져 나가 옛모습이 아니지만
아직도 유라시아 대륙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그 나라에는 유럽인들과는 DNA가 다른듯한 인종들이 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사태가 어떤 식으로 결말을 보던 루소포비아에는 결말이 없으리라는 시각에서
이번 사태를 보아야 할 일이다.
<문화비평가/세계일보 문화전문기자, 서울경제신문 문화부장, 한국일보 문화부 차장(한국일보 견습 25기) 역임/
著書: "디스토리"(Daily History)/순천고~고대 정외과 졸/순천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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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쓸어 내려도 마음은 슬프고
백연수
지난 10일 새벽 네시 쯤 저는 가슴을 쓸어 내렸고 마음은 슬프고 아쉬웠습니다.
윤 후보가 공칠삼 포인트로 역전 당선되었으나,
제 고향 부안에선 꼴랑 12.5%를 득표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정치, 이념 그런 것 쥐뿔도 모르는 소시민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 후보 쪽에 불거진 세속적인 사건들의 1/3만 사실이더라도
도저히 후보가 될 수 없었다고 보며 그런 사람을 후보로 세워놓고 기고만장하는
그 당 사람들 보면 기가 막힙니다.
거기다 이 후보는 국회에서 180석을 앞세워 여당에서 통과시키고 싶은 법률 다 한 데 모아
기차칸에 태워 -패스트 트랙으로- 통과시키면 그만이라고 했으며,
진짜 무서운 공약은 전국토의 국토보유세를 다 걷어야 된다고 공약했습니다.
그러면 이 '전국토보유세'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지금 4만에 가까운 탈북민이 엄연히 한국에서 살고 있고 그 배경에는 3,4배가 넘는
숫자가 죽었거나 수용소에 가 있을 것이며 젊은 여성들은 중국을 거치면서 형언할 수 없는
가혹한 성적 학대를 겪으며 오직 하나 경제적 부유 또는 자유를 찾아 모험했을 것입니다.
보수외 진보 이념이 좌파,우파로 대치되는 성향으로 볼 때 남북한이 극한으로 대립되어 있는 우리와
그런 우려가 없는 서구 국가들의 낭만적인 형국과는 현실적으로 너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존경하는 신복룡 박사님이 제게 말씀하시길 암행어사 박문수한테 임금이
'그래 자네가 여러 해 전국을 다녀 본 결과 어느 고장이 제일 좋던가' 라고 하문하니
'부안고을 만한 데가 없습니다'라고 했답니다(신 박사님 맞죠?).
그런 고장에서 정확히 7/8이 좌파 이 후보를, 겨우 1/8이 윤 후보를 찍은 것입니다.
글쎄요, 6.25때 북한 빨갱이들이 지리산으로 잠입하는 중요한 루트가 부안 변산이라서
그 영향이 아직까지 7/8이나 남았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솔직히 정세균, 김부겸, 이낙연 중 누구라도 후보가 됐더라면 저도 쪼끔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어쨋든 우리가 배운 동방예의지국의 도덕, 윤리는 다 어디로 가고,
절만 이쁘게 잘하며 사과드리면 아무리 잘못한 형사범죄라도 다 사해준다는 것인 지요.
그렇다면 열번만 더 이쁘게 절하고 사과했다면 당선됐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불끈 솟아
오르며 지금 쯤 후회 막급하고 있을 까요?
방장과 술한잔 씩 하며 여러 번 써 먹어온 말씀이 '문리대 정외과 출신들이 정치의 품격을
얼마나 하류로 내몰았으면 이건희 회장한테 "한국 정치는 4류"란 말이나 듣냐?'
이상 정치 문외한인 소시민이 뻔데기 앞에 주름잡는 말씀 한번 드렸습니다(대선 1주일 안 넘기려고).
<'마사모'(마르코글방을사랑하는사람들의모임) 회장/(주)이노글로벌 회장/
전주고~서울대 농대 축산학과 졸/부안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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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 오늘(2020.3.18)
글방에 실린 글 #1~#4
" 어머님 통곡 속에 너를 날려 보낸 날
#1 뜨거운 뼛가루 품었던 가슴팍에
너 대신 들꽃 한 송이 으스러지게 품어본다"
김명희 - 김지혜 씨 逝去1주기 추모의 詩
김승웅 방장님, 안녕 하시지요?
여기서도 모두 집에 갇혀 삽니다.
조심하셔서 위기를 잘 넘어가시기 바랍니다.
명희
..................
임철순씨,
지난번 글에“그런데 저는 아직 송여사(송명희씨)를 만난 적도 없고”했는데,
이거 사실이에요? 두 분이 만난 건 천하가 다 보았는데요.
지난번에 글방 지면에 post되었던 조광동/송명희 결혼사진에,
임철순 씨를 분명히 본 것 같은데요. 아니에요?
.
사람이 만나는 것은 꼭 hug를 해야 하는 거 아니잖아요.
결혼식에서 보았어도 만난 것은 만난 것이지요.
더구나 불로그에서 서로 온갖 이야기하며 지났다면서
그것은 진짜로 만나고 또 만나고 한 것이 아니겠어요.
여하간 사람이 만나서 불로그에서도 통화를 하며 지난다는 것은
celebrate할 일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5번가의 고독”이라는 말이 있듯이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통화가 없으면 있으나마나 한 것이 아니겠어요.
.
조광동 선생님,
무안을 드린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I am so sorry.
그런 의도는 없었는데. 다시는 안 그럴게요
. .
故김지혜 씨의 글 묶음 책으로 나오는 것은
누군가가 마지막 Editing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혹시 지혜 씨가 생전에 친했던 친구에게 원고를 읽혀서
의견을 얻는 것도 방법이라 생각되네요.
지혜 씨의 1주기를 지나며 시 한 편 보냅니다.
.
들꽃 한 송이
許炯萬
오늘도 수업을 끝내고
학교 뒷산에 올라 들꽃 한 송이 꺾다.
이 나라 천지에 지천으로 피어있는
들꽃이란 들꽃은 모두 너만 같아서
이 나라 천지를 훠이훠이 흐르는
바람이란 바람은 모두 너만 같아서
고향 길 야간열차 난간 잡던 손으로
너 대신 들꽃 한 송이 조심히 쥔다.
네 가는 길 뒤돌아보지 말라 시던
어머님 통곡 속에 너를 날려 보낸 날
뜨거운 뼛가루 품었던 가슴팍에
너 대신 들꽃 한 송이 으스러지게 품어본다.
시들고도 마르지 않는 질긴 목숨이
들꽃이거나 사람이거나 어디 다르랴
오늘도 수업을 끝내고
너 가던 길목을 본다. 서러운 누이야.
그림에는“fixation point” (執點)이 있듯이 詩에는 “focal point”(
양평
전 세계 매스컴이 온통 우크라이나 사태로 도배돼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이근 전 대위가 의용군으로 싸우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입국한 것이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가 전사했다는 가짜뉴스가 나돌아서 다들 놀라는가 하면 그가 여행금지 지역인 우크라이나에 무단입국 한 것으로
외교부가 그를 경찰에 고발한 것을 두고는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한국 매스컴들의 그런 열기를 보면 갑자기 시간이 냉전시대로 돌아가 러시아가 ‘소련’이 된 느낌이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는 냉전시절 세계 곳곳에서 혁명을 부추긴 소련의 모습이니 두말할 것도 없는 악이고
그에 맞서 싸우는 우크라이나는 자유세계의 선봉으로 선의 대명사가 돼 있는 것이다.
그들이 지키려는 것은 서방세계의 자산인 자유고 그래서 휴머니즘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서구 매스컴의 그 열기에 휩쓸려 그 밑바닥의 또 다른 어두운 측면은 거의 묻히거나 외면되고 있다.
폴란드나 헝가리 등 이웃 국가들이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한 가족처럼 돕는 모습을 대서특필하다보니
그 나라들이 어느새 인도주의 천국처럼 비치는 것이 그렇다.
그 나라들이 2015년 이후 유럽에 몰려온 시리아 난민들을 냉대하다 못해
적대하다시피 했던 사실은 까맣게 잊히고 있다.
그처럼 여러 해 전의 사태를 들먹일 것도 없다.
이번 사태의 혼란 속에서도 그런 인종차별 현상은 어김없이 드러났다.
우크라이나에서 폴란드 등으로 국경을 넘어가는 과정에서 백인들은 우선적으로 입국이 허용됐지만
아프리카나 중동 또는 인도인들은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했던 것이다.
그것은 가는 과정에서의 문제일 뿐 그들이 인접국으로 가고 나서 정착을 하는 과정에서 겪을 인종차별은 뻔한 일이다.
그들이 우크라이나에서 겨우 자리 잡을 때까지 겪었던 고난의 과정을 반복해야 하거나
그보다 더 심할 가능성이 크다.
백인 난민들이 몰려와 그렇지 않아도 골치 아픈 판에 원래부터 달갑지 않은 존재인 유색인 난민까지
끼어있으니 얼마나 귀찮은 존재인가. 하지만 그런 정도의 인종갈등은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표피적인 것들이다.
역사학자들은 아예 이번 갈등 자체가 하나의 인종갈등 같은 측면이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주장은 엉뚱한 소리로 비칠 수 있다.
우크라이나는 말할 것 없고 러시아도 백인 국가이자 유럽 국가여서다.
러시아의 오랜 역사적 수도로 현재의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키이우는 물론이고
그 뒤에 수도가 됐던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도 유럽에 소재해 있다.
종교도 기독교다.
그럼에도 러시아 전 국토의 73%는 아시아에 있으니 이 나라는 그 큰 몸통을 아시아에 둔 채
유럽에는 얼굴만 내밀고 있는 형국이기도 하다. 더욱이 아시아 쪽에는 이슬람교를 비롯해
이단의 종교를 신봉하는 소수민족들도 많다.
하지만 러시아와 유럽의 심리적 장벽에서 그런 무슬림들의 존재는 하찮은 셈이다.
가장 큰 장벽은 오히려 기독교, 정확히 말하면 ‘러시아의 기독교’ 자체에 있다.
우리 동아시아인들에게 ‘동방정교’나 ‘그리스정교’ 또는 ‘러시아 정교’라는 명칭은
‘서방정교’라 할 수 있는 로마가톨릭교나 거기서 파생된 개신교와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기독교의 역사를 더듬어 올라갈수록 그들의 사이에는 심연처럼 깊은 장벽 같은 것이 비친다.
다만 우리는 주로 서방, 즉 로마 기독교 세계와 접해서 그 세계의 눈으로만 기독교 세계를 보다시피 했다.
중국 등 동아시아에 기독교를 전파한 것도 로마 교황청 산하의 포르투갈 사제들이었고
그 뒤 동양을 지배하다시피 한 기독교 국가도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와 미국 등 서방교회 산하였다.
동방교회 세력으로는 러시아가 20세기 초에 동아시아에 진출하려 했으나 동양국가인 일본에게도 제지당하는 식이었다.
그러다가 냉전 시대까지 거치는 동안 우리에게 동방정교는 역사책에서나 존재하는 종교처럼 비쳤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서방측, 즉 서유럽과 미국 등의 매스컴을 통해서만 역사를 보다시피 했다.
로마교황청이 주도하고 서유럽 국가들이 참가한 십자군이 세계 역사상 가장 성스러운 군대로
우리의 의식에 자리 잡고 있는 것도 그런 것이다.
그래서 십자군이 얼마나 어두운 발자취를 남겼는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특히 이집트를 공략하러 간다던 4차 십자군이 엉뚱하게 동로마의 수도, 즉 동방정교의 중심인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해서
살인과 약탈 및 강간의 만행을 저질렀던 사실은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십자군과 관련된 문예물이라면 그저 ‘사자왕 리처드’와 이슬람의 영웅 살라딘의 대결이나 떠올리는 정도다.
기독교를 위해 일어났다는 십자군이 기독교 도시를 반달족보다 더 야만적으로 짓밟았으니
그것은 살라딘 이야기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만큼 엄청난 서사임에도
그것을 소재로 한 서구의 문학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저 마지못해 역사책에 간략히 기록된 정도다.
그런 반작용으로 러시아가 서방 기독교들을 탄압하고 있다는 사실도
우리에게는 먼 곳의 희미한 소식으로 전해진 정도다.
소련의 몰락 직후 집권한 보리스 옐친은 서방 교회와 선교사들의 정부 등록을 의무화하고
이들의 활동을 제한한 1997년 연방법을 제정했고 그것을 푸틴이 2001년에 더욱 강화해
개신교 개종을 금지하는 것을 명시했던 것이 그 시작이다.
하지만 오늘날 서구를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는 '루소포비아(러시아 혐오·Russophobia)‘의 원인은
그런 종교적인 요소만이 아니다. 종교를 떠나서도 유라시아 대륙을 넓게 차지하고 있는
러시아의 그 방대한 넓이에 유럽은 위압감을 느낀다. 더욱이 그 방대한 국토가 아시아권에 주로 퍼져 있어
인종적인 이질감도 심하다. 실제로 징기스칸의 몽골제국에서
그 주무대는 오늘날 러시아에 해당하는 지역이라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인종도 수상한 인간들의 대국이 이웃해 있으니 유럽인들에게는 어딘지 꺼림칙하고
두려움을 주는 나라인 셈이다. 그런 심리는 러시아가 나폴레옹 군을 물리치면서 가중됐다.
나폴레옹 전쟁이라면 프랑스를 상대로 전 유럽이 싸운 셈이고 거기서 가장 큰 공을 세운 것이 러시아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러시아의 그런 공적은 이상한 공포로 다가온 셈이다.
그래선지 나폴레옹을 몰락시키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러시아의 미하일 쿠투조프 장군의 존재는
우리에게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그보다는 고작 한나절의 싸움인 워털루 전쟁에 참가했던 여러 나라 장군의 하나일 뿐인
영국의 아서 웰즐리 웰링턴의 이름은 너무 익숙하다.
그 루소포비아는 소련의 공산주의 혁명으로 20세기를 그늘지게 해서 더욱 가중됐지만
그런 이데올로기의 문제는 아주 심각한 것은 아니다.
20세기에는 공산주의와 대척점에 있는 나치즘도 세계를 뒤흔들었다.
러시아의 공산주의가 세계를 얼어붙게만 했다면 나치즘은 아예 유럽을 초토화시켰다.
더욱이 나치즘이 연합군과의 싸움에서 베를린 함락이라는 끝장까지 이어졌다면
소련은 저절로 무너졌으니 이데올로기 싸움이랄 것도 없다시피 됐다.
하지만 나치가 무너진 뒤의 동서독은 별 거부반응이 없이 각각 동서 유럽사회에 적응했다.
하지만 소련은 힘없이 무너졌으나 러시아는 유럽사회에 적응하기가 어렵다.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는 사라지고 소련 시절의 국토도 많이 떨어져 나가 옛모습이 아니지만
아직도 유라시아 대륙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그 나라에는 유럽인들과는 DNA가 다른듯한 인종들이 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사태가 어떤 식으로 결말을 보던 루소포비아에는 결말이 없으리라는 시각에서
이번 사태를 보아야 할 일이다.
<문화비평가/세계일보 문화전문기자, 서울경제신문 문화부장, 한국일보 문화부 차장(한국일보 견습 25기) 역임/
著書: "디스토리"(Daily History)/순천고~고대 정외과 졸/순천 산>
가슴을 쓸어 내려도 마음은 슬프고
백연수
지난 10일 새벽 네시 쯤 저는 가슴을 쓸어 내렸고 마음은 슬프고 아쉬웠습니다.
윤 후보가 공칠삼 포인트로 역전 당선되었으나,
제 고향 부안에선 꼴랑 12.5%를 득표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정치, 이념 그런 것 쥐뿔도 모르는 소시민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 후보 쪽에 불거진 세속적인 사건들의 1/3만 사실이더라도
도저히 후보가 될 수 없었다고 보며 그런 사람을 후보로 세워놓고 기고만장하는
그 당 사람들 보면 기가 막힙니다.
거기다 이 후보는 국회에서 180석을 앞세워 여당에서 통괴시키고 싶은 법률 다 한 데 모아
기차칸에 태워 -패스트 트랙으로- 통과시키면 그만이라고 했으며,
진짜 무서운 공약은 전국토의 국토보유세를 다 걷어야 된다고 공약했습니다.
그러면 이 '전국토보유세'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지금 4만에 가까운 탈북민이 엄연히 한국에서 살고 있고 그 배경에는 3,4배가 넘는
숫자가 죽었거나 수용소에 가 있을 것이며 젊은 여성들은 중국을 거치면서 형언할 수 없는
가혹한 성적 학대를 겪으며 오직 하나 경제적 부유 또는 자유를 찾아 모험했을 것입니다.
보수외 진보 이념이 좌파,우파로 대치되는 성향으로 볼 때 남북한이 극한으로 대립되어 있는 우리와
그런 우려가 없는 서구 국가들의 낭만적인 형국과는 현실적으로 너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존경하는 신복룡 박사님이 제게 말씀하시길 암행어사 박문수한테 임금이
'그래 자네가 여러 해 전국을 다녀 본 결과 어느 고장이 제일 좋던가' 라고 하문하니
'부안고을 만한 데가 없습니다'라고 했답니다(신 박사님 맞죠?).
그런 고장에서 정확히 7/8이 좌파 이 후보를, 겨우 1/8이 윤 후보를 찍은 것입니다.
글쎄요, 6.25때 북한 빨갱이들이 지리산으로 잠입하는 중요한 루트가 부안 변산이라서
그 영향이 아직까지 7/8이나 남았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솔직히 정세균, 김부겸, 이낙연 중 누구라도 후보가 됐더라면 저도 쪼끔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어쨋든 우리가 배운 동방예의지국의 도덕, 윤리는 다 어디로 가고,
절만 이쁘게 잘하며 사과드리면 아무리 잘못한 형사범죄라도 다 사해준다는 것인 지요.
그렇다면 열번만 더 이쁘게 절하고 사과했다면 당선됐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불끈 솟아
오르며 지금 쯤 후회 막급하고 있을 까요?
방장과 술한잔 씩 하며 여러 번 써 먹어온 말씀이 '문리대 정외과 출신들이 정치의 품격을
얼마나 하류로 내몰았으면 이건희 회장한테 "한국 정치는 4류"란 말이나 듣냐?'
이상 정치 문외한인 소시민이 뻔데기 앞에 주름잡는 말씀 한번 드렸습니다(대선 1주일 안 넘기려고).
<'마사모'(마르코글방을사랑하는사람들의모임) 회장/(주)이노글로벌 회장/
전주고~서울대 농대 축산학과 졸/부안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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